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딸을 계약직에 청탁하나”…‘1심무죄’ 김성태, 눈물의 항변

입력 2020.10.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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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인생, 결혼을 준비하던 제 딸아이는 변변치 않은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그동안 노력과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했습니다. 5천여 개 언론 보도가 매일 쏟아져나왔고 그 기사마다 저와 딸아이를 모욕하는 댓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 302호 법정. 김성태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감정이 격해진 듯 눈물을 보이며 호소했습니다. 이날은 딸의 KT 부정채용 의혹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김 전 의원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 "특혜 YES, 뇌물 NO"…1심서 '반쪽 무죄'받은 김성태

검찰은 김 전 의원의 딸이 2011년 서유열 전 KT 사장에 대한 청탁을 통해 KT스포츠단에 파견계약직으로 채용된 뒤, 2012년 이석채 전 KT 회장의 국회 국정감사 증인 채택 무마를 대가로 KT 정규직에 채용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딸과 '이익공동체' 관계에 있는 김 전 의원이, 이 전 회장으로부터 '뇌물'로서 정규직 취업 특혜를 받았다는 게 공소 요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1월, 1심 법원은 김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채 전 회장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실 재판부는 김 전 의원의 딸이 2011년 KT스포츠단 파견계약직과 2012년 KT 정규직에 부정채용 됐다는 점은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아버지가 전달한 이력서로 '콕 집어' 채용된 뒤 통상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이미 지원 기간이 끝난 공채에 '올라타' 불합격에 해당하는 시험 결과를 뒤집고 채용되는 등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여러 특혜를 받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김 전 의원 딸의 부정채용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진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의심할 만한 정황은 있었지만 이 전 회장의 뇌물공여가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으니, 김 전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에도 자연스럽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죠.

특혜는 있었지만, 뇌물은 아니었다는, 조금은 상반된 결론. 김 전 의원으로선 의혹이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은, '반쪽짜리' 무죄 판결을 받아든 셈입니다.

■ 김성태 측 "국회의원은 '파견계약직'을 청탁하진 않습니다"

"세상에 어느 아비가, 자식을 직접 고용 계약직도 아닌 파견회사 소속의 비정규직을 시켜달라고 청탁하겠습니까!"

이를 의식한 듯, 김 전 의원은 2심 결심공판에서도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2011년 딸에 대한 파견계약직 취업 청탁은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2012년 정규직 채용 역시 통상과 다른 점은 있었지만, 김 전 의원이 직접 청탁해 이 전 회장이 지시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죠.

김 전 의원과 변호인들은 설마 '국회의원'인 김 전 의원이 정규직도 아닌 파견계약직으로 딸의 취업을 청탁할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는데요. 지방 출장이 잦고 처우가 좋지 않은 파견계약직 자리에 자녀를 뽑아달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는 얘깁니다.

또 김 전 의원이 딸의 이력서를 전달했고 이 전 회장이 정규직 채용을 지시했다는 서유열 전 사장의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이번 사건은 검사의 억지스러운 기소였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김성태에 대한 재판에 김성태에 관한 증거는 없다"며 "검찰 역시 제가 직접 어떠한 청탁도 하지 않았던 점을 인정해 당초 저에 대한 고소 명분인 업무방해죄를 불기소 처분했는데도, 거짓 진술과 억지 법리에 기대 뇌물죄로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후 진술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러 차례 울컥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재판부 "김성태 딸, 대기업 대졸 공채 응시한 적 있나?"

김 전 의원 측의 최후변론을 들은 재판부는 한 가지 날카로운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변호인께 묻습니다. 김 전 의원의 딸은 말이죠. 대기업 대졸 공채에 응시한 적이 있습니까?"

