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전국 최초 전기굴절버스 텅 빈채로 23만 km 운행…줄줄 새는 세금

입력 2020.10.19 (06:00) 수정 2020.10.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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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가 지난 1월 도입한 길이 18m짜리 전기 굴절버스세종시가 지난 1월 도입한 길이 18m짜리 전기 굴절버스


■ "민간 버스 회사라면 절대 안 사죠!"

실무자의 이 말에서 시작한 취재였습니다. 9억 원짜리 초고가 전기굴절버스를 4대나 도입한 세종시가 텅 빈 상태로 굴절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낭비라는 얘기였습니다.

올해 1월 도입한 전기굴절버스는 일반버스 2대를 붙여놓은 형태여서 길이가 18m입니다. 도로를 좁게 설계한(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세종시 도로 사정에서는 회전할 때 위험했습니다.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순간이긴 했지만, 워낙 길다 보니 교행하는 차의 뒷거울이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정원은 45명인데 한 번 운행에 평균 25명이 탔습니다. 세종 시내를 순환하는 900번 버스를 직접 타 봤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많이 탔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거의 사람이 타지 않았습니다. 대전을 오가는 990번 굴절버스는 사정이 더 안 좋았습니다.

굴절버스에 맞는 충전소가 세종 차고지에만 있다 보니 운행을 하다 배터리 전력이 떨어질 것 같으면 승객을 태우지 않고 빈 차로 차고지로 20km를 되돌아옵니다. 승객을 태우면 전기가 더 빨리 소진되기 때문입니다. 두 차를 합하면 최근 8개월간 23만km를 빈 상태로 운행했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2백 번 오가는 거리입니다.

■ 승객 없는데 연말까지 8대를 더 사겠다고요?

오전 10~오후 4시 사이 승객 거의 없는 900번 굴절버스 내부오전 10~오후 4시 사이 승객 거의 없는 900번 굴절버스 내부

버스 구조가 기존 정거장과 맞지 않아 정거장도 죄다 고치고 있었습니다. 버스 바닥과 정거장 턱이 맞지 않아 장애인 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굴절버스는 승하차 문이 3개이다 보니 일반버스(승하차 문이 2개)를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스크린도어 정거장도 고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은 지 2년도 안 된 정거장 4곳을 부수고 다시 짓고 있었습니다. 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는데 세종시는 9억 원짜리 굴절버스 8대를 연말까지 더 사겠다고 했습니다. 두 가지 배경이 있었습니다. LH의 지원금을 연내에 빨리 써야 하고, 굴절버스 가격이 배터리값 상승으로 오르고 있어 더 비싸지기 전에 구입해야 한다고 실무자가 말했습니다.


■ 방만한 굴절 버스에서 발견한 ‘17:1’

세종시의원 18명 중의 17명이 민주당 소속인 세종시의회세종시의원 18명 중의 17명이 민주당 소속인 세종시의회

친환경 도시 조성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전기굴절버스의 추가 도입을 좋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아홉 달 동안 눈에 뻔히 보이는 예산 낭비 실태를 눈감았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세종시의회였습니다. 최근 일부 시의원이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는데도 별도 징계를 하지 않은 의회입니다.(해당 시의원은 불법성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전체 시의원 18명 가운데 17명이 더불어민주당인 의회는 집행부 감시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나이가 30대인 의장을 비롯해 초선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현재 세종시장에게 독한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KBS 보도가 나간 이후에야 해당 상임위는 집행부에 굴절버스 운영실태 보고서를 요청했습니다. KBS가 취재할 때는 아직 1년이 안 돼 수익분석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던 집행부가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최초로 도입한 세종시 전기굴절버스는 이제 12대가 됩니다. 115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노선과 도로, 정거장 여건은 아직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전기굴절버스를 관리하는 세종교통공사 간부는 대부분 비전문가로 구성돼 있습니다.

■ 이게 9억 원이나 한다고요?

세종시, 1 대 당  9억3천만 원(1년 전보다 4천만원 오름) 에  8대 구입 예정세종시, 1 대 당 9억3천만 원(1년 전보다 4천만원 오름) 에 8대 구입 예정

온종일 굴절버스를 타면서 만난 승객들은 하나같이 비싼 가격에 놀랐습니다. 보통 전기버스가 비싸면 2~3억 원 하고 두 대를 붙였다고 하니 아무리 비싸도 6억 안팎 아니겠냐고 답하는 승객도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비싼 건지 물었더니 세종교통공사는 “배터리가 비싸서 그래요”라는 어벌쩡한 답변만 내놨습니다. 행정수도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 갖춰야 할 것이 많은 세종시의 단면을 ‘전기 굴절버스 예산 낭비’ 사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시의원은 “17평 아파트에 최고급 친환경 재료로 만든 킹사이즈 소파를 들여놓은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친환경 도시 이미지를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뜻입니다. 뒤늦게 집행부 질타에 나선 의회가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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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전국 최초 전기굴절버스 텅 빈채로 23만 km 운행…줄줄 새는 세금
    • 입력 2020-10-19 06:00:29
    • 수정2020-10-19 07:01:30
    취재후·사건후
세종시가 지난 1월 도입한 길이 18m짜리 전기 굴절버스

■ "민간 버스 회사라면 절대 안 사죠!"

