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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북핵실험부터 군사합의까지…퇴임 국방장관 마지막 인터뷰
입력 2020.09.18 (15:27) 수정 2020.09.18 (21:42) 취재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리고 우리 장병들을 위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머지는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국방부를 떠난 정경두 장관이 지난 43년의 군, 그리고 공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남긴 말입니다.

1978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군 생활 첫발을 뗐으며 전투 조종사로 임관해 공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으로 퇴임했습니다. 정 장관은 공군 출신으로 이 자리까지 온 건 행운이었다면서도, 정신적인 압박과 책임감 역시 남달랐다고 지난날을 돌아봤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첫 합참의장이자 두 번째 국방장관으로서, 북한 핵실험으로 시작해 9·19 군사합의까지 격렬한 변화의 한 가운데서 군을 통솔했던 인사의 소회는 어떨까. 퇴임을 하루 앞둔 어제(17일)저녁 정경두 장관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1년 반 동안 국방부를 출입하며 정 장관 재임 기간의 2/3를 취재한 후기이자 장관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싣습니다.

의장 취임 직후 북한 핵실험…이듬해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

정경두 장관은 합참의장 자리를 맡은 직후부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이 이어지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고 회고했습니다.

정 장관이 합참의장에 취임한 건 2017년 8월 20일, 2주만인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합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고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포했습니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했던 밥 우드워드 기자가 신작 《격노(Rage)》에서 미국이 무력 대응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한, 전쟁 직전까지 간 상황이 바로 이때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8년 4월 27일, 정 장관은 당시 합참의장 자격으로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합니다. 당시 북한의 군 장성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거수경례했는데, 정 장관은 무표정으로 악수만 해 화제가 됐습니다.


정 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정상회담 전에) 합참 참모들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논의를 했는데, 그래도 군복을 입은 합참의장이기 때문에 꼿꼿한 자세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며 "참모들 의견을 존중해 그렇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전쟁 목전까지 갔다 몇 달 만에 김 위원장과 악수까지 하게 된 정세 격변기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정 장관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되는 초기에는 남북 간 상황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 실험까지 굉장한 긴장 이었다"며, "군사적 상황을 철저히 대비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부터 4·27 판문점 선언, 9.19 군사합의가 이어질 때까지, 군사적으로 문제없도록 뒷받침하며 정말 숨 가쁘게 왔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건 2018년 9월 21일. 송영무 전 장관이 9·19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직후였습니다. 정 장관은 "국방 차원에서는 결국 강력한 힘, 군사대비태세가 완벽해야만 정부 정책을 지원할 수 있다고 봤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9·19 군사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제일 먼저 검토한 것은 '우리 작전성에 문제가 없는가?' 였다"며, "'문제가 없다'는 참모들의 검토가 된 이후에 항상 승인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9·19 군사합의에 대해서는 "지금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정 장관은 "물론 남북 간에 더 추진하기로 했던 게 안 된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군사 분야에서 앞서 나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외교적인 부분에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군사적 측면에서는 접적 지역 긴장도는 많이 낮아져 있다고 보고, 우리 대비태세에도 문제가 없도록 계속 강조를 했고 잘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日 초계기 대응 땐 '조종사 점퍼' 맞불…고노 방위상 상대 '일본어'로 설득

일본과의 관계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정 장관은 공군 시절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 교육을 받은 특이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일파'로 알려진 정 장관의 재임 기간, 아이러니하게도 한일 관계는 극한으로 치달았습니다. 군사적으로는 2018년 말부터 지난해 초 일본 초계기가 우리 군함에 근접해 위협 비행을 한 사태가 있었고,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GSOMIA)는 종료 직전까지 갔습니다.

정 장관은 먼저 초계기 사태는 "한국의 압승"이었다고 자평했습니다. 정 장관은 "그 사안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당시 심승섭 해군총장에게 전화해서 상황의 팩트를 빨리 정확히 파악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며, "내용을 보니 우리 레이더는 '탐색 모드'는 운용을 했지만, 무기를 발사하기 위한 '추적 모드'는 하지 않았다는 걸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정 장관은 "군사력 건설 쪽에서 오래 근무 경험이 있었고 무기 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바로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고, 자신 있게 대응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측 실무진과 일본 실무진 간 회의에서도 우리가 논리적으로 정확했고 압승을 했다"며 일본 측 주장은 정치적 논리가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초계기로 한일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와야 다케시 당시 일본 방위상과의 '기 싸움'도 상당했습니다. 이와야 방위상이 항공 점퍼 차림으로 해상자위대 기지를 찾아 초계기에 탑승하자, 다음날 정경두 장관도 우리 해군작전사령부를 찾았습니다. 조종사들이 입는 가죽 점퍼를 입고 맞대응에 나섰던 겁니다.

