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생이별, 고단한 교민

입력 2020.10.10 (22:47) 수정 2020.10.10 (22:5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매일 매일 엄습하는 전염병 공포에다, 익숙했던 일상이 무너지면서 삶은 더 고단해졌는데요.

외로움을 안고 사는 해외 교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국으로 훌쩍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베이징 안양봉 특파원이 전해온 소식입니다.

[리포트]

화려한 야경 아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손님 많으시네요."]

["명절 끝인데, 가족 단위 손님이 많으시네요. 국밥 드시러 오셨나 봅니다."]

["오늘 단체 손님이 계시 다던데?"]

["네, 이쪽입니다."]

그들이 겪는 코로나 19는 어떨까?

난데없는 생이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아픕니다.

[이준화/통신사업체 운영 : "이번처럼 8개월 이상 떨어져 있다 보니까, 제일 애로사항이 물론 아내도 보고 싶지만, 아이가 보고 싶은 게 제일 힘들죠. 밤에 울기도 하고 보고 싶어서."]

막힌 하늘길은 자식 된 도리도 막았습니다.

[권오문/기업체 주재원 : "어머니 다음에 봬요. 웃으면서 들어왔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해서 돌아가셨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눈물만 나더라고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가볼 수도 없고."]

[김유범/중의사 : "부모님, 친구, 친척들 항상 그리워하면서 사는 게 여기 북경에서의 삶인 거 같아요."]

사실 이 보다 더 한 일도 겪는 게 타국 생활입니다.

[권용한/소프트웨어업체 법인장 : "사드 때는 식당에 갔을 때 한번 쫓겨 난 적 있습니다. 한국말 하니까, 한국 사람 나가라 이런 식으로."]

[전영실/식당 운영 : "족발이나 보쌈을 직접 주방에서 삶아가면서 해요. 굉장히 힘든 노동인데, 그걸 어떻게 버텼느냐고 물으시면 여기서 생존하기 위해서,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때 중국은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자가 된 중국은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이준화/통신사업체 운영 : "제가 잘 난건 아니지만 제가 중국 친구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중국 사람이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견문도 넓어져서 제가 사실 쫓아가는 입장이 된 거죠."]

아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다문화 가정 부모의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현재관/미용실 운영 : "아이가 중국 말 밖에 못해요. 한국말을 못하는 거에요. 4~5살 되면서 제가 어느 순간 아이가 이러다가 중국 아이가 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에요."]

그렇다고 터를 잡고, 길게는 20년 넘게 살아온 이곳을 훌쩍 떠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또 미래를 걸고 도전합니다.

사진 기자의 삶을 접고 중국으로 건너온 김동욱 사진작가.

중국 사진작가들의 성지, 롱롱 사진미술관에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게 다 보여서 좋네. 구조적으로도."]

2008년 우연히 베이징에 여행을 왔던 게 인연이 됐습니다.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은 중국 영화계와 기업 광고, 인물 사진까지,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올핸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주최한 국제창업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김동욱/사진작가 : "저희는 자기분야에서 변화가 빠른 시대에 속도를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중국에서 경쟁력이지 싶어요."]

["안녕하세요."]

일본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제자 정동현 건축가입니다.

근데 정 건축가가 박사 학위를 받고 일을 시작한 곳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정동현/건축가 : "동양의 건축이라고 하지만 제가 관심 있게 생각했던 거는 자연과 사람, 그 가운데에 건축, 그 관계였거든요."]

["사실 한국의 지형이 복잡하고 다양하고, 풍요로운 데서 선조 때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지형을 읽고, 자연 안에 건물이 어떻게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있고 DNA가 계승됐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대자연에서 프로젝트를 함에 있어서 그 DNA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고요."]

가뜩이나 힘든 타국 생활에 코로나 19는 짐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여전히 굴하지 않는 꿋꿋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화이팅! 중국 짜요!"]

