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나라 땅 팔아 15억 챙긴 직원…가족에게 송금한 돈은 어떻게 될까

입력 2020.12.05 (09:22) 수정 2020.12.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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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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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줄 돈이 있으면서도, 심지어 이를 다 갚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재산을 빼돌린다면 채권자는 억울하겠죠. 이 같은 채무자의 행위를 '사해행위'라고 하고, 채권자가 이를 취소하기 위한 소송을 '사해행위 취소' 소송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회사에서 상당 금액을 횡령한 사람이 가족에게 수천만 원의 돈을 송금했다면, 이 돈을 모두 사해행위로 볼 수 있을까요? 만약 평소 금전 거래를 해 왔던 가족이라면 어떨까요? 사해행위 여부가 쟁점이 됐던 최신 하급심 사건을 소개해 드립니다.

■ 거액 횡령 뒤 가족 송금…공사 "송금받은 돈 돌려달라" 소송

앞서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한 본부에서 근무하던 A 씨는 2016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국유일반재산 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A 씨는 공사 법인 인감을 도용해 국유지에 관한 매매계약서 등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24필지의 나라 땅을 총 18회에 걸쳐 임의로 매각했습니다.

A 씨는 약 15억 5300여만 원 상당을 개인 금융계좌로 부당 수령했고, 그 동안 자신의 가족 B 씨에게 아래와 같은 내역으로 8차례에 걸쳐 5100여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A 씨는 몰래 국유지를 처분한 행위가 적발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등 혐의로 2017년 9월 재판에 넘겨져 2018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A 씨로부터 땅을 산 매수인들은 공사에 땅을 돌려줬고, 손해를 배상하라며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2억 5000여만 원을 받아갔습니다. 자산관리공사는 A 씨에게 이를 구상받기 위해 지급명령을 신청해 확정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순탄했는데, 이후 자산관리공사는 A 씨가 자신의 가족 B 씨에게 돈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B 씨를 상대로 이를 돌려달라며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습니다.

공사는 "B 씨가 A 씨의 불법행위에 가담했거나 적어도 과실로 A 씨의 불법행위를 방조했으므로,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며 B 씨에게 5천 백여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공사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대비해 A 씨가 B 씨에게 돈을 증여한 건 공사에게 손해를 가하는 '사해행위'라며 이를 취소하고 돈을 공사에게 원상 복귀시키라는 청구도 함께 냈습니다.

■ 법원 "평소 금전관계…송금 전액 사해행위 인정 어렵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46단독은 공사가 B 씨를 상대로 낸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와 부당이득 반환 청구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사해행위 취소 청구였는데, 이 역시 일부만 인정했습니다.

채권자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돈을 받아간 B 씨를 이 소송에서 이기려면 몇 가지 요건이 있었습니다. △공사가 A 씨에게 받을 돈 등(피보전채권)이 있을 것 △A 씨와 B 씨에게 공사에 줘야 할 재산을 빼돌린다는 의사가 있을 것(사해의사) △채무자인 A 씨가 돈이 없을 것 △사해행위가 있을 것 등입니다.

서울중앙지법은 다른 모든 조건이 만족된다고 판단했지만, A 씨가 B 씨에게 송금한 8번의 금액 가운데 중 1번부터 7번까지는 사해행위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사해행위의 취소를 구하는 공사 측이 A 씨의 B 씨(수익자)에 대한 송금을 '증여'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B 씨는 이를 다른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다투고 있는데, 금전 지급행위가 사해행위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그 금전 지급행위가 증여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고,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사해행위를 주장하는 측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A 씨와 B 씨는 가족이고 공사가 주장하는 송금내역 외에도 그 이전부터 둘 사이에 금원이 자주 입출금된 점, 순번 4번을 제외한 금액은 비교적 소액이고 그 무렵 A 씨가 B 씨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한 금액도 포함돼 보인다"면서 "B 씨가 A 씨에게 2016년 3월 2000만원과 400만원을 각 송금하였고, A 씨가 이를 변제하고자 위와 같은 송금을 하였을 여지도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1~7번 송금은 B 씨에 대한 증여(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8번째 송금에 대해서만 사해행위로 보고, B 씨가 공사에게 2800여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A 씨는 이 사건 송금행위 당시 채무초과(빚이 재산보다 더 많은) 상태였다고 보이고, A 씨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B 씨에게 돈을 증여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 없는 이상 채권자인 공사에 대한 관계에서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B 씨는 항소했고, 이 사건은 2심으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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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나라 땅 팔아 15억 챙긴 직원…가족에게 송금한 돈은 어떻게 될까
    • 입력 2020-12-05 09:22:11
    • 수정2020-12-05 10:38:46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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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줄 돈이 있으면서도, 심지어 이를 다 갚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재산을 빼돌린다면 채권자는 억울하겠죠. 이 같은 채무자의 행위를 '사해행위'라고 하고, 채권자가 이를 취소하기 위한 소송을 '사해행위 취소' 소송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회사에서 상당 금액을 횡령한 사람이 가족에게 수천만 원의 돈을 송금했다면, 이 돈을 모두 사해행위로 볼 수 있을까요? 만약 평소 금전 거래를 해 왔던 가족이라면 어떨까요? 사해행위 여부가 쟁점이 됐던 최신 하급심 사건을 소개해 드립니다.

