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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불도 꺼야죠”…‘화재 피해’ 70대 유공자 도운 소방대원들
입력 2020.09.29 (08:03) 수정 2020.09.29 (10:34) 취재K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습니다. 2주가 지난 어제(28일) 같은 공간을 찾아가 봤습니다. 작은 공간에 가득한 주방 집기들. 2주 전 화마가 다녀간 곳이라기엔 모든 게 새것 같습니다. 이렇게 피해 복구를 해준 건 가족들도, 보험사도 아닌 화재 당일 이곳으로 출동했던 송파소방서 소방대원들입니다.


화재 진압 직후 집안을 둘러보니 불이 시작된 가스레인지에는 검은 재가 가득했습니다. 가스레인지를 받치고 있던 바랜 상아색 가구와 가스레인지 뒤편 타일에도 그을음이 남았습니다. 그 위로 새카맣게 타버린 벽지 역시 불길의 흔적입니다. 매캐한 연기가 주방에 가득 찼기에 멀쩡해 보이는 반대편 집기류들도 모두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이틀 후 다시 모인 소방대원들. 주황색 활동복을 입고 있지만 소방차나 구급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쁜 근무 일정을 서로 맞추느라 비번을 무릅쓰고 현장을 찾은 소방대원도 있습니다. 이들은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기부천사’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모인 사람은 10명 남짓. 모든 가전과 잡동사니를 집 밖으로 빼서 청소를 하는 것만 해도 꼬박 반나절이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청소가 어느 정도 끝나자 호스 대신 공구를 든 소방대원들이 천장 높은 곳에서 마룻바닥까지 빠짐없이 낡은 벽지와 장판들을 떼어 냅니다. ‘기부천사’의 도움으로 도배 기술자를 불러 깨끗하게 새로 벽지를 발랐습니다. 이틀에 걸친 복구는 냉장고 청소와 주방 정리까지 이어졌고, 소방대원들이 사비를 모아 새 수납함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피해 복구는 소방대원들의 일은 아닙니다. 화재 당시 송파소방서에서는 신고 후 바로 출동해 불을 껐고, 집주인이 손끝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 외에는 인명피해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손발을 걷어붙이고 휴무일까지 반납하며 이렇게 나선 이유가 뭘까요.

이 집에 살고 있던 황 모 씨는 흰 머리지만 짧게 깎아 정리한 다부진 인상으로, 50여 년 전 월남전에 참가했던 국가유공자입니다. 나이 70이 넘도록 긴 시간을 혼자 생활해 도움을 줄 만한 주변인도 마땅치 않았고, 매달 나오는 보조금 70만 원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벅찼습니다.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 후 황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같은 사연을 알게 됐는데 추석을 앞두고 대원들의 뜻이 맞았던 겁니다.

당시 지휘를 맡았던 신호칠 팀장은 “나라를 위해 일하신 아버지 같은 분의 딱한 사정을 듣고 외면할 수 없었다”라며 “도울 방안을 찾아보다가 평소 한 대원이 알고 지내던 사회적 협동조합 소속 자원봉사자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안함에 한사코 도움을 거절했던 황 씨. 소방대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결국 마음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평소 말이 없는 황 씨지만, 이번에는 “참 고맙다”라며 쑥스러운 듯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물론, 소방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이 가서 한 일이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도움 주기를 자처할 수 있었던 건 이웃에 관한 관심과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봉사자로 참여한 사회적협동조합 ‘기부천사’의 김순규 회장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도 참 힘든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좀 고민했다”라면서도 “‘할아버지 혼자 해결하면 또 몇 달을 힘들게 사시겠구나’ 싶어서 그 힘을 좀 덜어드리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 나갔던 이강균 주임은 “소방관이 현장의 불만 끄는 게 아니라 마음의 불도 꺼줘야 하지 않나요”라며 “내내 침통해 하시다가 깨끗해진 것을 보고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참 다행이다 싶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가끔 딱한 사정이 있으면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은 경우가 많은데 ‘기부천사’ 같은 곳에 정말 감사하다”라며 “좀 더 많은 분이 이러한 단체들에 관심을 둬 주시면 좋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 “마음의 불도 꺼야죠”…‘화재 피해’ 70대 유공자 도운 소방대원들
    • 입력 2020-09-29 08:03:19
    • 수정2020-09-29 10:34:28
    취재K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습니다. 2주가 지난 어제(28일) 같은 공간을 찾아가 봤습니다. 작은 공간에 가득한 주방 집기들. 2주 전 화마가 다녀간 곳이라기엔 모든 게 새것 같습니다. 이렇게 피해 복구를 해준 건 가족들도, 보험사도 아닌 화재 당일 이곳으로 출동했던 송파소방서 소방대원들입니다.


