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교수 “청산리 승전 중국인에 감명”…서화전 열려
입력 2020.10.27 (06:59)
수정 2020.10.2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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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26일)는 청산리 대첩 승전일이자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사를 연구한 중국의 학자는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감명과 함께 영감을 주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선양에서 오세균 특파원 보도입니다.
[리포트]
백 년 전인 1920년 10월 26일.
김좌진,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우리 독립군은 10여 차례 전투 끝에 대승을 거뒀습니다.
천 2백여 명의 전사자를 낸 일본군에 비해, 독립군 전사자는 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대승에 청산리 일대의 중국인들의 협조도 한 몫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오위춘/랴오닝샤회과학원 前 교수 : "전투 중 한족,만주족이 밥을 조달했고 부상당한 장병들을 돌봤습니다."]
청산리 대첩의 승전보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청산리 대첩 이후 중국의 젊은이들은 독립군과 함께 항일 대오에 함께 했다고 말합니다.
[사오위춘/랴오닝사회과학원 前 교수 : "많은 중국 농민들은 조선인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우는데 감명을 받고 너나 할 것 없이 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전 백주년을 맞아 중국 선양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좌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어록 46점이 전시돼 항일 독립의지를 되새겼습니다.
[전정혁/요녕항일영렬연구실 주임 : "그때 직접 전투에 참가 하신 분들이 남긴 어록 유언 시를 발굴했습니다."]
항일 무장 투쟁이 벌어졌던 만주에서 열린 기념식은 청산리 전투 백주년을 맞아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오세균입니다.
영상편집:김형균
어제(26일)는 청산리 대첩 승전일이자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사를 연구한 중국의 학자는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감명과 함께 영감을 주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선양에서 오세균 특파원 보도입니다.
[리포트]
백 년 전인 1920년 10월 26일.
김좌진,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우리 독립군은 10여 차례 전투 끝에 대승을 거뒀습니다.
천 2백여 명의 전사자를 낸 일본군에 비해, 독립군 전사자는 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대승에 청산리 일대의 중국인들의 협조도 한 몫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오위춘/랴오닝샤회과학원 前 교수 : "전투 중 한족,만주족이 밥을 조달했고 부상당한 장병들을 돌봤습니다."]
청산리 대첩의 승전보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청산리 대첩 이후 중국의 젊은이들은 독립군과 함께 항일 대오에 함께 했다고 말합니다.
[사오위춘/랴오닝사회과학원 前 교수 : "많은 중국 농민들은 조선인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우는데 감명을 받고 너나 할 것 없이 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전 백주년을 맞아 중국 선양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좌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어록 46점이 전시돼 항일 독립의지를 되새겼습니다.
[전정혁/요녕항일영렬연구실 주임 : "그때 직접 전투에 참가 하신 분들이 남긴 어록 유언 시를 발굴했습니다."]
항일 무장 투쟁이 벌어졌던 만주에서 열린 기념식은 청산리 전투 백주년을 맞아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오세균입니다.
영상편집:김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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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6일)는 청산리 대첩 승전일이자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사를 연구한 중국의 학자는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감명과 함께 영감을 주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선양에서 오세균 특파원 보도입니다.
[리포트]
백 년 전인 1920년 10월 26일.
김좌진,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우리 독립군은 10여 차례 전투 끝에 대승을 거뒀습니다.
천 2백여 명의 전사자를 낸 일본군에 비해, 독립군 전사자는 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대승에 청산리 일대의 중국인들의 협조도 한 몫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오위춘/랴오닝샤회과학원 前 교수 : "전투 중 한족,만주족이 밥을 조달했고 부상당한 장병들을 돌봤습니다."]
청산리 대첩의 승전보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청산리 대첩 이후 중국의 젊은이들은 독립군과 함께 항일 대오에 함께 했다고 말합니다.
[사오위춘/랴오닝사회과학원 前 교수 : "많은 중국 농민들은 조선인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우는데 감명을 받고 너나 할 것 없이 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전 백주년을 맞아 중국 선양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좌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어록 46점이 전시돼 항일 독립의지를 되새겼습니다.
[전정혁/요녕항일영렬연구실 주임 : "그때 직접 전투에 참가 하신 분들이 남긴 어록 유언 시를 발굴했습니다."]
항일 무장 투쟁이 벌어졌던 만주에서 열린 기념식은 청산리 전투 백주년을 맞아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오세균입니다.
영상편집:김형균
어제(26일)는 청산리 대첩 승전일이자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사를 연구한 중국의 학자는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감명과 함께 영감을 주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선양에서 오세균 특파원 보도입니다.
[리포트]
백 년 전인 1920년 10월 26일.
김좌진,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우리 독립군은 10여 차례 전투 끝에 대승을 거뒀습니다.
천 2백여 명의 전사자를 낸 일본군에 비해, 독립군 전사자는 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대승에 청산리 일대의 중국인들의 협조도 한 몫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오위춘/랴오닝샤회과학원 前 교수 : "전투 중 한족,만주족이 밥을 조달했고 부상당한 장병들을 돌봤습니다."]
청산리 대첩의 승전보는 중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청산리 대첩 이후 중국의 젊은이들은 독립군과 함께 항일 대오에 함께 했다고 말합니다.
[사오위춘/랴오닝사회과학원 前 교수 : "많은 중국 농민들은 조선인이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우는데 감명을 받고 너나 할 것 없이 전투에 뛰어들었습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전 백주년을 맞아 중국 선양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좌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어록 46점이 전시돼 항일 독립의지를 되새겼습니다.
[전정혁/요녕항일영렬연구실 주임 : "그때 직접 전투에 참가 하신 분들이 남긴 어록 유언 시를 발굴했습니다."]
항일 무장 투쟁이 벌어졌던 만주에서 열린 기념식은 청산리 전투 백주년을 맞아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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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균 기자 sk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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