앞서 김 전 의원 측은, 파견계약직으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딸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KT 정규직에 입사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해왔죠. 파견계약직 자리는 처우가 좋지 않아, 애초에 청탁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해왔습니다. 재판부가 이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해, 김 전 의원 딸이 평소에도 대졸 신입 공채에 응시해왔는지, 대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해왔는지 질문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변호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재판부는 "2011년이면 김 전 의원 딸이 졸업한 해다. 2011년도와 2012년도 대졸 공채에 응시할 기회, 시간적 여유가 굉장히 많은데 왜 대졸 공개채용에 응시한 적이 없느냐"고 다시 물었죠.

변호인은 "본인 말에 의하면 본인이 (대학에서) 스포츠와 관련한 공부를 했는데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건 희망하지 않았고, 사무직으로 변경하고 싶어 했다"라며 "스포츠를 공부한 사람이 처음부터 사무직으로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경력을 쌓으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런 내용을 당시 스포츠를 전공했던 선배들에게서 들어서 본인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연수원에서 배운 '코끼리 그림' 언급한 검사…"정의가 아니다"

1심에서 '무죄'라는 고배를 마신 검찰도, 이날 결심공판에서 작심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준비한 최종변론 PT 발표를 마친 뒤 "여기 슬라이드엔 없습니다만, 최종 의견을 말하기 전에 한 말씀 드리겠다"며 운을 뗐죠.

"제가 예전에 '합리적 의심'과 '단순한 추측'을 어떻게 구별하느냐를 연수원에서 배울 때, 코끼리가 그려진 모자이크 그림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모자이크를 모두 다 뒤집어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모자이크 몇 개를 뒤집어 봤을 때 코끼리임이 명백하다고 판단된다면 '합리적 의심'은 지운 게 아닌가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코끼리 그림'까지 언급하며 김 전 의원 등에게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검찰은, 서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 등 지엽적인 부분을 가지고 진실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KT에서 부정채용이 있었다고 하는데, 누가, 어떻게, 왜 한 것인지 1심에서는 정확히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판단했을 땐 결국에는 KT가 당시 이석채 회장의 증인 채택을 방어하기 위해서 당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김성태 의원의 딸을 무리하게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서유열 사장이 언제 밥을 먹었다는 등 지엽적인 부분으로 실체적 진실을 덮는 건 정의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이날 김 전 의원과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서유열 전 사장에 대해선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엇갈린 '주군'과 '참모'…이석채 VS 서유열, 지시냐 독단이냐

김성태 전 의원 딸의 채용을 두고, 한때 가장 가까운 사이였을 이석채 전 회장과 서유열 전 사장의 진술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해 온 서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인데요. 이 전 회장과 김 전 의원 측에서는 이 신빙성을 맹공격하고 있고, 1심 재판부 역시 서 전 사장의 진술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서유열 전 사장 측은 '주군'과 '참모'의 관계를 언급하며 모든 책임이 이 전 회장에게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호인은 "이석채 전 회장은 아무 관여를 안 했고 핵심 참모인 서유열 전 사장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보는 건 상식에도 어긋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서 전 사장이 여태까지 그런 일을 했으면 핵심 참모가 될 수도 없었을 거고 진작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라며 "어떻게 참모가 지휘관, 즉 자신의 주군 의사와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행동에 옮기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서 전 사장도 최후 진술에서 "이번 사건은 최고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 사항을 실행 관련 부서에 전달하거나 제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당시 저로서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고민이 많았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면 이 전 회장 측은 이번 부정채용은 성격이 급한 서 전 사장 스타일이지 원칙에 엄격한 이 전 회장의 스타일이 아니라며, 모든 진행 상황이 서 전 사장에게만 보고돼 이 전 회장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전 의원과 평소 친분이 있던 것도 이 전 회장이 아닌 서 전 사장이라고 했죠.

