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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흑인 총격 경찰은 정당방위”…면죄부 준 테일러 사건 향방은?
입력 2020.09.25 (17:52) 특파원 리포트
“Say Her Name” (그녀의 이름을 말하라)

잠자던 흑인 여성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숨진지 6개월 만에 해당 경찰들이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중심가에선 분노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는 뉴욕, 워싱턴 D.C, 시애틀, 필라델피아 등 주요 도시로 확산중입니다.

시위 현장에선 ‘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No Justice, No Peace’(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구호와 함께 피해자의 이름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시위대는 ‘Say Her Name’을 연호했습니다.

브레오나 테일러, 사망 당시 26살. 살아 있었다면 지난 6월 5일에 스물 일곱번 째 생일을 맞았을 겁니다. 테일러가 목숨을 잃은 경위는 아직도 조사중입니다. 사법 테두리 안에서 가해자는 누군지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망자 (亡者)만 존재할 뿐입니다.

3월 13일 그날 밤엔 무슨 일이?

그날, 병원 응급실에서 야간 교대 근무를 마친 브레오나 테일러는 남자친구 케네스 워커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밤 늦게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경찰이 아파트를 급습한 때는 자정이 막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경찰이 지닌 약물 수색 영장에는 경고 없이 집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공개된 911 통화 내용에는 워커가 신고한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습니다.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내 여자친구를 세 번이나 쐈어요. 도와주세요”

워커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경찰에 총을 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이에 응사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습니다.

경찰이 쏜 총알은 테일러의 아파트에 있는 거의 모든 방을 관통했고, 인접한 다른 방으로 날아갔습니다. 비누 접시, 의자, 탁자는 물론 미닫이 유리문까지 산산조각 났습니다.

난사된 총알은 테일러의 이웃인 3번 아파트까지 관통해 자고 있던 임산부는 물론 남편, 아이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테일러는 총알 8발을 맞고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흑인 총격 경찰은 정당방위”...“결정적 증거 없어”

경찰이 체포하려 했던 용의자는 테일러의 전 남자친구 자마커스 글로버, 그는 사건이 벌어진 당일 이미 구금중인 상태였습니다. 집에서 마약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맡은 벤 크럼프 변호사는 “실수 투성이 경찰 급습이 불러온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3명의 경관은 휴가 명령을 받았고, 6개월 만에 경찰들의 대응에 대한 캔터키주 대배심 평결 결과가 나왔습니다.

배심원들은 먼저 경찰들의 대응은 정당방위라고 봤습니다. 테일러 남자친구의 총격에 응사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죄를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한 명, 브렛 핸키스 전 경관에 대해선 주민을 위험에 처하게 한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무모한 총격으로 테일러의 이웃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 이윱니다. 테일러의 사망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혐의입니다. 평결의 핵심은 테일러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경찰의 범죄는 아니라는 겁니다.


대니얼 캐머런 켄터키주 법무장관은 “이 사건이 흑인 사회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흑인이자 공화당원인 캐머런 장관은 그러나 “경찰은 법에 따라 무기를 사용했다. 감정이나 분노에 따라 행동하면 정의는 없다”며 평결을 두둔했습니다.

정의가 뭔데? 분노한 미국 사회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은 인종차별 시위를 재점화했습니다.

루이빌에서 벌어진 시위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긴장은 고조되고 있습니다. 야간 통행 금지에 이어 연방수사국(FBI)는 특수기동대(SWAT)까지 배치했고,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탄도 동원됐습니다. 전날(23일) 시위로 127명이 체포됐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인종 차별 항의 시위가 격화됐을 때,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는데, 최절정이었던 6월 수준은 아니지만 덴버, 뉴욕주, 워싱턴 D.C로 번지면서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 분위깁니다.


조지 플로이드, 제이콥 블레이크, 대니얼 프루드, 브레오나 테일러...모두 흑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주의적 인명피해라는 점, 그리고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 과정에서 희생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국 내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구조적·시스템적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미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브레오나 테일러 사건의 경우 당시 세 명의 경찰관 모두 바디캠을 착용하지 않아 진상 규명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얼굴에 복면 덮개를 씌워져 질식사한 대니얼 프루드 사건의 경우도 가족들의 노력으로 5개월 만에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흑인 차별 시위, 남은 대선에 변수될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첫번 째 TV 토론은 29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미 대통령선거토론위원회가 발표한 TV 토론의 의제 6개 가운데 하나가 인종 문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앞세워 폭력 시위를 강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큽니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해 백인이 다수인 지지층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인종 차별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최근(23일)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흑인 사업가, 근로자 등을 만난 자리에서 ‘더 나은 재건’의 일환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투자를 언급했습니다. 700억 달러를 흑인 대학, 흑인 소유의 소규모 사업 부흥에 활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눈여겨볼 점은 인종 차별 시위 현장에선 백인, 아시아인들도 눈에 많이 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종,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경찰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구조적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얘깁니다.

