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죽음의 호수’에서 ‘철새 휴게소’로

입력 2020.12.0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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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로 뒤덮인 시화호

새떼로 뒤덮인 시화호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11월의 시화호.

경기도 안산시와 화성시 서해안 지역에 위치한 시화호 주변은 수많은 새들이 내는 소리로 옆 사람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였는데요.

유유자적 수초 사이를 헤치며 먹이를 찾거나 물 위에 둥둥 떠 잠을 청하는 모습이 자못 여유로워 보입니다.


■ "조류 82,949마리 확인…혹고니 등 멸종위기종 다수 발견"

민간 연구기관인 해양환경교육센터가 시민들과 함께 11월 시화호 대송습지를 모니터링한 결과 모두 75종, 82,949마리의 새들이 관찰됐는데요. 보호종도 다수 발견됐습니다.

▲ 멸종위기종 11종
큰기러기, 혹고니,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매, 황조롱이, 참매, 새매, 잿빛개구리매, 알락꼬리마도요, 수리부엉이

▲ 천연기념물 9종
혹고니,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매, 황조롱이, 참매, 새매, 잿빛개구리매, 수리부엉이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천연기념물 201-3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혹고니'.

시화호를 찾은 혹고니시화호를 찾은 혹고니

혹고니는 부리 위쪽에 혹이 달려있고, 얼굴과 부리 사이가 검은색인 특징이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39마리가 발견됐는데요.

북방 대륙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나는 혹고니가 국내에서 이 정도 개체군이 발견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시화 대송습지에도 그동안 꾸준히 나타났지만 역시 이렇게 많이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2014년 이후 해양수산부 '시화호 해양환경 개선사업'의 하나로 꾸준히 시민 모니터링은 이루어졌지만, 실제 이곳의 새 전체의 개체 수를 조사한 것 자체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기존 조사구역 이외에도 탄도(섬이름) 수로와 농지조성구역를 포함시켜 습지 전체를 3구역으로 나눠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시화호 조류 모니터링 지도시화호 조류 모니터링 지도

■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풍부한 먹잇감과 살아나는 자연

학자와 활동가들은, 많은 수의 철새가 시화호를 찾은 것이, 시화호의 자연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우신/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시화호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에서 바닷물과 민물이 섞임으로써 '기수지역(바다와 닿은 강 하구 등 해수와 담수가 섞이는 곳)'의 역할을 하면서 생물 다양성과 먹이 자원이 많아졌다 이렇게 볼 수 있고. 민간인들이 통제로 인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안정된 서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이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이 회복된 부분이 있습니다."

서해안에 위치한 시화호는 북방에서 먼 거리를 날아온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휴게소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요.

각종 개발로 해안 습지나 갯벌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 이곳에 더 많은 새가 몰리는 요인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이우신/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시화호는 서해안 쪽에 철새들이 왔다 갔다 하는 아주 중요한 정거장입니다. 그래서 여기마저 파괴된다면 예를 들어 여기에 수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한다면 빛이 반사가 되고 해서 굉장히 서식하기 힘들어집니다. 겨울 철새 여름 철새들의 개체 수가 경우에 따라서는 30%, 40% 줄게 되겠죠. 중간에 징검다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 자연과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측면도 있지만, 세계적인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데 책무가 있다는 이야기죠."

시화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시화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

■ '죽음의 호수'에서 '철새 휴게소'로…람사르 습지 지정은 언제?

1998년 시작된 간척 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 '시화호'.

고인 물이 오염되면서 한때 무분별한 개발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후 다시 바닷물을 드나들게 하는 등 다양하고 오랜 노력 끝에 차츰 자연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최종인/시화호 지킴이
"옛날 시화호를 막기 전에는 작은 새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대형종인 고니라든가 큰기러기라든가 하는 그런 큰 종들이 많이 온다 이거죠. 많이 온다는 것은 민물 위에 수생식물이라든가 민물새우 이런 것들이 많으니까 그런 먹이 때문에 찾아오지 않는가 생각이 들어요."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안산시와 환경단체들은 2014년 람사르 습지 지정을 추진했는데요.

관계 기관이 시화지구 사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개발이 끝나는 2024년 이후로 습지 지정 추진을 보류해 멈춘 상황입니다.

최종인/시화호 지킴이
"사람들도 돈이 있어도 땅이 없으면 집을 못 짓잖아요. 생물의 한 종이 사라질까봐 (멸종위기종을) 지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중요한 것은 땅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하는 거죠.생물이 살 땅이 필요하니까요. DMZ(비무장지대) 보면 중요한 동물들이 많이 살잖아요. 왜겠어요? 사람이 간섭 안 하니까 그렇죠. 보호구역을 지정한다면 인간과 자연과 공생할 길이 열리겠지요."

