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청렴 서약했지만…산하기관장의 천만 원 주유비와 채용 의혹

입력 2020.10.09 (11:17) 수정 2020.10.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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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식재산연구원은 특허 등의 지식재산 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특허청 산하 연구기관입니다. 직원 50여 명 규모에 따로 지방분원도 없는 소규모 연구원입니다.

이 연구원의 복도 한가운데에는 구성원들이 자필로 서명한 서약이 걸려 있습니다. '채용비리 근절'과 '반부패 청렴 행동' 서약서입니다. 2018년 취임한 권택민 원장의 서명도 한 가운데에, 가장 크게 기재돼 있습니다. 채용은 공정하게, 기관의 돈은 깨끗하게 사용하겠다는 맹세입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청렴서약서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청렴서약서

그런데 권 원장이 1년 관용차 주유비로 1,100만 원을 사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1년 1100만 원이면 휘발유를 리터당 1,400원, 차량의 연비를 8km로 가정했을 때 약 6만 3,000km를 주행할 수 있는 거립니다. 궁금했습니다, 원장은 어딜 그렇게 다닌 걸까?

노조의 도움을 받아 운행일지를 확인해 봤습니다. 매일매일 어딜 갔는지 적혀있는 19년도의 운행일지였습니다. 특별한 장소는 없어 보였습니다. 대개 권 원장의 자택이 있는 경기도 광주시나 지재연 근처 강남, 정부청사가 있는 광화문이었고 가끔씩 특허청이 있는 대전도 보였습니다. 일상적인 업무용 차량이었던 셈입니다. 주행거리를 모두 합해보니 약 3만여 km. 주유비 1,100여만 원으로 달릴 수 있는 6만 km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습니다.

노조는 주유 시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량 주유의 상당수가 금요일과 휴일 전날에 집중돼 있었던 겁니다. 주말 전날 주유한 뒤 바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또 주유를 한 경우도 발견됐습니다. 주유한 장소는 권 원장의 자택 근처였습니다. 휴일과 휴일 전날 주유 등 의심스러운 주유가 2019년 34%, 2020년은 55%에 달했습니다.

지재연은 지난해 272개 공공기관 중 온실가스 감축률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권 원장의 드라이빙 사랑(?)의 결괍니다. 전임 원장 두 배에 달하는 관용차 사용량에 대해 권 원장은 뭐라고 할까. 권 원장은 전임자보다 연구원과 자택 간의 거리가 훨씬 멀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제 전임자는 서울 근교, 연구원과의 거리가 6km밖에 안됐나 봐요. 근데 저 같은 경우 편도가 30km 정도 됩니다. 그럼 그거 출퇴근 하는 거리만 해도 몇 배지 않습니까?

하지만 운행일지 상의 주행거리와 주유비로 환산한 주행거리가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실무자가 알 것"이라고 답을 피했습니다.

-그 실무자분에게 왜 이런 차이가 났는지 물어보실 의향은 있으세요?
=그거는 제가 확인할 수 없고 내가 물어볼 의향도 없어요. 나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일단 무조건 신뢰하는 사람이에요.


이상한 점은 주유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 채용 절차도 석연치 않다는 게 노조 주장입니다. 장애인 채용에서 원장의 자녀가 근무했던 사회복지시설 소속의 장애인들이 대부분 뽑혔다는 겁니다.

해당 장애인들의 지원서와 기재된 경력사항 등을 입수해 분석해 봤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전부 다 특정 카페의 근무 경력이 보였습니다. 딸이 일했던 복지시설 안에 있는 카페였습니다. 권 원장 취임 이후 이 복지시설 근무 경력을 적은 장애인들이 인턴으로 채용됐습니다.

1년에 한 명씩 뽑는 장애인 인턴뿐 아니라 '현장실습생' 명목으로 뽑힌 장애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권 원장이 아예 이 복지시설과 업무협약을 맺어 이 시설의 장애인들만 뽑는 제도를 신설한 겁니다. 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 활동이라는데, 업무 조건은 인턴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주 20시간 근무에 월 80여만 원의 월급. 게다가 이 월급은 실습생 본인이 아닌 복지 시설로 보내지는 형식이었습니다.

