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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농산물 도매법인 유통 추적!…가격의 반은 ‘농민의 눈물’
입력 2020.09.30 (06:28) 수정 2020.09.30 (06:57) 취재후
■“농산물 팔기 힘들어”…함께 목숨 끊은 제주 농민 부부

연둣빛 싹을 틔운 당근밭을 둘러보는 윤순자 씨의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촘촘하게 자란 당근은 솎아내고, 농기계에 걸릴만한 돌멩이는 하나하나 골라냈습니다. 이 밭은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제주도 농민 고 씨 부부가 경작하던 곳입니다. 윤 씨는 두 부부와 유기농 농산물을 함께 재배하며 가족 같은 정을 나누던 이웃. 고 씨 부부가 세상을 등지고 방치되는 밭을 보다 못한 윤 씨가 올여름 당근을 심은 겁니다.


"판로를 뚫지 못해서 여기저기 빚을 졌었어요. 전날까지도 저에게 양파며 단호박을 팔아달라고…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팔아줬을 텐데…”

고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에도 농산물을 팔지 못하는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렵게 대파 구매처인 급식소를 찾아 납품했는데, 수확 시기를 놓친 대파가 웃자라 절단기에 들어가지 않아 전량 반품됐다는 내용. 숨지기 전날까지도 외국인 노동자 4명의 임금이 넉 달이나 밀렸다며 비트 300콘테이너 분량 등을 팔아달라는 문자를 지인에게 남겼습니다.


고 씨 부부가 숨진 건 지난해 7월. 파종시기를 넘길까 새벽 3시까지 수만 평의 밭에 씨를 뿌리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안방에서 숨져있는 아내를 발견했습니다. 시신을 수습해 119구급차를 태워 보낸 남편은 그대로 창고에서 스스로 세상을 져버렸습니다. 숨질 당시 부부에게는 수억 원의 빚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지척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윤순자 씨는 ‘모든 게 농산물 유통의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 정책은 도매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농민들이 판로를 찾지 못해 농산물을 중간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일이 잦자 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들여 도매시장을 짓고, 이곳에서 모든 농산물을 유통을 담당하도록 한 겁니다.

이 때문에 기준법인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보면 도매법인들은 농민들이 가져온 농산물은 무조건 받아서 경매에 부치거나 판로를 찾아주게 돼 있습니다. 세금으로 개설한 도매시장의 의무이자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하지만 유기농 농산물의 경우 모양새도 농약을 친 것에 비해 예쁘지 않고, 크기도 작아 일반 농산물의 품질 기준을 맞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도매시장에 출하해 봤자 일반 농산물의 3분의 1 가격도 못 받는 일이 허다했다고 합니다. 윤 씨는 또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 소비처를 찾으려면 인력과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도매법인들이 진입 장벽을 쌓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기자가 쪽파 2톤 출하해봤더니…경매는 건너뛰고 물량 가격은 축소 보고

농민들의 농산물을 받아서 판로를 열어주고, 경매를 통해 높은 가격을 받게 해줘야 하는 도매시장. 도대체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농민들은 농산물을 팔기 힘들고,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고 있다고 말할까요? 직접 그곳에 뛰어들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뉴스9〉기자가 직접 경매로 농산물 팔아봤더니…

'바비'와 '마이삭', '하이선' 등 태풍이 잇따라 한반도를 덮쳤던 지난달. 농민의 도움을 받아 쪽파 2톤을 수확해 화물차에 싣고 도매시장에 직접 출하해봤습니다. 기자가 쪽파를 출하한 날은 8월 13일. 태풍 끝물로 가락시장 쪽파 가격이 1kg에 6,900원까지 치솟았던 땝니다.

