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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 배드민턴장인데 이용하려면 동호회에 전화?…구청은 ‘뒷짐만’
입력 2020.11.07 (15:18) 취재K

서울 구로구 매봉산 등산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 키만한 옹벽 위로 창문들이 쭉 연결돼있는 건물입니다. 밖에서 보면 도통 어떤 건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진 '○○배드민턴장'이라는 표지판을 보고서야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배드민턴장은 2013년 서울시가 예산 10억8천만 원을 투입해 만든 공용 체육시설입니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죠. 그런데 공용시설인데도 일부 동호회가 점령해서 일반 시민들은 사용하기 어렵다는 제보가 KBS에 접수됐습니다.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배드민턴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입구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 수 있는 자물쇠로 잠겨있기 때문입니다. 문 어디에도 비밀번호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습니다. 이 지역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었습니다.

■ 동호회 회원들만 아는 공용체육시설 비밀번호…"이용하려면 동호회에 연락해라"

동호회 회원들에게 '지금은 이용할 수 없는지, 왜 잠겨있는 건지, 누가 잠근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동호회 집행부가 잠갔다는 겁니다.

실제로 동호회 회원들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안내로 배드민턴장에 들어갔습니다. 안에는 배드민턴 코트 5개가 있었습니다. 그중 3개는 '회원 전용'이라는 문구가 달려있었습니다. 나머지 두 개가 공용이었습니다. 한 편에 마련된 사무실에는 '○○배드민턴 클럽회원 현황판'이 크게 걸려있었습니다. 공용 체육시설을 사실상 동호회의 전용 공간처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취재 결과 해당 동호회는 회원 전용 코트와 사무실을 사용하면서도 별도의 사용료는 단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날이 어두워진 뒤 코트를 사용하기 위해 들어가는 전기요금도 당연히 전액 구청에서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특정 동호회가 공용 체육시설의 문을 자기들 맘대로 자유롭게 여닫고 사실상 전용 공간처럼 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동호회 회원들은 예전에는 문이 개방돼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으나 최근 코로나 방역과 내부시설 관리를 위해 동호회에서 출입 관리를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동호회에서 이 시설을 계속 관리해왔으며, 구청에서 '암묵적'으로 권한을 줬다는 겁니다.

동호회 관계자는 "그냥 열어두면 아무나 들어와서 음주, 취사를 하거나 시설물을 망가뜨리고 간다"라며 "우리가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든 이 운동장을 사용하고 싶으면 총무에게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라는 것이다"라며 "관리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특정 동호회가 사실상 시설을 독점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주민 김 모 씨는 "1단계가 풀리면서 운동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올라왔는데 계속 문이 잠겨있었다"라며 "그런데 문은 잠겨져 있는데 운동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문을 두드려서 '주민도 이용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안 된다.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라고 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 동호회가 배트민턴장 운영 위탁?…구청 "위탁한 적 없어"

배드민턴장 입구에는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공고'라는 제목의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해당 동호회 집행부 명의로 붙은 글로 "○○클럽은 관리자 통제하에 오전 중으로 운동을 마무리합니다. 또한 운동장도 폐쇄합니다"라며 "추후시간에 타 클럽 동우회 회원들이 본 구장을 이용코자 하시면 법적 책임을 감수할 관리인을 대동하시고 등록을 해주시면 오후 7시까지 언제든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또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운동장 문이 잠겨져 있으면 ○○클럽 총무에게 연락 주시면 운동장을 오픈시켜드리겠습니다"라고도 돼 있습니다. 글 마지막에는 '구로구청 공원녹지과 운영위탁'이라고도 적혀있습니다. 해당 클럽이 배드민턴장을 열쇠로 열고 닫고 했던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공고문은 최근 민원이 제기된 이후 구청에서 제거를 했습니다. 구로구청은 해당 동호회에 운영을 위탁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구로구청은 시설 운영 계획을 세울 때까지 당분간 시설을 닫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구로구청은 시설 폐쇄 이후에도 여전히 동호회 회원들이 자물쇠로 배드민턴장을 여닫을 수 있도록 사실상 방치하고 있고, 일반 시민들의 사용은 금지된 가운데 회원들만 여전히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검토하는 동안 일단은 외부인은 못 쓰게 하라고 했다"면서도 "동호회까지는 저희들이 막지는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운영 인력을 따로 배치할 여력은 없어서 해당 동호회에 아예 위탁 관리를 맡길지 내부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 공용 배드민턴장인데 이용하려면 동호회에 전화?…구청은 ‘뒷짐만’
    • 입력 2020-11-07 15:18:37
    취재K

