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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나는 쪼잔한 사람…작품 속 인물들에게 넓은 마음 배워”
입력 2020.11.09 (17:36) 연합뉴스
지난해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배우 이정은은 곧바로 방송으로 옮겨갔다. '동백꽃 필 무렵', '한 번 다녀왔습니다' 등 화제가 된 드라마들이었다.

오는 12일 개봉을 앞둔 새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이정은과 김혜수가 처음 호흡을 맞춘 영화로도, 이정은의 대사 없는 연기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정은은 외딴 섬에서 홀로 조카를 키우며 사는 순천댁을 연기했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섬으로 왔다가 사라져버린 고등학생 세진(노정의)을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다.

온갖 삶의 풍파를 거쳐온 순천댁은 과거 농약을 마시고 목소리를 잃었고, 또 하나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표정마저 감춰야 했다.

9일 만난 이정은은 "언어가 나를 누를 때 만난, 나에게 필요했던 영화"라고 했다.

"시상식에 갔는데 옷을 벗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옷이 나를 너무 옥죄어서요. 그 옷처럼 언어가 나를 누를 때 만난 영화에요. 말이 없는데도 이해됐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였던 것 같아요."

'기생충' 이전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슈퍼 돼지 목소리 연기까지 한 그다. 사투리나 언어유희가 많은 대사를 소화해 내며 '언어의 마술사' 같은 칭찬을 듣다 보니 "그게 없으면 연기가 없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하던 시기에 이 영화가 왔다.

그는 영화 속 순천댁과 함께 실제 말수도 줄었고, "말이 앞서지 않으니까 더 잘 듣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동갑내기인 김혜수와의 호흡도 그랬던 것 같다. 김혜수는 시사회가 끝나고 열린 간담회에서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이정은은 "마주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는데, 그 장면에서 마지막 순간에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 과거를 이야기한 적 없는 동년배의 인생이 만나 충돌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연기 호흡은 처음이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이정은이 출연한 저예산 연극에 김혜수가 외국에서 사 모은 온갖 소품과 의상을 지원해 주면서, 이정은이 김혜수의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출연하기도 했다고.

이정은은 "혜수 씨는 자꾸 친구 하자고 하는데, 나한테는 아직도 스타이고 굉장히 멋있는 배우"라고 했다.

작품과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해, 배우 자신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자신을 칭찬하는 말들이 나오면 이정은은 이내 낯간지럽다는 듯 꾸밈없는 소탈한 말투로 솔직한 이야기를 툭툭 꺼내놨다.

내년 방송될 드라마 '로스쿨'에서 판사 출신 교수를 맡은 그는 "대사 없이 연기하는 것보다 교수 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지적인 느낌을 내는 게…"라며 '헤헷' 웃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나 '미스터 션샤인' 등에서는 딸 혹은 딸 같은 애기씨에게 사랑을 퍼주며 시청자의 눈물을 쏙 빼놓기도 했다. 순천댁 역시 세상에 홀로 남은 세진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이정은은 또 낯간지러운 말 대신 "사랑을 나눠주는 역할을 많이 했지만, 나는 쪼잔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며 "작품 속 인물들에게 그런 넓은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뮤지컬 '빨래'의 주인 할매 역 등 젊었을 때부터 노역을 많이 맡다 보니, 주목받은 최근작의 엄마 역할들은 오히려 많이 젊어진 거라 "한참을 즐겁게 노닐었다"며 또 '헤헷' 웃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악화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미국 작품 출연 논의도 중단됐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있고 오히려 그쪽에서 우리를 주목하는 상황이라 크게 아쉽지는 않다"고 했다.

자중해야 하는 시기를 가족과 더 많이 함께하고, 반려견과 한강 변을 산책하며 충전하고, 주말 드라마 출연으로 부모님께 효도도 하며 잘 보냈다고 했다.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서 작품을 선택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아직 거품이 아닐까", "내가 계속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낮춰 말했다. 다만 "길게 가고 싶으니 매니저와 저의 건강을 위해 겹치기 출연은 안 하기로 했다"며 또 웃었다.

1991년 연극 무대에서 시작한 연기 인생은 내년이면 30년을 맞는다.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이정은의 내년 소망은 소박했다. 신수원 감독과 함께 촬영을 마친 영화 '오마주'가 극장에서 선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정은은 "기회는 안달한다고 오는 건 아니어서 운명처럼 오는 건 막지 않고, 가는 건 잡지 않으며 연기하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이정은 “나는 쪼잔한 사람…작품 속 인물들에게 넓은 마음 배워”
    • 입력 2020-11-09 17:36:22
    연합뉴스
지난해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배우 이정은은 곧바로 방송으로 옮겨갔다. '동백꽃 필 무렵', '한 번 다녀왔습니다' 등 화제가 된 드라마들이었다.

