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인허가 내주고 주식도 거래?”…논란 일자 뒤늦게 ‘주식 금지’

입력 2020.09.24 (10:28) 수정 2020.09.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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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이름 그대로 식품과 의약품 등에 대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입니다. 식약처는 이 밖에도 의료기기와 화장품 등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대해 인허가와 감독, 지도 권한을 갖고 있어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식약처 직원들이, 직무 관련 분야의 주식 거래를 금지한 내부 규정에도 불구하고 제약과 바이오 관련 주식을 거래해온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두 달간 1억 3천만 원, 3년간 6천만 원…직원들의 수상한 주식 거래

사실 식약처 직원들의 직무 관련 주식 거래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17년 초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식약처를 비롯한 의약 당국 직원들의 주식 거래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지적이 일자, 식약처는 그해 10월 '식약처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해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를 제한합니다.

하지만 그 이듬해에도 직원들의 제약·바이오 관련 주식 거래는 계속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식약처 소속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 근무하던 A 씨는 2018년 중순, 두달 새 제약회사 2곳의 주식을 총 1억 3천만 원가량 사들였습니다. 또다른 직원인 B 씨는 2015년부터 3년여에 걸쳐 한 바이오 회사의 주식만 6천여만 원 어치를 사들였습니다.

이 직원들은 2018년 하반기, 식약처가 직원들의 주식 거래 및 보유 내역 등을 자체 감사할 당시 관련 주식들을 모두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진 신고한 사람만 감사? 직무 관련 거래는 아니다?

이들을 비롯해 당시 감사에서 업무 관련 주식을 보유하거나 거래했다고 신고한 직원은 모두 32명. 그런데 이 감사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식약처 행동강령 상 자체 감사는 인허가나 감사 담당 직원들 중 주식 거래 내역을 자진 신고한 직원들을 상대로 이뤄집니다. 만약 거래 내역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엔 감사를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겁니다.

직원의 직무 관련 주식 거래에 대해 직무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식약처 자료.직원의 직무 관련 주식 거래에 대해 직무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식약처 자료.

더군다나 식약처는, 이 자진 신고한 32명 가운데서도 18명에 대해서는 식약처 임용 전 취득한 주식이라며 규정 위반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나머지 직원들에 대해서도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익을 취득한 경우로는 볼 수 없다며 감사를 그대로 종결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같은 부서 내에서 동료 직원이 민원 처리를 한 업체의 주식을 거래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식약처는 본인이 직접 처리한 것이 아닌 만큼 직무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식약처 "의약품·의료기기 등 인허가 담당 직원은 관련 주식 신규 거래 금지"
이에 KBS가 22일 식약처 직원들의 직무 관련 주식 거래 문제를 보도하자, 그제서야 식약처는, '인허가 담당 직원들은 아예 관련 주식을 새로 거래할 수 없도록' 행동강령 일부를 개정했습니다.


의약품과 의약외품, 화장품, 의료기기 등의 분야에서 인허가와 검사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이제 관련 주식을 새로 매수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다만 해당 부서로 발령나기 전부터 보유한 주식은 처분할 수 있습니다.

또 인허가 담당 부서 외에 타 부서로 발령받는 경우에도 발령 후 6개월 동안은 관련 주식을 사고 팔 수 없도록 했습니다. 발령 이전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규정 개정에도 우려는 남아있습니다. 먼저 투자 제한 주식 종목이 '의료 제품 및 건강기능식품 분야'로만 명시되어 있어 제한 종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듬을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감사에 있어 직원들의 자진 신고 내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주식 보유·거래 내역 등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보다 실효성 있는 감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강도 높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식약처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행정기관입니다. 직원 개인의 사적 이익과 공익을 지켜야 하는 책무가 충돌하는 '이해 충돌'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양심에 기대하기보다 좀 더 촘촘하고 세밀한 규정 마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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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인허가 내주고 주식도 거래?”…논란 일자 뒤늦게 ‘주식 금지’
    • 입력 2020-09-24 10:28:07
    • 수정2020-09-24 10:28:32
    취재후·사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이름 그대로 식품과 의약품 등에 대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입니다. 식약처는 이 밖에도 의료기기와 화장품 등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대해 인허가와 감독, 지도 권한을 갖고 있어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식약처 직원들이, 직무 관련 분야의 주식 거래를 금지한 내부 규정에도 불구하고 제약과 바이오 관련 주식을 거래해온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두 달간 1억 3천만 원, 3년간 6천만 원…직원들의 수상한 주식 거래

사실 식약처 직원들의 직무 관련 주식 거래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17년 초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식약처를 비롯한 의약 당국 직원들의 주식 거래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지적이 일자, 식약처는 그해 10월 '식약처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해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를 제한합니다.

하지만 그 이듬해에도 직원들의 제약·바이오 관련 주식 거래는 계속됐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식약처 소속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 근무하던 A 씨는 2018년 중순, 두달 새 제약회사 2곳의 주식을 총 1억 3천만 원가량 사들였습니다. 또다른 직원인 B 씨는 2015년부터 3년여에 걸쳐 한 바이오 회사의 주식만 6천여만 원 어치를 사들였습니다.

이 직원들은 2018년 하반기, 식약처가 직원들의 주식 거래 및 보유 내역 등을 자체 감사할 당시 관련 주식들을 모두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진 신고한 사람만 감사? 직무 관련 거래는 아니다?

이들을 비롯해 당시 감사에서 업무 관련 주식을 보유하거나 거래했다고 신고한 직원은 모두 32명. 그런데 이 감사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식약처 행동강령 상 자체 감사는 인허가나 감사 담당 직원들 중 주식 거래 내역을 자진 신고한 직원들을 상대로 이뤄집니다. 만약 거래 내역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엔 감사를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겁니다.

직원의 직무 관련 주식 거래에 대해 직무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식약처 자료.
더군다나 식약처는, 이 자진 신고한 32명 가운데서도 18명에 대해서는 식약처 임용 전 취득한 주식이라며 규정 위반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나머지 직원들에 대해서도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해 부당 이익을 취득한 경우로는 볼 수 없다며 감사를 그대로 종결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같은 부서 내에서 동료 직원이 민원 처리를 한 업체의 주식을 거래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식약처는 본인이 직접 처리한 것이 아닌 만큼 직무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식약처 "의약품·의료기기 등 인허가 담당 직원은 관련 주식 신규 거래 금지"
이에 KBS가 22일 식약처 직원들의 직무 관련 주식 거래 문제를 보도하자, 그제서야 식약처는, '인허가 담당 직원들은 아예 관련 주식을 새로 거래할 수 없도록' 행동강령 일부를 개정했습니다.


의약품과 의약외품, 화장품, 의료기기 등의 분야에서 인허가와 검사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이제 관련 주식을 새로 매수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다만 해당 부서로 발령나기 전부터 보유한 주식은 처분할 수 있습니다.

또 인허가 담당 부서 외에 타 부서로 발령받는 경우에도 발령 후 6개월 동안은 관련 주식을 사고 팔 수 없도록 했습니다. 발령 이전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규정 개정에도 우려는 남아있습니다. 먼저 투자 제한 주식 종목이 '의료 제품 및 건강기능식품 분야'로만 명시되어 있어 제한 종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듬을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감사에 있어 직원들의 자진 신고 내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주식 보유·거래 내역 등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보다 실효성 있는 감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강도 높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식약처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행정기관입니다. 직원 개인의 사적 이익과 공익을 지켜야 하는 책무가 충돌하는 '이해 충돌'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양심에 기대하기보다 좀 더 촘촘하고 세밀한 규정 마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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