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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무림사건’ 김명인 교수, 두 번째 재심서 40년 만에 무죄
입력 2020.09.25 (16:28) 수정 2020.09.25 (18:32) 사회
1980년 반독재 학생시위,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으로 불법 연행돼 고문을 당하고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피해자들에게, 40여 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이관용)는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당시 서울대 학생 박 모 씨의 판결에 대한 재심에서, 오늘(25일) 두 사람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교수와 박 씨는 1981년 계엄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징역 1년 6개월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들은 이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재심을 청구해 계엄법 위반은 무죄, 반공법 위반은 선고유예 판결을 선고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2000년에 선고된 첫 재심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오늘로 두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겁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의심이 가고 고문도 의심된다"면서 이런 주장이 살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법정진술은 의미 있는 진술로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피고인들의 당시 법정진술을 의미 있는 진술로 인정한다고 해도, 피고인들이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이 "소위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판시했습니다.

김 교수와 박 씨의 법정진술이 학술적 목적으로 서적을 읽고 의견을 나눈 사실이나 전단지 배포와 집회 등 학생운동을 한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지, 이적행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직후 김 교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당시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힘들었을 점에 대해서 깊은 동의와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김 교수는 1980년 12월 11일에 벌어진 서울대 교내 시위의 배후자로 지목됐습니다. 김 교수는 이후 서울 관악경찰서 수사관들에게 불법 연행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고, 35일 동안 감금돼 고문당했습니다. 당시 김 교수를 고문했던 경찰 중 한 명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었습니다.

박 씨 역시 영장 없이 체포돼 26일 동안 구금된 상태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김 교수가 공산주의 이론과 민중투쟁방법 등에 관한 지식을 함양하기 위해 '자본주의 발달사 연구', '조선근대경제사 연구' 등 불온서적을 탐독하고 선후배들에게 공산주의 이론을 가르쳤다고 봤습니다. 또, 학생시위를 벌이며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는 표현물을 제작했다고 판시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일련의 행위가 모두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이었다고 봤습니다.

오늘 선고 직후 취재진을 만난 김 교수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지연됐더라도 이렇게 뒤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얼마나 우리 사회가 후진적이었는지 젊은 청년들이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감내하면서까지 싸워야 했고, 그다음에 오랫동안 희생을 치러야 했고, 인생 전체를 저당 잡힌 걸 생각하면 이상한 나라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자기 신념에 따라, 민주시민의 윤리, 민주 시민의 권리에 따라 행동했는데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고 평생 고통받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서울대 무림사건’ 김명인 교수, 두 번째 재심서 40년 만에 무죄
    • 입력 2020-09-25 16:28:03
    • 수정2020-09-25 18:32:09
    사회
1980년 반독재 학생시위,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으로 불법 연행돼 고문을 당하고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피해자들에게, 40여 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이관용)는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당시 서울대 학생 박 모 씨의 판결에 대한 재심에서, 오늘(25일) 두 사람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교수와 박 씨는 1981년 계엄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징역 1년 6개월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들은 이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재심을 청구해 계엄법 위반은 무죄, 반공법 위반은 선고유예 판결을 선고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2000년에 선고된 첫 재심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오늘로 두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겁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의심이 가고 고문도 의심된다"면서 이런 주장이 살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법정진술은 의미 있는 진술로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피고인들의 당시 법정진술을 의미 있는 진술로 인정한다고 해도, 피고인들이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이 "소위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판시했습니다.

김 교수와 박 씨의 법정진술이 학술적 목적으로 서적을 읽고 의견을 나눈 사실이나 전단지 배포와 집회 등 학생운동을 한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지, 이적행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직후 김 교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당시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힘들었을 점에 대해서 깊은 동의와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김 교수는 1980년 12월 11일에 벌어진 서울대 교내 시위의 배후자로 지목됐습니다. 김 교수는 이후 서울 관악경찰서 수사관들에게 불법 연행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고, 35일 동안 감금돼 고문당했습니다. 당시 김 교수를 고문했던 경찰 중 한 명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었습니다.

박 씨 역시 영장 없이 체포돼 26일 동안 구금된 상태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김 교수가 공산주의 이론과 민중투쟁방법 등에 관한 지식을 함양하기 위해 '자본주의 발달사 연구', '조선근대경제사 연구' 등 불온서적을 탐독하고 선후배들에게 공산주의 이론을 가르쳤다고 봤습니다. 또, 학생시위를 벌이며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는 표현물을 제작했다고 판시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일련의 행위가 모두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이었다고 봤습니다.

오늘 선고 직후 취재진을 만난 김 교수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지연됐더라도 이렇게 뒤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얼마나 우리 사회가 후진적이었는지 젊은 청년들이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감내하면서까지 싸워야 했고, 그다음에 오랫동안 희생을 치러야 했고, 인생 전체를 저당 잡힌 걸 생각하면 이상한 나라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자기 신념에 따라, 민주시민의 윤리, 민주 시민의 권리에 따라 행동했는데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고 평생 고통받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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