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부풀리고 ‘법카’ 부정사용했는데도 “해고는 부당”…왜?

입력 2020.1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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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A 씨는 2018년 10월 해고당했습니다. 경력직원으로 특별채용된 지 3년 7개월여 만이었습니다. 계기는 2018년 상반기에 있었던 회사의 특별감사였습니다. 사 측은 A 씨가 입사 과정에서 전 직장에서의 근무 기간을 허위로 늘려 기재한 경력증명서를 제출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3년 동안 모두 천3백만 원가량의 급여를 부당하게 챙겼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A 씨가 개인 식사 등 부적절한 용도로 법인카드를 120차례 넘게 사용해, 회사 내규와 윤리강령을 어겼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 측은 A 씨와의 신뢰 관계가 완전히 상실돼 더 이상 고용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며 그를 해고했습니다.

이후 A 씨는 억울하다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징계 수준이 너무 과하다며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회사가 불복하면서 사건은 법원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1심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사 측의 해고는 부당하다며 다시금 A 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 “허위 경력 제출, 법인카드 부정 사용한 건 맞아…징계 사유 있다”

법원은 A 씨가 7개월의 허위 경력이 기재된 경력증명서를 회사에 낸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A 씨는 전 직장에서 2007년 8월부터 근무했지만, 경력증명서를 뗄 때 전 직장 담당자에게 부탁해 2007년 1월부터를 근무 기간으로 하는 증명서를 발급받았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A 씨는 2번 직장을 옮겨 현재 회사는 3번째 직장입니다. 첫 번째 직장에서 2007년 2월부터 근무하다 8월에 2번째 회사로 옮겼는데, 3번째 회사인 지금 회사에 경력으로 입사하던 2015년에는 첫 번째 직장이 이미 폐업해 2007년 2월부터 8월 전까지의 경력증명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A 씨는 당시 경력까지 인정받기 위해 2007년 1월부터 그냥 두 번째 직장에서 일했다고 경력증명서에 일부 허위 기재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7개월의 허위 경력이 포함되면서 A 씨는 현재 직장에서 더 높은 호봉을 부여받을 수 있었습니다. 법원은 A 씨의 이 같은 행위가 회사의 인사규정을 위반해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법인카드 부정 사용도 인정됐습니다. 감사 결과 A 씨는 법인카드로 자동판매기나 편의점에서 3천 원 미만의 식음료를 사거나, 카페·식당에서 6천 원 미만의 결제를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서 운영 등 회사 업무 활동과 직접 관련 없이 ‘혼밥’ 등 사적인 일에 법인카드를 쓴 셈입니다. A 씨 밑에서 일했던 팀원들은 회사 감사 과정에서, ‘A 씨가 출근 후 개인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소소한 지출까지 법인카드를 쓰더라’는 취지의 진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이 역시 회사의 법인카드 운영내규와 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이라 징계 사유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사측이 문제 삼은 법인카드 부정 사용 기간 중 일부는 A 씨가 정식 입사하지 않고 자회사 소속으로 회사에 파견근로 하던 기간이라, 이 기간의 행동까지 징계 사유로 삼을 순 없다고 밝혔습니다.

■ “허위 경력, 채용 여부에 영향 안줘…검증 안한 회사도 잘못”

이렇게 A 씨에 대한 징계 사유가 인정됨에도, 법원은 해고까지 하는 건 회사가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선 A 씨가 회사에 허위 경력증명서를 낸 시점이 문제였습니다. 사 측은 A 씨가 자회사에서 근무하거나 자회사 소속으로 파견을 나왔던 5년 가까이 되는 경력을 검토해, A 씨를 경력직으로 특별채용했습니다. 이후 A 씨에게 채용 의사를 완전히 밝힌 다음에야, 호봉 산정에 필요하다며 경력증명서 등 구체적 서류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A 씨가 허위 경력증명서를 낸 것은 이미 입사 후 3주가 지난 뒤였습니다. 이에 법원은 A 씨가 제출한 허위 경력증명서가 채용 여부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또 경력직 채용 대상자의 기존 경력을 충분히 검증하고 확인할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도, 회사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A 씨가 낸 경력증명서에는 전 직장 담당자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기 때문에 경력의 진위를 검증할 방법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회사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A 씨가 회사에 낸 전 직장 인사기록카드를 보면, 거기에 기재된 근무 기간과 A 씨가 낸 허위 경력 증명서상의 근무 기간을 회사가 대조해 볼 수도 있었다고 법원은 덧붙였습니다.