서울시에 등록된 장애인 관련 시설만 550여 개. 이 많은 곳 중에 유독 딸이 근무했던 시설의 장애인들만 채용된 건 우연의 일치일까. 권 원장은 "면접은 전원 외부위원들이 심사했고,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권 원장: 공공기관은 블라인드 채용입니다. 무슨 시설 출신인지는 이력서에도 안 나타나요
-기자: 그런데 합격자 이력서에는 그 복지시설 부설 카페 근무경력이 다 적혀있더라고요.
-권 원장: 그거는 몰라요. 내가 지원자들을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채용은 다 실무진들이 한 거에요. 인사 채용 비리에 대해 나도 굉장히 비판적이에요

하필 딸이 일했던 복지관과 이례적인 형태의 업무협약을 맺어 채용한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종종 <안나의 집(노숙자 보호시설)> 가서도 배식봉사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나보고 갑자기 '다른 기관들은 다 놔두고 왜 <안나의 집>에서만 봉사를 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뭐라 대답해야 합니까?

사회공헌을 위한 활동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해명인데요. 이 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권 원장의 자녀는 어떻게 됐을까요? 같은 재단의 주요 기관으로 이직한 뒤, 이직 채 1년도 안 돼 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어제(8일) 국회에서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어제(8일) 국회에서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어제(8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주유비와 장애인 채용 의혹 등을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용래 특허청장은 "권 원장이 기관 차량의 실제 주행거리에 비해서 과다하게 주유비를 지출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주유한 주유소의 사용 내역을 파악하는 게 맞다고 보고 바로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장애인 채용 의혹에 대해서도 "채용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고 파악돼 지재연과 복지시설 양쪽 기관에 업무 요청을 통해 실습 중단을 조치했다"며,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재연 복도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채용비리근절과 반부패 청렴 행동을 맹세하는 권 원장의 서명이 걸려 있습니다. 이 서명에 권 원장이 한치의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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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청렴 서약했지만…산하기관장의 천만 원 주유비와 채용 의혹
    • 입력 2020-10-09 11:17:27
    • 수정2020-10-09 11:17:47
    취재후·사건후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은 특허 등의 지식재산 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특허청 산하 연구기관입니다. 직원 50여 명 규모에 따로 지방분원도 없는 소규모 연구원입니다.

이 연구원의 복도 한가운데에는 구성원들이 자필로 서명한 서약이 걸려 있습니다. '채용비리 근절'과 '반부패 청렴 행동' 서약서입니다. 2018년 취임한 권택민 원장의 서명도 한 가운데에, 가장 크게 기재돼 있습니다. 채용은 공정하게, 기관의 돈은 깨끗하게 사용하겠다는 맹세입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청렴서약서
그런데 권 원장이 1년 관용차 주유비로 1,100만 원을 사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1년 1100만 원이면 휘발유를 리터당 1,400원, 차량의 연비를 8km로 가정했을 때 약 6만 3,000km를 주행할 수 있는 거립니다. 궁금했습니다, 원장은 어딜 그렇게 다닌 걸까?

노조의 도움을 받아 운행일지를 확인해 봤습니다. 매일매일 어딜 갔는지 적혀있는 19년도의 운행일지였습니다. 특별한 장소는 없어 보였습니다. 대개 권 원장의 자택이 있는 경기도 광주시나 지재연 근처 강남, 정부청사가 있는 광화문이었고 가끔씩 특허청이 있는 대전도 보였습니다. 일상적인 업무용 차량이었던 셈입니다. 주행거리를 모두 합해보니 약 3만여 km. 주유비 1,100여만 원으로 달릴 수 있는 6만 km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습니다.

노조는 주유 시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량 주유의 상당수가 금요일과 휴일 전날에 집중돼 있었던 겁니다. 주말 전날 주유한 뒤 바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또 주유를 한 경우도 발견됐습니다. 주유한 장소는 권 원장의 자택 근처였습니다. 휴일과 휴일 전날 주유 등 의심스러운 주유가 2019년 34%, 2020년은 55%에 달했습니다.

