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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성폭행하려던 직원…징계 없이 조용히 퇴사시킨 대한항공
입력 2020.09.24 (08:03) 취재K
대한항공에 다니는 직원 A 씨는 2017년 여름 업무 과정의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직장 상사 B 씨는 그 문제와 관련한 보고와 논의가 필요하다며 A 씨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회사 사무실이 아닌 외부였습니다.

술을 권하던 B 씨는 갑자기 A 씨를 성폭행하려 했습니다. 온몸으로 저항한 끝에 A 씨는 그 자리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기억은 A 씨를 내내 괴롭혔습니다. 혼자 2년 넘게 끙끙대다 지난해 12월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B 씨는 회사의 공식적인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직서만 쓰고 회사를 조용히 떠났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피해자, 가해자에 대한 조사·징계 요구했지만...조용히 퇴사 시킨 대한항공

A 씨는 지난해 12월 10일 해당 사건을 회사에 알렸습니다. 그로부터 7일 뒤 회사와 면담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A 씨는 자신에 대한 보호는 물론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징계를 요청했습니다. 이와 함께 추가 피해자가 있을 수 있으니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황당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가해 직원을 상벌위원회에 넘겨 징계절차를 밟으면 피해 사실이나 피해자의 신원 등이 대외적으로 드러날 수 있으니, 해당 직원이 가해 사실을 인정하면 사직서를 받아 퇴사시키겠다고 한 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회사는 추가 피해 조사도 거절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A 씨에게 "그분들은 제보도 안 했고 (드러나는 게) 원치 않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가해 직원은 징계위원회에 넘겨지지 않았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지난해 12월 31일 퇴사했습니다. 피해자가 요구했던 추가 피해에 대한 조사도 물론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조용히 회사를 떠난 겁니다.

A 씨는 이 같은 회사의 조치에 분노했습니다. A 씨는 "당시 회사의 태도는 사실상 협박처럼 느껴졌다"며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가해자를 조사하고 징계하는 건 성희롱, 성범죄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고민해야 할 일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회사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저로서는 덮으려고만 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 차원에서 이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가부 매뉴얼 있는데...안 따른 대한항공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배포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 내 성폭행·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나 조사위원회 등을 구성해 조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는 징계위원회나 인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제재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때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하기 전에 회사는 반드시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혹여 피해자가 이 같은 공식적인 절차들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비공식적인 절차만으로 사건을 종료하는 게 합리적인지 따져야 합니다. 피해자가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비공식 절차만을 요청한 것이라면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면서도 피해자의 보호조치가 가능한 방법 등을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하도록 매뉴얼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대한항공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겁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징계위원회나 인사위원회 등의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원이나 피해사실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건 회사의 의무다"라며 "그런 절차를 거치면 노출이 될 수 있다고 피해자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회사의 책임을 게을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회사는 그런 절차에서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배진경 대표는 "회사 내에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안전하고 가해자가 처벌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누가 회사에 이야기를 안 하겠느냐"라며 "(추가로) 있을 수 있는 피해자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를 회사가 재단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한항공은 피해자 측과 충분히 의논한 결과라고 해명했습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상벌 절차를 거치면 개최 통보와 소명서 접수, 재심요청 등으로 최소 한 달 정도 소요된다"라며 "신속한 조치와는 배치되는 면이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당시 희망퇴직이 진행중이었는데 가해자를 희망퇴직으로 (처리)하면 안 돼 사직으로 처리했다"라며 "비밀유지를 위해 사직 발령은 행정처리를 위해 필요한 곳에만 최소화해 공지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부하 성폭행하려던 직원…징계 없이 조용히 퇴사시킨 대한항공
    • 입력 2020-09-24 08:03:24
    취재K
대한항공에 다니는 직원 A 씨는 2017년 여름 업무 과정의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직장 상사 B 씨는 그 문제와 관련한 보고와 논의가 필요하다며 A 씨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회사 사무실이 아닌 외부였습니다.

술을 권하던 B 씨는 갑자기 A 씨를 성폭행하려 했습니다. 온몸으로 저항한 끝에 A 씨는 그 자리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기억은 A 씨를 내내 괴롭혔습니다. 혼자 2년 넘게 끙끙대다 지난해 12월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B 씨는 회사의 공식적인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직서만 쓰고 회사를 조용히 떠났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피해자, 가해자에 대한 조사·징계 요구했지만...조용히 퇴사 시킨 대한항공

A 씨는 지난해 12월 10일 해당 사건을 회사에 알렸습니다. 그로부터 7일 뒤 회사와 면담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A 씨는 자신에 대한 보호는 물론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징계를 요청했습니다. 이와 함께 추가 피해자가 있을 수 있으니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황당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가해 직원을 상벌위원회에 넘겨 징계절차를 밟으면 피해 사실이나 피해자의 신원 등이 대외적으로 드러날 수 있으니, 해당 직원이 가해 사실을 인정하면 사직서를 받아 퇴사시키겠다고 한 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회사는 추가 피해 조사도 거절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A 씨에게 "그분들은 제보도 안 했고 (드러나는 게) 원치 않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가해 직원은 징계위원회에 넘겨지지 않았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지난해 12월 31일 퇴사했습니다. 피해자가 요구했던 추가 피해에 대한 조사도 물론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조용히 회사를 떠난 겁니다.

A 씨는 이 같은 회사의 조치에 분노했습니다. A 씨는 "당시 회사의 태도는 사실상 협박처럼 느껴졌다"며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가해자를 조사하고 징계하는 건 성희롱, 성범죄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고민해야 할 일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회사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저로서는 덮으려고만 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 차원에서 이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가부 매뉴얼 있는데...안 따른 대한항공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배포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 내 성폭행·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나 조사위원회 등을 구성해 조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는 징계위원회나 인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제재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때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하기 전에 회사는 반드시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혹여 피해자가 이 같은 공식적인 절차들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비공식적인 절차만으로 사건을 종료하는 게 합리적인지 따져야 합니다. 피해자가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비공식 절차만을 요청한 것이라면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면서도 피해자의 보호조치가 가능한 방법 등을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하도록 매뉴얼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대한항공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겁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징계위원회나 인사위원회 등의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원이나 피해사실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건 회사의 의무다"라며 "그런 절차를 거치면 노출이 될 수 있다고 피해자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회사의 책임을 게을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회사는 그런 절차에서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배진경 대표는 "회사 내에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안전하고 가해자가 처벌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누가 회사에 이야기를 안 하겠느냐"라며 "(추가로) 있을 수 있는 피해자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를 회사가 재단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한항공은 피해자 측과 충분히 의논한 결과라고 해명했습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상벌 절차를 거치면 개최 통보와 소명서 접수, 재심요청 등으로 최소 한 달 정도 소요된다"라며 "신속한 조치와는 배치되는 면이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당시 희망퇴직이 진행중이었는데 가해자를 희망퇴직으로 (처리)하면 안 돼 사직으로 처리했다"라며 "비밀유지를 위해 사직 발령은 행정처리를 위해 필요한 곳에만 최소화해 공지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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