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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도서정가제’…소설가 한강의 생각은?
입력 2020.10.06 (17:47) 수정 2020.10.06 (18:09) 취재K
도서정가제는 무엇?

문학과지성사에서 1978년 출간한 황동규 시인의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의 현재 정가는 9천 원입니다. 그리고 같은 출판사에서 2013년 출간한 같은 시인의 시집 <사는 기쁨>의 정가 역시 9천 원입니다. 두 시집의 출간 시기는 35년의 격차가 있지만 가격은 똑같은 이유, 바로 도서정가제 때문입니다.

1977년 12월 처음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말 그대로 '도서'를 '정가'에 판매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출판사가 새 책을 출간할 때 작가와 제작사, 공급사, 서점 등의 수익을 고려해 합리적인 제작비를 계산한 뒤 정가를 책정하면, 바로 이 정가에서 일정 범위를 초과한 가격조정은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개정됐는데, 정가의 10% 이내 할인에 마일리지 5%까지 허용해, 총 할인율을 15%로 제한했습니다. 만약 출판사가 책정한 도서의 정가가 만원이라면, 그 어떤 서점에서든 이 책을 8천5백원보다 싸게 판매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출판계에서는 도서정가제 덕분에 신인, 무명 작가를 발굴해 작품을 출간할 수 있고, 출판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대형 서점들의 과도한 할인경쟁을 막아 '동네 책방'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미 6년 전에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이 시점에서 왜 다시 화제가 된 걸까요. 도서정가제 관련 법규는 3년마다 재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2017년에는 현행 법규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올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돌연 도서정가제 전면 재검토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에 부정적인 여론은 대체로 '평균책값 상승'을 근거로 들고 있는데, 때문에 출판계는 정부가 이같은 여론을 고려해 도서정가제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설가 한강 "내 첫 번째 정체성은 독자....도서정가제 없는 세상 위협적"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적인 권위의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도서정가제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독자로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며 제도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한강은 오늘(6일) 한국출판인회의가 주최한 대담에 참석해 "저의 첫 번째 정체성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어 "독서 시장은 완전히 건드려지지 않은 생태계이기 때문에 거대 자본 입장에서는 아주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봄직한 시장"이라면서, "이 생태계가 무너져야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게 될텐데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도서정가제 폐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도서정가제가 개악이 됐을 경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될 텐데, 주로 작은 사람들일 것"이라며 "그 사람들은 바로 출발선에 선 창작자들, 작은 플랫폼을 가진 사람들, 자본이나 상업성 너머의 것을 고민하고 시도하고 모색하는 사람들"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작가 70%, "도서정가제 유지되거나 강화돼야"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가 함께 도서정가제 개정 논의에 대한 작가들의 여론을 조사했습니다. 지난 9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작가 3,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135명이 응답했으며, 신뢰도 95%에 표본오차는 ±2.9% 수준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 방향에 대해 유지해야 한다 39.7%, 강화해야 한다가 30.2%로, 조사대상 70%가 도서정가제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0.0%로 나타났는데, 조사를 의뢰한 한국출판인회의 측은 이마저도 작가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가격 경쟁 완화가 62.8%로 가장 많았고, 작가의 권익 신장(58.5%)과 동네 서점 활성화(54.8%)가 뒤를 이었습니다. 도서정가제 덕분에 신간이 늘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책은 사회적 공공재...도서정가제 개정 여부에 관심 가져야

도서정가제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 책이 지식문화 상품이며 사화적 공공재라는 지적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독서 문화 진흥 의무를 부과한 '독서문화진흥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책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책을 만드는 작가들과 출판계가 도서정가제 유지를 호소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정,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름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어쨌든 이 논쟁이 향후 출판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우리 독서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도서정가제 개정 여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 논란의 ‘도서정가제’…소설가 한강의 생각은?
    • 입력 2020-10-06 17:47:37
    • 수정2020-10-06 18:09:20
    취재K
도서정가제는 무엇?

문학과지성사에서 1978년 출간한 황동규 시인의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의 현재 정가는 9천 원입니다. 그리고 같은 출판사에서 2013년 출간한 같은 시인의 시집 <사는 기쁨>의 정가 역시 9천 원입니다. 두 시집의 출간 시기는 35년의 격차가 있지만 가격은 똑같은 이유, 바로 도서정가제 때문입니다.

1977년 12월 처음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말 그대로 '도서'를 '정가'에 판매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출판사가 새 책을 출간할 때 작가와 제작사, 공급사, 서점 등의 수익을 고려해 합리적인 제작비를 계산한 뒤 정가를 책정하면, 바로 이 정가에서 일정 범위를 초과한 가격조정은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개정됐는데, 정가의 10% 이내 할인에 마일리지 5%까지 허용해, 총 할인율을 15%로 제한했습니다. 만약 출판사가 책정한 도서의 정가가 만원이라면, 그 어떤 서점에서든 이 책을 8천5백원보다 싸게 판매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출판계에서는 도서정가제 덕분에 신인, 무명 작가를 발굴해 작품을 출간할 수 있고, 출판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대형 서점들의 과도한 할인경쟁을 막아 '동네 책방'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미 6년 전에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이 시점에서 왜 다시 화제가 된 걸까요. 도서정가제 관련 법규는 3년마다 재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2017년에는 현행 법규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올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돌연 도서정가제 전면 재검토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에 부정적인 여론은 대체로 '평균책값 상승'을 근거로 들고 있는데, 때문에 출판계는 정부가 이같은 여론을 고려해 도서정가제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설가 한강 "내 첫 번째 정체성은 독자....도서정가제 없는 세상 위협적"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적인 권위의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도서정가제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독자로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며 제도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한강은 오늘(6일) 한국출판인회의가 주최한 대담에 참석해 "저의 첫 번째 정체성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어 "독서 시장은 완전히 건드려지지 않은 생태계이기 때문에 거대 자본 입장에서는 아주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봄직한 시장"이라면서, "이 생태계가 무너져야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게 될텐데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도서정가제 폐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도서정가제가 개악이 됐을 경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될 텐데, 주로 작은 사람들일 것"이라며 "그 사람들은 바로 출발선에 선 창작자들, 작은 플랫폼을 가진 사람들, 자본이나 상업성 너머의 것을 고민하고 시도하고 모색하는 사람들"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작가 70%, "도서정가제 유지되거나 강화돼야"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가 함께 도서정가제 개정 논의에 대한 작가들의 여론을 조사했습니다. 지난 9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작가 3,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135명이 응답했으며, 신뢰도 95%에 표본오차는 ±2.9% 수준입니다.


도서정가제 개정 방향에 대해 유지해야 한다 39.7%, 강화해야 한다가 30.2%로, 조사대상 70%가 도서정가제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0.0%로 나타났는데, 조사를 의뢰한 한국출판인회의 측은 이마저도 작가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가격 경쟁 완화가 62.8%로 가장 많았고, 작가의 권익 신장(58.5%)과 동네 서점 활성화(54.8%)가 뒤를 이었습니다. 도서정가제 덕분에 신간이 늘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책은 사회적 공공재...도서정가제 개정 여부에 관심 가져야

도서정가제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 책이 지식문화 상품이며 사화적 공공재라는 지적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독서 문화 진흥 의무를 부과한 '독서문화진흥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책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책을 만드는 작가들과 출판계가 도서정가제 유지를 호소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정,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름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어쨌든 이 논쟁이 향후 출판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우리 독서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도서정가제 개정 여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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