광주서부도매시장 쪽파 경매장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40분. 한 시 반에 경매를 시작한다는 말에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하역반이 나타나 저희가 출하한 쪽파를 가져가 버립니다. 경매는 사실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하는 절찹니다. 그래서 경매를 거치면 당연히 가격이 나와야 합니다. 쪽파를 가져갔으니 경매가 끝난 건지, 그럼 가격이 얼마나 나왔는 지 기자가 묻자 중도매인들은 ‘시장에 가져가 팔아봐야 한다’며 얼버무리기 시작했습니다. 경매 절차를 건너뛴 겁니다. 쪽파 가격은 경매 다음날에야 중도매인이 농민의 계좌로 알아서 입금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경매 가격이었습니다. 저는 쪽파 2톤을 출하해서 1,200만 원을 받았는데,당일 광주서부농산물시장 관리사무소에 보고된 물량은 8톤에 1,333만 원이었습니다. 가격이 심각하게 축소 보고된 겁니다.

혹시 이날 하루만 그런 것은 아닐까. 취재진은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씩 경매장을 찾아 들어오는 트럭을 영상에 기록했습니다. 매일 쪽파 2톤을 실은 트럭 10여 대가 경매장에 나타나 총 물량이 10~20톤에 달했지만, 관리사무소에 보고된 양은 6~9톤이었습니다. 경매량도 축소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도매법인 전 임원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도매법인들은 경매 가격은 7%를 수수료로 받는 대신 ‘농산물 수집’과 ‘경매’ 업무를 주로 담당하게 됩니다. 광주 서부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이 120여 가지에 달하다 보니 모든 품목의 수집과 관리가 어렵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농산물을 사가야 할 중도매인이 도매법인 대신 산지수집 업무 등을 대신 해주고, 도매법인이 받아야 할 수수료의 일부를 중간에서 일부 챙긴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물량과 가격을 관행적으로 축소 보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형식적으로 5차가 경매에 오면 1차나 2차 올려요. 중도매인들이 양을 맞춰줘요. 몇 개는 올리고 몇 개는 도매법인 몫으로 인정으로 해주고 축소해서 보고해요”
-도매법인 전 직원

지역 농산물 유통하라고 했더니…"비용 많이 들어” 서울서 사다 팔아

도매시장의 주요 기능은 <1. 농산물 수집· 유통 2. 경매를 통한 가격 결정> 입니다. 도매법인 소속 경매사들은 주요 농산물의 산지를 돌아다니며 생산량은 얼마나 되는지 경매에 낼 건지 농민들에게 묻고 농산물을 가져올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합니다.

이런 농산물 수집 역할을 하라고 지자체에서는 도매시장을 세금으로 지어서 도매법인에 임대합니다. 도매법인은 농민들이 낸 농산물을 경매에 부쳐주는 대가로 경매가의 7%를 수수료로 받아 챙깁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도매법인 88곳의 수수료 수입은 6천억 원을 넘었습니다.


그러면 도매법인들은 농산물 수집 업무를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저희 취재진은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갔습니다. 지역 도매법인들이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주로 사다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락시장 채소동에서 여러 날을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매일 같은 시각 가락시장을 찾는 한 화물차가 눈에 띠었습니다. ‘광주광역시 도매법인’이라고 적힌 5톤 트럭. 그 트럭은 채소동에 주차를 한 뒤 밤 11시까지 오이며 상추, 느타리버섯 같은 채소를 가득 채우고 가락시장을 떠났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트럭을 따라갔습니다. 고속도로를 탄 트럭은 4시간여를 달려 광주서부농산물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2시. 트럭이 싣고 온 채소들은 광주 도매시장 경매장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새벽 4시. 이렇게 싣고 온 채소는 마치 농민이나 산지 유통인들이 출하한 것처럼 꾸며 경매에 부쳤습니다.

어렵게 해당 도매법인의 내부 회계자료를 구했습니다. 해당 법인이 이렇게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떼다 판 건 2017년부터, 확인해보니 올해 8월까지 농산물 74억 원어치를 사다 팔았습니다. 도매법인을 개설한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고 다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사다 경매에 부치는 것은 ‘불법’입니다.