정 장관은 당시 조종사 복장으로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것에 대해 "우리 군사보좌관, 그리고 참모진 아이디어였다"며, "여러 가지 고려를 했는데, (복장도)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지소미아 종료까지 거론되며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이던 지난해 말,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정 장관은 고노 다로 당시 일본 방위상과 따로 만나 일어로 설득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정 장관은 "항공자위대에서 같이 교육받았던 동기생들이 당시 고위 직책에 있는 사람도 많았고, 은퇴한 사람들과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한일 갈등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며 "고노 방위상과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노력도 하고 했지만 역시 정치 외교적인 큰 벽에 부딪혀서 아쉬운 부분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국방 차원에서 일본과의 안보 협력 등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역사·정치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다 보니까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라며 "기본적으로 지소미아의 필요성 등은 국방장관으로서 충분히 의견을 제시했었고 우리 정부도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이 참아내면서 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일본이 수출 규제 정책을 변화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계속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고, 그런 부분이 잘 해결돼 앞으로는 정치적으로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국방개혁, 가장 큰 어려움은 경계실패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성과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정 장관은 하나를 꼽기 어렵다면서도 "무엇보다도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을 완성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전임 송영무 장관님이 기초를 다지셨지만,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는데, 취임 후 2018년 연말까지 모든 기획 문서와 맞춰서 국방개혁 2.0 계획을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국방개혁 추진평가회의에서 어떤 일들 해왔는지를 돌아봤는데 우리 국방부의 실장, 국장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며, "각자 일한 것들을 모아놓고 국방개혁의 전체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많이 했구나' 하고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정 장관은 재임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늘 '국방개혁' 문제를 꺼내고는 했습니다. 특히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그리고 4차산업혁명 기술의 국방 분야 적용에 관심이 많았고 자부심으로 여겼습니다.

정 장관은 "국방개혁 과제가 43개인데 모두 앞으로 후배들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국방을 튼튼히 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육·해·공군, 해병대 모두 공감대를 형성해 적극적으로 해 나가고 있고 굉장히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일로는 주저 없이 '경계 실패'라고 말했습니다. 장관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을 정도로 지난해 6월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태안 해안으로 들어온 중국의 밀입국 보트, 탈북민 재입북 사건까지 '경계 실패', '경계 허점'이라고 지적된 일들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정 장관은 "합참의장 때부터 경계에 취약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봐서 국방 개혁할 때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실제로도 보완을 해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노력 중에 (삼척항 목선) 사건이 생겨서 사실 할 말도 없다"며 "그걸 계기로 다시 보완을 많이 했는데, 역시 그 부분이 많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정 장관은 한미 동맹 차원에서는 방위비 분담 협상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습니다. 정 장관은 "협상이 잘 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그걸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있어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 보장이 중요한데 앞으로 한미가 윈윈(win-win)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秋 장관 아들 의혹에 "은폐 아냐, 오해 없었으면"

국내 정치적으로도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 모 씨의 군 생활 특혜 의혹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정 장관은 "국방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통된 규정과 훈령·절차들"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정 장관은 "대정부질문에서도 말했지만, 누구 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군에 와서 헌신하는 모든 장병이 건강에 이상 없이 복무를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만들어놨던 거고 절차대로 이행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실무진들이 파악해보니 행정적 오류가 있다고 보고했다"는 것입니다.