이 전 회장도 "이 자리에서 참으로 무궁한 한이 가슴에 서린다"며 평소 '인사를 만사'라고 생각하며 고군분투해왔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KT는 수십만 명의 생존이 걸려있는 '치열한 전장 속 부대' 같았다며 "부대가 처한 전체적인 상황을 보지 않고 지휘관을 단죄하면 영웅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의사결정에서 실무자들이 제 재량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들만 결정했지, 그에 벗어난 것은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사기업' KT의 항변…"이런 식이면 채용 담당은 전부 범죄자"

이렇게 팽팽하게 맞선 이석채 전 회장과 서유열 전 사장도 한 가지 부분에선 의견의 합치를 봤습니다. 두 사람은 김 전 의원의 딸뿐 아니라 2012년 KT의 상·하반기 신입사원 공식채용과 홈고객부문 공채에서 유력 인사들의 청탁을 받아 10여 명의 부정채용에 가담한 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이들은 '100% 사기업'인 KT로선, 기업의 이익을 위해 유력자의 추천을 받은 지원자에게 기회를 조금 더 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관심 지원자', '내부임원 추천자' 등의 명단을 관리해왔던 것도 오히려 무분별한 청탁을 인재경영실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 전 사장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과연 경제적 민주주의에서 착안한 우리 헌법의 원칙이 뭔지 고민해달라"며 "만약 이 사건처럼 채용 과정에서 면접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형사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하면 앞으로 중소기업과 관련해서도 채용 담당자는 전부 다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 회장의 변호인도 "채용과 관련한 범죄 성립 여부는 사업 규모와 목적, 당시 시대적 상황, 조작 행위가 있었는지,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채용 공정성이 중시되는 지금 이 시점과 달리, 이 사건이 문제 된 건 2012년인데 그 당시엔 그 누구도 이런 채용권 행사가 위법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이 얘기했듯 2020년 현재, 우리 사회에선 '채용 공정성'이 큰 화두가 되고 있죠. 늘어나는 청년 실업 인구와 코로나19 확산으로 더 팍팍해진 취업 전선 속에서, 불공정한 '부모찬스'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지고 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오석준)는 다음 달 20일, 김 전 의원과 이 전 회장, 서 전 사장에 대한 2심 선고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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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의원이 딸을 계약직에 청탁하나”…‘1심무죄’ 김성태, 눈물의 항변
    • 입력 2020-10-19 07:00:14
    취재K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인생, 결혼을 준비하던 제 딸아이는 변변치 않은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그동안 노력과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했습니다. 5천여 개 언론 보도가 매일 쏟아져나왔고 그 기사마다 저와 딸아이를 모욕하는 댓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 302호 법정. 김성태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감정이 격해진 듯 눈물을 보이며 호소했습니다. 이날은 딸의 KT 부정채용 의혹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김 전 의원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 "특혜 YES, 뇌물 NO"…1심서 '반쪽 무죄'받은 김성태

검찰은 김 전 의원의 딸이 2011년 서유열 전 KT 사장에 대한 청탁을 통해 KT스포츠단에 파견계약직으로 채용된 뒤, 2012년 이석채 전 KT 회장의 국회 국정감사 증인 채택 무마를 대가로 KT 정규직에 채용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딸과 '이익공동체' 관계에 있는 김 전 의원이, 이 전 회장으로부터 '뇌물'로서 정규직 취업 특혜를 받았다는 게 공소 요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1월, 1심 법원은 김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채 전 회장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실 재판부는 김 전 의원의 딸이 2011년 KT스포츠단 파견계약직과 2012년 KT 정규직에 부정채용 됐다는 점은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아버지가 전달한 이력서로 '콕 집어' 채용된 뒤 통상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이미 지원 기간이 끝난 공채에 '올라타' 불합격에 해당하는 시험 결과를 뒤집고 채용되는 등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여러 특혜를 받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김 전 의원 딸의 부정채용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진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의심할 만한 정황은 있었지만 이 전 회장의 뇌물공여가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으니, 김 전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에도 자연스럽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죠.

특혜는 있었지만, 뇌물은 아니었다는, 조금은 상반된 결론. 김 전 의원으로선 의혹이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은, '반쪽짜리' 무죄 판결을 받아든 셈입니다.

