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잘못이 아닙니다”…명절마다 급증하는 가정폭력

입력 2020.09.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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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폭력 신고하는 데 3년 걸려…"집에서 안 나가면 정말 생명이 위험하겠다는 생각"

한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지난 2012년 한국에 온 A 씨. 지금의 남편을 곧바로 만나 결혼했습니다. 막내인 셋째가 태어난 지 5개월쯤 지난 2016년 말, 남편의 폭력이 처음 시작됐습니다. 당시에는 도움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자녀가 세 명인데 일자리는 없었고 당장 한국에 친척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어려서 참는 사이, 남편의 폭력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A 씨는 남편이 집에서만 때렸다고 기억합니다.

"때릴 때는 주로 집에서요. 같이 나갈 때는, 시장에서 같이 밥 먹을 때는 큰소리를 하긴 하지만 손은 안 대요. 집에서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당한 것은, 몸을 때린 것은 다 집에서 한 거예요."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A 씨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A 씨

폭행의 이유는 없었고, 술에 취해 때린 것도 아니었다고 A 씨는 말합니다. 결국, 지난해 3월 5일 새벽 A 씨는 남편에게 폭행 당하던 중 휴대전화만 챙겨서 나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더 이상 집에서 안 나가면 정말 생명이 위험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린 자녀 3명과 당장 갈 곳이 없었지만, 처음에는 쉼터에서 며칠 지냈고, 이후 관할 지자체인 동대문구청과 동대문경찰서의 도움으로 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구했습니다.

A 씨는 집에서 나온 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었는데, 남편과 따로 살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됐다고 합니다. 폭언을 듣던 아이들 역시 밝아졌습니다. 아직 정식 이혼 절차는 밟지 못했지만, 동대문구 위기가정지원센터의 도움을 통해 직장을 찾는 등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가는 단계라며 구청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 명절 때 급증 이유?…"가족끼리 보내는 시간 많고, 성별 고정관념 더 작동"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A씨처럼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데 망설입니다. '가정 내에서 해결하려고', '자녀가 있어서'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게 마치 '가정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일' 또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잘못된 사회 인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 3년간 112에 신고된 가정폭력 건수는 적게는 24만 건에서 많게는 28만 건 가까이 됩니다. 하루 평균치를 따져 보면 600건에서 700여 건입니다. 하지만 추석을 기준으로 매해 명절 연휴 기간에 신고된 건수만 따져보면 숫자는 많이 늘어납니다.


하루 평균 600건에서 700여 건이 1,000건 안팎으로 늘어나는 겁니다. 평소 대비 30%에서 50% 넘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주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특성 때문에 가족끼리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명절에 가정폭력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또 우리나라 특유의 명절 문화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명절이라고 해서 대가족이 다 모이게 되면 그때 좀 더 두드러지게 가부장제나 성별 고정관념이 작동한다"라며 "여성은 설거지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일부 남성들은 계속 휴식만 취하고 이런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폭력도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 "폭력은 분명히 범죄, 외부 도움 청해야"…112나 1366에 전화

고미경 대표는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편견 중 하나가 "특정 계층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냐"라는 인식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서 보면 가정폭력은 전 계층, 전 연령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중요한 건 폭력은 피해자의 탓이 아니다. 폭력을 가한 가해자의 잘못이고 폭력을 행하면 그것은 분명히 범죄"라고 강조했습니다.

가정폭력을 당할 경우, 외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112나 여성 긴급전화인 1366번에 전화하면 상담소나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소에 연락하면 긴급 피난처 등 보호시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대다수의 지자체는 위기가정지원센터를 각각 운영합니다. A 씨의 경우 무료 법률 상담, 심리 정서적 지원, 주거지 이전 지원, 의료 지원, 긴급생계비 지원 등 관할 구청에서 여러 형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화만 하면, 이후 폭력에서 벗어날 방법은 상담소나 수사기관과 함께 모색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미경 대표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로 마칩니다.

