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기인데…‘로또 1등’ 지적장애인 당첨금 가로채

입력 2020.09.2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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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5,880만 원. 지적장애 3급 수준의 A 씨가 2016년 7월 로또복권 1등에 당첨돼 받은 금액입니다.

이 당첨금 가운데 8억 8천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60대 부부가 최근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는데요.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 18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65살 B 씨 부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3년 6월과 3년을 선고했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 건물 지어 같이 살자"

서울 성북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B 씨 부부는 인근 여인숙에 거주하며 일용직으로 일하던 A 씨가 손님으로 식당에 자주 들러 식사를 하면서 서로 알게 됐습니다.

B 씨 부부는 한글을 읽을 수 없는 A 씨의 장애인 등록과 A 씨 딸의 산재 사망보험금 청구 업무를 도와줬을 만큼 10년여 동안 신뢰 관계를 쌓아왔는데요.

A 씨는 10년여 동안 믿고 의지해온 B 씨 부부에게 2016년 7월 17일, 로또복권 1등 당첨 사실을 알리고 당첨금을 받는 데 함께 가달라고 요청합니다.

세후 15억 5,880만 원에 달하는 당첨금 수령 당일, A 씨는 은행 직원의 권유로 중도해지가 불가능하고 매달 2백만 원의 연금을 받는 5억 원의 연금보험과 또 다른 3억 원의 연금 보험에 가입하는데요.

B 씨 부부는 당시 운영하던 식당 건물이 재개발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나머지 당첨금 8억여 원에 눈독을 들입니다.

이후 이들 부부는 A 씨에게 "함께 공기 좋은 곳에 건물을 지어 식당을 하면서 같이 살자"고 제안하고 A 씨로부터 8억 8천여만 원을 받아 충남 예산에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짓고 식당을 개업합니다.

하지만 토지와 건물 명의를 A 씨가 아닌 B씨 자신으로 등기하고 이를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해 1억 5천만 원을 두 차례 대출받아 자녀에게 빌려주거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A 씨로부터 받은 돈 가운데 1억 원가량은 부부와 가족을 위해 쓰기도 했습니다.

"A 씨와 동업한 것"…법원 "이익금 정산 이뤄진 적 없다"

A 씨는 2017년 9월 건물 완공 이후 B 씨 부부를 도와 식당일을 하기도 했는데요. 해당 건물로 이사를 오라는 B 씨 부부의 권유에 "머슴을 살 것 같다"며 제안을 거절합니다.

이후 토지와 건물 명의가 자신이 아닌 B 씨 부부 앞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 씨는 2018년 1월 예산을 떠나 강원도 철원으로 이사하며 B 씨 부부를 고소합니다.

B 씨 부부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와 동업으로 식당 영업을 하기로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통상적인 동업 관계에서 요구되는 절차가 지켜지거나 이익금 정산이 이뤄진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B 씨 부부가 건물과 토지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이나 건물 일부를 임대한 수익금 등을 개인적 용도에 쓰면서도 A 씨에게 수익금을 지급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또 B 씨 부부가 토지와 건물에 설정된 근저당권을 말소할 의사도 없다고 지적했는데요. B 씨 부부는 마지막 공판기일에도 근저당권이 설정된 채로 피해자가 토지와 건물 명의를 넘겨받으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부 "자신에게 의지한 점 이용…비난 가능성 커"

앞서 1심 재판부는 A 씨가 재물 소유에 관한 개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한 유혹에 현혹될 만큼 판단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지능지수가 58 정도에 사회적 연령은 13세 수준의 지적장애 3급으로, 평소 한글을 읽을 수 없어 돈을 찾을 때 지인이나 은행 직원에게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와 현금 카드를 건네주면서 인출을 부탁해왔는데요. 자신의 이름조차 다른 사람이 쓴 글씨 모양을 보고 따라 그리는 정도였고 숫자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달리 A 씨가 토지와 건물을 내부적으로는 자신이 갖지만, 명의는 B 씨 부부 앞으로 하는 소유와 등기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일상에서 음식을 사 먹는 행위 등과 거액을 들여 부동산을 장만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며 "고액의 재산상 거래 능력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정신기능에 장애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B 씨 부부가 A 씨를 상대로 애초에 땅과 건물을 자신들의 명의로 소유할 생각이었음에도 A 씨의 명의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을 것처럼 속였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에 더해 B 씨 부부가 금융 거래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A 씨가 평소 자신에게 의지한 점을 이용했다며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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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지기인데…‘로또 1등’ 지적장애인 당첨금 가로채
    • 입력 2020-09-23 18: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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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5,880만 원. 지적장애 3급 수준의 A 씨가 2016년 7월 로또복권 1등에 당첨돼 받은 금액입니다.

