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태국 민주화 동판에 무슨 일이?

입력 2020.09.24 (14:53) 수정 2020.09.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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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1932년, 절대왕정이 끝나고 태국에 입헌군주제가 들어선다. 그 무혈혁명을 기념해 1936년 왕궁 인근 사남 루엉(Sanam Luang) 광장에는 '민주화혁명기념동판'이 새겨졌다.

장면2.
2017년 4월,국민의 사랑을 받던 라마 9세가 서거했다. 새 국왕이 즉위했다. 몇 달뒤 민주화혁명기념 동판이 사라졌다. 대신 '태국인들은 국가와 종교, 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동판이 들어섰다.

장면3.
2020년 9월 19일, 지난 2014년 쿠데타 이후 가장 큰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시민들은 다시 사남 루엉 광장에 모였다. 시민 대표들은 언론 카메라 앞에서 새 동판을 새겨넣었다. 동판에는 '태국은 국왕의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동판은 하지만 하루만에 사라졌다.

왼쪽(민주화 동판을 새겨넣는 시민 지도자들):오른쪽(동판이 사라진 사남 루엉 광장)왼쪽(민주화 동판을 새겨넣는 시민 지도자들):오른쪽(동판이 사라진 사남 루엉 광장)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현재진행형이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야당, 퓨처포워드당(FFP)의 해산을 결정했다. 3월에는 코로나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관광대국 태국에 관광객들의 입국이 끊겼다. 그러던 지난 6월, 태국 경찰은 8년전 페라리로 경찰을 치어 숨지게 한 재벌 3세의 공소사실이 모두 기각됐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시민들을 크게 자극했다. 7월부터 방콕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태국에선 국왕에 대한 비판은 금기다. 최고 징역 15년형이 적용된다. 지난 19일 시위에서 시민대표들의 발언은 위험 수위를 훌쩍 넘어섰다. '태국은 국민의 것이다' 라는 그날의 기록은 '동판'에 역사물처럼 기록됐다. 정부가 이 동판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그나카르타 이후 800년, 권리장전 이후 300년이 지난 21세기 방콕 한가운데서 '동판'을 둘러싼 국민주권 논쟁이 한창이다. 시위대는 다시 동판을 새길 수 있을까?

우리도 80년때 민주화 열망이 거리로 터져나왔다. 그때 1인당 국민소득이 4,5천 달러였다. 지금 태국의 국민소득은 7천 달러가 넘는다. 현실도 우리 80년대를 뛰어넘는다. 지금 총리 역시 2014년 쿠데타로 집권했다. 32년 입헌군주제 이후 19번째 쿠데타였다. 그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이다. 그리고 개헌을 통해 상원의원 250명 전원을 정부가 지명한다. 툭하면 총선이 연기된다. 야당은 해산된다. 경찰을 치고 달아는 재벌3세는 해외에서 보란듯이 잘 산다.

이 반정부 에너지는 결국 금기를 위협한다. 여기서부터 복잡해지고 위험해진다. 민주화 열망은 권위주의 정부를 넘어 태국의 입헌군주제를 흔들 수 있을까? 2016년 10월 서거한 와치랄롱콘 국왕(라마9세)은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민주화 열망은 강하지만, 왕을 바라보는 태국 시민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왕실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시위대를 '왕실모독죄'로 고발했다. 태국 정부도 가급적 시위 지도부를 체포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 모두 극단적 충돌을 피하는 모양새다. 이 평화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동판 논란이 커지면서 태국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시위대의 동판을 그린 생활용품이 속속 출시됐다. 휴대폰케이스에서 모자, 남비까지...검색해봤더니 서핑보드는 우리돈 70만원이 넘는다.