오는 12일 개봉을 앞둔 새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이정은과 김혜수가 처음 호흡을 맞춘 영화로도, 이정은의 대사 없는 연기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정은은 외딴 섬에서 홀로 조카를 키우며 사는 순천댁을 연기했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섬으로 왔다가 사라져버린 고등학생 세진(노정의)을 마지막으로 본 목격자다.

온갖 삶의 풍파를 거쳐온 순천댁은 과거 농약을 마시고 목소리를 잃었고, 또 하나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표정마저 감춰야 했다.

9일 만난 이정은은 "언어가 나를 누를 때 만난, 나에게 필요했던 영화"라고 했다.

"시상식에 갔는데 옷을 벗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옷이 나를 너무 옥죄어서요. 그 옷처럼 언어가 나를 누를 때 만난 영화에요. 말이 없는데도 이해됐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였던 것 같아요."

'기생충' 이전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슈퍼 돼지 목소리 연기까지 한 그다. 사투리나 언어유희가 많은 대사를 소화해 내며 '언어의 마술사' 같은 칭찬을 듣다 보니 "그게 없으면 연기가 없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하던 시기에 이 영화가 왔다.

그는 영화 속 순천댁과 함께 실제 말수도 줄었고, "말이 앞서지 않으니까 더 잘 듣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동갑내기인 김혜수와의 호흡도 그랬던 것 같다. 김혜수는 시사회가 끝나고 열린 간담회에서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이정은은 "마주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는데, 그 장면에서 마지막 순간에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 과거를 이야기한 적 없는 동년배의 인생이 만나 충돌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연기 호흡은 처음이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이정은이 출연한 저예산 연극에 김혜수가 외국에서 사 모은 온갖 소품과 의상을 지원해 주면서, 이정은이 김혜수의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출연하기도 했다고.

이정은은 "혜수 씨는 자꾸 친구 하자고 하는데, 나한테는 아직도 스타이고 굉장히 멋있는 배우"라고 했다.

작품과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해, 배우 자신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자신을 칭찬하는 말들이 나오면 이정은은 이내 낯간지럽다는 듯 꾸밈없는 소탈한 말투로 솔직한 이야기를 툭툭 꺼내놨다.

내년 방송될 드라마 '로스쿨'에서 판사 출신 교수를 맡은 그는 "대사 없이 연기하는 것보다 교수 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지적인 느낌을 내는 게…"라며 '헤헷' 웃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나 '미스터 션샤인' 등에서는 딸 혹은 딸 같은 애기씨에게 사랑을 퍼주며 시청자의 눈물을 쏙 빼놓기도 했다. 순천댁 역시 세상에 홀로 남은 세진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이정은은 또 낯간지러운 말 대신 "사랑을 나눠주는 역할을 많이 했지만, 나는 쪼잔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며 "작품 속 인물들에게 그런 넓은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뮤지컬 '빨래'의 주인 할매 역 등 젊었을 때부터 노역을 많이 맡다 보니, 주목받은 최근작의 엄마 역할들은 오히려 많이 젊어진 거라 "한참을 즐겁게 노닐었다"며 또 '헤헷' 웃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악화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미국 작품 출연 논의도 중단됐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있고 오히려 그쪽에서 우리를 주목하는 상황이라 크게 아쉽지는 않다"고 했다.

자중해야 하는 시기를 가족과 더 많이 함께하고, 반려견과 한강 변을 산책하며 충전하고, 주말 드라마 출연으로 부모님께 효도도 하며 잘 보냈다고 했다.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서 작품을 선택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아직 거품이 아닐까", "내가 계속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낮춰 말했다. 다만 "길게 가고 싶으니 매니저와 저의 건강을 위해 겹치기 출연은 안 하기로 했다"며 또 웃었다.

1991년 연극 무대에서 시작한 연기 인생은 내년이면 30년을 맞는다.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이정은의 내년 소망은 소박했다. 신수원 감독과 함께 촬영을 마친 영화 '오마주'가 극장에서 선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정은은 "기회는 안달한다고 오는 건 아니어서 운명처럼 오는 건 막지 않고, 가는 건 잡지 않으며 연기하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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