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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에서 제작연대 새겨진 백제 토기 출토
입력 2020.12.08 (10:28) 수정 2020.12.08 (10:29) 사회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인 부여 부소산성(사적 제5호)에서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을사년(乙巳年)' 글씨가 새겨진 백제 토기 등이 출토됐습니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8월, 부소산성 안에 재난 방재 관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성벽과 건물지, 추정 집수시설 등의 존재가 확인돼 긴급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은 유물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부소산성 내 평탄지가 존재하는 군창지(군수물자 창고 유적지) 구간과 사자루 구간, 궁녀사 구간 등에서 백제 시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습니다.

군창지 구간에서는 백제 중요유적에서 주로 확인되는 와적기단(기와를 이용해 건물 기단의 가장자리를 마무리한 것)을 갖추고 둥근 모양으로 잘 다듬은 초석(기둥을 받치는 돌)을 사용한 위계 높은 건물지가 발굴됐습니다.

사자루 구간에서는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 굴립주(기둥 밑동을 땅속에 박아 세우는 건축 방식) 건물지, 사각 초석을 사용한 건물지 등이 조사됐고, 궁녀사 구간에서는 집수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에서는 '乙巳年(을사년)', '北舍(북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와 중국제 자기, 칠기(漆器) 등 중요유물과 함께 수백 점이 넘는 백제 사비기 토기가 매몰돼 있었습니다. 또 7세기 신라 병형토기도 출토됐습니다.

'乙巳年(을사년)' 명문 토기에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을사년삼월십오일모시산국작?)이라는 14자의 명문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을사년 3월 15일 모시산 사람 국(菊)이 만들었다'로 해석됩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는 토기의 제작연대(645년 추정)와 제작지(예산, 덕산 추정),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습니다.

같이 출토된 '北舍(북사)' 명문 토기는 백제 사비왕궁지구인 관북리 유적과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토성과 같이 왕실과 관련된 중요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습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들은 부여 부소산성 내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의 축조방식과 부소산성 내부공간의 활용방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사결과는 오는 11일 오전 10시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공개됩니다.
  • 부여 부소산성에서 제작연대 새겨진 백제 토기 출토
    • 입력 2020-12-08 10:28:39
    • 수정2020-12-08 10:29:31
    사회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인 부여 부소산성(사적 제5호)에서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을사년(乙巳年)' 글씨가 새겨진 백제 토기 등이 출토됐습니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8월, 부소산성 안에 재난 방재 관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성벽과 건물지, 추정 집수시설 등의 존재가 확인돼 긴급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은 유물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부소산성 내 평탄지가 존재하는 군창지(군수물자 창고 유적지) 구간과 사자루 구간, 궁녀사 구간 등에서 백제 시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습니다.

군창지 구간에서는 백제 중요유적에서 주로 확인되는 와적기단(기와를 이용해 건물 기단의 가장자리를 마무리한 것)을 갖추고 둥근 모양으로 잘 다듬은 초석(기둥을 받치는 돌)을 사용한 위계 높은 건물지가 발굴됐습니다.

사자루 구간에서는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 굴립주(기둥 밑동을 땅속에 박아 세우는 건축 방식) 건물지, 사각 초석을 사용한 건물지 등이 조사됐고, 궁녀사 구간에서는 집수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에서는 '乙巳年(을사년)', '北舍(북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와 중국제 자기, 칠기(漆器) 등 중요유물과 함께 수백 점이 넘는 백제 사비기 토기가 매몰돼 있었습니다. 또 7세기 신라 병형토기도 출토됐습니다.

'乙巳年(을사년)' 명문 토기에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을사년삼월십오일모시산국작?)이라는 14자의 명문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을사년 3월 15일 모시산 사람 국(菊)이 만들었다'로 해석됩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는 토기의 제작연대(645년 추정)와 제작지(예산, 덕산 추정),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습니다.

같이 출토된 '北舍(북사)' 명문 토기는 백제 사비왕궁지구인 관북리 유적과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토성과 같이 왕실과 관련된 중요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습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들은 부여 부소산성 내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의 축조방식과 부소산성 내부공간의 활용방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사결과는 오는 11일 오전 10시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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