실무자의 이 말에서 시작한 취재였습니다. 9억 원짜리 초고가 전기굴절버스를 4대나 도입한 세종시가 텅 빈 상태로 굴절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낭비라는 얘기였습니다.

올해 1월 도입한 전기굴절버스는 일반버스 2대를 붙여놓은 형태여서 길이가 18m입니다. 도로를 좁게 설계한(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세종시 도로 사정에서는 회전할 때 위험했습니다.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순간이긴 했지만, 워낙 길다 보니 교행하는 차의 뒷거울이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정원은 45명인데 한 번 운행에 평균 25명이 탔습니다. 세종 시내를 순환하는 900번 버스를 직접 타 봤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많이 탔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거의 사람이 타지 않았습니다. 대전을 오가는 990번 굴절버스는 사정이 더 안 좋았습니다.

굴절버스에 맞는 충전소가 세종 차고지에만 있다 보니 운행을 하다 배터리 전력이 떨어질 것 같으면 승객을 태우지 않고 빈 차로 차고지로 20km를 되돌아옵니다. 승객을 태우면 전기가 더 빨리 소진되기 때문입니다. 두 차를 합하면 최근 8개월간 23만km를 빈 상태로 운행했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2백 번 오가는 거리입니다.

■ 승객 없는데 연말까지 8대를 더 사겠다고요?

오전 10~오후 4시 사이 승객 거의 없는 900번 굴절버스 내부
버스 구조가 기존 정거장과 맞지 않아 정거장도 죄다 고치고 있었습니다. 버스 바닥과 정거장 턱이 맞지 않아 장애인 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굴절버스는 승하차 문이 3개이다 보니 일반버스(승하차 문이 2개)를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스크린도어 정거장도 고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은 지 2년도 안 된 정거장 4곳을 부수고 다시 짓고 있었습니다. 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는데 세종시는 9억 원짜리 굴절버스 8대를 연말까지 더 사겠다고 했습니다. 두 가지 배경이 있었습니다. LH의 지원금을 연내에 빨리 써야 하고, 굴절버스 가격이 배터리값 상승으로 오르고 있어 더 비싸지기 전에 구입해야 한다고 실무자가 말했습니다.


■ 방만한 굴절 버스에서 발견한 ‘17:1’

세종시의원 18명 중의 17명이 민주당 소속인 세종시의회
친환경 도시 조성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전기굴절버스의 추가 도입을 좋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아홉 달 동안 눈에 뻔히 보이는 예산 낭비 실태를 눈감았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세종시의회였습니다. 최근 일부 시의원이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는데도 별도 징계를 하지 않은 의회입니다.(해당 시의원은 불법성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전체 시의원 18명 가운데 17명이 더불어민주당인 의회는 집행부 감시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나이가 30대인 의장을 비롯해 초선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현재 세종시장에게 독한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KBS 보도가 나간 이후에야 해당 상임위는 집행부에 굴절버스 운영실태 보고서를 요청했습니다. KBS가 취재할 때는 아직 1년이 안 돼 수익분석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던 집행부가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최초로 도입한 세종시 전기굴절버스는 이제 12대가 됩니다. 115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노선과 도로, 정거장 여건은 아직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전기굴절버스를 관리하는 세종교통공사 간부는 대부분 비전문가로 구성돼 있습니다.

■ 이게 9억 원이나 한다고요?

세종시, 1 대 당  9억3천만 원(1년 전보다 4천만원 오름) 에  8대 구입 예정
온종일 굴절버스를 타면서 만난 승객들은 하나같이 비싼 가격에 놀랐습니다. 보통 전기버스가 비싸면 2~3억 원 하고 두 대를 붙였다고 하니 아무리 비싸도 6억 안팎 아니겠냐고 답하는 승객도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비싼 건지 물었더니 세종교통공사는 “배터리가 비싸서 그래요”라는 어벌쩡한 답변만 내놨습니다. 행정수도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 갖춰야 할 것이 많은 세종시의 단면을 ‘전기 굴절버스 예산 낭비’ 사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시의원은 “17평 아파트에 최고급 친환경 재료로 만든 킹사이즈 소파를 들여놓은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친환경 도시 이미지를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뜻입니다. 뒤늦게 집행부 질타에 나선 의회가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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