결국, 회사의 채용 절차가 허술했던 것도 문제의 원인이었는데, 모든 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며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입니다.

■ “법인카드 ‘사적 사용’ 기준 모호…금액 환수로 피해 회복도 가능”

법원은 또 회사가 법인카드의 사적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문제가 된 A 씨의 행위, 즉 ‘1인 사용으로 볼 수 있는 적은 금액의 식음료 구입’이 사적 사용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근로자들에게 분명히 예시돼 고지된 바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A 씨가 계속 이런 식으로 법인카드를 써왔는데도 그동안 회사에서 이를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고도 언급했습니다. 법인카드 사적 사용에 대한 지침이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A 씨로서는 법인카드로 ‘혼밥’하는 등의 행위가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고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법원은 밝혔습니다.

또 A 씨가 파견근로자 시절 쓴 부분을 제외하면 징계 사유로 인정되는 법인카드 부정 사용액은 3년 동안 20만 원에 불과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사에 대한 피해회복이 가능하다고 법원은 설명했습니다. 개인용도로 법인카드를 쓴 경우 그 금액은 급여에서 공제하는 방식 등으로 환수하도록 회사 예규에서 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법원은 또 다른 직원들과 비교했을 때도 A 씨의 법인카드 사적 사용 금액이나 횟수가 과하다거나 이례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이는 경미한 징계 사유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A 씨의 해고는 취소되고, 사 측은 다시 징계 절차를 밟아 A 씨의 징계 사유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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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09 07:00:24
    취재K

회사원 A 씨는 2018년 10월 해고당했습니다. 경력직원으로 특별채용된 지 3년 7개월여 만이었습니다. 계기는 2018년 상반기에 있었던 회사의 특별감사였습니다. 사 측은 A 씨가 입사 과정에서 전 직장에서의 근무 기간을 허위로 늘려 기재한 경력증명서를 제출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3년 동안 모두 천3백만 원가량의 급여를 부당하게 챙겼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A 씨가 개인 식사 등 부적절한 용도로 법인카드를 120차례 넘게 사용해, 회사 내규와 윤리강령을 어겼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 측은 A 씨와의 신뢰 관계가 완전히 상실돼 더 이상 고용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며 그를 해고했습니다.

이후 A 씨는 억울하다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징계 수준이 너무 과하다며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회사가 불복하면서 사건은 법원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1심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사 측의 해고는 부당하다며 다시금 A 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 “허위 경력 제출, 법인카드 부정 사용한 건 맞아…징계 사유 있다”