■ 거액 횡령 뒤 가족 송금…공사 "송금받은 돈 돌려달라" 소송

앞서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한 본부에서 근무하던 A 씨는 2016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국유일반재산 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A 씨는 공사 법인 인감을 도용해 국유지에 관한 매매계약서 등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24필지의 나라 땅을 총 18회에 걸쳐 임의로 매각했습니다.

A 씨는 약 15억 5300여만 원 상당을 개인 금융계좌로 부당 수령했고, 그 동안 자신의 가족 B 씨에게 아래와 같은 내역으로 8차례에 걸쳐 5100여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A 씨는 몰래 국유지를 처분한 행위가 적발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등 혐의로 2017년 9월 재판에 넘겨져 2018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A 씨로부터 땅을 산 매수인들은 공사에 땅을 돌려줬고, 손해를 배상하라며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2억 5000여만 원을 받아갔습니다. 자산관리공사는 A 씨에게 이를 구상받기 위해 지급명령을 신청해 확정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순탄했는데, 이후 자산관리공사는 A 씨가 자신의 가족 B 씨에게 돈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B 씨를 상대로 이를 돌려달라며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습니다.

공사는 "B 씨가 A 씨의 불법행위에 가담했거나 적어도 과실로 A 씨의 불법행위를 방조했으므로,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며 B 씨에게 5천 백여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공사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대비해 A 씨가 B 씨에게 돈을 증여한 건 공사에게 손해를 가하는 '사해행위'라며 이를 취소하고 돈을 공사에게 원상 복귀시키라는 청구도 함께 냈습니다.

■ 법원 "평소 금전관계…송금 전액 사해행위 인정 어렵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46단독은 공사가 B 씨를 상대로 낸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와 부당이득 반환 청구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사해행위 취소 청구였는데, 이 역시 일부만 인정했습니다.

채권자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돈을 받아간 B 씨를 이 소송에서 이기려면 몇 가지 요건이 있었습니다. △공사가 A 씨에게 받을 돈 등(피보전채권)이 있을 것 △A 씨와 B 씨에게 공사에 줘야 할 재산을 빼돌린다는 의사가 있을 것(사해의사) △채무자인 A 씨가 돈이 없을 것 △사해행위가 있을 것 등입니다.

서울중앙지법은 다른 모든 조건이 만족된다고 판단했지만, A 씨가 B 씨에게 송금한 8번의 금액 가운데 중 1번부터 7번까지는 사해행위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사해행위의 취소를 구하는 공사 측이 A 씨의 B 씨(수익자)에 대한 송금을 '증여'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B 씨는 이를 다른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다투고 있는데, 금전 지급행위가 사해행위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그 금전 지급행위가 증여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고,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사해행위를 주장하는 측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A 씨와 B 씨는 가족이고 공사가 주장하는 송금내역 외에도 그 이전부터 둘 사이에 금원이 자주 입출금된 점, 순번 4번을 제외한 금액은 비교적 소액이고 그 무렵 A 씨가 B 씨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한 금액도 포함돼 보인다"면서 "B 씨가 A 씨에게 2016년 3월 2000만원과 400만원을 각 송금하였고, A 씨가 이를 변제하고자 위와 같은 송금을 하였을 여지도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1~7번 송금은 B 씨에 대한 증여(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8번째 송금에 대해서만 사해행위로 보고, B 씨가 공사에게 2800여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A 씨는 이 사건 송금행위 당시 채무초과(빚이 재산보다 더 많은) 상태였다고 보이고, A 씨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B 씨에게 돈을 증여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 없는 이상 채권자인 공사에 대한 관계에서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B 씨는 항소했고, 이 사건은 2심으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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