피치 못할 경우 허가를 받고 사올 수는 있지만, 도매시장 인근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물건으로 한정됩니다.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영업 정지’는 물론 ‘천만 원 이하 벌금이나 1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이 도매법인이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2년 반 동안, 개설자인 광주광역시는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수차례 문제의 도매법인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만난 도매법인 대표는 ‘불법’으로 농산물을 떼다 판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 직원은 100가지가 넘는 채소를 모두 사들여서 경매에 부치는 것보다 가락시장에서 사오는 게 관리비용이 덜 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도매법인이 물량을 못 맞춰주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회사 능력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싼 물량을 서울에서 끌어와서 유통을 한 거죠”
-도매법인 전 직원-


농민 ‘출하손실보존금’도 가락시장으로? … 도매법인의 황당한 계산법

문제는 불법 ‘매수거래’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락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팔면 채소가 시들기 마련인데요. 밭에서 수확한 지 평균 이틀이 지나기 때문입니다. 품질이 떨어진 농산물의 경매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매법인은 이 작은 손실도 용납할 수 없었나 봅니다. 취재진은 해당 도매법인의 회계시스템 사진을 확보했습니다.


가락시장에서 사온 농산물을 가격과 광주 도매시장에 가져와서 경매에 부쳐 받은 가격을 나란히 적어놓고 손실이 난 금액 위에는 '보상액'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상액의 정체는 무엇일까? 취재진은 해당 도매법인의 회계보고서를 분석해봤습니다. 해당 법인은 매년 4억여 원의 '출하자 손실보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도매법인 전 임원들을 수소문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도매법인이 가락시장 물건을 떼 와서 광주 도매시장에서 경매에 부친 뒤 일부 손실이 나면 농민들에게 지급해야 할 '출하자손실보전금'을 가락시장 상인들에게 지급한 것처럼 해서 손실금을 보전한다는 겁니다.

'출하자손실보전금'은 농민들이 농산물을 경매에 부쳤을 때 경매 낙찰금액이 평균 가격보다 낮을 경우 신청을 받아서, 심의 절차를 거쳐 지급하는 보전금입니다. 일종의 농민 보호장치인 셈이죠. 그런데 해당 도매법인은 이 돈을 가락시장 상인들에게 사온 물건값을 지불하는데 쓴 겁니다.

농산물 가격의 절반은 유통비용…농민 수익은 55%

취재진은 석 달 동안 도매법인들의 영업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확인한 사실은 일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에서 농가가 벌어들이는 비율은 2017년 기준 55.6%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유통비용인데 절반에 달하는 셈입니다. 농민이 농산물을 도매시장에 낼 때 드는 운송비와 도매시장 수수료, 하역비 등 직접비가 15%, 상인들이 취하는 이윤과 각종 간접비가 29.1%입니다.

이런 상황은 농산물 작목별로 살펴보면 더 심각합니다. 조만간 식탁에 오를 ‘가을배추’를 한번 살펴볼까요? 2017년을 기준으로 가을배추의 유통 비용율은 무려 56.5%나 됩니다. 재배한 농민들보다 유통과정에서 돈을 더 떼가는 겁니다. 그나마도 10년 새 나아진 게 이 정돕니다. 2008년에는 유통 비용율이 72.4%나 됐으니까요.

농민 이갑성 씨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 상황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 씨는 도매법인들이 하역비나 다른 부대 비용을 추가로 떼는 일도 잦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이 씨의 판매 원표(영수증 개념)를 확인해 봤습니다. 지난해 이 씨가 부추 100상자, 4톤을 경매에 내서 손에 쥔 돈은 7만 원. 이 가운데 하역비와 운송비 등을 떼고 이 씨 손에 남은 돈은 4만 2천 원에 불과합니다. 하역비 등을 정률(판매 가격에서 일정 비율(%)로 떼는 것)로 계산해야 하는데 도매법인 임의로 정액(일정 금액을 떼는 것)으로 계산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농산물을 헐값에 넘긴다는데, 식탁 물가는 내려올 줄 모르나 봅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 가격의 반은 '농민의 눈물'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취재후] 농산물 도매법인 유통 추적!…가격의 반은 ‘농민의 눈물’
    • 입력 2020-09-30 06:28:51
    • 수정2020-09-30 06:57:44
    취재후
■“농산물 팔기 힘들어”…함께 목숨 끊은 제주 농민 부부