지재연은 지난해 272개 공공기관 중 온실가스 감축률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권 원장의 드라이빙 사랑(?)의 결괍니다. 전임 원장 두 배에 달하는 관용차 사용량에 대해 권 원장은 뭐라고 할까. 권 원장은 전임자보다 연구원과 자택 간의 거리가 훨씬 멀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제 전임자는 서울 근교, 연구원과의 거리가 6km밖에 안됐나 봐요. 근데 저 같은 경우 편도가 30km 정도 됩니다. 그럼 그거 출퇴근 하는 거리만 해도 몇 배지 않습니까?

하지만 운행일지 상의 주행거리와 주유비로 환산한 주행거리가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실무자가 알 것"이라고 답을 피했습니다.

-그 실무자분에게 왜 이런 차이가 났는지 물어보실 의향은 있으세요?
=그거는 제가 확인할 수 없고 내가 물어볼 의향도 없어요. 나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일단 무조건 신뢰하는 사람이에요.


이상한 점은 주유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 채용 절차도 석연치 않다는 게 노조 주장입니다. 장애인 채용에서 원장의 자녀가 근무했던 사회복지시설 소속의 장애인들이 대부분 뽑혔다는 겁니다.

해당 장애인들의 지원서와 기재된 경력사항 등을 입수해 분석해 봤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전부 다 특정 카페의 근무 경력이 보였습니다. 딸이 일했던 복지시설 안에 있는 카페였습니다. 권 원장 취임 이후 이 복지시설 근무 경력을 적은 장애인들이 인턴으로 채용됐습니다.

1년에 한 명씩 뽑는 장애인 인턴뿐 아니라 '현장실습생' 명목으로 뽑힌 장애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권 원장이 아예 이 복지시설과 업무협약을 맺어 이 시설의 장애인들만 뽑는 제도를 신설한 겁니다. 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 활동이라는데, 업무 조건은 인턴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주 20시간 근무에 월 80여만 원의 월급. 게다가 이 월급은 실습생 본인이 아닌 복지 시설로 보내지는 형식이었습니다.

서울시에 등록된 장애인 관련 시설만 550여 개. 이 많은 곳 중에 유독 딸이 근무했던 시설의 장애인들만 채용된 건 우연의 일치일까. 권 원장은 "면접은 전원 외부위원들이 심사했고,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권 원장: 공공기관은 블라인드 채용입니다. 무슨 시설 출신인지는 이력서에도 안 나타나요
-기자: 그런데 합격자 이력서에는 그 복지시설 부설 카페 근무경력이 다 적혀있더라고요.
-권 원장: 그거는 몰라요. 내가 지원자들을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채용은 다 실무진들이 한 거에요. 인사 채용 비리에 대해 나도 굉장히 비판적이에요

하필 딸이 일했던 복지관과 이례적인 형태의 업무협약을 맺어 채용한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종종 <안나의 집(노숙자 보호시설)> 가서도 배식봉사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나보고 갑자기 '다른 기관들은 다 놔두고 왜 <안나의 집>에서만 봉사를 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뭐라 대답해야 합니까?

사회공헌을 위한 활동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해명인데요. 이 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권 원장의 자녀는 어떻게 됐을까요? 같은 재단의 주요 기관으로 이직한 뒤, 이직 채 1년도 안 돼 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어제(8일) 국회에서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어제(8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주유비와 장애인 채용 의혹 등을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용래 특허청장은 "권 원장이 기관 차량의 실제 주행거리에 비해서 과다하게 주유비를 지출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주유한 주유소의 사용 내역을 파악하는 게 맞다고 보고 바로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장애인 채용 의혹에 대해서도 "채용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고 파악돼 지재연과 복지시설 양쪽 기관에 업무 요청을 통해 실습 중단을 조치했다"며,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재연 복도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채용비리근절과 반부패 청렴 행동을 맹세하는 권 원장의 서명이 걸려 있습니다. 이 서명에 권 원장이 한치의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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