■ 김성태 측 "국회의원은 '파견계약직'을 청탁하진 않습니다"

"세상에 어느 아비가, 자식을 직접 고용 계약직도 아닌 파견회사 소속의 비정규직을 시켜달라고 청탁하겠습니까!"

이를 의식한 듯, 김 전 의원은 2심 결심공판에서도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2011년 딸에 대한 파견계약직 취업 청탁은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2012년 정규직 채용 역시 통상과 다른 점은 있었지만, 김 전 의원이 직접 청탁해 이 전 회장이 지시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죠.

김 전 의원과 변호인들은 설마 '국회의원'인 김 전 의원이 정규직도 아닌 파견계약직으로 딸의 취업을 청탁할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는데요. 지방 출장이 잦고 처우가 좋지 않은 파견계약직 자리에 자녀를 뽑아달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는 얘깁니다.

또 김 전 의원이 딸의 이력서를 전달했고 이 전 회장이 정규직 채용을 지시했다는 서유열 전 사장의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이번 사건은 검사의 억지스러운 기소였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김성태에 대한 재판에 김성태에 관한 증거는 없다"며 "검찰 역시 제가 직접 어떠한 청탁도 하지 않았던 점을 인정해 당초 저에 대한 고소 명분인 업무방해죄를 불기소 처분했는데도, 거짓 진술과 억지 법리에 기대 뇌물죄로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후 진술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러 차례 울컥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재판부 "김성태 딸, 대기업 대졸 공채 응시한 적 있나?"

김 전 의원 측의 최후변론을 들은 재판부는 한 가지 날카로운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변호인께 묻습니다. 김 전 의원의 딸은 말이죠. 대기업 대졸 공채에 응시한 적이 있습니까?"

앞서 김 전 의원 측은, 파견계약직으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딸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KT 정규직에 입사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해왔죠. 파견계약직 자리는 처우가 좋지 않아, 애초에 청탁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해왔습니다. 재판부가 이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해, 김 전 의원 딸이 평소에도 대졸 신입 공채에 응시해왔는지, 대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해왔는지 질문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변호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재판부는 "2011년이면 김 전 의원 딸이 졸업한 해다. 2011년도와 2012년도 대졸 공채에 응시할 기회, 시간적 여유가 굉장히 많은데 왜 대졸 공개채용에 응시한 적이 없느냐"고 다시 물었죠.

변호인은 "본인 말에 의하면 본인이 (대학에서) 스포츠와 관련한 공부를 했는데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건 희망하지 않았고, 사무직으로 변경하고 싶어 했다"라며 "스포츠를 공부한 사람이 처음부터 사무직으로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경력을 쌓으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런 내용을 당시 스포츠를 전공했던 선배들에게서 들어서 본인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연수원에서 배운 '코끼리 그림' 언급한 검사…"정의가 아니다"

1심에서 '무죄'라는 고배를 마신 검찰도, 이날 결심공판에서 작심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준비한 최종변론 PT 발표를 마친 뒤 "여기 슬라이드엔 없습니다만, 최종 의견을 말하기 전에 한 말씀 드리겠다"며 운을 뗐죠.

"제가 예전에 '합리적 의심'과 '단순한 추측'을 어떻게 구별하느냐를 연수원에서 배울 때, 코끼리가 그려진 모자이크 그림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모자이크를 모두 다 뒤집어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모자이크 몇 개를 뒤집어 봤을 때 코끼리임이 명백하다고 판단된다면 '합리적 의심'은 지운 게 아닌가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코끼리 그림'까지 언급하며 김 전 의원 등에게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검찰은, 서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 등 지엽적인 부분을 가지고 진실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KT에서 부정채용이 있었다고 하는데, 누가, 어떻게, 왜 한 것인지 1심에서는 정확히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판단했을 땐 결국에는 KT가 당시 이석채 회장의 증인 채택을 방어하기 위해서 당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김성태 의원의 딸을 무리하게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서유열 사장이 언제 밥을 먹었다는 등 지엽적인 부분으로 실체적 진실을 덮는 건 정의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이날 김 전 의원과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서유열 전 사장에 대해선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엇갈린 '주군'과 '참모'…이석채 VS 서유열, 지시냐 독단이냐

