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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코로나19’ 팬데믹
[특파원리포트] 코로나19 고단한 교민, 떠날 수 없는 이유?
입력 2020.10.10 (10:25) 특파원 리포트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신조어 '코로나 우울(blue)'이라는 말이 생겼다. 감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세상 누구 하나 '코로나 우울(blue)'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국이 아닌 타국 생활을 하는 교민들은 상처가 더 깊다. 교민들은 코로나 19를 어떻게 겪고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가볼 수도 없고"

한때 10만 명의 한국인이 살았던 중국 베이징의 대표적 한인타운 왕징(望京). 그곳에서 교민들을 만났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가장 힘든 건 무엇일까?


"저는 일을 해야 하니까 아이와 아내를 한국에 보냈는데,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죠. 아이가 태어나고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8개월 이상 떨어져 있다 보니까 제일 애로사항이 물론 아내도 보고 싶지만, 아이가 보고 싶은 게 제일 힘들어요. 밤에 울기도 하고 보고 싶어서…."(이준화 중국생활 23년째, 통신사업체 운영)

"부모님 친척 친구 다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명절이라든지 경조사 하나 제대로 챙길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부모님 친구 친척을 항상 그리워하면서 사는 게 베이징에서 삶인 거 같아요."(김유범 중국생활 27년째, 중의원 운영)

한국과 중국은 가까워 상대적으로 오가는 게 쉬웠다. 하지만 코로나 19 대유행은 하늘길을 끊어 버렸다. 8월부터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교민이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다. 끊긴 하늘길은 자식 된 도리도 막아 버렸다.

"어머니 다음에 봬요. 웃으면서 설 쇠고 베이징에 다시 왔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해서 돌아가셨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눈물만 나더라고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가볼 수도 없고…."(권오문 중국생활 3년째, 기업체 주재원)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거….

이보다 더 한 일도 겪는 게 타국 생활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한다. 중국인을 배우자로 만난 한국인은 한국에서는 겪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덤으로 안고 산다.

"사드 때(2016년, 한국이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수용하면서 발생한 중국의 보복)는 저희가 식당에 갔을 때 쫓겨 난 적도 있습니다. 한국말을 하니까, 한국 사람 나가라 이런 식으로…."(권용한 소프트웨어업체 운영)

"주방에 직원이 8명 있는데, 코로나 19로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주방 일을 저 혼자 했어요. 족발이나 보쌈을 직접 삶아가면서 하는데 굉장히 힘든 노동이에요. 어떻게 버텼느냐고 물으시면 여기서 생존하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전영실 식당 운영)

"아이가 밖에서 만나는 사람이 다 중국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아이가 중국말밖에 못 해요. 한국말을 못하는 거에요. 아이가 4~5살 되면서 어느 순간 이러다 아이가 중국 사람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더는 거에요. 안 되겠다. 한국말을 가르쳐야겠다."(현재관 중국생활 15년째, 미용실 운영)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그렇게 힘든 타국살이를 왜 하는 걸까? 그래도 내 나라가 좋지 않으냐는 질문도 나온다. 교민 모두 물어볼 필요 없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훌쩍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중의(中醫)를 배우러 27살에 왔어요. 지금 54살이니 인생의 반을 중국에서 보냈습니다. 여기가 제2의 고향인 셈이죠. 항상 그리움 속에 살지만, 귀국 결정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제 딸이 좀 더 커서 한국 대학도 가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 저도 그때 제2의 인생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김유범, 중국생활 27년째 중의원 운영)

"어렵게 궤도에 올려놓은 사업을 정리하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막상 정리하고 들어가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또 한국에 들어가서 뭘 새로운 걸 한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죠." (이준화 중국생활 23년째 통신사업체 운영)


끝없이 도전하는 한국인

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또 미래를 걸고 도전한다. 한때 중국은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부자가 된 중국은 이제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 우리만의 장점을 살리지 않고서는 식당을 하든, 자영업을 하든, 기업을 하든 버텨낼 수 없다.

안정적인 사진기자의 삶의 접고 중국에 뛰어든 12년 차 김동욱 사진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의 스튜디오는 중국 사진작가들의 성지, 롱롱 사진미술관에 있다.