'국방부가 추 장관을 옹호하는 것 아니냐', '군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정 장관은 본인이 국회에서 한 발언들에 대해 "외압이나 청탁, 특혜 부분은 검찰 수사에서 명명백백히 밝힐 문제고, 군은 오로지,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던 것뿐, 더도 덜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민원실 콜센터 자료도 인지하는 순간에 검찰에 다 자료 제출을 하라고 했다"며, "추 장관 건 관련해 한 번도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지시를 한 게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국방부가 나서서 조사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과거에 있었던 사안이고, 민간인이 연계돼 있어 군이 나서서 수사하거나 조사할 사안이 아니고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으로서 공식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 역시 제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추 장관 아들 문제에 대해 정 장관은 마지막으로 "군 문제는 국민감정과 결부돼 있다 보니 그런 차원에서 많이 우려하시는 부분들이 있다"며, "나머지는 검찰 수사에서 잘 밝혀져 국민께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재임 기간 쏟아진 비난에 "역사가 평가할 것"

정경두 장관은 국방 정책과 관련해서도 가는 길마다 언론과 국회로부터 유독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정 장관은 "실제로는 진정성 있게 국방개혁,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해 오면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해왔는데 거기에 대해 평가 자체가 아시는 바대로 찬반이 항상 엇갈렸다"며, "국방 정책에 대해 정치적으로 여야 간에 입장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런 부분 때문에 결국 찬반이 항상 대립하는 관계로 왔고, 그런 부분은 많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다만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43년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고 아무리 어려워도 진솔하게 열심히 하려고 했다"며, "후배들에게 부끄러울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F-5 전투조종사로 근무할 당시 정경두 장관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F-5 전투조종사로 근무할 당시 정경두 장관

정 장관은 마지막으로 "(과거 근무했던) 제1전투비행단의 모토가 '퍼스트 앤 베스트(First and Best)', 조국 수호에 퍼스트, 임무 수행에 베스트인데 옛날부터 신조로 삼아 열심히 달려왔다"며, "나머지는 역사가 평가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청사 2층, 장관 집무실로 가는 길에는 역대 국방부 장관들의 사진들이 걸려있습니다. 직전 장관인 송영무 장관의 옆자리는 아직 비었습니다. 정 장관은 어제 아침 광화문의 한 사진관에서 마지막으로 남길 사진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부끄럼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한 정 장관의 2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공(功)'은 무엇이고, '과(過)'는 무엇일지, 이제 곧 정 장관의 사진도 벽에 걸리고 역사적 평가도 시작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국방부, 공군, 연합뉴스]
  • [취재후] 북핵실험부터 군사합의까지…퇴임 국방장관 마지막 인터뷰
    • 입력 2020-09-18 15:27:38
    • 수정2020-09-18 21:42:24
    취재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리고 우리 장병들을 위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머지는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국방부를 떠난 정경두 장관이 지난 43년의 군, 그리고 공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남긴 말입니다.

1978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군 생활 첫발을 뗐으며 전투 조종사로 임관해 공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으로 퇴임했습니다. 정 장관은 공군 출신으로 이 자리까지 온 건 행운이었다면서도, 정신적인 압박과 책임감 역시 남달랐다고 지난날을 돌아봤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첫 합참의장이자 두 번째 국방장관으로서, 북한 핵실험으로 시작해 9·19 군사합의까지 격렬한 변화의 한 가운데서 군을 통솔했던 인사의 소회는 어떨까. 퇴임을 하루 앞둔 어제(17일)저녁 정경두 장관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1년 반 동안 국방부를 출입하며 정 장관 재임 기간의 2/3를 취재한 후기이자 장관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싣습니다.

의장 취임 직후 북한 핵실험…이듬해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

정경두 장관은 합참의장 자리를 맡은 직후부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이 이어지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고 회고했습니다.

정 장관이 합참의장에 취임한 건 2017년 8월 20일, 2주만인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합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고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포했습니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했던 밥 우드워드 기자가 신작 《격노(Rage)》에서 미국이 무력 대응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한, 전쟁 직전까지 간 상황이 바로 이때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8년 4월 27일, 정 장관은 당시 합참의장 자격으로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합니다. 당시 북한의 군 장성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거수경례했는데, 정 장관은 무표정으로 악수만 해 화제가 됐습니다.


