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헌혈한 소중한 혈액, 제약사엔 ‘헐값 판매’

입력 2020.10.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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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은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내 피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립니다. 그런데 내 피가 돈 받고 팔린다는 걸 '정확하게'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헌혈'을 두고 봉사와 희생이란 표현이 자주 강조되지만, 혈액의 '사업적 측면'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는 봉사단체일 뿐 아니라 '혈액관리본부'를 산하에 둔 '혈액 사업 기관'이기도 합니다.

■ 수술할 때 쓸 혈액이 모자란다?

혈액은 우리가 흔히 아는, 수술할 때 쓰이는 '수혈용'과 의약품 원료가 되는 '분획용'으로 구분됩니다. 헌혈을 해보신 분들은 간혹 빨간 피는 다시 몸으로 들어가고 노르스름한 물 같은 게 뽑히는 걸 보셨을 겁니다. 바로 혈장인데요, 이게 분획용으로 분류되는 혈액입니다.
그냥 빨간 피를 뽑는 경우도 있죠. 전혈이라고 부릅니다. 이걸 가져가 혈장을 분리해낼 수도 있습니다. 전혈 채혈은 헌혈 주기가 길지만, 혈장 채혈은 짧게는 2주 정도 지나면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 그러니까 병원에 보낸 협조공문입니다.


"적정 혈액 보유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혈액 사용량을 감축"해달라는 겁니다. 코로나19 여파로 헌혈이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혈액 보유량이 한 달 새 6.6일분에서 3.5일분으로 뚝 떨어진 걸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우리 모두 헌혈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병원에서 혈액이 모자라 가족들에게 구해오라고 했다'와 같은 안타까운 기사가 또 나와서는 안 되니까요.

내가 헌혈한 피는 병원이 아니라 제약회사로 갈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분획용'입니다. 제약회사에 가서 약으로 만들어지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적십자가 무슨 이유에선지 원가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제약사에 이걸 팔고 있습니다. 손해 보면서 팔고 있다는 얘깁니다.

아래 표는 최근 5년간 혈액 공급량입니다. 매년 평균 44%가 분획용, 즉 의약품 원료용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피가 모자란다고 공문까지 내려온 올해도 8월까지 이미 42%는 분획용으로 공급됐습니다.

분획용을 다시 한번 더 볼까요? 전혈 분리가 성분 채혈보다 더 많습니다. 적십자에서 헌혈을 받아, 혈장을 또 따로 분리해서 제약사에 준 것도 많다는 얘깁니다. 5년 동안 혈액의 44.6%, 절반에 가까운 양이 약품 원료용으로 팔렸습니다. 2백43만5천여 ℓ인데요. 성인 남성 1회 헌혈량인 400㎖를 기준으로 608만 명이 헌혈한 양입니다. 1.5ℓ 콜라병으로 162만3천3백 병이 넘습니다.


혈장을 사들이는 제약회사는 GC 녹십자(이하 '녹십자')와 SK플라즈마 두 곳입니다. 사실상 녹십자가 독점하던 시장에 SK플라즈마가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적십자는 두 회사에 인건비, 관리비까지 포함된 원가의 65~77% 수준으로 혈장을 공급했습니다. 3가지 종류의 혈장이 있는데 1ℓ를 팔 때마다 6만 원, 4만9천 원, 3만8천 원가량의 손해가 발생합니다. 적십자는 5년간 477억4천387만 원의 손해를 보며 제약사에 혈액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국민이 무상(!)으로 제공한 혈액입니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적십자는 우리나라 헌혈의 95%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데, 녹십자와 SK플라즈마는 적십자에서 혈장을 받아야만 약을 만들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적십자가 유리한 입장에 서 있을 것 같고, 국민이 무상으로 제공한 혈액을 공급한다는 명분도 있는데 왜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고 있는 걸까요?

혹시 이 약을 만드는 공정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 특정 업체가 만들지 않으면 약품의 수급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일까요?

혈액 제제 제품 연구원
"신약개발이 아니고 사람 몸에서 나오는 거로, 그것도 (혈장) 분획부터 시작하면 모르겠어요. (적십자에서) 분획 다 해서 주잖아요. 그러면 뭐를 할 게 있어요. 거기에 할 거는 없어요. 그냥 깨끗하게 관리하는 거예요. GMP 있는 회사들, 거기는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많은 투자 없이."

