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길에서 주운 폐지 ‘50톤’…80대 노인의 숭고한 기부

입력 2020.12.03 (10:20) 수정 2020.12.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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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네 살 노인이 폐지를 줍는 이유여든네 살 노인이 폐지를 줍는 이유

바지런히 동네를 돌며 폐지를 줍는 노인이 있습니다.

눈을 뜨면 댓바람으로 집을 나서 버려진 폐지부터 찾는 게 일인데, 악착같이 폐지를 모으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거한 폐지를 돈으로 바꿔, 기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 여든넷, 전북 남원에 사는 김길남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날이 부쩍 쌀쌀해진 지난 주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형광 야구모자를 눌러 쓰고 얇은 패딩 조끼 하나를 걸쳤습니다. 차림새가 조금 걱정된다고 여쭈니, "이 양반 뭘 모른다"라며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금세 상자 하나를 또 접어 수레에 올립니다.


버려진 유모차를 고쳐 만든 수레였습니다. 할머니는 그걸 '자가용'이라고 자랑했습니다. 타는 건 아니지만, 걸음이 불편한 할머니는 실제 당신의 '애마'에 기대야만 외출할 수 있습니다.

폐지 수거를 목적으로는 하루 2시간 남짓 '자가용'을 모는데, 몇 년을 해오던 일이라 자연스레 동선이 정해졌습니다.

<집 앞 슈퍼→카센터→초등학교→횟집→부대찌개집→사우나→집> 새벽에 시작하는 1시간 반짜리 루트입니다.

오후 스케줄은 따로 있습니다. 점심 지나서 문을 여는 가게들은 이른 아침에 가봐야 상자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치킨집이 그렇답니다. 할머니는 동네 폐지 배출 일정을 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 두 번 돌면 보통 30kg 정도를 수레에 얹어 오게 됩니다.

할머니가 폐지를 팔아 번 돈. 이렇게 1년을 모아 모두 기부한다.할머니가 폐지를 팔아 번 돈. 이렇게 1년을 모아 모두 기부한다.

4,300원. 할머니가 당신 몸무게 두 배인 100kg을 내다 팔고 이날 고물상에서 받은 돈입니다.
그나마 3백 원은 맘씨 좋은 고물상 주인이 얹어준 덤입니다.

폐지는 시세가 있는데, 요새는 1kg당 40원씩 쳐준다고 합니다. 이날 3일 치 작업량을 처분한 할머니는 바지에 동전을 넣고, 지폐는 고이 접어 패딩 조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을 연신 훔쳐 바닥으로 털어냈습니다. 얇은 옷을 걱정했더니, '뭘 모른다'며 핀잔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1시간을 걷고, 무릎을 굽혀 상자를 줍고, 접고, 계속 쌓아 올렸습니다. 여든을 넘긴 노인에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좋은 일 해보고 싶어서’‘좋은 일 해보고 싶어서’

집까지 쫓아가서 사연을 물으니, "테레비에서 해싸니까"라고 답합니다. 누군가 어려운 이웃에게 주라며 돈을 내는 걸 TV에서 보고 당신도 해보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죽기 전 3년 만이라도 좋은 일 쪼깨 해야겄다' . 그러나 나눌 만큼 돈이 없어, 생각해낸 게 폐지 줍기입니다. 그렇게 여든넷 노인은 자신이 설계한 방법으로 5년째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목표는 연 50만 원, 이 목표에 미달된 적은 없습니다.

할머니는 월세 14만 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삽니다. 방 삯은 나라에서 대신 내줍니다. 할머니가 잠재적 빈곤층을 가리키는 차상위계층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넉넉지 않은 형편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기부금을 들고 '또' 주민센터에 갔을 땐, 마을 동장이 "이제 기부는 그만하고 빵이나 사드시오" 웃으며 역정을 냈다고 합니다. 할머니도 맞받아치며, "10원이라도 좋은 일 해야 혀"라고 소리쳤답니다.

오로지 기부를 위해 할머니가 그 동안 길에서 주워 모은 종이는 얼마나 될까? 무게를 계산해봤습니다. 50톤입니다. 노인이 전하는 나눔의 울림은 그러나 이보다 묵직합니다.

"젊어서 많이 못 한 것이 아쉽지. 많이 못 한 것이... 적은 돈이나마 동사무소에 내고 오면 그 기분은 어디 말할 것 없어. 그렇게 좋아."

