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뿌려진 가습기 살균제 성분

입력 2020.11.05 (09:17) 수정 2020.11.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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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KBS는 시중에 판매되는 손 소독제 123종에 가습기 살균제 원료 중 하나인 '염화벤잘코늄'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환경부의 '염화벤잘코늄 흡입 독성 시험 결과'에 따르면, 염화벤잘코늄을 지속적으로 흡입한 동물의 호흡기는 물론 피부와 눈이 손상됐습니다.

[연관기사] 시중 판매 손 소독제 123종,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 쓰였다 (2020.10.12. KBS1TV 뉴스9)

그런데 지난해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창궐 당시, 파주와 연천 등 접경지역에 뿌려졌던 소독제에도 문제의 성분인 염화벤잘코늄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멧돼지가 옮기는 ASF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드론과 헬기로 대대적인 방역이 이뤄졌던 때입니다.

■상공에서 뿌려진 가습기 살균제 성분…"물·토양에 축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이 시기 ASF 항공방제에 사용된 소독제 12개 중 모두 4개의 제품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확인됐습니다. 2개 제품에서 염화벤잘코늄이 사용됐고, 나머지 품목에선 대표적인 가습기 살균제 물질인 '디데실디메틸암모늄(DDAC)'이 쓰였습니다.

항공방제 살균제에 DDAC가 포함됐다는 사실은 지역 환경단체의 지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이지만, 염화벤잘코늄 성분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취재 결과, 2천ℓ가 넘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 소독제가 임진강 일대를 비롯한 접경지역에 뿌려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희대학교 부설 동서의학연구소 박은정 교수는 "염화벤잘코늄이 상공에서 분사될 경우 호흡기에 노출될 수 있고, 물과 토양에 축적돼 인체에 간접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DDAC는 독성이 강하며, 세포막이나 표면에 쉽게 결합하고 분해가 거의 되지 않는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주민·환경단체 "임진강 물고기 급감"

ASF 방역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항공방제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은 없을 거란 입장입니다. 사람과 농가가 있는 지역을 피해서 살균제를 분사했단 겁니다. 농림부 관계자는 "산림과 수풀 등 차량 접근이 힘든 지역을 중심으로 항공방제를 시행했다"며 "임진강 등 수면에 직접 살균제를 분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어민들은 실질적인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특히 항공방제를 기점으로 임진강 일대 물고기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경구 파주시 어촌계장은 "실뱀장어와 황복의 어획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 수입이 반 토막 났다"라면서 "유해 어종인 강준치 외에는 잡히는 고기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물에 소독제를 분사하지 않았다는 농림부 설명과 달리,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임진강 일대에 직접 살균제가 분사되는 모습을 봤다고도 주장합니다. 이 계장은 "어민들 상당수가 민통선 인근 임진강에 소독제가 직접 뿌려지는 걸 봤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1월 환경부가 실시한 임진강물 시료 분석 결과를 보면, 염화벤잘코늄과 DDAC가 소량 검출됐습니다. 환경부는 어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농도라고 봤지만, 석 달이나 지난 시점에 조사했는데도 흐르는 물속에 문제의 물질이 남아있었다는 걸 확인한 대목입니다.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ASF 항공방제가 시행된 일대의 토양과 하천과 농가에 대해 지속적인 사후 영향 평가가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경구 파주시 어촌계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이경구 파주시 어촌계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농림부 "지난해 10월부터 사용 중단…구연산제로 변경"

염화벤잘코늄이나 DDAC가 들어간 소독제는 원래 축사의 바닥을 닦는 데 사용되는 제품입니다. 성분이 독하다 보니, ASF 방역 목적으로 해당 제품을 사용할 때는 물을 500배 희석배수로 섞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소독제 1ℓ를 사용하려면 물 500ℓ를 섞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소독제들이 희석배수를 지켜 분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주무부처는 제품의 권장 희석배수를 지자체에 알려주기만 하고, 실제 방역에서 희석배수가 지켜졌는지 등 결과보고서조차 받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농림부 관계자는 "용법·용량에 대해 지자체에 알리면 실제 방역은 현장의 판단으로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문제가 된 소독제는 지난해 10월 22일 이후에 더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농림부도 사실상 해당 제품들의 유해성을 인정하고 독성이 덜한 구연산 소독제를 쓰도록 한 겁니다. 하지만 9월부터 10월까지 실시된 항공방제에서 이미 많은 양의 소독제가 분사된 만큼, 환경과 인체에 영향이 없는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최종윤 의원은 오늘(5일) 오전 열리는 예결위에서 농림부 장관을 상대로 항공 방제가 진행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평가 계획을 세워달라고 요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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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서 뿌려진 가습기 살균제 성분
    • 입력 2020-11-05 09:17:13
    • 수정2020-11-05 09:17:34
    취재K

지난달, KBS는 시중에 판매되는 손 소독제 123종에 가습기 살균제 원료 중 하나인 '염화벤잘코늄'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환경부의 '염화벤잘코늄 흡입 독성 시험 결과'에 따르면, 염화벤잘코늄을 지속적으로 흡입한 동물의 호흡기는 물론 피부와 눈이 손상됐습니다.