다른 곳도 약을 만들 수 있는데 원료를 독점으로 팔고 사니 결국 시장의 가격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의미로 읽힙니다.

"다른 회사들도, (혈장을) 같이 공급받고 싶어하는 회사들한테 같이 공급을 해서 가격 경쟁을 시켜라. 그래야지 이렇게 폭리를 취하지 못할 거 아니냐고요. 그 두 회사만 딱 넣어주고 다른 데는 허가를 안 해주잖아요. 안 팔잖아요."

■ 가격을 '협상' ?...협상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함"

관련 법(혈액관리법 제11조)에 따르면 혈액제제를 수혈용으로 공급할 땐 가격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게 돼 있지만, 분획용 혈장 가격에 대해선 별다른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십자와 제약사가 가격협상을 합니다. 녹십자와 SK플라즈마는 당연히 원료를 싸게 사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가 상승, 가공비 인상, 경영실적 악화' 등을 이유로 가격을 못 올려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만드는 약에 대해 건강보험 약값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적십자는 제약사 핑계를 댑니다. 건강보험에서 약값 올려줘야 혈장 값 올려준다고 제약사가 우기니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올려준다는 건 제약사의 수익이 는다는 뜻이고,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그 약값만큼 부담이 더해집니다. 지금 적십자가 원가보다 30% 싸게 주는 혈장 값을 제약사에서 원가만큼이라도 받는다고 보장해준다는 뜻도 아닙니다.

적십자는 또 "제약사의 원가나 손익자료 등을 확인하기 어렵고, 가격 결정에 대한 권한 부재 등으로 한계"가 있어 가격협상이 어렵다고 합니다. 적십자 보도자료 일부입니다.


녹십자 매출의 최대 품목은 혈액제제입니다. 비중이 40%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독점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들어가면 녹십자의 혈액제제 수익과 영업부문, 개발비 상세내역 등 관련 자료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녹십자가 사상 최대 매출을 찍었다, 혈액제제 사업을 확대했다, 생산량이 3배 늘었다 등의 기사도 쏟아집니다.

협상 대상자이니 원가 산정 등을 위한 자료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적십자는 그저 가격 결정 권한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원료 혈장 원가 산정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요청했더니 "민간 제약사의 영업상의 비밀 등이 포함되어 있어 전체 공개는 곤란"하다고 합니다. 연구할 때는 '영업상의 비밀'까지 받는데 가격협상을 위한 기본 조건들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2017년 혈장 중 하나인 '신선동결 혈장'의 가격을 리터당 108,620원에서 118,620원으로 올렸다고 적십자는 해명했습니다. 올려도 원가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가격입니다. 취재를 해보니 제약사는 이'만 원'을 올려주기 전에 보건복지부에 이미 약값 인상을 신청해 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약값 인상 대상이 아닌 제품과 수출용 제품도 몽땅 묶어서 신청했고, 복지부는 이걸 별다른 검증 없이 반영해서 인상금액까지 산정해 줬습니다. 약값은 복지부에서 결정하니 '산하의 기타 공공기관'일 뿐인 적십자는 몰랐을 거라고 믿습니다.

공공의료정책 전문가
"헌혈하는 사람은 사실은 선한 마음으로 내 혈액이 또는 내 혈액으로부터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의약품들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잘 쓰일 수 있게 해달라 그런 선한 마음으로 헌혈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적십자가 혈액을 가지고 그걸 가공하는 제약회사들과 함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는 거죠."

■ 의료기관용 혈액 가격은 해마다 상승

적십자가 녹십자와 SK플라즈마에 헐값으로 혈장을 파는 동안 의료기관용 혈액의 공급가는 해마다 상승했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매년 2%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집니다. 복지부가 고시하는 수혈용 혈액은 해마다 가격을 올랐고 적십자와 제약사가 '협상'만 하면 되는 약품 제조용 혈액 가격은 몇 년째 동결입니다.