"폭력은 그냥 침묵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폭력을 당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1366, 112, 상담소에 노크해서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자,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꼭 외부적 개입을 요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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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자의 잘못이 아닙니다”…명절마다 급증하는 가정폭력
    • 입력 2020-09-30 15:03:38
    취재K
■ 가정폭력 신고하는 데 3년 걸려…"집에서 안 나가면 정말 생명이 위험하겠다는 생각"

한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지난 2012년 한국에 온 A 씨. 지금의 남편을 곧바로 만나 결혼했습니다. 막내인 셋째가 태어난 지 5개월쯤 지난 2016년 말, 남편의 폭력이 처음 시작됐습니다. 당시에는 도움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자녀가 세 명인데 일자리는 없었고 당장 한국에 친척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어려서 참는 사이, 남편의 폭력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A 씨는 남편이 집에서만 때렸다고 기억합니다.

"때릴 때는 주로 집에서요. 같이 나갈 때는, 시장에서 같이 밥 먹을 때는 큰소리를 하긴 하지만 손은 안 대요. 집에서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당한 것은, 몸을 때린 것은 다 집에서 한 거예요."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A 씨
폭행의 이유는 없었고, 술에 취해 때린 것도 아니었다고 A 씨는 말합니다. 결국, 지난해 3월 5일 새벽 A 씨는 남편에게 폭행 당하던 중 휴대전화만 챙겨서 나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더 이상 집에서 안 나가면 정말 생명이 위험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린 자녀 3명과 당장 갈 곳이 없었지만, 처음에는 쉼터에서 며칠 지냈고, 이후 관할 지자체인 동대문구청과 동대문경찰서의 도움으로 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구했습니다.

A 씨는 집에서 나온 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었는데, 남편과 따로 살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됐다고 합니다. 폭언을 듣던 아이들 역시 밝아졌습니다. 아직 정식 이혼 절차는 밟지 못했지만, 동대문구 위기가정지원센터의 도움을 통해 직장을 찾는 등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가는 단계라며 구청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 명절 때 급증 이유?…"가족끼리 보내는 시간 많고, 성별 고정관념 더 작동"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A씨처럼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데 망설입니다. '가정 내에서 해결하려고', '자녀가 있어서'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게 마치 '가정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일' 또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잘못된 사회 인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 3년간 112에 신고된 가정폭력 건수는 적게는 24만 건에서 많게는 28만 건 가까이 됩니다. 하루 평균치를 따져 보면 600건에서 700여 건입니다. 하지만 추석을 기준으로 매해 명절 연휴 기간에 신고된 건수만 따져보면 숫자는 많이 늘어납니다.


하루 평균 600건에서 700여 건이 1,000건 안팎으로 늘어나는 겁니다. 평소 대비 30%에서 50% 넘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주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특성 때문에 가족끼리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명절에 가정폭력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또 우리나라 특유의 명절 문화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명절이라고 해서 대가족이 다 모이게 되면 그때 좀 더 두드러지게 가부장제나 성별 고정관념이 작동한다"라며 "여성은 설거지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일부 남성들은 계속 휴식만 취하고 이런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폭력도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 "폭력은 분명히 범죄, 외부 도움 청해야"…112나 1366에 전화

고미경 대표는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편견 중 하나가 "특정 계층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냐"라는 인식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서 보면 가정폭력은 전 계층, 전 연령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중요한 건 폭력은 피해자의 탓이 아니다. 폭력을 가한 가해자의 잘못이고 폭력을 행하면 그것은 분명히 범죄"라고 강조했습니다.

가정폭력을 당할 경우, 외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112나 여성 긴급전화인 1366번에 전화하면 상담소나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소에 연락하면 긴급 피난처 등 보호시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대다수의 지자체는 위기가정지원센터를 각각 운영합니다. A 씨의 경우 무료 법률 상담, 심리 정서적 지원, 주거지 이전 지원, 의료 지원, 긴급생계비 지원 등 관할 구청에서 여러 형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화만 하면, 이후 폭력에서 벗어날 방법은 상담소나 수사기관과 함께 모색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미경 대표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로 마칩니다.

"폭력은 그냥 침묵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폭력을 당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1366, 112, 상담소에 노크해서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자,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꼭 외부적 개입을 요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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