서울 구로구 매봉산 등산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 키만한 옹벽 위로 창문들이 쭉 연결돼있는 건물입니다. 밖에서 보면 도통 어떤 건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진 '○○배드민턴장'이라는 표지판을 보고서야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배드민턴장은 2013년 서울시가 예산 10억8천만 원을 투입해 만든 공용 체육시설입니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죠. 그런데 공용시설인데도 일부 동호회가 점령해서 일반 시민들은 사용하기 어렵다는 제보가 KBS에 접수됐습니다.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배드민턴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입구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 수 있는 자물쇠로 잠겨있기 때문입니다. 문 어디에도 비밀번호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습니다. 이 지역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었습니다.

■ 동호회 회원들만 아는 공용체육시설 비밀번호…"이용하려면 동호회에 연락해라"

동호회 회원들에게 '지금은 이용할 수 없는지, 왜 잠겨있는 건지, 누가 잠근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동호회 집행부가 잠갔다는 겁니다.

실제로 동호회 회원들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안내로 배드민턴장에 들어갔습니다. 안에는 배드민턴 코트 5개가 있었습니다. 그중 3개는 '회원 전용'이라는 문구가 달려있었습니다. 나머지 두 개가 공용이었습니다. 한 편에 마련된 사무실에는 '○○배드민턴 클럽회원 현황판'이 크게 걸려있었습니다. 공용 체육시설을 사실상 동호회의 전용 공간처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취재 결과 해당 동호회는 회원 전용 코트와 사무실을 사용하면서도 별도의 사용료는 단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날이 어두워진 뒤 코트를 사용하기 위해 들어가는 전기요금도 당연히 전액 구청에서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특정 동호회가 공용 체육시설의 문을 자기들 맘대로 자유롭게 여닫고 사실상 전용 공간처럼 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동호회 회원들은 예전에는 문이 개방돼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으나 최근 코로나 방역과 내부시설 관리를 위해 동호회에서 출입 관리를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동호회에서 이 시설을 계속 관리해왔으며, 구청에서 '암묵적'으로 권한을 줬다는 겁니다.

동호회 관계자는 "그냥 열어두면 아무나 들어와서 음주, 취사를 하거나 시설물을 망가뜨리고 간다"라며 "우리가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든 이 운동장을 사용하고 싶으면 총무에게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라는 것이다"라며 "관리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특정 동호회가 사실상 시설을 독점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주민 김 모 씨는 "1단계가 풀리면서 운동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올라왔는데 계속 문이 잠겨있었다"라며 "그런데 문은 잠겨져 있는데 운동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문을 두드려서 '주민도 이용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안 된다.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라고 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 동호회가 배트민턴장 운영 위탁?…구청 "위탁한 적 없어"

배드민턴장 입구에는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공고'라는 제목의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해당 동호회 집행부 명의로 붙은 글로 "○○클럽은 관리자 통제하에 오전 중으로 운동을 마무리합니다. 또한 운동장도 폐쇄합니다"라며 "추후시간에 타 클럽 동우회 회원들이 본 구장을 이용코자 하시면 법적 책임을 감수할 관리인을 대동하시고 등록을 해주시면 오후 7시까지 언제든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또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운동장 문이 잠겨져 있으면 ○○클럽 총무에게 연락 주시면 운동장을 오픈시켜드리겠습니다"라고도 돼 있습니다. 글 마지막에는 '구로구청 공원녹지과 운영위탁'이라고도 적혀있습니다. 해당 클럽이 배드민턴장을 열쇠로 열고 닫고 했던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공고문은 최근 민원이 제기된 이후 구청에서 제거를 했습니다. 구로구청은 해당 동호회에 운영을 위탁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구로구청은 시설 운영 계획을 세울 때까지 당분간 시설을 닫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구로구청은 시설 폐쇄 이후에도 여전히 동호회 회원들이 자물쇠로 배드민턴장을 여닫을 수 있도록 사실상 방치하고 있고, 일반 시민들의 사용은 금지된 가운데 회원들만 여전히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검토하는 동안 일단은 외부인은 못 쓰게 하라고 했다"면서도 "동호회까지는 저희들이 막지는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운영 인력을 따로 배치할 여력은 없어서 해당 동호회에 아예 위탁 관리를 맡길지 내부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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