지난해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는 혈장원료와 혈액 사업 운영의 부적절성에 관한 여러 사항이 지적됐습니다. 적십자 혈액원은 건강보험 재정과 국고보조금을 재원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이 혈액원의 수익을 혈장분획센터, 즉 혈장 판매를 위해 분리해내는 센터의 수익으로 처리해 "혈장분획사업의 적자를 보전"하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감사원은 불투명한 회계로 공적자금이 영리사업에 투입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대한 반박하는 적십자의 설명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왜 혈액원의 수익으로 혈장분획사업의 일정 수익률을 유지해야 했을까요? 적십자는 운영개선방안을 마련하고 회계도 제대로 운영하라는 감사원의 통보와 주의를 받았지만, 아직 별다른 대책 등을 내놓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국가가 혈액 관리' 번번이 좌절, 이번엔?

혈장 가격뿐 아니라 적십자가 독점하고 있는 혈액 관리에 대한 문제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논란이 돼왔습니다. 국회에서, 혈액 관련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심지어 복지부에서조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이 지난 20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혈액관리에 대한 문제가 많았다. 정부로서는 법 개정이 시급한 입장이다. 기존 관리체계에서는 혈액에 대한 공급, 유통, 관리, 사용 단계서의 일관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국립 기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혈액 사업이 워낙 크다 보니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국회에서도 혈액 관리 개선 방안을 담은 법안이 발의될 예정입니다.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보건복지위원회)
"공공성을 좀 더 강화하자는 측면이죠. 그러니까 혈액관리에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혈액관리원 같은 걸 만들어서 혈액공급과 관리를 국가가 직접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20대 때 사실 국가가 직접 혈액관리를 하는 관련법이 제출됐는데 결국 임기 만료로 사라졌어요. 다시 발의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국정감사 기간입니다. 해마다 혈액 관련 문제들이 도마 위에 올랐고, 해마다 방안을 마련하겠다, 검토하겠다던 적십자는 올해는 달라진 답을 내놓을까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에 실린 조남선 혈액관리본부장의 인사말입니다.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혈액제제는 오직 헌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헌혈은 수혈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하여 헌혈자 수는 지속해서 감소하는 반면, 수혈자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혈액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들의 헌혈 참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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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헌혈한 소중한 혈액, 제약사엔 ‘헐값 판매’
    • 입력 2020-10-15 14:58:41
    취재K

헌혈은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내 피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립니다. 그런데 내 피가 돈 받고 팔린다는 걸 '정확하게'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헌혈'을 두고 봉사와 희생이란 표현이 자주 강조되지만, 혈액의 '사업적 측면'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는 봉사단체일 뿐 아니라 '혈액관리본부'를 산하에 둔 '혈액 사업 기관'이기도 합니다.

■ 수술할 때 쓸 혈액이 모자란다?

혈액은 우리가 흔히 아는, 수술할 때 쓰이는 '수혈용'과 의약품 원료가 되는 '분획용'으로 구분됩니다. 헌혈을 해보신 분들은 간혹 빨간 피는 다시 몸으로 들어가고 노르스름한 물 같은 게 뽑히는 걸 보셨을 겁니다. 바로 혈장인데요, 이게 분획용으로 분류되는 혈액입니다.
그냥 빨간 피를 뽑는 경우도 있죠. 전혈이라고 부릅니다. 이걸 가져가 혈장을 분리해낼 수도 있습니다. 전혈 채혈은 헌혈 주기가 길지만, 혈장 채혈은 짧게는 2주 정도 지나면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 그러니까 병원에 보낸 협조공문입니다.


"적정 혈액 보유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혈액 사용량을 감축"해달라는 겁니다. 코로나19 여파로 헌혈이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혈액 보유량이 한 달 새 6.6일분에서 3.5일분으로 뚝 떨어진 걸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우리 모두 헌혈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병원에서 혈액이 모자라 가족들에게 구해오라고 했다'와 같은 안타까운 기사가 또 나와서는 안 되니까요.

내가 헌혈한 피는 병원이 아니라 제약회사로 갈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분획용'입니다. 제약회사에 가서 약으로 만들어지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적십자가 무슨 이유에선지 원가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제약사에 이걸 팔고 있습니다. 손해 보면서 팔고 있다는 얘깁니다.