연둣빛 싹을 틔운 당근밭을 둘러보는 윤순자 씨의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촘촘하게 자란 당근은 솎아내고, 농기계에 걸릴만한 돌멩이는 하나하나 골라냈습니다. 이 밭은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제주도 농민 고 씨 부부가 경작하던 곳입니다. 윤 씨는 두 부부와 유기농 농산물을 함께 재배하며 가족 같은 정을 나누던 이웃. 고 씨 부부가 세상을 등지고 방치되는 밭을 보다 못한 윤 씨가 올여름 당근을 심은 겁니다.


"판로를 뚫지 못해서 여기저기 빚을 졌었어요. 전날까지도 저에게 양파며 단호박을 팔아달라고…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팔아줬을 텐데…”

고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에도 농산물을 팔지 못하는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렵게 대파 구매처인 급식소를 찾아 납품했는데, 수확 시기를 놓친 대파가 웃자라 절단기에 들어가지 않아 전량 반품됐다는 내용. 숨지기 전날까지도 외국인 노동자 4명의 임금이 넉 달이나 밀렸다며 비트 300콘테이너 분량 등을 팔아달라는 문자를 지인에게 남겼습니다.


고 씨 부부가 숨진 건 지난해 7월. 파종시기를 넘길까 새벽 3시까지 수만 평의 밭에 씨를 뿌리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안방에서 숨져있는 아내를 발견했습니다. 시신을 수습해 119구급차를 태워 보낸 남편은 그대로 창고에서 스스로 세상을 져버렸습니다. 숨질 당시 부부에게는 수억 원의 빚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지척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윤순자 씨는 ‘모든 게 농산물 유통의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 정책은 도매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농민들이 판로를 찾지 못해 농산물을 중간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일이 잦자 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들여 도매시장을 짓고, 이곳에서 모든 농산물을 유통을 담당하도록 한 겁니다.

이 때문에 기준법인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보면 도매법인들은 농민들이 가져온 농산물은 무조건 받아서 경매에 부치거나 판로를 찾아주게 돼 있습니다. 세금으로 개설한 도매시장의 의무이자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하지만 유기농 농산물의 경우 모양새도 농약을 친 것에 비해 예쁘지 않고, 크기도 작아 일반 농산물의 품질 기준을 맞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도매시장에 출하해 봤자 일반 농산물의 3분의 1 가격도 못 받는 일이 허다했다고 합니다. 윤 씨는 또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 소비처를 찾으려면 인력과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도매법인들이 진입 장벽을 쌓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기자가 쪽파 2톤 출하해봤더니…경매는 건너뛰고 물량 가격은 축소 보고

농민들의 농산물을 받아서 판로를 열어주고, 경매를 통해 높은 가격을 받게 해줘야 하는 도매시장. 도대체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농민들은 농산물을 팔기 힘들고,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고 있다고 말할까요? 직접 그곳에 뛰어들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뉴스9〉기자가 직접 경매로 농산물 팔아봤더니…

'바비'와 '마이삭', '하이선' 등 태풍이 잇따라 한반도를 덮쳤던 지난달. 농민의 도움을 받아 쪽파 2톤을 수확해 화물차에 싣고 도매시장에 직접 출하해봤습니다. 기자가 쪽파를 출하한 날은 8월 13일. 태풍 끝물로 가락시장 쪽파 가격이 1kg에 6,900원까지 치솟았던 땝니다.

