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배후’ 전라우수영 중심 관아터 진출입 시설 확인

입력 2020.11.09 (14:02) 수정 2020.11.0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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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전남 해남 전라우수영(사적 제535호) 발굴 조사에서 전라우수영 중심 관아터의 진출입 시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해남군이 추진하는 이번 발굴 조사에서 전라우수영의 수사(水使)가 기거했던 안채 격의 내아(內衙) 영역과 평시 또는 명량대첩에 사용됐을 동헌(東軒) 건물 일부가 확인됐습니다. 또 웅장한 규모의 축대, 담장 등으로 둘러싸인 중심관아와 관아로 향하는 도로망의 진출입 시설도 확인됐습니다.

내아 영역은 명량해협의 바다가 조망되는 능선 일부를 절개·성토하여 대지를 조성한 뒤, 외곽으로 계단식 축대와 담장을 둘러 주요 건물의 위상을 극대화했습니다. 맨처음 지어진 건물 2동은 온돌이 있는 구조로 15세기 후반에 큰 규모로 축조됐고, 16~17세기에 대대적인 중창(重創) 과정을 통해 4동으로 확대된다. 중심 건물은 4칸 규모의 ‘ㅁ’자 형태로 한가운데 마당(중정 中庭)을 갖춘 구조로 확인됐습니다.

동헌 영역은 현재 건물지 일부와 축대, 진출입로가 확인됐습니다. 건물은 남아 있는 5칸으로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행각(行閣) 건물로 추정됩니다. 축대는 남쪽은 점판암재로 높고 웅장하게 축조했고, 동쪽은 계단식으로 높게 하여 다른 영역과 구분했습니다. 진출입 시설은 우수영내의 도로망 중심축으로 한곳은 남쪽 객사 추정지로, 다른 곳은 동문으로 향하는 시설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동쪽 주 출입로는 근대까지 이용했던 곳으로 명량대첩의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수많은 장수가 모여 회의를 하기 위해 행차했던 곳으로 여겨집니다.

이외에도 건물 축조를 위한 토목과정과 중심관아 영역 밖의 건물 등이 추가로 확인됐고, 우수(右水)명 초기 백자와 함께 명문와, 막새류, 상평통보 등 유물 수백 점도 출토됐습니다.

문화재청과 해남군은 이번 발굴조사로 명량대첩의 배후인 전라우수영의 중심 관아터에 대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수영 경관 복원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장 설명회는 내일(10일) 오후 2시 30분 전남 해남군 문대면 발굴현장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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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09 14:02:01
    • 수정2020-11-09 14:05:19
    문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전남 해남 전라우수영(사적 제535호) 발굴 조사에서 전라우수영 중심 관아터의 진출입 시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해남군이 추진하는 이번 발굴 조사에서 전라우수영의 수사(水使)가 기거했던 안채 격의 내아(內衙) 영역과 평시 또는 명량대첩에 사용됐을 동헌(東軒) 건물 일부가 확인됐습니다. 또 웅장한 규모의 축대, 담장 등으로 둘러싸인 중심관아와 관아로 향하는 도로망의 진출입 시설도 확인됐습니다.

내아 영역은 명량해협의 바다가 조망되는 능선 일부를 절개·성토하여 대지를 조성한 뒤, 외곽으로 계단식 축대와 담장을 둘러 주요 건물의 위상을 극대화했습니다. 맨처음 지어진 건물 2동은 온돌이 있는 구조로 15세기 후반에 큰 규모로 축조됐고, 16~17세기에 대대적인 중창(重創) 과정을 통해 4동으로 확대된다. 중심 건물은 4칸 규모의 ‘ㅁ’자 형태로 한가운데 마당(중정 中庭)을 갖춘 구조로 확인됐습니다.

동헌 영역은 현재 건물지 일부와 축대, 진출입로가 확인됐습니다. 건물은 남아 있는 5칸으로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행각(行閣) 건물로 추정됩니다. 축대는 남쪽은 점판암재로 높고 웅장하게 축조했고, 동쪽은 계단식으로 높게 하여 다른 영역과 구분했습니다. 진출입 시설은 우수영내의 도로망 중심축으로 한곳은 남쪽 객사 추정지로, 다른 곳은 동문으로 향하는 시설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동쪽 주 출입로는 근대까지 이용했던 곳으로 명량대첩의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수많은 장수가 모여 회의를 하기 위해 행차했던 곳으로 여겨집니다.

이외에도 건물 축조를 위한 토목과정과 중심관아 영역 밖의 건물 등이 추가로 확인됐고, 우수(右水)명 초기 백자와 함께 명문와, 막새류, 상평통보 등 유물 수백 점도 출토됐습니다.

문화재청과 해남군은 이번 발굴조사로 명량대첩의 배후인 전라우수영의 중심 관아터에 대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수영 경관 복원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장 설명회는 내일(10일) 오후 2시 30분 전남 해남군 문대면 발굴현장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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