[연관기사] 시중 판매 손 소독제 123종,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 쓰였다 (2020.10.12. KBS1TV 뉴스9)

그런데 지난해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창궐 당시, 파주와 연천 등 접경지역에 뿌려졌던 소독제에도 문제의 성분인 염화벤잘코늄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멧돼지가 옮기는 ASF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드론과 헬기로 대대적인 방역이 이뤄졌던 때입니다.

■상공에서 뿌려진 가습기 살균제 성분…"물·토양에 축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이 시기 ASF 항공방제에 사용된 소독제 12개 중 모두 4개의 제품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확인됐습니다. 2개 제품에서 염화벤잘코늄이 사용됐고, 나머지 품목에선 대표적인 가습기 살균제 물질인 '디데실디메틸암모늄(DDAC)'이 쓰였습니다.

항공방제 살균제에 DDAC가 포함됐다는 사실은 지역 환경단체의 지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이지만, 염화벤잘코늄 성분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취재 결과, 2천ℓ가 넘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 소독제가 임진강 일대를 비롯한 접경지역에 뿌려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희대학교 부설 동서의학연구소 박은정 교수는 "염화벤잘코늄이 상공에서 분사될 경우 호흡기에 노출될 수 있고, 물과 토양에 축적돼 인체에 간접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DDAC는 독성이 강하며, 세포막이나 표면에 쉽게 결합하고 분해가 거의 되지 않는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주민·환경단체 "임진강 물고기 급감"

ASF 방역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항공방제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은 없을 거란 입장입니다. 사람과 농가가 있는 지역을 피해서 살균제를 분사했단 겁니다. 농림부 관계자는 "산림과 수풀 등 차량 접근이 힘든 지역을 중심으로 항공방제를 시행했다"며 "임진강 등 수면에 직접 살균제를 분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어민들은 실질적인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특히 항공방제를 기점으로 임진강 일대 물고기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경구 파주시 어촌계장은 "실뱀장어와 황복의 어획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 수입이 반 토막 났다"라면서 "유해 어종인 강준치 외에는 잡히는 고기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물에 소독제를 분사하지 않았다는 농림부 설명과 달리,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임진강 일대에 직접 살균제가 분사되는 모습을 봤다고도 주장합니다. 이 계장은 "어민들 상당수가 민통선 인근 임진강에 소독제가 직접 뿌려지는 걸 봤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1월 환경부가 실시한 임진강물 시료 분석 결과를 보면, 염화벤잘코늄과 DDAC가 소량 검출됐습니다. 환경부는 어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농도라고 봤지만, 석 달이나 지난 시점에 조사했는데도 흐르는 물속에 문제의 물질이 남아있었다는 걸 확인한 대목입니다.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ASF 항공방제가 시행된 일대의 토양과 하천과 농가에 대해 지속적인 사후 영향 평가가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경구 파주시 어촌계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농림부 "지난해 10월부터 사용 중단…구연산제로 변경"

염화벤잘코늄이나 DDAC가 들어간 소독제는 원래 축사의 바닥을 닦는 데 사용되는 제품입니다. 성분이 독하다 보니, ASF 방역 목적으로 해당 제품을 사용할 때는 물을 500배 희석배수로 섞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소독제 1ℓ를 사용하려면 물 500ℓ를 섞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소독제들이 희석배수를 지켜 분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주무부처는 제품의 권장 희석배수를 지자체에 알려주기만 하고, 실제 방역에서 희석배수가 지켜졌는지 등 결과보고서조차 받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농림부 관계자는 "용법·용량에 대해 지자체에 알리면 실제 방역은 현장의 판단으로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문제가 된 소독제는 지난해 10월 22일 이후에 더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농림부도 사실상 해당 제품들의 유해성을 인정하고 독성이 덜한 구연산 소독제를 쓰도록 한 겁니다. 하지만 9월부터 10월까지 실시된 항공방제에서 이미 많은 양의 소독제가 분사된 만큼, 환경과 인체에 영향이 없는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최종윤 의원은 오늘(5일) 오전 열리는 예결위에서 농림부 장관을 상대로 항공 방제가 진행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평가 계획을 세워달라고 요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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