광주서부도매시장 쪽파 경매장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40분. 한 시 반에 경매를 시작한다는 말에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하역반이 나타나 저희가 출하한 쪽파를 가져가 버립니다. 경매는 사실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하는 절찹니다. 그래서 경매를 거치면 당연히 가격이 나와야 합니다. 쪽파를 가져갔으니 경매가 끝난 건지, 그럼 가격이 얼마나 나왔는 지 기자가 묻자 중도매인들은 ‘시장에 가져가 팔아봐야 한다’며 얼버무리기 시작했습니다. 경매 절차를 건너뛴 겁니다. 쪽파 가격은 경매 다음날에야 중도매인이 농민의 계좌로 알아서 입금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경매 가격이었습니다. 저는 쪽파 2톤을 출하해서 1,200만 원을 받았는데,당일 광주서부농산물시장 관리사무소에 보고된 물량은 8톤에 1,333만 원이었습니다. 가격이 심각하게 축소 보고된 겁니다.

혹시 이날 하루만 그런 것은 아닐까. 취재진은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씩 경매장을 찾아 들어오는 트럭을 영상에 기록했습니다. 매일 쪽파 2톤을 실은 트럭 10여 대가 경매장에 나타나 총 물량이 10~20톤에 달했지만, 관리사무소에 보고된 양은 6~9톤이었습니다. 경매량도 축소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도매법인 전 임원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도매법인들은 경매 가격은 7%를 수수료로 받는 대신 ‘농산물 수집’과 ‘경매’ 업무를 주로 담당하게 됩니다. 광주 서부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이 120여 가지에 달하다 보니 모든 품목의 수집과 관리가 어렵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농산물을 사가야 할 중도매인이 도매법인 대신 산지수집 업무 등을 대신 해주고, 도매법인이 받아야 할 수수료의 일부를 중간에서 일부 챙긴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물량과 가격을 관행적으로 축소 보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형식적으로 5차가 경매에 오면 1차나 2차 올려요. 중도매인들이 양을 맞춰줘요. 몇 개는 올리고 몇 개는 도매법인 몫으로 인정으로 해주고 축소해서 보고해요”
-도매법인 전 직원

지역 농산물 유통하라고 했더니…"비용 많이 들어” 서울서 사다 팔아

도매시장의 주요 기능은 <1. 농산물 수집· 유통 2. 경매를 통한 가격 결정> 입니다. 도매법인 소속 경매사들은 주요 농산물의 산지를 돌아다니며 생산량은 얼마나 되는지 경매에 낼 건지 농민들에게 묻고 농산물을 가져올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합니다.

이런 농산물 수집 역할을 하라고 지자체에서는 도매시장을 세금으로 지어서 도매법인에 임대합니다. 도매법인은 농민들이 낸 농산물을 경매에 부쳐주는 대가로 경매가의 7%를 수수료로 받아 챙깁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도매법인 88곳의 수수료 수입은 6천억 원을 넘었습니다.


그러면 도매법인들은 농산물 수집 업무를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저희 취재진은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갔습니다. 지역 도매법인들이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주로 사다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락시장 채소동에서 여러 날을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매일 같은 시각 가락시장을 찾는 한 화물차가 눈에 띠었습니다. ‘광주광역시 도매법인’이라고 적힌 5톤 트럭. 그 트럭은 채소동에 주차를 한 뒤 밤 11시까지 오이며 상추, 느타리버섯 같은 채소를 가득 채우고 가락시장을 떠났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트럭을 따라갔습니다. 고속도로를 탄 트럭은 4시간여를 달려 광주서부농산물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2시. 트럭이 싣고 온 채소들은 광주 도매시장 경매장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새벽 4시. 이렇게 싣고 온 채소는 마치 농민이나 산지 유통인들이 출하한 것처럼 꾸며 경매에 부쳤습니다.

어렵게 해당 도매법인의 내부 회계자료를 구했습니다. 해당 법인이 이렇게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떼다 판 건 2017년부터, 확인해보니 올해 8월까지 농산물 74억 원어치를 사다 팔았습니다. 도매법인을 개설한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고 다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사다 경매에 부치는 것은 ‘불법’입니다.

