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비 빼돌려 도박 탕진”…‘쌈짓돈’ 전락 막는법?

입력 2020.10.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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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화홍 씨는 올해도 총학생회비를 평소와 같이 걷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학사 일정이 거의 중단돼 학교 측이 등록금의 10%를 돌려줬는데, 그렇다면 총학생회비 역시 돌려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이런 의견은 이화홍 씨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학생들이 총학생회비 일부를 돌려주거나 그동안 사용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 씨는 "대학교 SNS에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이 적힌) 장부 공개를 요청하는 글이 매일 올라올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총학생회 측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 공개가 늦어지자 그는 직접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총학생회를 직접 찾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총학생회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총학생회 관계자에게 연락을 해보니 "올해는 코로나 19로 학생회가 모일 기회가 많이 없어서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이 적힌) 장부 공개에 대한 준비가 안 됐다. 지금은 보여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총학생회비 공개 요구 SNS 글(위), 서경대 총학생회의 횡령 사건 회의록(아래) 총학생회비 공개 요구 SNS 글(위), 서경대 총학생회의 횡령 사건 회의록(아래)

■38차례에 걸쳐 2천여만 원 횡령...범행 3개월간 아무도 몰라

SNS 등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란 목소리는 커져갔습니다. 결국 지난 19일 서경대 총학생회는 그동안의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7월 22일부터 사용 내역을 정리하기 하루 전인 지난 18일까지 38차례에 걸쳐 2천여만 원이 사라진 것이 드러났습니다.

3개월간 수십 차례에 걸쳐 돈이 사라졌지만, 그동안 아무도 횡령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그동안 총학생회비 통장과 (사용 내역) 장부를 관리하던 총학생회 한 간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이 6천여만 원에 달하는 총학생회비와 관련된 모든 권리와 권한을 전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돈을 횡령한 사람은 그 간부였습니다. 그는 불법 사설 도박과 통신비에 사용하려고 학생회비를 횡령했다고 총학생회 관계자들에게 털어놨다고 합니다.

재학생들 "터질 게 터졌다...깜깜이 총학생회 운영이 사건의 원인"

총학생회비 횡령 사건이 알려지자 서경대학교 재학생들은 총학생회의 폐쇄적 운영이 이번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총학생회 횡령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취재진에 질문에 서경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 모 학생은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씨는 "(한 학기에 한 번)단과대 회장단이나 학과 대표들만 모인 회의에서만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다른 학생들은 알 수 없는 구조"라면서 "(총학생회비)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일반 재학생들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식으로 깜깜이로 시행되는 회의나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 장부 공개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서경대 총학생회 관계자서경대 총학생회 관계자

■ 또다시 반복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취재 결과 서경대학교는 총학생회비 관련 교칙이 없었습니다. 또 총학생회 안팎에 총학생회비 감사를 담당하는 학생 자치 기구 또한 없는 상태였습니다. 총학생회 내부 회칙에 따라 한 학기에 한 번 단과대 회장단과 과 대표 등이 모인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에서 사무 보고만 됐습니다. 학교에는 일 년에 한 번만 회비 사용 내역이 보고됐습니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관리 소홀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총학생회비 관리를 투명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와 협력해 진상조사위를 설치하겠다"면서 "(앞으로)특별 감사기구를 구성해 주기적으로 총학생회비를 관리하거나 총학생회비 통장을 학생처로 일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총학생회비를 빼돌린 간부에 대해서는 학교에 상벌위원회를 요청한 뒤 횡령에 대한 법적 대응도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창인 이상한대학교 이사장김창인 이상한대학교 이사장

■ 반복되는 횡령 막기 위해선 어떻게?

지난해 한양대와 건국대에서도 총학생회 간부가 총학생회비를 횡령해 각각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뒤 해당 총학생회는 총학생회 내 회계 감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두거나 학교 학생처에 총학생회비를 맡기고 필요할 때마다 예산을 요청하는 방식 등으로 총학생회비 관련 부정을 막고 있습니다.