건강하세요, 할머니건강하세요, 할머니

[연관기사]
폐지 줍는 여든넷 노인의 기부…“좋은 일은 10원이라도”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6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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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길에서 주운 폐지 ‘50톤’…80대 노인의 숭고한 기부
    • 입력 2020-12-03 10:20:17
    • 수정2020-12-03 10:22:43
    취재후·사건후
여든네 살 노인이 폐지를 줍는 이유
바지런히 동네를 돌며 폐지를 줍는 노인이 있습니다.

눈을 뜨면 댓바람으로 집을 나서 버려진 폐지부터 찾는 게 일인데, 악착같이 폐지를 모으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거한 폐지를 돈으로 바꿔, 기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 여든넷, 전북 남원에 사는 김길남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날이 부쩍 쌀쌀해진 지난 주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형광 야구모자를 눌러 쓰고 얇은 패딩 조끼 하나를 걸쳤습니다. 차림새가 조금 걱정된다고 여쭈니, "이 양반 뭘 모른다"라며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금세 상자 하나를 또 접어 수레에 올립니다.


버려진 유모차를 고쳐 만든 수레였습니다. 할머니는 그걸 '자가용'이라고 자랑했습니다. 타는 건 아니지만, 걸음이 불편한 할머니는 실제 당신의 '애마'에 기대야만 외출할 수 있습니다.

폐지 수거를 목적으로는 하루 2시간 남짓 '자가용'을 모는데, 몇 년을 해오던 일이라 자연스레 동선이 정해졌습니다.

<집 앞 슈퍼→카센터→초등학교→횟집→부대찌개집→사우나→집> 새벽에 시작하는 1시간 반짜리 루트입니다.

오후 스케줄은 따로 있습니다. 점심 지나서 문을 여는 가게들은 이른 아침에 가봐야 상자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치킨집이 그렇답니다. 할머니는 동네 폐지 배출 일정을 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 두 번 돌면 보통 30kg 정도를 수레에 얹어 오게 됩니다.

할머니가 폐지를 팔아 번 돈. 이렇게 1년을 모아 모두 기부한다.
4,300원. 할머니가 당신 몸무게 두 배인 100kg을 내다 팔고 이날 고물상에서 받은 돈입니다.
그나마 3백 원은 맘씨 좋은 고물상 주인이 얹어준 덤입니다.

폐지는 시세가 있는데, 요새는 1kg당 40원씩 쳐준다고 합니다. 이날 3일 치 작업량을 처분한 할머니는 바지에 동전을 넣고, 지폐는 고이 접어 패딩 조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을 연신 훔쳐 바닥으로 털어냈습니다. 얇은 옷을 걱정했더니, '뭘 모른다'며 핀잔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1시간을 걷고, 무릎을 굽혀 상자를 줍고, 접고, 계속 쌓아 올렸습니다. 여든을 넘긴 노인에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좋은 일 해보고 싶어서’
집까지 쫓아가서 사연을 물으니, "테레비에서 해싸니까"라고 답합니다. 누군가 어려운 이웃에게 주라며 돈을 내는 걸 TV에서 보고 당신도 해보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죽기 전 3년 만이라도 좋은 일 쪼깨 해야겄다' . 그러나 나눌 만큼 돈이 없어, 생각해낸 게 폐지 줍기입니다. 그렇게 여든넷 노인은 자신이 설계한 방법으로 5년째 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목표는 연 50만 원, 이 목표에 미달된 적은 없습니다.

할머니는 월세 14만 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삽니다. 방 삯은 나라에서 대신 내줍니다. 할머니가 잠재적 빈곤층을 가리키는 차상위계층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넉넉지 않은 형편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기부금을 들고 '또' 주민센터에 갔을 땐, 마을 동장이 "이제 기부는 그만하고 빵이나 사드시오" 웃으며 역정을 냈다고 합니다. 할머니도 맞받아치며, "10원이라도 좋은 일 해야 혀"라고 소리쳤답니다.

오로지 기부를 위해 할머니가 그 동안 길에서 주워 모은 종이는 얼마나 될까? 무게를 계산해봤습니다. 50톤입니다. 노인이 전하는 나눔의 울림은 그러나 이보다 묵직합니다.

"젊어서 많이 못 한 것이 아쉽지. 많이 못 한 것이... 적은 돈이나마 동사무소에 내고 오면 그 기분은 어디 말할 것 없어. 그렇게 좋아."

건강하세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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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여든넷 노인의 기부…“좋은 일은 10원이라도”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6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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