피치 못할 경우 허가를 받고 사올 수는 있지만, 도매시장 인근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물건으로 한정됩니다.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영업 정지’는 물론 ‘천만 원 이하 벌금이나 1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이 도매법인이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2년 반 동안, 개설자인 광주광역시는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수차례 문제의 도매법인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만난 도매법인 대표는 ‘불법’으로 농산물을 떼다 판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 직원은 100가지가 넘는 채소를 모두 사들여서 경매에 부치는 것보다 가락시장에서 사오는 게 관리비용이 덜 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도매법인이 물량을 못 맞춰주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회사 능력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싼 물량을 서울에서 끌어와서 유통을 한 거죠”
-도매법인 전 직원-


농민 ‘출하손실보존금’도 가락시장으로? … 도매법인의 황당한 계산법

문제는 불법 ‘매수거래’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락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팔면 채소가 시들기 마련인데요. 밭에서 수확한 지 평균 이틀이 지나기 때문입니다. 품질이 떨어진 농산물의 경매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매법인은 이 작은 손실도 용납할 수 없었나 봅니다. 취재진은 해당 도매법인의 회계시스템 사진을 확보했습니다.


가락시장에서 사온 농산물을 가격과 광주 도매시장에 가져와서 경매에 부쳐 받은 가격을 나란히 적어놓고 손실이 난 금액 위에는 '보상액'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상액의 정체는 무엇일까? 취재진은 해당 도매법인의 회계보고서를 분석해봤습니다. 해당 법인은 매년 4억여 원의 '출하자 손실보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도매법인 전 임원들을 수소문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도매법인이 가락시장 물건을 떼 와서 광주 도매시장에서 경매에 부친 뒤 일부 손실이 나면 농민들에게 지급해야 할 '출하자손실보전금'을 가락시장 상인들에게 지급한 것처럼 해서 손실금을 보전한다는 겁니다.

'출하자손실보전금'은 농민들이 농산물을 경매에 부쳤을 때 경매 낙찰금액이 평균 가격보다 낮을 경우 신청을 받아서, 심의 절차를 거쳐 지급하는 보전금입니다. 일종의 농민 보호장치인 셈이죠. 그런데 해당 도매법인은 이 돈을 가락시장 상인들에게 사온 물건값을 지불하는데 쓴 겁니다.

농산물 가격의 절반은 유통비용…농민 수익은 55%

취재진은 석 달 동안 도매법인들의 영업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확인한 사실은 일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에서 농가가 벌어들이는 비율은 2017년 기준 55.6%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유통비용인데 절반에 달하는 셈입니다. 농민이 농산물을 도매시장에 낼 때 드는 운송비와 도매시장 수수료, 하역비 등 직접비가 15%, 상인들이 취하는 이윤과 각종 간접비가 29.1%입니다.

이런 상황은 농산물 작목별로 살펴보면 더 심각합니다. 조만간 식탁에 오를 ‘가을배추’를 한번 살펴볼까요? 2017년을 기준으로 가을배추의 유통 비용율은 무려 56.5%나 됩니다. 재배한 농민들보다 유통과정에서 돈을 더 떼가는 겁니다. 그나마도 10년 새 나아진 게 이 정돕니다. 2008년에는 유통 비용율이 72.4%나 됐으니까요.

농민 이갑성 씨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 상황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 씨는 도매법인들이 하역비나 다른 부대 비용을 추가로 떼는 일도 잦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이 씨의 판매 원표(영수증 개념)를 확인해 봤습니다. 지난해 이 씨가 부추 100상자, 4톤을 경매에 내서 손에 쥔 돈은 7만 원. 이 가운데 하역비와 운송비 등을 떼고 이 씨 손에 남은 돈은 4만 2천 원에 불과합니다. 하역비 등을 정률(판매 가격에서 일정 비율(%)로 떼는 것)로 계산해야 하는데 도매법인 임의로 정액(일정 금액을 떼는 것)으로 계산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농산물을 헐값에 넘긴다는데, 식탁 물가는 내려올 줄 모르나 봅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 가격의 반은 '농민의 눈물'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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