법원은 A 씨가 7개월의 허위 경력이 기재된 경력증명서를 회사에 낸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A 씨는 전 직장에서 2007년 8월부터 근무했지만, 경력증명서를 뗄 때 전 직장 담당자에게 부탁해 2007년 1월부터를 근무 기간으로 하는 증명서를 발급받았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A 씨는 2번 직장을 옮겨 현재 회사는 3번째 직장입니다. 첫 번째 직장에서 2007년 2월부터 근무하다 8월에 2번째 회사로 옮겼는데, 3번째 회사인 지금 회사에 경력으로 입사하던 2015년에는 첫 번째 직장이 이미 폐업해 2007년 2월부터 8월 전까지의 경력증명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A 씨는 당시 경력까지 인정받기 위해 2007년 1월부터 그냥 두 번째 직장에서 일했다고 경력증명서에 일부 허위 기재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7개월의 허위 경력이 포함되면서 A 씨는 현재 직장에서 더 높은 호봉을 부여받을 수 있었습니다. 법원은 A 씨의 이 같은 행위가 회사의 인사규정을 위반해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법인카드 부정 사용도 인정됐습니다. 감사 결과 A 씨는 법인카드로 자동판매기나 편의점에서 3천 원 미만의 식음료를 사거나, 카페·식당에서 6천 원 미만의 결제를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서 운영 등 회사 업무 활동과 직접 관련 없이 ‘혼밥’ 등 사적인 일에 법인카드를 쓴 셈입니다. A 씨 밑에서 일했던 팀원들은 회사 감사 과정에서, ‘A 씨가 출근 후 개인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소소한 지출까지 법인카드를 쓰더라’는 취지의 진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이 역시 회사의 법인카드 운영내규와 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이라 징계 사유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사측이 문제 삼은 법인카드 부정 사용 기간 중 일부는 A 씨가 정식 입사하지 않고 자회사 소속으로 회사에 파견근로 하던 기간이라, 이 기간의 행동까지 징계 사유로 삼을 순 없다고 밝혔습니다.

■ “허위 경력, 채용 여부에 영향 안줘…검증 안한 회사도 잘못”

이렇게 A 씨에 대한 징계 사유가 인정됨에도, 법원은 해고까지 하는 건 회사가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선 A 씨가 회사에 허위 경력증명서를 낸 시점이 문제였습니다. 사 측은 A 씨가 자회사에서 근무하거나 자회사 소속으로 파견을 나왔던 5년 가까이 되는 경력을 검토해, A 씨를 경력직으로 특별채용했습니다. 이후 A 씨에게 채용 의사를 완전히 밝힌 다음에야, 호봉 산정에 필요하다며 경력증명서 등 구체적 서류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A 씨가 허위 경력증명서를 낸 것은 이미 입사 후 3주가 지난 뒤였습니다. 이에 법원은 A 씨가 제출한 허위 경력증명서가 채용 여부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또 경력직 채용 대상자의 기존 경력을 충분히 검증하고 확인할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도, 회사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A 씨가 낸 경력증명서에는 전 직장 담당자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기 때문에 경력의 진위를 검증할 방법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회사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A 씨가 회사에 낸 전 직장 인사기록카드를 보면, 거기에 기재된 근무 기간과 A 씨가 낸 허위 경력 증명서상의 근무 기간을 회사가 대조해 볼 수도 있었다고 법원은 덧붙였습니다.

결국, 회사의 채용 절차가 허술했던 것도 문제의 원인이었는데, 모든 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며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입니다.

■ “법인카드 ‘사적 사용’ 기준 모호…금액 환수로 피해 회복도 가능”

법원은 또 회사가 법인카드의 사적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문제가 된 A 씨의 행위, 즉 ‘1인 사용으로 볼 수 있는 적은 금액의 식음료 구입’이 사적 사용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근로자들에게 분명히 예시돼 고지된 바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A 씨가 계속 이런 식으로 법인카드를 써왔는데도 그동안 회사에서 이를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고도 언급했습니다. 법인카드 사적 사용에 대한 지침이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A 씨로서는 법인카드로 ‘혼밥’하는 등의 행위가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고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법원은 밝혔습니다.

또 A 씨가 파견근로자 시절 쓴 부분을 제외하면 징계 사유로 인정되는 법인카드 부정 사용액은 3년 동안 20만 원에 불과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사에 대한 피해회복이 가능하다고 법원은 설명했습니다. 개인용도로 법인카드를 쓴 경우 그 금액은 급여에서 공제하는 방식 등으로 환수하도록 회사 예규에서 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법원은 또 다른 직원들과 비교했을 때도 A 씨의 법인카드 사적 사용 금액이나 횟수가 과하다거나 이례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이는 경미한 징계 사유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A 씨의 해고는 취소되고, 사 측은 다시 징계 절차를 밟아 A 씨의 징계 사유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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