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밍융빙하 실종 시신이 7년 만에 발견된 이유

입력 2020.11.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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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남쪽 끝 위난(雲南)성 티베트족 자치주 더친(德欽)현에 티베트 사람들이 신산(神山)으로 여기는 메이리(梅里) 설산이 있다. 만년설에 뒤덮인 메이리 설산은 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 있다 잠시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설산 한 가운데, 아래로 쭉 뻗은 빙하가 밍융(明永)이다. 길이 11.7km, 폭 500m.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위도에 있는 대륙 빙하다.

해발 6,000m 넘는 고봉 13개가 웅장하게 펼쳐진 메이리 설산은 여태껏 인간의 접근을 허용한 적 없다. 티베트 사람들은 인간이 정복할 수 없고, 또 정복해서도 안 되는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1991년 중국과 일본 합동 등반대가 메이리 설산 정복에 나섰다. 6,740m 설산 정상 카와거버(卡瓦格博)봉이 목표였다. 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한 이 등반한 처참하게 끝났다. 등반대 17명이 모두 실종된 것이다.


1998년 7월 18일 오후 3시. 빙하 아래 밍융촌 사람들이 산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해발 4,000m 근처였다. 윈난 성 한 방송국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소 풀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 사람 3명이 빙하에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 사람이 아래로 내려가 물건이 뭔지를 확인했는데, 모두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밍융촌 주민들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등반대의 시신이었다. 실종된 등반대가 백골로 발견된 것이다. 무려 실종 7년 만이었다. 눈사태로 빙하 깊숙이 파묻혔던 등반대가 어떻게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일까?


이유는 그 사이 밍융 빙하가 상당히 녹았기 때문이었다. 실제 밍융 빙하 제일 끝자락은 해발 2,600m까지 내려와 있었으나 지금은 산 정상 쪽으로 상당히 후퇴해 3,000m 근처에 있다. 빙하 폭과 두께도 많이 줄어들었다. 중국 과학원 리우광위 박사는 빙하 해빙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20년과 그 앞서 20년을 비교하면 빙하 해빙 속도가 두 배 빨라졌습니다. 앞서 20년은 100m씩 녹았다면 지금은 200m씩 녹고 있습니다."

밍융이 녹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중국 기상청은 중국의 연평균 온도가 매 10년 마다 0.24℃씩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온난화가 만년설이 켜켜이 쌓이고 얼어붙어 생긴 대륙 빙하마저 녹이고 있다.

빙하는 녹아내리지만, 대신 밍융촌에선 온도가 올라가면서 해발 4,000m에서도 포도 농사를 짓게 됐다. 20년 전 부터 생긴 변화다. 포도 수확을 앞둔 밍융촌 주민 장티앤후이 씨는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20년 전에 처음 포도 나무를 심었어요. 7~8년을 키우고 수확이 가능해졌어요. 예전엔 밀, 보리, 감자를 심었는데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황무지를 개간해 포도를 심은 뒤로 돈벌이가 더 됩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는 빙하가 녹고, 키우는 작물이 바뀌는 환경적인 변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중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형 자연 재난 역시 기후변화와 직접 관련돼 있다. 2020년 중국 기상청이 발간한 '기후변화 청서'를 보자.

"중국의 최근 20년은 20세기 들어 가장 평균 기온이 높은 기간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도 기후변화가 민감하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극단적인 기후가 강해지고, 지역마다 강수량 편차가 크다. 폭우 일수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 과학계는 석 달 동안 중국 남부를 덮쳤던 장마와 홍수도 기후변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올해 홍수로 중국 남부 5만여㎢가 물에 잠겼다. 한국 국토 면적의 절반이 넘는다. 수재민도 6,500만 명으로 우리 국민 수보다 많다. 양쯔 강 유역에선 석 달 내내 쉴새 없이 비가 내리다 보니 '윗물이 누르고, 아랫물이 치받는 형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중국과학원 리우광위 박사는 "강 물살이 더 거세져서 하류에선 홍수 대비가 어려워졌습니다. 올해처럼 물이 갑자기 불어나니까 홍수가 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폭우를 중국의 치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엔 요즘 햅쌀 가격이 15%나 급등했다. 홍수 피해 지역이 중국의 곡창지대인 탓에 쌀 생산량이 최고 30%나 줄었기 때문이다. 적설량이 줄고, 동토층이 감소하는 것도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2002년 이후 중국의 적설량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2019년 중국 동북과 중북부 지역 적설량은 200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눈과 동토층이 줄어들면 영농철 농경지에 병해충이 돌아 식량 생산이 줄어들 수 있다.

중국이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는 이유는 국민 소득 1만 달러, 중진국으로 도약한 경제 성장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2018년 기준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이산화탄소는 147%, 메탄은 259%, 이산화질소는 123% 증가했다.

지구 온난화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이웃 나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어느 나라 없이 연대의식을 갖고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한다.