아래 표는 최근 5년간 혈액 공급량입니다. 매년 평균 44%가 분획용, 즉 의약품 원료용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피가 모자란다고 공문까지 내려온 올해도 8월까지 이미 42%는 분획용으로 공급됐습니다.

분획용을 다시 한번 더 볼까요? 전혈 분리가 성분 채혈보다 더 많습니다. 적십자에서 헌혈을 받아, 혈장을 또 따로 분리해서 제약사에 준 것도 많다는 얘깁니다. 5년 동안 혈액의 44.6%, 절반에 가까운 양이 약품 원료용으로 팔렸습니다. 2백43만5천여 ℓ인데요. 성인 남성 1회 헌혈량인 400㎖를 기준으로 608만 명이 헌혈한 양입니다. 1.5ℓ 콜라병으로 162만3천3백 병이 넘습니다.


혈장을 사들이는 제약회사는 GC 녹십자(이하 '녹십자')와 SK플라즈마 두 곳입니다. 사실상 녹십자가 독점하던 시장에 SK플라즈마가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적십자는 두 회사에 인건비, 관리비까지 포함된 원가의 65~77% 수준으로 혈장을 공급했습니다. 3가지 종류의 혈장이 있는데 1ℓ를 팔 때마다 6만 원, 4만9천 원, 3만8천 원가량의 손해가 발생합니다. 적십자는 5년간 477억4천387만 원의 손해를 보며 제약사에 혈액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국민이 무상(!)으로 제공한 혈액입니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적십자는 우리나라 헌혈의 95%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데, 녹십자와 SK플라즈마는 적십자에서 혈장을 받아야만 약을 만들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적십자가 유리한 입장에 서 있을 것 같고, 국민이 무상으로 제공한 혈액을 공급한다는 명분도 있는데 왜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고 있는 걸까요?

혹시 이 약을 만드는 공정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 특정 업체가 만들지 않으면 약품의 수급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일까요?

혈액 제제 제품 연구원
"신약개발이 아니고 사람 몸에서 나오는 거로, 그것도 (혈장) 분획부터 시작하면 모르겠어요. (적십자에서) 분획 다 해서 주잖아요. 그러면 뭐를 할 게 있어요. 거기에 할 거는 없어요. 그냥 깨끗하게 관리하는 거예요. GMP 있는 회사들, 거기는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많은 투자 없이."

다른 곳도 약을 만들 수 있는데 원료를 독점으로 팔고 사니 결국 시장의 가격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의미로 읽힙니다.

"다른 회사들도, (혈장을) 같이 공급받고 싶어하는 회사들한테 같이 공급을 해서 가격 경쟁을 시켜라. 그래야지 이렇게 폭리를 취하지 못할 거 아니냐고요. 그 두 회사만 딱 넣어주고 다른 데는 허가를 안 해주잖아요. 안 팔잖아요."

■ 가격을 '협상' ?...협상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함"

관련 법(혈액관리법 제11조)에 따르면 혈액제제를 수혈용으로 공급할 땐 가격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게 돼 있지만, 분획용 혈장 가격에 대해선 별다른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십자와 제약사가 가격협상을 합니다. 녹십자와 SK플라즈마는 당연히 원료를 싸게 사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가 상승, 가공비 인상, 경영실적 악화' 등을 이유로 가격을 못 올려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만드는 약에 대해 건강보험 약값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적십자는 제약사 핑계를 댑니다. 건강보험에서 약값 올려줘야 혈장 값 올려준다고 제약사가 우기니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올려준다는 건 제약사의 수익이 는다는 뜻이고,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그 약값만큼 부담이 더해집니다. 지금 적십자가 원가보다 30% 싸게 주는 혈장 값을 제약사에서 원가만큼이라도 받는다고 보장해준다는 뜻도 아닙니다.

적십자는 또 "제약사의 원가나 손익자료 등을 확인하기 어렵고, 가격 결정에 대한 권한 부재 등으로 한계"가 있어 가격협상이 어렵다고 합니다. 적십자 보도자료 일부입니다.


녹십자 매출의 최대 품목은 혈액제제입니다. 비중이 40%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독점입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들어가면 녹십자의 혈액제제 수익과 영업부문, 개발비 상세내역 등 관련 자료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녹십자가 사상 최대 매출을 찍었다, 혈액제제 사업을 확대했다, 생산량이 3배 늘었다 등의 기사도 쏟아집니다.

