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친밀감? 구분 힘든 청소년 노린다…“동반자가 도와줍니다”

입력 2020.10.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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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등교 수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청소년들이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고 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디지털 기기로 때우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요, 돌봄 공백을 틈타 청소년들을 노리는 디지털 성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 "인강 많아서 힘들지? 나랑 놀면서 풀어"

실제로 부모가 맞벌이를 해 혼자 집에서 게임을 하던 11살 이모 양에게 누군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인터넷 강의 수업 듣기 힘들겠다.", "엄마 잔소리 듣기 싫겠다."라면서 공감을 이끌어 낸 이 남성은 이 양을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불렀습니다. 집에 홀로 있으면서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사라진 이 양은 시간이 갈수록 이 낯선 상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이 남성은 이 양에게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보여달라며 사진을 요구했습니다. 요구하는 사진은 치마를 입은 사진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까지 점차 부적절한 수준으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이 양이 거부 의사를 나타내면, "학교 게시판에 올려줄까?", "SNS 친구들에게 다 뿌려줄까?"라고 위협하거나 회유했습니다.

미성년자인 아동이나 청소년을 길들이고, 그들이 동의한 것처럼 가장해 성 착취를 하는 이른바 '온라인 그루밍'에 빠진 겁니다.

재구성한 피해자 채팅창. 서울시 제공.재구성한 피해자 채팅창. 서울시 제공.

놀이로 시작한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 그루밍보다 피해 도달시간 단축

13살 박 모 양도 오픈채팅방에서 놀이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노예 놀이였습니다. 상대방 남성은 '오늘 내가 네 노예가 될 테니, 내일은 네가 내 노예가 되어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자'고 했습니다.

주고받던 사진들이 성 착취 수준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일주일이었습니다. 사진을 받아낸 후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부적절한 사진을 또 요구하는 악순환이 진행됐습니다.

가해자는 모바일 상품권 같은 선물을 주거나 가벼운 요구부터 시작해서 피해자의 나이와 주소 같은 개인정보도 쉽게 빼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기존의 온라인 그루밍이 정서적 지지를 통해 성착취 사진 피해에 이르기까지 3~6개월이 걸린 반면, 놀이로 접근한 유형에는 그 시간이 일주일 정도로 단축됐습니다.

■ 점점 어려지는 피해자들...'휴대폰 압수당할라' 부모님께 말 안해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청소년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지난 3월 말까지 약 반 년간 5명이었던 피해 사례는 3월 말 이후에는 21명으로 신고 접수가 늘었습니다.

특히 3월 말 이후 피해 신고자 21명 가운데 5명은 13세 미만 아동이었습니다. 이전 시기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아동 피해자가 보고되기 시작한 겁니다. 서울시는 이즈음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가 미뤄져 실제 피해도 늘고, n번방 사건의 조주빈이 검거되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도 확대돼 피해 지원 요청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특히 아동과 청소년이 피해자인 경우는 피해가 드러나기 쉽지 않습니다. 우선 나이 어린 피해자들이 친밀감과 성폭력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피해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면, 혼나는 건 물론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다시 이용하지 못하게 될까 봐 아이들은 부모에게 말하기를 꺼립니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그루밍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성착취 단계에 이르러서야 부모가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잡고 보니, 가해자도 10대~20대 초반... 카카오톡으로 익명 신고 가능


서울시의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은 이런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고려해 피해 구제 절차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 전문가 3명은 피해자가 원하는 장소나 집에서 만나, 심리적 지지와 법적 구제조치를 제공합니다. 자녀를 돌보지 못해 피해를 입은 거라고 자책하는 부모에게 심리치료도 지원합니다.

특히 경찰과 공조해 가해자를 검거해 처벌하는 과정에 개입하는데요, 피해 증거 채증을 돕고, 고소장을 작성하거나 경찰서 진술, 법정 출석 등 형사처벌 절차를 지원합니다. 실제로 올해 3명의 가해자가 붙잡혔습니다.