중국도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2035년까지 화석연료 차를 모두 없애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미국에 맞서 경제성장에 사활을 건 중국 정부가 이 약속을 지켜낼지 의문이 남는다. G2 국가로 도약한 중국이 국격에 걸맞은 기후변화 대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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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밍융빙하 실종 시신이 7년 만에 발견된 이유
    • 입력 2020-11-07 11:02:09
    특파원 리포트
히말라야 남쪽 끝 위난(雲南)성 티베트족 자치주 더친(德欽)현에 티베트 사람들이 신산(神山)으로 여기는 메이리(梅里) 설산이 있다. 만년설에 뒤덮인 메이리 설산은 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 있다 잠시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설산 한 가운데, 아래로 쭉 뻗은 빙하가 밍융(明永)이다. 길이 11.7km, 폭 500m.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위도에 있는 대륙 빙하다.

해발 6,000m 넘는 고봉 13개가 웅장하게 펼쳐진 메이리 설산은 여태껏 인간의 접근을 허용한 적 없다. 티베트 사람들은 인간이 정복할 수 없고, 또 정복해서도 안 되는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1991년 중국과 일본 합동 등반대가 메이리 설산 정복에 나섰다. 6,740m 설산 정상 카와거버(卡瓦格博)봉이 목표였다. 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한 이 등반한 처참하게 끝났다. 등반대 17명이 모두 실종된 것이다.


1998년 7월 18일 오후 3시. 빙하 아래 밍융촌 사람들이 산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해발 4,000m 근처였다. 윈난 성 한 방송국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소 풀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 사람 3명이 빙하에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 사람이 아래로 내려가 물건이 뭔지를 확인했는데, 모두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밍융촌 주민들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등반대의 시신이었다. 실종된 등반대가 백골로 발견된 것이다. 무려 실종 7년 만이었다. 눈사태로 빙하 깊숙이 파묻혔던 등반대가 어떻게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일까?


이유는 그 사이 밍융 빙하가 상당히 녹았기 때문이었다. 실제 밍융 빙하 제일 끝자락은 해발 2,600m까지 내려와 있었으나 지금은 산 정상 쪽으로 상당히 후퇴해 3,000m 근처에 있다. 빙하 폭과 두께도 많이 줄어들었다. 중국 과학원 리우광위 박사는 빙하 해빙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20년과 그 앞서 20년을 비교하면 빙하 해빙 속도가 두 배 빨라졌습니다. 앞서 20년은 100m씩 녹았다면 지금은 200m씩 녹고 있습니다."

밍융이 녹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중국 기상청은 중국의 연평균 온도가 매 10년 마다 0.24℃씩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온난화가 만년설이 켜켜이 쌓이고 얼어붙어 생긴 대륙 빙하마저 녹이고 있다.

빙하는 녹아내리지만, 대신 밍융촌에선 온도가 올라가면서 해발 4,000m에서도 포도 농사를 짓게 됐다. 20년 전 부터 생긴 변화다. 포도 수확을 앞둔 밍융촌 주민 장티앤후이 씨는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20년 전에 처음 포도 나무를 심었어요. 7~8년을 키우고 수확이 가능해졌어요. 예전엔 밀, 보리, 감자를 심었는데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황무지를 개간해 포도를 심은 뒤로 돈벌이가 더 됩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는 빙하가 녹고, 키우는 작물이 바뀌는 환경적인 변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중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형 자연 재난 역시 기후변화와 직접 관련돼 있다. 2020년 중국 기상청이 발간한 '기후변화 청서'를 보자.

"중국의 최근 20년은 20세기 들어 가장 평균 기온이 높은 기간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도 기후변화가 민감하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극단적인 기후가 강해지고, 지역마다 강수량 편차가 크다. 폭우 일수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 과학계는 석 달 동안 중국 남부를 덮쳤던 장마와 홍수도 기후변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올해 홍수로 중국 남부 5만여㎢가 물에 잠겼다. 한국 국토 면적의 절반이 넘는다. 수재민도 6,500만 명으로 우리 국민 수보다 많다. 양쯔 강 유역에선 석 달 내내 쉴새 없이 비가 내리다 보니 '윗물이 누르고, 아랫물이 치받는 형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중국과학원 리우광위 박사는 "강 물살이 더 거세져서 하류에선 홍수 대비가 어려워졌습니다. 올해처럼 물이 갑자기 불어나니까 홍수가 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폭우를 중국의 치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엔 요즘 햅쌀 가격이 15%나 급등했다. 홍수 피해 지역이 중국의 곡창지대인 탓에 쌀 생산량이 최고 30%나 줄었기 때문이다. 적설량이 줄고, 동토층이 감소하는 것도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2002년 이후 중국의 적설량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2019년 중국 동북과 중북부 지역 적설량은 200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눈과 동토층이 줄어들면 영농철 농경지에 병해충이 돌아 식량 생산이 줄어들 수 있다.

중국이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는 이유는 국민 소득 1만 달러, 중진국으로 도약한 경제 성장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2018년 기준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이산화탄소는 147%, 메탄은 259%, 이산화질소는 123% 증가했다.

지구 온난화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이웃 나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어느 나라 없이 연대의식을 갖고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한다.

중국도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2035년까지 화석연료 차를 모두 없애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미국에 맞서 경제성장에 사활을 건 중국 정부가 이 약속을 지켜낼지 의문이 남는다. G2 국가로 도약한 중국이 국격에 걸맞은 기후변화 대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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