"사드 때문에 저희 문화계 사람들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한중 합작 영화 제작도 없어지고, 한국 배우들이 중국 광고에 캐스팅되면 저희와 작업을 했는데, 사드 이후 작업이 95% 줄었습니다. 사드 위기가 어느 정도 걷히는가 싶더니 코로나 19가 찾아왔어요.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이 조건에서도 살아갈 방법은 있더라고요."(김동욱 사진작가, 중국생활 12년째)

김동욱 사진작가는 최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주최한 국제창업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수상 기업에는 최대 100만 위안(1억 7천만 원)의 창업 장려금과 한국혁신센터(KIC) 중국 인큐베이션, 투자자 매칭 등의 지원이 이뤄진다. 기업이 아닌 중국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체험형 셀프 스튜디오 아이템이 먹혀 든 거다.

"중국의 규모를 이길 수 없고, 일본의 섬세함을 따라가기도 쉽지는 않은데, 저희는 변화가 빠른 시대에 자기분야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주도하는 속도가 가장 큰 장점이에요."(김동욱 사진 작가, 중국생활 12년째)


"한국인의 DNA에 경쟁력이 있다."

정동현 건축가는 일본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제자다. 그런데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정동현 건축가가 일을 시작한 곳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중국이었다.

"제가 관심 있게 생각했던 거는 자연과 사람, 그 가운데 건축, 그 관계였거든요. 자연에 건축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을 때 사실 한국은 지형이 복잡하고 다양한 곳에서 선조 때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그 지형을 읽고, 자연 안에 건물이 어떻게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요. 그 DNA를 한국인들은 계승하고 있다고 믿어요. 제가 대자연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데 그 DNA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고요. 그것이 한국인의 장점이고 중국에선 희소성이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젊은 건축가들이 도전해 볼 만한 곳이 중국입니다." (정동현 건축가, 중국 생활 16년째)

가뜩이나 힘든 타국 생활에 코로나 19는 교민들에게 짐을 하나 더 얹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여전히 굴하지 않는 꿋꿋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화이팅! 중국 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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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코로나19 고단한 교민, 떠날 수 없는 이유?
    • 입력 2020-10-10 10:25:22
    특파원 리포트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신조어 '코로나 우울(blue)'이라는 말이 생겼다. 감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세상 누구 하나 '코로나 우울(blue)'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국이 아닌 타국 생활을 하는 교민들은 상처가 더 깊다. 교민들은 코로나 19를 어떻게 겪고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가볼 수도 없고"

한때 10만 명의 한국인이 살았던 중국 베이징의 대표적 한인타운 왕징(望京). 그곳에서 교민들을 만났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가장 힘든 건 무엇일까?


"저는 일을 해야 하니까 아이와 아내를 한국에 보냈는데,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죠. 아이가 태어나고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8개월 이상 떨어져 있다 보니까 제일 애로사항이 물론 아내도 보고 싶지만, 아이가 보고 싶은 게 제일 힘들어요. 밤에 울기도 하고 보고 싶어서…."(이준화 중국생활 23년째, 통신사업체 운영)

"부모님 친척 친구 다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명절이라든지 경조사 하나 제대로 챙길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부모님 친구 친척을 항상 그리워하면서 사는 게 베이징에서 삶인 거 같아요."(김유범 중국생활 27년째, 중의원 운영)

한국과 중국은 가까워 상대적으로 오가는 게 쉬웠다. 하지만 코로나 19 대유행은 하늘길을 끊어 버렸다. 8월부터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교민이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다. 끊긴 하늘길은 자식 된 도리도 막아 버렸다.

"어머니 다음에 봬요. 웃으면서 설 쇠고 베이징에 다시 왔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해서 돌아가셨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눈물만 나더라고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가볼 수도 없고…."(권오문 중국생활 3년째, 기업체 주재원)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거….

이보다 더 한 일도 겪는 게 타국 생활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한다. 중국인을 배우자로 만난 한국인은 한국에서는 겪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덤으로 안고 산다.

