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꿈꿨는데”…땅은 사라지고 빚만 남은 지역주택조합

입력 2020.10.15 (05:00) 수정 2020.10.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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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하늘에다 짓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다세대 주택을 쳐다보던 A 씨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습니다. A 씨 등 뒤엔 철제펜스가 곳곳에 설치돼있었고, 펜스 중간엔 ‘이 토지는 주택조합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습니다.

A 씨는 6년 전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말에 경기도 남양주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일반 아파트 분양보다 훨씬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5천여만 원을 냈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록 공사는 첫 삽조차 뜨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던 지역주택조합 소유 땅은 대출 이자가 연체되면서 모두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지금까지 낸 돈을 되돌려 받기도 어려운데, 추가로 빚을 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A 씨의 삶을 조금씩 옥죄고 있습니다.


■“내 집 마련 꿈꿨는데…땅은 사라지고 빚만 남아”

A 씨가 가입한 ‘지역주택조합’은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해 함께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제도입니다. 일종의 아파트 ‘공동구매’인데 일반 분양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사업구역이 확정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과 달리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들이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있는 건물과 토지 주인들을 설득하고 적당한 가격으로 매입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사업마다 제각각입니다.

지난해 KBS가 각 지자체에 등록된 전국 지역주택조합 현황(지난해 10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690개 지역주택조합(추진위 포함) 가운데 170개(24.6%)만이 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도 2년이 지나도록 땅 매입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곳은 92개나 됐습니다.

A 씨가 가입한 지역주택조합도 95%까지 토지를 확보했지만, 나머지 5%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사업 방향을 두고 갈등을 빚던 일부 조합원들이 주도해 새 대행사와 새 조합장을 선출했고, 여기서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조합이 가지고 있던 땅으로 받은 담보대출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게 됐고, 결국땅은 경매로 모두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대로 사업이 무산될 경우 매몰 비용은 결국 A 씨를 포함한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조합원 재산권 보호”…시행령 개정했지만

전국 곳곳에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두고 비슷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것만큼 잦은 사례는 이른바 ‘불완전 판매’입니다. 시공업체로 특정 건설사가 선정됐다고 속이거나 토지 확보 비율을 속이는 수법입니다.

최근 서울에선 국공유지가 포함된 땅이라 25층 이상의 아파트를 세울 수 없는 곳인데도, 견본주택을 설치하고 유명 건설업체가 분양을 맡았다며 조합원을 속인 업무대행사 운영진 등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지역주택조합 관련 피해가 잇따르자 정부와 각 지자체는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부터는 지역주택조합 설립 발기인 조건을 강화하고 가입비를 환불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개정된 주택법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지역주택조합 설립 인가를 한 경우 ‘토지 소유권 확보 현황’ 등을 지자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해야 합니다. 토지 확보 비율을 속이고 사업이 곧 진행될 것처럼 조합원을 모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여기에 주택조합 가입자가 가입비를 낸 날부터 30일 이내에 취소할 경우 가입비는 돌려주도록 했습니다. 그동안은 가입비 환불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개정법이 적용되는 12월 11일 이후에는 30일 이내에 환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조합 가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입니다.

하지만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추가분담금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여전히 지역주택조합 관련 정보를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기도 어렵습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정법이 과거보다 조합원 보호 조치가 강화된 건 맞지만 피해를 완전히 막기엔 부족하다“면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자가 지자체에 등록하는 정보를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상되는 총사업비에 현재까지 조합이 확보한 자금과 토지, 인허가 단계를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더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희대의 악법…지역주택조합 폐지해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역주택조합과 관련한 청원들이 꾸준히 올라옵니다. 대부분 지역주택조합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청원 기간이 종료된 청원글에서 청원인은 ”지역주택조합은 아파트를 올린다는 명분 하에 땅 한 평 확보 안 해놓은 상태에서 조합원들을 모집하고 그들로부터 수백억을 걷는 걸 가능하게 하는 희대의 악법“이라면서 제도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지역주택조합 제도 폐지를 지자체가 건의한 적도 있습니다. 2016년 서울과 부산 등 광역지자체 8곳이 국토교통부에 제도 폐지를 건의했지만, 결국 제도를 보완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실제로 주택을 공급받는 조합원도 있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개정법에 따라 지자체가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신중히’ 선택한다면 이런 피해는 없어질 수 있을까요. 피해 조합원들은 여전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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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5 05:00:14
    • 수정2020-10-16 17:19:25
    취재K
“아파트를 하늘에다 짓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다세대 주택을 쳐다보던 A 씨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습니다. A 씨 등 뒤엔 철제펜스가 곳곳에 설치돼있었고, 펜스 중간엔 ‘이 토지는 주택조합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습니다.