베이징에서 안양봉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코로나19 생이별, 고단한 교민
    • 입력 2020-10-10 22:47:43
    • 수정2020-10-10 22:58:33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매일 매일 엄습하는 전염병 공포에다, 익숙했던 일상이 무너지면서 삶은 더 고단해졌는데요.

외로움을 안고 사는 해외 교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국으로 훌쩍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베이징 안양봉 특파원이 전해온 소식입니다.

[리포트]

화려한 야경 아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손님 많으시네요."]

["명절 끝인데, 가족 단위 손님이 많으시네요. 국밥 드시러 오셨나 봅니다."]

["오늘 단체 손님이 계시 다던데?"]

["네, 이쪽입니다."]

그들이 겪는 코로나 19는 어떨까?

난데없는 생이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아픕니다.

[이준화/통신사업체 운영 : "이번처럼 8개월 이상 떨어져 있다 보니까, 제일 애로사항이 물론 아내도 보고 싶지만, 아이가 보고 싶은 게 제일 힘들죠. 밤에 울기도 하고 보고 싶어서."]

막힌 하늘길은 자식 된 도리도 막았습니다.

[권오문/기업체 주재원 : "어머니 다음에 봬요. 웃으면서 들어왔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해서 돌아가셨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눈물만 나더라고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가볼 수도 없고."]

[김유범/중의사 : "부모님, 친구, 친척들 항상 그리워하면서 사는 게 여기 북경에서의 삶인 거 같아요."]

사실 이 보다 더 한 일도 겪는 게 타국 생활입니다.

[권용한/소프트웨어업체 법인장 : "사드 때는 식당에 갔을 때 한번 쫓겨 난 적 있습니다. 한국말 하니까, 한국 사람 나가라 이런 식으로."]

[전영실/식당 운영 : "족발이나 보쌈을 직접 주방에서 삶아가면서 해요. 굉장히 힘든 노동인데, 그걸 어떻게 버텼느냐고 물으시면 여기서 생존하기 위해서,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때 중국은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자가 된 중국은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이준화/통신사업체 운영 : "제가 잘 난건 아니지만 제가 중국 친구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중국 사람이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견문도 넓어져서 제가 사실 쫓아가는 입장이 된 거죠."]

아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다문화 가정 부모의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현재관/미용실 운영 : "아이가 중국 말 밖에 못해요. 한국말을 못하는 거에요. 4~5살 되면서 제가 어느 순간 아이가 이러다가 중국 아이가 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에요."]

그렇다고 터를 잡고, 길게는 20년 넘게 살아온 이곳을 훌쩍 떠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또 미래를 걸고 도전합니다.

사진 기자의 삶을 접고 중국으로 건너온 김동욱 사진작가.

중국 사진작가들의 성지, 롱롱 사진미술관에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게 다 보여서 좋네. 구조적으로도."]

2008년 우연히 베이징에 여행을 왔던 게 인연이 됐습니다.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은 중국 영화계와 기업 광고, 인물 사진까지,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올핸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주최한 국제창업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김동욱/사진작가 : "저희는 자기분야에서 변화가 빠른 시대에 속도를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중국에서 경쟁력이지 싶어요."]

["안녕하세요."]

일본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제자 정동현 건축가입니다.

근데 정 건축가가 박사 학위를 받고 일을 시작한 곳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정동현/건축가 : "동양의 건축이라고 하지만 제가 관심 있게 생각했던 거는 자연과 사람, 그 가운데에 건축, 그 관계였거든요."]

["사실 한국의 지형이 복잡하고 다양하고, 풍요로운 데서 선조 때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지형을 읽고, 자연 안에 건물이 어떻게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있고 DNA가 계승됐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대자연에서 프로젝트를 함에 있어서 그 DNA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고요."]

가뜩이나 힘든 타국 생활에 코로나 19는 짐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여전히 굴하지 않는 꿋꿋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화이팅! 중국 짜요!"]

베이징에서 안양봉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