"사드 때(2016년, 한국이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수용하면서 발생한 중국의 보복)는 저희가 식당에 갔을 때 쫓겨 난 적도 있습니다. 한국말을 하니까, 한국 사람 나가라 이런 식으로…."(권용한 소프트웨어업체 운영)

"주방에 직원이 8명 있는데, 코로나 19로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주방 일을 저 혼자 했어요. 족발이나 보쌈을 직접 삶아가면서 하는데 굉장히 힘든 노동이에요. 어떻게 버텼느냐고 물으시면 여기서 생존하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전영실 식당 운영)

"아이가 밖에서 만나는 사람이 다 중국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아이가 중국말밖에 못 해요. 한국말을 못하는 거에요. 아이가 4~5살 되면서 어느 순간 이러다 아이가 중국 사람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더는 거에요. 안 되겠다. 한국말을 가르쳐야겠다."(현재관 중국생활 15년째, 미용실 운영)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그렇게 힘든 타국살이를 왜 하는 걸까? 그래도 내 나라가 좋지 않으냐는 질문도 나온다. 교민 모두 물어볼 필요 없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훌쩍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중의(中醫)를 배우러 27살에 왔어요. 지금 54살이니 인생의 반을 중국에서 보냈습니다. 여기가 제2의 고향인 셈이죠. 항상 그리움 속에 살지만, 귀국 결정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제 딸이 좀 더 커서 한국 대학도 가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 저도 그때 제2의 인생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김유범, 중국생활 27년째 중의원 운영)

"어렵게 궤도에 올려놓은 사업을 정리하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막상 정리하고 들어가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또 한국에 들어가서 뭘 새로운 걸 한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죠." (이준화 중국생활 23년째 통신사업체 운영)


끝없이 도전하는 한국인

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또 미래를 걸고 도전한다. 한때 중국은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부자가 된 중국은 이제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 우리만의 장점을 살리지 않고서는 식당을 하든, 자영업을 하든, 기업을 하든 버텨낼 수 없다.

안정적인 사진기자의 삶의 접고 중국에 뛰어든 12년 차 김동욱 사진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의 스튜디오는 중국 사진작가들의 성지, 롱롱 사진미술관에 있다.

"사드 때문에 저희 문화계 사람들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한중 합작 영화 제작도 없어지고, 한국 배우들이 중국 광고에 캐스팅되면 저희와 작업을 했는데, 사드 이후 작업이 95% 줄었습니다. 사드 위기가 어느 정도 걷히는가 싶더니 코로나 19가 찾아왔어요.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이 조건에서도 살아갈 방법은 있더라고요."(김동욱 사진작가, 중국생활 12년째)

김동욱 사진작가는 최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주최한 국제창업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수상 기업에는 최대 100만 위안(1억 7천만 원)의 창업 장려금과 한국혁신센터(KIC) 중국 인큐베이션, 투자자 매칭 등의 지원이 이뤄진다. 기업이 아닌 중국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체험형 셀프 스튜디오 아이템이 먹혀 든 거다.

"중국의 규모를 이길 수 없고, 일본의 섬세함을 따라가기도 쉽지는 않은데, 저희는 변화가 빠른 시대에 자기분야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주도하는 속도가 가장 큰 장점이에요."(김동욱 사진 작가, 중국생활 12년째)


"한국인의 DNA에 경쟁력이 있다."

정동현 건축가는 일본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제자다. 그런데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정동현 건축가가 일을 시작한 곳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중국이었다.

"제가 관심 있게 생각했던 거는 자연과 사람, 그 가운데 건축, 그 관계였거든요. 자연에 건축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을 때 사실 한국은 지형이 복잡하고 다양한 곳에서 선조 때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그 지형을 읽고, 자연 안에 건물이 어떻게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요. 그 DNA를 한국인들은 계승하고 있다고 믿어요. 제가 대자연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데 그 DNA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고요. 그것이 한국인의 장점이고 중국에선 희소성이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젊은 건축가들이 도전해 볼 만한 곳이 중국입니다." (정동현 건축가, 중국 생활 16년째)

가뜩이나 힘든 타국 생활에 코로나 19는 교민들에게 짐을 하나 더 얹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여전히 굴하지 않는 꿋꿋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화이팅! 중국 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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