[관련 기사] “멸종위기종 혹고니 등 8만 마리 도래”…시화호 보호는 언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6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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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화호, ‘죽음의 호수’에서 ‘철새 휴게소’로
    • 입력 2020-12-01 10:06:59
    취재K

새떼로 뒤덮인 시화호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11월의 시화호.

경기도 안산시와 화성시 서해안 지역에 위치한 시화호 주변은 수많은 새들이 내는 소리로 옆 사람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였는데요.

유유자적 수초 사이를 헤치며 먹이를 찾거나 물 위에 둥둥 떠 잠을 청하는 모습이 자못 여유로워 보입니다.


■ "조류 82,949마리 확인…혹고니 등 멸종위기종 다수 발견"

민간 연구기관인 해양환경교육센터가 시민들과 함께 11월 시화호 대송습지를 모니터링한 결과 모두 75종, 82,949마리의 새들이 관찰됐는데요. 보호종도 다수 발견됐습니다.

▲ 멸종위기종 11종
큰기러기, 혹고니,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매, 황조롱이, 참매, 새매, 잿빛개구리매, 알락꼬리마도요, 수리부엉이

▲ 천연기념물 9종
혹고니,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매, 황조롱이, 참매, 새매, 잿빛개구리매, 수리부엉이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천연기념물 201-3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혹고니'.

시화호를 찾은 혹고니
혹고니는 부리 위쪽에 혹이 달려있고, 얼굴과 부리 사이가 검은색인 특징이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39마리가 발견됐는데요.

북방 대륙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나는 혹고니가 국내에서 이 정도 개체군이 발견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시화 대송습지에도 그동안 꾸준히 나타났지만 역시 이렇게 많이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2014년 이후 해양수산부 '시화호 해양환경 개선사업'의 하나로 꾸준히 시민 모니터링은 이루어졌지만, 실제 이곳의 새 전체의 개체 수를 조사한 것 자체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기존 조사구역 이외에도 탄도(섬이름) 수로와 농지조성구역를 포함시켜 습지 전체를 3구역으로 나눠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시화호 조류 모니터링 지도
■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풍부한 먹잇감과 살아나는 자연

학자와 활동가들은, 많은 수의 철새가 시화호를 찾은 것이, 시화호의 자연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우신/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시화호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에서 바닷물과 민물이 섞임으로써 '기수지역(바다와 닿은 강 하구 등 해수와 담수가 섞이는 곳)'의 역할을 하면서 생물 다양성과 먹이 자원이 많아졌다 이렇게 볼 수 있고. 민간인들이 통제로 인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안정된 서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이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이 회복된 부분이 있습니다."

서해안에 위치한 시화호는 북방에서 먼 거리를 날아온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휴게소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요.

각종 개발로 해안 습지나 갯벌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 이곳에 더 많은 새가 몰리는 요인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이우신/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시화호는 서해안 쪽에 철새들이 왔다 갔다 하는 아주 중요한 정거장입니다. 그래서 여기마저 파괴된다면 예를 들어 여기에 수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한다면 빛이 반사가 되고 해서 굉장히 서식하기 힘들어집니다. 겨울 철새 여름 철새들의 개체 수가 경우에 따라서는 30%, 40% 줄게 되겠죠. 중간에 징검다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 자연과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측면도 있지만, 세계적인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데 책무가 있다는 이야기죠."

시화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
■ '죽음의 호수'에서 '철새 휴게소'로…람사르 습지 지정은 언제?

1998년 시작된 간척 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 '시화호'.

고인 물이 오염되면서 한때 무분별한 개발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후 다시 바닷물을 드나들게 하는 등 다양하고 오랜 노력 끝에 차츰 자연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최종인/시화호 지킴이
"옛날 시화호를 막기 전에는 작은 새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대형종인 고니라든가 큰기러기라든가 하는 그런 큰 종들이 많이 온다 이거죠. 많이 온다는 것은 민물 위에 수생식물이라든가 민물새우 이런 것들이 많으니까 그런 먹이 때문에 찾아오지 않는가 생각이 들어요."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안산시와 환경단체들은 2014년 람사르 습지 지정을 추진했는데요.

관계 기관이 시화지구 사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개발이 끝나는 2024년 이후로 습지 지정 추진을 보류해 멈춘 상황입니다.

최종인/시화호 지킴이
"사람들도 돈이 있어도 땅이 없으면 집을 못 짓잖아요. 생물의 한 종이 사라질까봐 (멸종위기종을) 지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중요한 것은 땅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하는 거죠.생물이 살 땅이 필요하니까요. DMZ(비무장지대) 보면 중요한 동물들이 많이 살잖아요. 왜겠어요? 사람이 간섭 안 하니까 그렇죠. 보호구역을 지정한다면 인간과 자연과 공생할 길이 열리겠지요."

[관련 기사] “멸종위기종 혹고니 등 8만 마리 도래”…시화호 보호는 언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6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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