협상 대상자이니 원가 산정 등을 위한 자료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적십자는 그저 가격 결정 권한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원료 혈장 원가 산정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요청했더니 "민간 제약사의 영업상의 비밀 등이 포함되어 있어 전체 공개는 곤란"하다고 합니다. 연구할 때는 '영업상의 비밀'까지 받는데 가격협상을 위한 기본 조건들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2017년 혈장 중 하나인 '신선동결 혈장'의 가격을 리터당 108,620원에서 118,620원으로 올렸다고 적십자는 해명했습니다. 올려도 원가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가격입니다. 취재를 해보니 제약사는 이'만 원'을 올려주기 전에 보건복지부에 이미 약값 인상을 신청해 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약값 인상 대상이 아닌 제품과 수출용 제품도 몽땅 묶어서 신청했고, 복지부는 이걸 별다른 검증 없이 반영해서 인상금액까지 산정해 줬습니다. 약값은 복지부에서 결정하니 '산하의 기타 공공기관'일 뿐인 적십자는 몰랐을 거라고 믿습니다.

공공의료정책 전문가
"헌혈하는 사람은 사실은 선한 마음으로 내 혈액이 또는 내 혈액으로부터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의약품들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잘 쓰일 수 있게 해달라 그런 선한 마음으로 헌혈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적십자가 혈액을 가지고 그걸 가공하는 제약회사들과 함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는 거죠."

■ 의료기관용 혈액 가격은 해마다 상승

적십자가 녹십자와 SK플라즈마에 헐값으로 혈장을 파는 동안 의료기관용 혈액의 공급가는 해마다 상승했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매년 2%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집니다. 복지부가 고시하는 수혈용 혈액은 해마다 가격을 올랐고 적십자와 제약사가 '협상'만 하면 되는 약품 제조용 혈액 가격은 몇 년째 동결입니다.


지난해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는 혈장원료와 혈액 사업 운영의 부적절성에 관한 여러 사항이 지적됐습니다. 적십자 혈액원은 건강보험 재정과 국고보조금을 재원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이 혈액원의 수익을 혈장분획센터, 즉 혈장 판매를 위해 분리해내는 센터의 수익으로 처리해 "혈장분획사업의 적자를 보전"하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감사원은 불투명한 회계로 공적자금이 영리사업에 투입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대한 반박하는 적십자의 설명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왜 혈액원의 수익으로 혈장분획사업의 일정 수익률을 유지해야 했을까요? 적십자는 운영개선방안을 마련하고 회계도 제대로 운영하라는 감사원의 통보와 주의를 받았지만, 아직 별다른 대책 등을 내놓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국가가 혈액 관리' 번번이 좌절, 이번엔?

혈장 가격뿐 아니라 적십자가 독점하고 있는 혈액 관리에 대한 문제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논란이 돼왔습니다. 국회에서, 혈액 관련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심지어 복지부에서조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이 지난 20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혈액관리에 대한 문제가 많았다. 정부로서는 법 개정이 시급한 입장이다. 기존 관리체계에서는 혈액에 대한 공급, 유통, 관리, 사용 단계서의 일관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국립 기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혈액 사업이 워낙 크다 보니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국회에서도 혈액 관리 개선 방안을 담은 법안이 발의될 예정입니다.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보건복지위원회)
"공공성을 좀 더 강화하자는 측면이죠. 그러니까 혈액관리에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혈액관리원 같은 걸 만들어서 혈액공급과 관리를 국가가 직접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20대 때 사실 국가가 직접 혈액관리를 하는 관련법이 제출됐는데 결국 임기 만료로 사라졌어요. 다시 발의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국정감사 기간입니다. 해마다 혈액 관련 문제들이 도마 위에 올랐고, 해마다 방안을 마련하겠다, 검토하겠다던 적십자는 올해는 달라진 답을 내놓을까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에 실린 조남선 혈액관리본부장의 인사말입니다.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혈액제제는 오직 헌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헌혈은 수혈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하여 헌혈자 수는 지속해서 감소하는 반면, 수혈자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혈액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들의 헌혈 참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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