정 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정상회담 전에) 합참 참모들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논의를 했는데, 그래도 군복을 입은 합참의장이기 때문에 꼿꼿한 자세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며 "참모들 의견을 존중해 그렇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전쟁 목전까지 갔다 몇 달 만에 김 위원장과 악수까지 하게 된 정세 격변기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정 장관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되는 초기에는 남북 간 상황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 실험까지 굉장한 긴장 이었다"며, "군사적 상황을 철저히 대비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부터 4·27 판문점 선언, 9.19 군사합의가 이어질 때까지, 군사적으로 문제없도록 뒷받침하며 정말 숨 가쁘게 왔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건 2018년 9월 21일. 송영무 전 장관이 9·19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직후였습니다. 정 장관은 "국방 차원에서는 결국 강력한 힘, 군사대비태세가 완벽해야만 정부 정책을 지원할 수 있다고 봤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9·19 군사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제일 먼저 검토한 것은 '우리 작전성에 문제가 없는가?' 였다"며, "'문제가 없다'는 참모들의 검토가 된 이후에 항상 승인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9·19 군사합의에 대해서는 "지금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정 장관은 "물론 남북 간에 더 추진하기로 했던 게 안 된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군사 분야에서 앞서 나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외교적인 부분에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군사적 측면에서는 접적 지역 긴장도는 많이 낮아져 있다고 보고, 우리 대비태세에도 문제가 없도록 계속 강조를 했고 잘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日 초계기 대응 땐 '조종사 점퍼' 맞불…고노 방위상 상대 '일본어'로 설득

일본과의 관계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정 장관은 공군 시절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 교육을 받은 특이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일파'로 알려진 정 장관의 재임 기간, 아이러니하게도 한일 관계는 극한으로 치달았습니다. 군사적으로는 2018년 말부터 지난해 초 일본 초계기가 우리 군함에 근접해 위협 비행을 한 사태가 있었고,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GSOMIA)는 종료 직전까지 갔습니다.

정 장관은 먼저 초계기 사태는 "한국의 압승"이었다고 자평했습니다. 정 장관은 "그 사안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당시 심승섭 해군총장에게 전화해서 상황의 팩트를 빨리 정확히 파악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며, "내용을 보니 우리 레이더는 '탐색 모드'는 운용을 했지만, 무기를 발사하기 위한 '추적 모드'는 하지 않았다는 걸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정 장관은 "군사력 건설 쪽에서 오래 근무 경험이 있었고 무기 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바로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고, 자신 있게 대응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측 실무진과 일본 실무진 간 회의에서도 우리가 논리적으로 정확했고 압승을 했다"며 일본 측 주장은 정치적 논리가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초계기로 한일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와야 다케시 당시 일본 방위상과의 '기 싸움'도 상당했습니다. 이와야 방위상이 항공 점퍼 차림으로 해상자위대 기지를 찾아 초계기에 탑승하자, 다음날 정경두 장관도 우리 해군작전사령부를 찾았습니다. 조종사들이 입는 가죽 점퍼를 입고 맞대응에 나섰던 겁니다.

정 장관은 당시 조종사 복장으로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것에 대해 "우리 군사보좌관, 그리고 참모진 아이디어였다"며, "여러 가지 고려를 했는데, (복장도)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지소미아 종료까지 거론되며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이던 지난해 말,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정 장관은 고노 다로 당시 일본 방위상과 따로 만나 일어로 설득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정 장관은 "항공자위대에서 같이 교육받았던 동기생들이 당시 고위 직책에 있는 사람도 많았고, 은퇴한 사람들과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한일 갈등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며 "고노 방위상과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노력도 하고 했지만 역시 정치 외교적인 큰 벽에 부딪혀서 아쉬운 부분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국방 차원에서 일본과의 안보 협력 등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역사·정치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다 보니까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라며 "기본적으로 지소미아의 필요성 등은 국방장관으로서 충분히 의견을 제시했었고 우리 정부도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이 참아내면서 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일본이 수출 규제 정책을 변화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계속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고, 그런 부분이 잘 해결돼 앞으로는 정치적으로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국방개혁, 가장 큰 어려움은 경계실패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성과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정 장관은 하나를 꼽기 어렵다면서도 "무엇보다도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을 완성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전임 송영무 장관님이 기초를 다지셨지만,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는데, 취임 후 2018년 연말까지 모든 기획 문서와 맞춰서 국방개혁 2.0 계획을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국방개혁 추진평가회의에서 어떤 일들 해왔는지를 돌아봤는데 우리 국방부의 실장, 국장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며, "각자 일한 것들을 모아놓고 국방개혁의 전체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많이 했구나' 하고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정 장관은 재임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늘 '국방개혁' 문제를 꺼내고는 했습니다. 특히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그리고 4차산업혁명 기술의 국방 분야 적용에 관심이 많았고 자부심으로 여겼습니다.