A 씨는 6년 전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말에 경기도 남양주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일반 아파트 분양보다 훨씬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5천여만 원을 냈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록 공사는 첫 삽조차 뜨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던 지역주택조합 소유 땅은 대출 이자가 연체되면서 모두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지금까지 낸 돈을 되돌려 받기도 어려운데, 추가로 빚을 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A 씨의 삶을 조금씩 옥죄고 있습니다.


■“내 집 마련 꿈꿨는데…땅은 사라지고 빚만 남아”

A 씨가 가입한 ‘지역주택조합’은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해 함께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제도입니다. 일종의 아파트 ‘공동구매’인데 일반 분양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사업구역이 확정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과 달리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들이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있는 건물과 토지 주인들을 설득하고 적당한 가격으로 매입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사업마다 제각각입니다.

지난해 KBS가 각 지자체에 등록된 전국 지역주택조합 현황(지난해 10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690개 지역주택조합(추진위 포함) 가운데 170개(24.6%)만이 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도 2년이 지나도록 땅 매입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곳은 92개나 됐습니다.

A 씨가 가입한 지역주택조합도 95%까지 토지를 확보했지만, 나머지 5%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사업 방향을 두고 갈등을 빚던 일부 조합원들이 주도해 새 대행사와 새 조합장을 선출했고, 여기서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조합이 가지고 있던 땅으로 받은 담보대출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게 됐고, 결국땅은 경매로 모두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대로 사업이 무산될 경우 매몰 비용은 결국 A 씨를 포함한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조합원 재산권 보호”…시행령 개정했지만

전국 곳곳에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두고 비슷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것만큼 잦은 사례는 이른바 ‘불완전 판매’입니다. 시공업체로 특정 건설사가 선정됐다고 속이거나 토지 확보 비율을 속이는 수법입니다.

최근 서울에선 국공유지가 포함된 땅이라 25층 이상의 아파트를 세울 수 없는 곳인데도, 견본주택을 설치하고 유명 건설업체가 분양을 맡았다며 조합원을 속인 업무대행사 운영진 등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지역주택조합 관련 피해가 잇따르자 정부와 각 지자체는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부터는 지역주택조합 설립 발기인 조건을 강화하고 가입비를 환불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개정된 주택법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지역주택조합 설립 인가를 한 경우 ‘토지 소유권 확보 현황’ 등을 지자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해야 합니다. 토지 확보 비율을 속이고 사업이 곧 진행될 것처럼 조합원을 모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여기에 주택조합 가입자가 가입비를 낸 날부터 30일 이내에 취소할 경우 가입비는 돌려주도록 했습니다. 그동안은 가입비 환불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개정법이 적용되는 12월 11일 이후에는 30일 이내에 환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조합 가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입니다.

하지만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추가분담금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여전히 지역주택조합 관련 정보를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기도 어렵습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정법이 과거보다 조합원 보호 조치가 강화된 건 맞지만 피해를 완전히 막기엔 부족하다“면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자가 지자체에 등록하는 정보를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상되는 총사업비에 현재까지 조합이 확보한 자금과 토지, 인허가 단계를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더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희대의 악법…지역주택조합 폐지해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역주택조합과 관련한 청원들이 꾸준히 올라옵니다. 대부분 지역주택조합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청원 기간이 종료된 청원글에서 청원인은 ”지역주택조합은 아파트를 올린다는 명분 하에 땅 한 평 확보 안 해놓은 상태에서 조합원들을 모집하고 그들로부터 수백억을 걷는 걸 가능하게 하는 희대의 악법“이라면서 제도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지역주택조합 제도 폐지를 지자체가 건의한 적도 있습니다. 2016년 서울과 부산 등 광역지자체 8곳이 국토교통부에 제도 폐지를 건의했지만, 결국 제도를 보완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실제로 주택을 공급받는 조합원도 있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개정법에 따라 지자체가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신중히’ 선택한다면 이런 피해는 없어질 수 있을까요. 피해 조합원들은 여전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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