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납치’ 전화 의심한 시민, 금융사기범 잡아

입력 2020.10.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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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아들 빚 안 갚으면 목숨 위험"

65살 A 씨는 지난 22일, 낯선 전화 한 통을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들의 친구가 5천만 원을 빌려 간 뒤 도주했고, 보증을 선 아들이 갚지 않으면 해치겠다고 협박하는 전화였습니다.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습니다. 아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에, "당장 통장에 있는 돈을 빼서 모두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 갑자기 '사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A 씨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일단 "현금 인출용 도장을 찾겠다"고 협박범을 진정시켰습니다. 휴대전화를 잠시 멀리 두고, 아내에게 조용히 통화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는 곧장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직장에서 무사히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범인 검거를 위해 A 씨와 은행원이 인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당시 은행 CCTV 화면.범인 검거를 위해 A 씨와 은행원이 인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당시 은행 CCTV 화면.

■ "전화 금융 사기범과 통화 중…검거 위해 협조해 달라" 기지 발휘

아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A 씨.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로 아내의 휴대전화로 112에 신고합니다. 그리고는 사기범이 시키는 대로 동네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창구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척하며 범인과 잠시 통화를 중단한 뒤, 곧장 직원에게 다가가 "금융 사기 전화를 받았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기지를 발휘합니다. "범인과 통화하면서 2천만 원을 빼내는 척할 테니, 도와달라"고 은행 직원에게 요청한 겁니다.

다시 범인과 통화를 이어가게 된 A 씨. 은행 직원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음성을 통화로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고객께서 5백만 원 이상 인출하실 때, 꼭 여쭤봐야 하는데요. 혹시, 금융 사기로 의심되는 전화 받으셨습니까?"
"아니요."
"알겠습니다. 요청하신 금액, 인출해 드리겠습니다."

은행 직원은 100만 원 현금다발을 세는 기계 소리까지 일부러 들려주며 범인을 안심시켰습니다. 범인이 어디선가 몰래 보고 있을 것을 의식해, 빈 종이 가방을 탁상용 달력으로 채워 넣는 시늉까지 했습니다.

가짜 현금 가방을 들고 범인과 약속한 장소로 향한 A 씨. 접선 장소로 직접 차를 몰고 가던 도중, 사복을 입고 기다리던 경찰을 뒷자리에 태웁니다. 통화하던 범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엔 외국 국적의 현금 수거책, 33살 B 씨가 나와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 자리에서 B 씨를 검거했습니다. A 씨가 금융 사기 전화를 받은 지, 3시간여 만입니다.

경찰 조사 결과, B 씨는 충북 청주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현금 수거책으로 활동하면서 1억 원 상당의 금융 사기 피해액을 조직에 넘겨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충북 청주 흥덕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구속된 B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 "납치 협박 금융사기 끊이지 않아…의심스러운 전화, 무조건 끊어야"

"자녀를 납치했다"고 협박하면서 현금을 요구하는 금융 사기는 초기 단계의 가장 흔한 수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날이 교묘하게 진화하는 다른 금융 사기보다 의심하기 쉽다고 알려졌지만,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주 흥덕경찰서 보이스피싱 예방전담팀 소속 김서현 경위는 "문화상품권 등의 고유번호를 요구하는, 이른바 '메신저 피싱' 사기가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최근에 이런 '협박 전화' 사기 피해 신고가 다시 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자녀의 신변을 직접 위협하는 척 협박하니 미처 의심하지 못하고 돈을 건네는 사례가 많다"고도 말했습니다.

나날이 진화하는 각종 전화 금융 사기 피해를 막을 방법은 뭘까요?
첫째도 '의심', 둘째도 '의심', 셋째도 '의심'입니다.
현금을 요구하는 전화 통화나 문자 메시지는 우선 의심하고, 직접 확인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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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납치’ 전화 의심한 시민, 금융사기범 잡아
    • 입력 2020-10-28 07:01:55
    취재K

■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아들 빚 안 갚으면 목숨 위험"

65살 A 씨는 지난 22일, 낯선 전화 한 통을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들의 친구가 5천만 원을 빌려 간 뒤 도주했고, 보증을 선 아들이 갚지 않으면 해치겠다고 협박하는 전화였습니다.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습니다. 아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에, "당장 통장에 있는 돈을 빼서 모두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 갑자기 '사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A 씨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일단 "현금 인출용 도장을 찾겠다"고 협박범을 진정시켰습니다. 휴대전화를 잠시 멀리 두고, 아내에게 조용히 통화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는 곧장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직장에서 무사히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범인 검거를 위해 A 씨와 은행원이 인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당시 은행 CCTV 화면.
■ "전화 금융 사기범과 통화 중…검거 위해 협조해 달라" 기지 발휘

아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A 씨.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로 아내의 휴대전화로 112에 신고합니다. 그리고는 사기범이 시키는 대로 동네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창구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척하며 범인과 잠시 통화를 중단한 뒤, 곧장 직원에게 다가가 "금융 사기 전화를 받았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기지를 발휘합니다. "범인과 통화하면서 2천만 원을 빼내는 척할 테니, 도와달라"고 은행 직원에게 요청한 겁니다.

다시 범인과 통화를 이어가게 된 A 씨. 은행 직원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음성을 통화로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고객께서 5백만 원 이상 인출하실 때, 꼭 여쭤봐야 하는데요. 혹시, 금융 사기로 의심되는 전화 받으셨습니까?"
"아니요."
"알겠습니다. 요청하신 금액, 인출해 드리겠습니다."

은행 직원은 100만 원 현금다발을 세는 기계 소리까지 일부러 들려주며 범인을 안심시켰습니다. 범인이 어디선가 몰래 보고 있을 것을 의식해, 빈 종이 가방을 탁상용 달력으로 채워 넣는 시늉까지 했습니다.

가짜 현금 가방을 들고 범인과 약속한 장소로 향한 A 씨. 접선 장소로 직접 차를 몰고 가던 도중, 사복을 입고 기다리던 경찰을 뒷자리에 태웁니다. 통화하던 범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엔 외국 국적의 현금 수거책, 33살 B 씨가 나와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 자리에서 B 씨를 검거했습니다. A 씨가 금융 사기 전화를 받은 지, 3시간여 만입니다.

경찰 조사 결과, B 씨는 충북 청주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현금 수거책으로 활동하면서 1억 원 상당의 금융 사기 피해액을 조직에 넘겨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충북 청주 흥덕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구속된 B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 "납치 협박 금융사기 끊이지 않아…의심스러운 전화, 무조건 끊어야"

"자녀를 납치했다"고 협박하면서 현금을 요구하는 금융 사기는 초기 단계의 가장 흔한 수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날이 교묘하게 진화하는 다른 금융 사기보다 의심하기 쉽다고 알려졌지만,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주 흥덕경찰서 보이스피싱 예방전담팀 소속 김서현 경위는 "문화상품권 등의 고유번호를 요구하는, 이른바 '메신저 피싱' 사기가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최근에 이런 '협박 전화' 사기 피해 신고가 다시 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자녀의 신변을 직접 위협하는 척 협박하니 미처 의심하지 못하고 돈을 건네는 사례가 많다"고도 말했습니다.

나날이 진화하는 각종 전화 금융 사기 피해를 막을 방법은 뭘까요?
첫째도 '의심', 둘째도 '의심', 셋째도 '의심'입니다.
현금을 요구하는 전화 통화나 문자 메시지는 우선 의심하고, 직접 확인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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