화재 진압 직후 집안을 둘러보니 불이 시작된 가스레인지에는 검은 재가 가득했습니다. 가스레인지를 받치고 있던 바랜 상아색 가구와 가스레인지 뒤편 타일에도 그을음이 남았습니다. 그 위로 새카맣게 타버린 벽지 역시 불길의 흔적입니다. 매캐한 연기가 주방에 가득 찼기에 멀쩡해 보이는 반대편 집기류들도 모두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이틀 후 다시 모인 소방대원들. 주황색 활동복을 입고 있지만 소방차나 구급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쁜 근무 일정을 서로 맞추느라 비번을 무릅쓰고 현장을 찾은 소방대원도 있습니다. 이들은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기부천사’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모인 사람은 10명 남짓. 모든 가전과 잡동사니를 집 밖으로 빼서 청소를 하는 것만 해도 꼬박 반나절이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청소가 어느 정도 끝나자 호스 대신 공구를 든 소방대원들이 천장 높은 곳에서 마룻바닥까지 빠짐없이 낡은 벽지와 장판들을 떼어 냅니다. ‘기부천사’의 도움으로 도배 기술자를 불러 깨끗하게 새로 벽지를 발랐습니다. 이틀에 걸친 복구는 냉장고 청소와 주방 정리까지 이어졌고, 소방대원들이 사비를 모아 새 수납함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피해 복구는 소방대원들의 일은 아닙니다. 화재 당시 송파소방서에서는 신고 후 바로 출동해 불을 껐고, 집주인이 손끝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 외에는 인명피해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손발을 걷어붙이고 휴무일까지 반납하며 이렇게 나선 이유가 뭘까요.

이 집에 살고 있던 황 모 씨는 흰 머리지만 짧게 깎아 정리한 다부진 인상으로, 50여 년 전 월남전에 참가했던 국가유공자입니다. 나이 70이 넘도록 긴 시간을 혼자 생활해 도움을 줄 만한 주변인도 마땅치 않았고, 매달 나오는 보조금 70만 원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벅찼습니다.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 후 황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같은 사연을 알게 됐는데 추석을 앞두고 대원들의 뜻이 맞았던 겁니다.

당시 지휘를 맡았던 신호칠 팀장은 “나라를 위해 일하신 아버지 같은 분의 딱한 사정을 듣고 외면할 수 없었다”라며 “도울 방안을 찾아보다가 평소 한 대원이 알고 지내던 사회적 협동조합 소속 자원봉사자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안함에 한사코 도움을 거절했던 황 씨. 소방대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결국 마음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평소 말이 없는 황 씨지만, 이번에는 “참 고맙다”라며 쑥스러운 듯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물론, 소방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이 가서 한 일이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도움 주기를 자처할 수 있었던 건 이웃에 관한 관심과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봉사자로 참여한 사회적협동조합 ‘기부천사’의 김순규 회장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도 참 힘든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좀 고민했다”라면서도 “‘할아버지 혼자 해결하면 또 몇 달을 힘들게 사시겠구나’ 싶어서 그 힘을 좀 덜어드리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 나갔던 이강균 주임은 “소방관이 현장의 불만 끄는 게 아니라 마음의 불도 꺼줘야 하지 않나요”라며 “내내 침통해 하시다가 깨끗해진 것을 보고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참 다행이다 싶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가끔 딱한 사정이 있으면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은 경우가 많은데 ‘기부천사’ 같은 곳에 정말 감사하다”라며 “좀 더 많은 분이 이러한 단체들에 관심을 둬 주시면 좋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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