‘법과 질서’인가, 아니면 ‘구조적 개혁’인가. 테일러 사건으로 재점화된 항의 시위는 대선을 앞둔 표심을 더 갈라치기 할 것으로 보입니다.
  • [특파원리포트] “흑인 총격 경찰은 정당방위”…면죄부 준 테일러 사건 향방은?
    • 입력 2020-09-25 17:52:31
    특파원 리포트
“Say Her Name” (그녀의 이름을 말하라)

잠자던 흑인 여성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숨진지 6개월 만에 해당 경찰들이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중심가에선 분노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는 뉴욕, 워싱턴 D.C, 시애틀, 필라델피아 등 주요 도시로 확산중입니다.

시위 현장에선 ‘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No Justice, No Peace’(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구호와 함께 피해자의 이름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시위대는 ‘Say Her Name’을 연호했습니다.

브레오나 테일러, 사망 당시 26살. 살아 있었다면 지난 6월 5일에 스물 일곱번 째 생일을 맞았을 겁니다. 테일러가 목숨을 잃은 경위는 아직도 조사중입니다. 사법 테두리 안에서 가해자는 누군지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망자 (亡者)만 존재할 뿐입니다.

3월 13일 그날 밤엔 무슨 일이?

그날, 병원 응급실에서 야간 교대 근무를 마친 브레오나 테일러는 남자친구 케네스 워커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밤 늦게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경찰이 아파트를 급습한 때는 자정이 막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경찰이 지닌 약물 수색 영장에는 경고 없이 집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기재돼 있었습니다.

공개된 911 통화 내용에는 워커가 신고한 당시 상황이 묘사돼 있습니다.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내 여자친구를 세 번이나 쐈어요. 도와주세요”

워커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경찰에 총을 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이에 응사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습니다.

경찰이 쏜 총알은 테일러의 아파트에 있는 거의 모든 방을 관통했고, 인접한 다른 방으로 날아갔습니다. 비누 접시, 의자, 탁자는 물론 미닫이 유리문까지 산산조각 났습니다.

난사된 총알은 테일러의 이웃인 3번 아파트까지 관통해 자고 있던 임산부는 물론 남편, 아이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테일러는 총알 8발을 맞고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흑인 총격 경찰은 정당방위”...“결정적 증거 없어”

경찰이 체포하려 했던 용의자는 테일러의 전 남자친구 자마커스 글로버, 그는 사건이 벌어진 당일 이미 구금중인 상태였습니다. 집에서 마약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맡은 벤 크럼프 변호사는 “실수 투성이 경찰 급습이 불러온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3명의 경관은 휴가 명령을 받았고, 6개월 만에 경찰들의 대응에 대한 캔터키주 대배심 평결 결과가 나왔습니다.

배심원들은 먼저 경찰들의 대응은 정당방위라고 봤습니다. 테일러 남자친구의 총격에 응사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죄를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한 명, 브렛 핸키스 전 경관에 대해선 주민을 위험에 처하게 한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무모한 총격으로 테일러의 이웃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 이윱니다. 테일러의 사망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혐의입니다. 평결의 핵심은 테일러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경찰의 범죄는 아니라는 겁니다.


대니얼 캐머런 켄터키주 법무장관은 “이 사건이 흑인 사회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흑인이자 공화당원인 캐머런 장관은 그러나 “경찰은 법에 따라 무기를 사용했다. 감정이나 분노에 따라 행동하면 정의는 없다”며 평결을 두둔했습니다.

정의가 뭔데? 분노한 미국 사회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은 인종차별 시위를 재점화했습니다.

루이빌에서 벌어진 시위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긴장은 고조되고 있습니다. 야간 통행 금지에 이어 연방수사국(FBI)는 특수기동대(SWAT)까지 배치했고,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탄도 동원됐습니다. 전날(23일) 시위로 127명이 체포됐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인종 차별 항의 시위가 격화됐을 때,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는데, 최절정이었던 6월 수준은 아니지만 덴버, 뉴욕주, 워싱턴 D.C로 번지면서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 분위깁니다.


조지 플로이드, 제이콥 블레이크, 대니얼 프루드, 브레오나 테일러...모두 흑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주의적 인명피해라는 점, 그리고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 과정에서 희생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국 내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구조적·시스템적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미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브레오나 테일러 사건의 경우 당시 세 명의 경찰관 모두 바디캠을 착용하지 않아 진상 규명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얼굴에 복면 덮개를 씌워져 질식사한 대니얼 프루드 사건의 경우도 가족들의 노력으로 5개월 만에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흑인 차별 시위, 남은 대선에 변수될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첫번 째 TV 토론은 29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미 대통령선거토론위원회가 발표한 TV 토론의 의제 6개 가운데 하나가 인종 문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앞세워 폭력 시위를 강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큽니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해 백인이 다수인 지지층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인종 차별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최근(23일)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흑인 사업가, 근로자 등을 만난 자리에서 ‘더 나은 재건’의 일환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투자를 언급했습니다. 700억 달러를 흑인 대학, 흑인 소유의 소규모 사업 부흥에 활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눈여겨볼 점은 인종 차별 시위 현장에선 백인, 아시아인들도 눈에 많이 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종,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경찰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구조적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얘깁니다.

‘법과 질서’인가, 아니면 ‘구조적 개혁’인가. 테일러 사건으로 재점화된 항의 시위는 대선을 앞둔 표심을 더 갈라치기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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