붙잡힌 가해자는 10대~20대 초반의 남성으로, 서울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연령도 매우 낮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내일(6일)부터는 익명 신고도 가능합니다. 서울시의 디지털 성폭력 온라인 플랫폼인 '온 서울 세이프' (www.onseoulsafe.kr)에 접속하면 카카오톡 1:1 오픈채팅 방식으로 익명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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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범죄? 친밀감? 구분 힘든 청소년 노린다…“동반자가 도와줍니다”
    • 입력 2020-10-06 18:00:33
    취재K
코로나19로 인해 등교 수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청소년들이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고 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디지털 기기로 때우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요, 돌봄 공백을 틈타 청소년들을 노리는 디지털 성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 "인강 많아서 힘들지? 나랑 놀면서 풀어"

실제로 부모가 맞벌이를 해 혼자 집에서 게임을 하던 11살 이모 양에게 누군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인터넷 강의 수업 듣기 힘들겠다.", "엄마 잔소리 듣기 싫겠다."라면서 공감을 이끌어 낸 이 남성은 이 양을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불렀습니다. 집에 홀로 있으면서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사라진 이 양은 시간이 갈수록 이 낯선 상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이 남성은 이 양에게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보여달라며 사진을 요구했습니다. 요구하는 사진은 치마를 입은 사진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까지 점차 부적절한 수준으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이 양이 거부 의사를 나타내면, "학교 게시판에 올려줄까?", "SNS 친구들에게 다 뿌려줄까?"라고 위협하거나 회유했습니다.

미성년자인 아동이나 청소년을 길들이고, 그들이 동의한 것처럼 가장해 성 착취를 하는 이른바 '온라인 그루밍'에 빠진 겁니다.

재구성한 피해자 채팅창. 서울시 제공.
놀이로 시작한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 그루밍보다 피해 도달시간 단축

13살 박 모 양도 오픈채팅방에서 놀이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노예 놀이였습니다. 상대방 남성은 '오늘 내가 네 노예가 될 테니, 내일은 네가 내 노예가 되어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자'고 했습니다.

주고받던 사진들이 성 착취 수준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일주일이었습니다. 사진을 받아낸 후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부적절한 사진을 또 요구하는 악순환이 진행됐습니다.

가해자는 모바일 상품권 같은 선물을 주거나 가벼운 요구부터 시작해서 피해자의 나이와 주소 같은 개인정보도 쉽게 빼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기존의 온라인 그루밍이 정서적 지지를 통해 성착취 사진 피해에 이르기까지 3~6개월이 걸린 반면, 놀이로 접근한 유형에는 그 시간이 일주일 정도로 단축됐습니다.

■ 점점 어려지는 피해자들...'휴대폰 압수당할라' 부모님께 말 안해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청소년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지난 3월 말까지 약 반 년간 5명이었던 피해 사례는 3월 말 이후에는 21명으로 신고 접수가 늘었습니다.

특히 3월 말 이후 피해 신고자 21명 가운데 5명은 13세 미만 아동이었습니다. 이전 시기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아동 피해자가 보고되기 시작한 겁니다. 서울시는 이즈음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가 미뤄져 실제 피해도 늘고, n번방 사건의 조주빈이 검거되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도 확대돼 피해 지원 요청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특히 아동과 청소년이 피해자인 경우는 피해가 드러나기 쉽지 않습니다. 우선 나이 어린 피해자들이 친밀감과 성폭력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피해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면, 혼나는 건 물론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다시 이용하지 못하게 될까 봐 아이들은 부모에게 말하기를 꺼립니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그루밍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성착취 단계에 이르러서야 부모가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잡고 보니, 가해자도 10대~20대 초반... 카카오톡으로 익명 신고 가능


서울시의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은 이런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고려해 피해 구제 절차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 전문가 3명은 피해자가 원하는 장소나 집에서 만나, 심리적 지지와 법적 구제조치를 제공합니다. 자녀를 돌보지 못해 피해를 입은 거라고 자책하는 부모에게 심리치료도 지원합니다.

특히 경찰과 공조해 가해자를 검거해 처벌하는 과정에 개입하는데요, 피해 증거 채증을 돕고, 고소장을 작성하거나 경찰서 진술, 법정 출석 등 형사처벌 절차를 지원합니다. 실제로 올해 3명의 가해자가 붙잡혔습니다.

붙잡힌 가해자는 10대~20대 초반의 남성으로, 서울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연령도 매우 낮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내일(6일)부터는 익명 신고도 가능합니다. 서울시의 디지털 성폭력 온라인 플랫폼인 '온 서울 세이프' (www.onseoulsafe.kr)에 접속하면 카카오톡 1:1 오픈채팅 방식으로 익명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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