이 당첨금 가운데 8억 8천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60대 부부가 최근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는데요.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 18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65살 B 씨 부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3년 6월과 3년을 선고했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 건물 지어 같이 살자"

서울 성북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B 씨 부부는 인근 여인숙에 거주하며 일용직으로 일하던 A 씨가 손님으로 식당에 자주 들러 식사를 하면서 서로 알게 됐습니다.

B 씨 부부는 한글을 읽을 수 없는 A 씨의 장애인 등록과 A 씨 딸의 산재 사망보험금 청구 업무를 도와줬을 만큼 10년여 동안 신뢰 관계를 쌓아왔는데요.

A 씨는 10년여 동안 믿고 의지해온 B 씨 부부에게 2016년 7월 17일, 로또복권 1등 당첨 사실을 알리고 당첨금을 받는 데 함께 가달라고 요청합니다.

세후 15억 5,880만 원에 달하는 당첨금 수령 당일, A 씨는 은행 직원의 권유로 중도해지가 불가능하고 매달 2백만 원의 연금을 받는 5억 원의 연금보험과 또 다른 3억 원의 연금 보험에 가입하는데요.

B 씨 부부는 당시 운영하던 식당 건물이 재개발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나머지 당첨금 8억여 원에 눈독을 들입니다.

이후 이들 부부는 A 씨에게 "함께 공기 좋은 곳에 건물을 지어 식당을 하면서 같이 살자"고 제안하고 A 씨로부터 8억 8천여만 원을 받아 충남 예산에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짓고 식당을 개업합니다.

하지만 토지와 건물 명의를 A 씨가 아닌 B씨 자신으로 등기하고 이를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해 1억 5천만 원을 두 차례 대출받아 자녀에게 빌려주거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A 씨로부터 받은 돈 가운데 1억 원가량은 부부와 가족을 위해 쓰기도 했습니다.

"A 씨와 동업한 것"…법원 "이익금 정산 이뤄진 적 없다"

A 씨는 2017년 9월 건물 완공 이후 B 씨 부부를 도와 식당일을 하기도 했는데요. 해당 건물로 이사를 오라는 B 씨 부부의 권유에 "머슴을 살 것 같다"며 제안을 거절합니다.

이후 토지와 건물 명의가 자신이 아닌 B 씨 부부 앞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 씨는 2018년 1월 예산을 떠나 강원도 철원으로 이사하며 B 씨 부부를 고소합니다.

B 씨 부부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와 동업으로 식당 영업을 하기로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통상적인 동업 관계에서 요구되는 절차가 지켜지거나 이익금 정산이 이뤄진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B 씨 부부가 건물과 토지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이나 건물 일부를 임대한 수익금 등을 개인적 용도에 쓰면서도 A 씨에게 수익금을 지급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또 B 씨 부부가 토지와 건물에 설정된 근저당권을 말소할 의사도 없다고 지적했는데요. B 씨 부부는 마지막 공판기일에도 근저당권이 설정된 채로 피해자가 토지와 건물 명의를 넘겨받으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부 "자신에게 의지한 점 이용…비난 가능성 커"

앞서 1심 재판부는 A 씨가 재물 소유에 관한 개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한 유혹에 현혹될 만큼 판단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지능지수가 58 정도에 사회적 연령은 13세 수준의 지적장애 3급으로, 평소 한글을 읽을 수 없어 돈을 찾을 때 지인이나 은행 직원에게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와 현금 카드를 건네주면서 인출을 부탁해왔는데요. 자신의 이름조차 다른 사람이 쓴 글씨 모양을 보고 따라 그리는 정도였고 숫자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달리 A 씨가 토지와 건물을 내부적으로는 자신이 갖지만, 명의는 B 씨 부부 앞으로 하는 소유와 등기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일상에서 음식을 사 먹는 행위 등과 거액을 들여 부동산을 장만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며 "고액의 재산상 거래 능력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정신기능에 장애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B 씨 부부가 A 씨를 상대로 애초에 땅과 건물을 자신들의 명의로 소유할 생각이었음에도 A 씨의 명의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을 것처럼 속였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에 더해 B 씨 부부가 금융 거래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A 씨가 평소 자신에게 의지한 점을 이용했다며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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