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수두룩한데 시골?…엉터리 ‘귀촌 통계’

입력 2020.10.2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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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배방읍의 고층 아파트충남 아산시 배방읍의 고층 아파트
■ 고층 빌딩이 수두룩한 '농촌'?

여기 고층 빌딩이 수두룩한 '농촌'이 있습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이야기입니다. 배방읍에는 KTX 천안·아산역과 대형 할인점 2곳, 30층 주상복합아파트에 번듯한 상가 건물이 있습니다. 충남에 있는 30층 이상 고층 건물의 90%가 이곳 배방읍 등 아산과 천안에 몰려있는데요. 그야말로 번화한 도심지인 셈입니다. 이런 배방읍이 '귀촌 통계' 상 농촌으로 분류됩니다. 귀촌 통계는 도시에서 살다 농촌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의 규모를 파악하는 자료인데요. 이 귀촌 통계가 배방읍을 농촌으로, 배방읍에 이사 오는 사람 중 일부를 '귀촌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 나도 모르는 새 '귀촌인'

그런데 정작 배방읍 주민 상당수는 농촌이나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삽니다. 주민 중에는 지역에 있는 대기업 등에 다니는 사람이 많고요. 인근 대도시인 서울이나 대전으로 출퇴근하려고 KTX 역이 가까운 배방읍을 택하기도 합니다. 취재팀이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백화점이나 마트, 영화관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배방읍을 택했다고도 했습니다. 도시 인프라가 좋아서 산다는 말입니다. 주민들은 그런 배방읍이 통계상 농촌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또, 자신이 '귀촌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황당하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요? 귀촌 통계가 도시의 '동' 지역에서 1년 이상 살다 '읍이나 면'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을 귀촌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나도 모르는 새 귀촌인이 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계산된 귀촌인이 지난해 기준 아산에서만 12,000여 명이고 전국에서는 440,000여 명입니다. 실제 현실보다 과다 측정되고 있습니다.

아산의 귀농, 귀촌 지원 사업아산의 귀농, 귀촌 지원 사업
■ 엉터리 통계, 수혜자 없는 정책

더 큰 문제는 이런 엉터리 통계를 근거로 지원 정책까지 쏟아진다는 점입니다. 충남도는 귀촌 통계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아산에 3만 명 넘는 귀촌인이 몰린 것으로 보고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존 영농 농가와 귀농, 귀촌 농가를 연결해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고요. 농사지으라고 돈 빌려주기도 합니다. 아산에서만 10가지 넘는 귀농, 귀촌 지원 사업이 있습니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전체 신청자는 20명도 되지 않습니다. 돕겠다며 펼친 손이 좀 민망해지는 상황이지요. 비단 충청남도 문제만은 아닙니다. 전국의 자치단체가 '귀촌 통계'를 근거로 귀촌 사업을 홍보하고 또 지원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행정력 낭비인 셈입니다.


■ 귀촌 통계는 '행정 통계', "현실과 다를 수 있다"

이런 귀촌 통계를 직접 만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 입장은 어떨까요? 귀촌 통계는 행정 자료로 만드는 '행정 통계'라는 입장입니다. 인구 이동 등 관련 행정 자료로 만들기 때문에 현실과는 일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읍과 면 지역을 농촌으로 보는 관련 법에 근거해 통계를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법적으로 근거도 있고 문제도 없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 현실과의 괴리를 감수하는 통계라면, 그저 있는 자료를 정리하는 통계라면, 또 그렇게 만들어진 통계가 오히려 수혜자 없는 정책을 만들어 행정력 낭비를 불러온다면 그 통계는 왜 만드는 걸까요? 농어촌의 실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보완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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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딩 수두룩한데 시골?…엉터리 ‘귀촌 통계’
    • 입력 2020-10-28 08:03:50
    취재K
충남 아산시 배방읍의 고층 아파트 ■ 고층 빌딩이 수두룩한 '농촌'?

여기 고층 빌딩이 수두룩한 '농촌'이 있습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이야기입니다. 배방읍에는 KTX 천안·아산역과 대형 할인점 2곳, 30층 주상복합아파트에 번듯한 상가 건물이 있습니다. 충남에 있는 30층 이상 고층 건물의 90%가 이곳 배방읍 등 아산과 천안에 몰려있는데요. 그야말로 번화한 도심지인 셈입니다. 이런 배방읍이 '귀촌 통계' 상 농촌으로 분류됩니다. 귀촌 통계는 도시에서 살다 농촌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의 규모를 파악하는 자료인데요. 이 귀촌 통계가 배방읍을 농촌으로, 배방읍에 이사 오는 사람 중 일부를 '귀촌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 나도 모르는 새 '귀촌인'

그런데 정작 배방읍 주민 상당수는 농촌이나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삽니다. 주민 중에는 지역에 있는 대기업 등에 다니는 사람이 많고요. 인근 대도시인 서울이나 대전으로 출퇴근하려고 KTX 역이 가까운 배방읍을 택하기도 합니다. 취재팀이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백화점이나 마트, 영화관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배방읍을 택했다고도 했습니다. 도시 인프라가 좋아서 산다는 말입니다. 주민들은 그런 배방읍이 통계상 농촌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또, 자신이 '귀촌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황당하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요? 귀촌 통계가 도시의 '동' 지역에서 1년 이상 살다 '읍이나 면'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을 귀촌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나도 모르는 새 귀촌인이 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계산된 귀촌인이 지난해 기준 아산에서만 12,000여 명이고 전국에서는 440,000여 명입니다. 실제 현실보다 과다 측정되고 있습니다.

아산의 귀농, 귀촌 지원 사업 ■ 엉터리 통계, 수혜자 없는 정책

더 큰 문제는 이런 엉터리 통계를 근거로 지원 정책까지 쏟아진다는 점입니다. 충남도는 귀촌 통계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아산에 3만 명 넘는 귀촌인이 몰린 것으로 보고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존 영농 농가와 귀농, 귀촌 농가를 연결해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고요. 농사지으라고 돈 빌려주기도 합니다. 아산에서만 10가지 넘는 귀농, 귀촌 지원 사업이 있습니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전체 신청자는 20명도 되지 않습니다. 돕겠다며 펼친 손이 좀 민망해지는 상황이지요. 비단 충청남도 문제만은 아닙니다. 전국의 자치단체가 '귀촌 통계'를 근거로 귀촌 사업을 홍보하고 또 지원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행정력 낭비인 셈입니다.


■ 귀촌 통계는 '행정 통계', "현실과 다를 수 있다"

이런 귀촌 통계를 직접 만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 입장은 어떨까요? 귀촌 통계는 행정 자료로 만드는 '행정 통계'라는 입장입니다. 인구 이동 등 관련 행정 자료로 만들기 때문에 현실과는 일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읍과 면 지역을 농촌으로 보는 관련 법에 근거해 통계를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법적으로 근거도 있고 문제도 없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 현실과의 괴리를 감수하는 통계라면, 그저 있는 자료를 정리하는 통계라면, 또 그렇게 만들어진 통계가 오히려 수혜자 없는 정책을 만들어 행정력 낭비를 불러온다면 그 통계는 왜 만드는 걸까요? 농어촌의 실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보완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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