김성태 전 의원 딸의 채용을 두고, 한때 가장 가까운 사이였을 이석채 전 회장과 서유열 전 사장의 진술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해 온 서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인데요. 이 전 회장과 김 전 의원 측에서는 이 신빙성을 맹공격하고 있고, 1심 재판부 역시 서 전 사장의 진술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서유열 전 사장 측은 '주군'과 '참모'의 관계를 언급하며 모든 책임이 이 전 회장에게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호인은 "이석채 전 회장은 아무 관여를 안 했고 핵심 참모인 서유열 전 사장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보는 건 상식에도 어긋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서 전 사장이 여태까지 그런 일을 했으면 핵심 참모가 될 수도 없었을 거고 진작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라며 "어떻게 참모가 지휘관, 즉 자신의 주군 의사와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행동에 옮기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서 전 사장도 최후 진술에서 "이번 사건은 최고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 사항을 실행 관련 부서에 전달하거나 제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당시 저로서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고민이 많았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면 이 전 회장 측은 이번 부정채용은 성격이 급한 서 전 사장 스타일이지 원칙에 엄격한 이 전 회장의 스타일이 아니라며, 모든 진행 상황이 서 전 사장에게만 보고돼 이 전 회장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전 의원과 평소 친분이 있던 것도 이 전 회장이 아닌 서 전 사장이라고 했죠.

이 전 회장도 "이 자리에서 참으로 무궁한 한이 가슴에 서린다"며 평소 '인사를 만사'라고 생각하며 고군분투해왔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KT는 수십만 명의 생존이 걸려있는 '치열한 전장 속 부대' 같았다며 "부대가 처한 전체적인 상황을 보지 않고 지휘관을 단죄하면 영웅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의사결정에서 실무자들이 제 재량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들만 결정했지, 그에 벗어난 것은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사기업' KT의 항변…"이런 식이면 채용 담당은 전부 범죄자"

이렇게 팽팽하게 맞선 이석채 전 회장과 서유열 전 사장도 한 가지 부분에선 의견의 합치를 봤습니다. 두 사람은 김 전 의원의 딸뿐 아니라 2012년 KT의 상·하반기 신입사원 공식채용과 홈고객부문 공채에서 유력 인사들의 청탁을 받아 10여 명의 부정채용에 가담한 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이들은 '100% 사기업'인 KT로선, 기업의 이익을 위해 유력자의 추천을 받은 지원자에게 기회를 조금 더 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관심 지원자', '내부임원 추천자' 등의 명단을 관리해왔던 것도 오히려 무분별한 청탁을 인재경영실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 전 사장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과연 경제적 민주주의에서 착안한 우리 헌법의 원칙이 뭔지 고민해달라"며 "만약 이 사건처럼 채용 과정에서 면접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형사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하면 앞으로 중소기업과 관련해서도 채용 담당자는 전부 다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 회장의 변호인도 "채용과 관련한 범죄 성립 여부는 사업 규모와 목적, 당시 시대적 상황, 조작 행위가 있었는지,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채용 공정성이 중시되는 지금 이 시점과 달리, 이 사건이 문제 된 건 2012년인데 그 당시엔 그 누구도 이런 채용권 행사가 위법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이 얘기했듯 2020년 현재, 우리 사회에선 '채용 공정성'이 큰 화두가 되고 있죠. 늘어나는 청년 실업 인구와 코로나19 확산으로 더 팍팍해진 취업 전선 속에서, 불공정한 '부모찬스'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지고 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오석준)는 다음 달 20일, 김 전 의원과 이 전 회장, 서 전 사장에 대한 2심 선고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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