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단지 될뻔한 ‘70년 역사 염전’…기사회생할까?

입력 2020.10.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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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지 좁아지는 소금 채취업…"이제 염전 떠나야 하나요?"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염전 앞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염부(鹽夫)'를 만났습니다. 염부는 하얗게 빛나는 천일염을 포대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바닷물을 뭍으로 끌어오고 햇볕이 뜨거운 날만 골라 무거운 장화를 신고 수레를 끌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녹여 얻어낸 하얀 소금을 정성스레 포대에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염전을 바라보는 염부의 얼굴은 밝지 않았습니다. 천일염 가격은 한때 20㎏ 한 포대 기준으로 2천 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예상치 못한 가격 급등을 맞기도 했는데요. 올여름에 장마와 태풍이 겹쳐 많은 비가 내려 국내 천일염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만 원에서 만오천 원 사이에서 거래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격이 올랐다고 마냥 웃을 수도 없습니다. 중국산 천일염이 오래전 국내 시장을 점령했고 짠 음식을 피하는 식습관이 널리 보급돼 천일염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습니다.

■ 70년 역사의 염전, 태양광 발전업체에 넘어가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에 있는 염전은 '삼양염업사'가 소유한 곳이었습니다. 넓이는 2백만 제곱미터, 국제규격의 축구장 280개 규모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간척지로 만들어진 땅에 염전에 들어섰고 그 역사가 70년입니다. 이 염전을 각자 임대해 소금을 생산해왔던 염부들은 2년 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삼양염업사가 지역의 한 태양광 발전업체에 염전 땅을 팔아넘기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태양광 발전업체 입장에서는 일조량이 풍부한 염전이야말로 태양광 발전을 하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삼양염업사도 염전에서 거둬들이는 임대료가 한해 3~4억 원뿐이니 파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땅이 넘어갔기 때문에 당장 올해부터 소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업체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일해 온 염부들의 소금 생산을 당장 막지는 않아 일단 염전 일을 계속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삶의 터전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이 컸습니다.

■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에 태양광 단지는 안 돼"


태양광 발전업체가 염전을 사들이자 자치단체인 고창군도 다급해졌습니다. 고창 지역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또 인근의 고창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염전이 사라지고 태양광 발전단지가 들어선다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우려가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고창군은 지난해 이 일대를 개발행위허가 제한구역으로 지정해 우선 태양광 시설 설치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오는 2023년까지 예산 수백억 원을 들여 태양광 발전업체가 소유한 염전을 3단계에 걸쳐 매입하고, 갯벌 세계유산센터와 생태공원이 들어서는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염부들도 염전에서 계속 소금을 생산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태양광 단지가 될뻔한 염전을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지키는 게 개발보다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 지자체가 나선 '염전 지키기'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염전 땅을 매입이 순조롭게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태양광 발전 업체는 사업 허가가 어렵게 되자 고창군에 염전 땅을 매매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개발행위허가를 제한한 고창군의 규제가 과도하다며 취소 소송을 낸 상황이어서 염전 매입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태양광 발전업체는 염전 땅을 개발하지 못해 그동안 재산 피해가 컸다며, 염전을 팔 때 팔더라도 행정소송을 거쳐 규제가 적절했는지 법의 판단을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의 계획대로 진행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전북 고창 염전은 '천일염'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전남 신안 지역의 염전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입니다. 천일염 생산량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에서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천일염이 생산되는지 잘 모르는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곳도 한때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300명에 가까운 염부와 주민들이 함께 땀을 흘리며 소금을 채취하던 뜨거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염전에 바친 염부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말없이 염전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지금 고창 염전에 남아 있는 사람은 16명뿐입니다. 계속 염전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을 안고 염부들은 다시 햇볕이 내리쬐는 염전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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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광 단지 될뻔한 ‘70년 역사 염전’…기사회생할까?
    • 입력 2020-10-15 13:56:58
    취재K

■ 입지 좁아지는 소금 채취업…"이제 염전 떠나야 하나요?"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염전 앞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염부(鹽夫)'를 만났습니다. 염부는 하얗게 빛나는 천일염을 포대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바닷물을 뭍으로 끌어오고 햇볕이 뜨거운 날만 골라 무거운 장화를 신고 수레를 끌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녹여 얻어낸 하얀 소금을 정성스레 포대에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염전을 바라보는 염부의 얼굴은 밝지 않았습니다. 천일염 가격은 한때 20㎏ 한 포대 기준으로 2천 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예상치 못한 가격 급등을 맞기도 했는데요. 올여름에 장마와 태풍이 겹쳐 많은 비가 내려 국내 천일염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만 원에서 만오천 원 사이에서 거래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격이 올랐다고 마냥 웃을 수도 없습니다. 중국산 천일염이 오래전 국내 시장을 점령했고 짠 음식을 피하는 식습관이 널리 보급돼 천일염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습니다.

■ 70년 역사의 염전, 태양광 발전업체에 넘어가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에 있는 염전은 '삼양염업사'가 소유한 곳이었습니다. 넓이는 2백만 제곱미터, 국제규격의 축구장 280개 규모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간척지로 만들어진 땅에 염전에 들어섰고 그 역사가 70년입니다. 이 염전을 각자 임대해 소금을 생산해왔던 염부들은 2년 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삼양염업사가 지역의 한 태양광 발전업체에 염전 땅을 팔아넘기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태양광 발전업체 입장에서는 일조량이 풍부한 염전이야말로 태양광 발전을 하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삼양염업사도 염전에서 거둬들이는 임대료가 한해 3~4억 원뿐이니 파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땅이 넘어갔기 때문에 당장 올해부터 소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업체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일해 온 염부들의 소금 생산을 당장 막지는 않아 일단 염전 일을 계속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삶의 터전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이 컸습니다.

■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에 태양광 단지는 안 돼"


태양광 발전업체가 염전을 사들이자 자치단체인 고창군도 다급해졌습니다. 고창 지역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또 인근의 고창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염전이 사라지고 태양광 발전단지가 들어선다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우려가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고창군은 지난해 이 일대를 개발행위허가 제한구역으로 지정해 우선 태양광 시설 설치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오는 2023년까지 예산 수백억 원을 들여 태양광 발전업체가 소유한 염전을 3단계에 걸쳐 매입하고, 갯벌 세계유산센터와 생태공원이 들어서는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염부들도 염전에서 계속 소금을 생산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태양광 단지가 될뻔한 염전을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지키는 게 개발보다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 지자체가 나선 '염전 지키기'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염전 땅을 매입이 순조롭게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태양광 발전 업체는 사업 허가가 어렵게 되자 고창군에 염전 땅을 매매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개발행위허가를 제한한 고창군의 규제가 과도하다며 취소 소송을 낸 상황이어서 염전 매입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태양광 발전업체는 염전 땅을 개발하지 못해 그동안 재산 피해가 컸다며, 염전을 팔 때 팔더라도 행정소송을 거쳐 규제가 적절했는지 법의 판단을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의 계획대로 진행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전북 고창 염전은 '천일염'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전남 신안 지역의 염전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입니다. 천일염 생산량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에서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천일염이 생산되는지 잘 모르는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곳도 한때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300명에 가까운 염부와 주민들이 함께 땀을 흘리며 소금을 채취하던 뜨거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염전에 바친 염부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말없이 염전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지금 고창 염전에 남아 있는 사람은 16명뿐입니다. 계속 염전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을 안고 염부들은 다시 햇볕이 내리쬐는 염전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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