대학 총학생회비 횡령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 김창인 이상한대학교 이사장은 일반 재학생들이 총학생회 운영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를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김 이사장은 "(총학생회가)학생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동떨어져 있는 분리된 공간으로 자리 잡다 보니깐 깜깜이 문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학생회 운영에 대한 권한과 권리 그리고 책임감을 투명하게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복원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예산과 관련해서도 예결산을 보통 학생회 총회에서만 공유하는데 조금 더 일상적으로 학우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반복되는 횡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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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학생회비 빼돌려 도박 탕진”…‘쌈짓돈’ 전락 막는법?
    • 입력 2020-10-24 11:05:51
    취재K
서경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화홍 씨는 올해도 총학생회비를 평소와 같이 걷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학사 일정이 거의 중단돼 학교 측이 등록금의 10%를 돌려줬는데, 그렇다면 총학생회비 역시 돌려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이런 의견은 이화홍 씨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학생들이 총학생회비 일부를 돌려주거나 그동안 사용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 씨는 "대학교 SNS에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이 적힌) 장부 공개를 요청하는 글이 매일 올라올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총학생회 측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 공개가 늦어지자 그는 직접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총학생회를 직접 찾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총학생회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총학생회 관계자에게 연락을 해보니 "올해는 코로나 19로 학생회가 모일 기회가 많이 없어서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이 적힌) 장부 공개에 대한 준비가 안 됐다. 지금은 보여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총학생회비 공개 요구 SNS 글(위), 서경대 총학생회의 횡령 사건 회의록(아래)
■38차례에 걸쳐 2천여만 원 횡령...범행 3개월간 아무도 몰라

SNS 등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란 목소리는 커져갔습니다. 결국 지난 19일 서경대 총학생회는 그동안의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7월 22일부터 사용 내역을 정리하기 하루 전인 지난 18일까지 38차례에 걸쳐 2천여만 원이 사라진 것이 드러났습니다.

3개월간 수십 차례에 걸쳐 돈이 사라졌지만, 그동안 아무도 횡령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그동안 총학생회비 통장과 (사용 내역) 장부를 관리하던 총학생회 한 간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이 6천여만 원에 달하는 총학생회비와 관련된 모든 권리와 권한을 전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돈을 횡령한 사람은 그 간부였습니다. 그는 불법 사설 도박과 통신비에 사용하려고 학생회비를 횡령했다고 총학생회 관계자들에게 털어놨다고 합니다.

재학생들 "터질 게 터졌다...깜깜이 총학생회 운영이 사건의 원인"

총학생회비 횡령 사건이 알려지자 서경대학교 재학생들은 총학생회의 폐쇄적 운영이 이번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총학생회 횡령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취재진에 질문에 서경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 모 학생은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씨는 "(한 학기에 한 번)단과대 회장단이나 학과 대표들만 모인 회의에서만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다른 학생들은 알 수 없는 구조"라면서 "(총학생회비)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일반 재학생들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식으로 깜깜이로 시행되는 회의나 (총학생회비 사용 내역) 장부 공개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서경대 총학생회 관계자
■ 또다시 반복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취재 결과 서경대학교는 총학생회비 관련 교칙이 없었습니다. 또 총학생회 안팎에 총학생회비 감사를 담당하는 학생 자치 기구 또한 없는 상태였습니다. 총학생회 내부 회칙에 따라 한 학기에 한 번 단과대 회장단과 과 대표 등이 모인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에서 사무 보고만 됐습니다. 학교에는 일 년에 한 번만 회비 사용 내역이 보고됐습니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관리 소홀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총학생회비 관리를 투명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와 협력해 진상조사위를 설치하겠다"면서 "(앞으로)특별 감사기구를 구성해 주기적으로 총학생회비를 관리하거나 총학생회비 통장을 학생처로 일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총학생회비를 빼돌린 간부에 대해서는 학교에 상벌위원회를 요청한 뒤 횡령에 대한 법적 대응도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창인 이상한대학교 이사장
■ 반복되는 횡령 막기 위해선 어떻게?

지난해 한양대와 건국대에서도 총학생회 간부가 총학생회비를 횡령해 각각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뒤 해당 총학생회는 총학생회 내 회계 감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두거나 학교 학생처에 총학생회비를 맡기고 필요할 때마다 예산을 요청하는 방식 등으로 총학생회비 관련 부정을 막고 있습니다.

대학 총학생회비 횡령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 김창인 이상한대학교 이사장은 일반 재학생들이 총학생회 운영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를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김 이사장은 "(총학생회가)학생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동떨어져 있는 분리된 공간으로 자리 잡다 보니깐 깜깜이 문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학생회 운영에 대한 권한과 권리 그리고 책임감을 투명하게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복원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예산과 관련해서도 예결산을 보통 학생회 총회에서만 공유하는데 조금 더 일상적으로 학우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반복되는 횡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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