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거창 거열산성,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입력 2020.09.24 (10:24) 수정 2020.09.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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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있는 '의정부 터(議政府址)'와 '거창 거열산성'이 나란히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8호, 제559호로 지정됐습니다

'의정부지'는 2016년부터 진행된 네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중심 전각인 정본당과 그 좌우 석획당, 협선당의 건물 위치와 규모가 확인됐고, 후원의 연지와 정자와 우물 유구도 확인돼 조선 시대 주요 관청의 건축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ㆍ학술 가치가 뛰어난 유적입니다.

의정부는 조선왕조 중앙 행정관청 가운데 최고위급인 정1품 관청으로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을 다루는 역할을 했으며, 14세기 말 궁궐 앞 동편에 도평의사사가 들어선 이래로 조선왕조 역사를 통틀어 본래의 자리를 지킨 유일한 관청이었습니다.

1398년(태조 7년)에 지어진 의정부는 중앙에 지붕이 한 단 높은 중심 건물이 서고, 좌우에 건물이 나란히 배치되는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삼봉 정도전이 지은 『도평의사사청기』를 보면, '고려 말의 도평의사사 청사는 높고 큰 집이 중앙에 있고 날개 같은 집이 손을 모으듯 좌우에 있다(巍中翼拱左右)'고 했습니다. 조선 초의 의정부 청사는 이런 형태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판단되며, 1865년(고종 2년) 건물을 다시 지을 때도 그 형태는 반복됐습니다.

또, 발굴조사 과정에서 1910년도 의정부지 정면에 자리했던 경기도청사 건물의 벽돌 기초가 남아 있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의정부, 일제강점기의 경기도청사, 미 군정, 그 후 정부청사 별관 등이 자리 잡았던 다양한 역사의 층위들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거창 거열산성'은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의 영토 확장 각축장으로, 문헌 기록에서 실체가 확인되는 거창지역 삼국 시대 최대 규모의 산성입니다. 그간의 학술조사와 연구를 통해 거열산성은 신라 시대에 축성된 1차성과 통일신라 시대에 증축된 2차성으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가 확인돼, 신라 산성의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핵심유적으로 평가됐습니다.

1차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거창지역에 축조한 산성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제 멸망 후 3년간 백제 부흥운동이 전개되다 문무왕 3년인 663년에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에 의해 함락돼 백제 부흥 운동군 700명이 전사한 '거열성'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 서쪽 계곡에 조성된 1차성의 집수시설(集水施設, 성내에 물을 모으는 시설)과 동쪽 계곡의 2차성 집수시설은 축조방법과 구조 등에서 차이를 보여, 축성기법의 변화와 함께 고대토목공법 복원과 수리사(水利史)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입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서울특별시, 경상남도와 거창군 등과 협력해 '의정부지'와 '거창 거열산성'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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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4 10:24:21
    • 수정2020-09-24 10:34:00
    문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의정부 터(議政府址)'와 '거창 거열산성'이 나란히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8호, 제559호로 지정됐습니다

'의정부지'는 2016년부터 진행된 네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중심 전각인 정본당과 그 좌우 석획당, 협선당의 건물 위치와 규모가 확인됐고, 후원의 연지와 정자와 우물 유구도 확인돼 조선 시대 주요 관청의 건축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ㆍ학술 가치가 뛰어난 유적입니다.

의정부는 조선왕조 중앙 행정관청 가운데 최고위급인 정1품 관청으로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을 다루는 역할을 했으며, 14세기 말 궁궐 앞 동편에 도평의사사가 들어선 이래로 조선왕조 역사를 통틀어 본래의 자리를 지킨 유일한 관청이었습니다.

1398년(태조 7년)에 지어진 의정부는 중앙에 지붕이 한 단 높은 중심 건물이 서고, 좌우에 건물이 나란히 배치되는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삼봉 정도전이 지은 『도평의사사청기』를 보면, '고려 말의 도평의사사 청사는 높고 큰 집이 중앙에 있고 날개 같은 집이 손을 모으듯 좌우에 있다(巍中翼拱左右)'고 했습니다. 조선 초의 의정부 청사는 이런 형태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판단되며, 1865년(고종 2년) 건물을 다시 지을 때도 그 형태는 반복됐습니다.

또, 발굴조사 과정에서 1910년도 의정부지 정면에 자리했던 경기도청사 건물의 벽돌 기초가 남아 있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의정부, 일제강점기의 경기도청사, 미 군정, 그 후 정부청사 별관 등이 자리 잡았던 다양한 역사의 층위들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거창 거열산성'은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의 영토 확장 각축장으로, 문헌 기록에서 실체가 확인되는 거창지역 삼국 시대 최대 규모의 산성입니다. 그간의 학술조사와 연구를 통해 거열산성은 신라 시대에 축성된 1차성과 통일신라 시대에 증축된 2차성으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가 확인돼, 신라 산성의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핵심유적으로 평가됐습니다.

1차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거창지역에 축조한 산성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제 멸망 후 3년간 백제 부흥운동이 전개되다 문무왕 3년인 663년에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에 의해 함락돼 백제 부흥 운동군 700명이 전사한 '거열성'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 서쪽 계곡에 조성된 1차성의 집수시설(集水施設, 성내에 물을 모으는 시설)과 동쪽 계곡의 2차성 집수시설은 축조방법과 구조 등에서 차이를 보여, 축성기법의 변화와 함께 고대토목공법 복원과 수리사(水利史)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입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서울특별시, 경상남도와 거창군 등과 협력해 '의정부지'와 '거창 거열산성'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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