정 장관은 "국방개혁 과제가 43개인데 모두 앞으로 후배들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국방을 튼튼히 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육·해·공군, 해병대 모두 공감대를 형성해 적극적으로 해 나가고 있고 굉장히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일로는 주저 없이 '경계 실패'라고 말했습니다. 장관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을 정도로 지난해 6월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태안 해안으로 들어온 중국의 밀입국 보트, 탈북민 재입북 사건까지 '경계 실패', '경계 허점'이라고 지적된 일들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정 장관은 "합참의장 때부터 경계에 취약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봐서 국방 개혁할 때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실제로도 보완을 해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노력 중에 (삼척항 목선) 사건이 생겨서 사실 할 말도 없다"며 "그걸 계기로 다시 보완을 많이 했는데, 역시 그 부분이 많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정 장관은 한미 동맹 차원에서는 방위비 분담 협상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습니다. 정 장관은 "협상이 잘 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그걸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있어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 보장이 중요한데 앞으로 한미가 윈윈(win-win)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秋 장관 아들 의혹에 "은폐 아냐, 오해 없었으면"

국내 정치적으로도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 모 씨의 군 생활 특혜 의혹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정 장관은 "국방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통된 규정과 훈령·절차들"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정 장관은 "대정부질문에서도 말했지만, 누구 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군에 와서 헌신하는 모든 장병이 건강에 이상 없이 복무를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만들어놨던 거고 절차대로 이행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실무진들이 파악해보니 행정적 오류가 있다고 보고했다"는 것입니다.

'국방부가 추 장관을 옹호하는 것 아니냐', '군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정 장관은 본인이 국회에서 한 발언들에 대해 "외압이나 청탁, 특혜 부분은 검찰 수사에서 명명백백히 밝힐 문제고, 군은 오로지,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던 것뿐, 더도 덜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민원실 콜센터 자료도 인지하는 순간에 검찰에 다 자료 제출을 하라고 했다"며, "추 장관 건 관련해 한 번도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지시를 한 게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국방부가 나서서 조사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과거에 있었던 사안이고, 민간인이 연계돼 있어 군이 나서서 수사하거나 조사할 사안이 아니고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으로서 공식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 역시 제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추 장관 아들 문제에 대해 정 장관은 마지막으로 "군 문제는 국민감정과 결부돼 있다 보니 그런 차원에서 많이 우려하시는 부분들이 있다"며, "나머지는 검찰 수사에서 잘 밝혀져 국민께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재임 기간 쏟아진 비난에 "역사가 평가할 것"

정경두 장관은 국방 정책과 관련해서도 가는 길마다 언론과 국회로부터 유독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정 장관은 "실제로는 진정성 있게 국방개혁,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해 오면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해왔는데 거기에 대해 평가 자체가 아시는 바대로 찬반이 항상 엇갈렸다"며, "국방 정책에 대해 정치적으로 여야 간에 입장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런 부분 때문에 결국 찬반이 항상 대립하는 관계로 왔고, 그런 부분은 많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다만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43년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고 아무리 어려워도 진솔하게 열심히 하려고 했다"며, "후배들에게 부끄러울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F-5 전투조종사로 근무할 당시 정경두 장관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F-5 전투조종사로 근무할 당시 정경두 장관

정 장관은 마지막으로 "(과거 근무했던) 제1전투비행단의 모토가 '퍼스트 앤 베스트(First and Best)', 조국 수호에 퍼스트, 임무 수행에 베스트인데 옛날부터 신조로 삼아 열심히 달려왔다"며, "나머지는 역사가 평가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청사 2층, 장관 집무실로 가는 길에는 역대 국방부 장관들의 사진들이 걸려있습니다. 직전 장관인 송영무 장관의 옆자리는 아직 비었습니다. 정 장관은 어제 아침 광화문의 한 사진관에서 마지막으로 남길 사진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부끄럼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한 정 장관의 2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공(功)'은 무엇이고, '과(過)'는 무엇일지, 이제 곧 정 장관의 사진도 벽에 걸리고 역사적 평가도 시작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국방부, 공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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