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의 순백 정장에 담긴 의미…“100년을 싸웠다”

입력 2020.11.0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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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어제(8일, 한국시각) 미국 델라웨어에서 열린 '승리 연설'에 순백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언론은 해리스 당선인의 의상이 여성의 정치적 권리 확대를 상징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일간 USA투데이는 어제 "해리스 당선인의 의상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기리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밝혔습니다. 패션지 보그는 "해리스가 첫 대국민 연설에서 '서프러제트 화이트(suffragette white)' 색상의 바지 정장을 선택했다"면서 "해리스 당선인이 자신의 선거와 여성들의 참정권 투쟁을 연관 지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여성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왕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뛰어들어 숨진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의 장례식 모습.  1913년, 영국 런던 (사진 출처:Smithsonian magazine)여성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왕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뛰어들어 숨진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의 장례식 모습. 1913년, 영국 런던 (사진 출처:Smithsonian magazine)

■왜 흰색인가?

'서프러저트 화이트'는 미국에서 낯선 표현이 아닙니다. 20세기 초 영미권에서 참정권을 위해 투쟁한 여성들인 '서프러저트(suffragette)'들이 주로 흰옷을 입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선거권을 준다던 의회의 약속이 번번이 깨지고 대중의 관심도 시들하던 시기, 사람들의 눈에 최대한 잘 띄는 방법으로 흰옷을 입기로 한 겁니다.

흑백사진 시대, '백색 물결'을 이룬 여성들의 시위 장면이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흰옷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어서, 사회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시위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1918년, 미국은 1920년에 여성의 투표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투쟁은 계속됐습니다. 이번에는 유색인종의 투표권이었습니다. 이 흐름은 나아가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주장하는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들은, 그녀들의 선배들이 그랬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차려입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런 전통에 따라, 미국 여성 정치인들도 중요한 순간에 '올백' 의상으로 등장했습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대선주자로 선출되던 날, 흰색 바지 정장을 입었습니다.

1989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의원인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뉴욕주)도 지난해 처음 의회에 출석하는 날 '서프러제트 화이트'를 선택했습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당일 트위터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지난 2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흰색 무리'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단체로 하얀색 옷을 입은 겁니다. 평소처럼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공화당원들과 흑백의 대조를 이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뜻과 함께,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행동이었습니다.

■ "내가 처음일 수는 있어도, 마지막은 아닐 것"

해리스 당선인은 승리 연설에서 "내가 첫 여성 부통령일 수는 있어도,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오늘, 모든 소녀는 미국이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00년 이상 투표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왔던 모든 여성, 그리고 투표권을 지켜내기 위해 계속 싸울 의지를 보여준 여성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아프리카계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 당선인은 2016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역사적 기록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보다 진보 색채가 강한 인사로 분류됩니다. 임신중지 권리 보장과 마리화나 합법화, 이민자 관련 규제 완화에 찬성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리스 당선인에게 '급진 좌파(far left)'라는 꼬리표를 붙였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해리스 당선인이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졌던 부통령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릴 거라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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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스의 순백 정장에 담긴 의미…“100년을 싸웠다”
    • 입력 2020-11-09 07:50:08
    취재K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어제(8일, 한국시각) 미국 델라웨어에서 열린 '승리 연설'에 순백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언론은 해리스 당선인의 의상이 여성의 정치적 권리 확대를 상징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일간 USA투데이는 어제 "해리스 당선인의 의상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기리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밝혔습니다. 패션지 보그는 "해리스가 첫 대국민 연설에서 '서프러제트 화이트(suffragette white)' 색상의 바지 정장을 선택했다"면서 "해리스 당선인이 자신의 선거와 여성들의 참정권 투쟁을 연관 지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여성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왕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뛰어들어 숨진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의 장례식 모습.  1913년, 영국 런던 (사진 출처:Smithsonian magazine)
■왜 흰색인가?

'서프러저트 화이트'는 미국에서 낯선 표현이 아닙니다. 20세기 초 영미권에서 참정권을 위해 투쟁한 여성들인 '서프러저트(suffragette)'들이 주로 흰옷을 입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선거권을 준다던 의회의 약속이 번번이 깨지고 대중의 관심도 시들하던 시기, 사람들의 눈에 최대한 잘 띄는 방법으로 흰옷을 입기로 한 겁니다.

흑백사진 시대, '백색 물결'을 이룬 여성들의 시위 장면이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흰옷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어서, 사회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시위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1918년, 미국은 1920년에 여성의 투표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투쟁은 계속됐습니다. 이번에는 유색인종의 투표권이었습니다. 이 흐름은 나아가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주장하는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들은, 그녀들의 선배들이 그랬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차려입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런 전통에 따라, 미국 여성 정치인들도 중요한 순간에 '올백' 의상으로 등장했습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대선주자로 선출되던 날, 흰색 바지 정장을 입었습니다.

1989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의원인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뉴욕주)도 지난해 처음 의회에 출석하는 날 '서프러제트 화이트'를 선택했습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당일 트위터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지난 2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흰색 무리'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단체로 하얀색 옷을 입은 겁니다. 평소처럼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공화당원들과 흑백의 대조를 이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뜻과 함께,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행동이었습니다.

■ "내가 처음일 수는 있어도, 마지막은 아닐 것"

해리스 당선인은 승리 연설에서 "내가 첫 여성 부통령일 수는 있어도,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오늘, 모든 소녀는 미국이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00년 이상 투표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왔던 모든 여성, 그리고 투표권을 지켜내기 위해 계속 싸울 의지를 보여준 여성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아프리카계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 당선인은 2016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역사적 기록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보다 진보 색채가 강한 인사로 분류됩니다. 임신중지 권리 보장과 마리화나 합법화, 이민자 관련 규제 완화에 찬성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리스 당선인에게 '급진 좌파(far left)'라는 꼬리표를 붙였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해리스 당선인이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졌던 부통령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릴 거라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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