동판을 새긴 수많은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휴대폰 케이스 /모자/ 서핑보드 (출처 Coconuts Bangkok)동판을 새긴 수많은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휴대폰 케이스 /모자/ 서핑보드 (출처 Coconuts Bangkok)

PS/
참, 동판은 태국 경찰이 가져갔다. 사남 루앙광장 인근 박물관 등이 유적지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시위대를 고발했고, 그러자 경찰이 '증거 확보'차원에서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 태국의 영자신문 'BANGKOK POST는 '언제부터 그렇게 문화재를 소중히 여겼느냐'는 비판 칼럼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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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태국 민주화 동판에 무슨 일이?
    • 입력 2020-09-24 14:53:18
    • 수정2020-09-24 16:16:02
    특파원 리포트
장면1.
1932년, 절대왕정이 끝나고 태국에 입헌군주제가 들어선다. 그 무혈혁명을 기념해 1936년 왕궁 인근 사남 루엉(Sanam Luang) 광장에는 '민주화혁명기념동판'이 새겨졌다.

장면2.
2017년 4월,국민의 사랑을 받던 라마 9세가 서거했다. 새 국왕이 즉위했다. 몇 달뒤 민주화혁명기념 동판이 사라졌다. 대신 '태국인들은 국가와 종교, 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동판이 들어섰다.

장면3.
2020년 9월 19일, 지난 2014년 쿠데타 이후 가장 큰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시민들은 다시 사남 루엉 광장에 모였다. 시민 대표들은 언론 카메라 앞에서 새 동판을 새겨넣었다. 동판에는 '태국은 국왕의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동판은 하지만 하루만에 사라졌다.

왼쪽(민주화 동판을 새겨넣는 시민 지도자들):오른쪽(동판이 사라진 사남 루엉 광장)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현재진행형이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야당, 퓨처포워드당(FFP)의 해산을 결정했다. 3월에는 코로나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관광대국 태국에 관광객들의 입국이 끊겼다. 그러던 지난 6월, 태국 경찰은 8년전 페라리로 경찰을 치어 숨지게 한 재벌 3세의 공소사실이 모두 기각됐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시민들을 크게 자극했다. 7월부터 방콕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태국에선 국왕에 대한 비판은 금기다. 최고 징역 15년형이 적용된다. 지난 19일 시위에서 시민대표들의 발언은 위험 수위를 훌쩍 넘어섰다. '태국은 국민의 것이다' 라는 그날의 기록은 '동판'에 역사물처럼 기록됐다. 정부가 이 동판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그나카르타 이후 800년, 권리장전 이후 300년이 지난 21세기 방콕 한가운데서 '동판'을 둘러싼 국민주권 논쟁이 한창이다. 시위대는 다시 동판을 새길 수 있을까?

우리도 80년때 민주화 열망이 거리로 터져나왔다. 그때 1인당 국민소득이 4,5천 달러였다. 지금 태국의 국민소득은 7천 달러가 넘는다. 현실도 우리 80년대를 뛰어넘는다. 지금 총리 역시 2014년 쿠데타로 집권했다. 32년 입헌군주제 이후 19번째 쿠데타였다. 그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이다. 그리고 개헌을 통해 상원의원 250명 전원을 정부가 지명한다. 툭하면 총선이 연기된다. 야당은 해산된다. 경찰을 치고 달아는 재벌3세는 해외에서 보란듯이 잘 산다.

이 반정부 에너지는 결국 금기를 위협한다. 여기서부터 복잡해지고 위험해진다. 민주화 열망은 권위주의 정부를 넘어 태국의 입헌군주제를 흔들 수 있을까? 2016년 10월 서거한 와치랄롱콘 국왕(라마9세)은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민주화 열망은 강하지만, 왕을 바라보는 태국 시민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왕실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시위대를 '왕실모독죄'로 고발했다. 태국 정부도 가급적 시위 지도부를 체포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 모두 극단적 충돌을 피하는 모양새다. 이 평화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동판 논란이 커지면서 태국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시위대의 동판을 그린 생활용품이 속속 출시됐다. 휴대폰케이스에서 모자, 남비까지...검색해봤더니 서핑보드는 우리돈 70만원이 넘는다.

동판을 새긴 수많은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휴대폰 케이스 /모자/ 서핑보드 (출처 Coconuts Bangkok)
PS/
참, 동판은 태국 경찰이 가져갔다. 사남 루앙광장 인근 박물관 등이 유적지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시위대를 고발했고, 그러자 경찰이 '증거 확보'차원에서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 태국의 영자신문 'BANGKOK POST는 '언제부터 그렇게 문화재를 소중히 여겼느냐'는 비판 칼럼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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