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미사일·군함까지…돈 주고 ‘을’ 안 되려면?

입력 2020.12.10 (09: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잇달아 국내 언론 접촉 나선 미국·유럽 거대 방산 업체들…속내는?
‘내 돈·내 산’인데도 ‘을’의 서러움 겪는 무기 도입
세계 방산 시장 ‘큰 손’ 한국…“구매력 발휘할 기회”

■국산? 미국산? 해병대 상륙공격 헬기

항공전력 자체 보유는 우리 해병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적이 눈으로 볼 수 없고 레이더 전파도 닿지 않는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다가 일거에 해상과 공중을 통해 적의 해안으로 몰아쳐 들어가는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펴기 위한 필수 전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국산 헬기 수리온을 해상에서 해병대 병력을 이동시키는 용도의 마린온으로 개조해 '상륙기동 헬기'로 도입했습니다.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KAI의 ‘마린온’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KAI의 ‘마린온’

그리고 전장에서 이 마린온을 엄호하고, 해안의 적 전력을 공격할 헬기로 '상륙공격 헬기'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후보 기종으로 거론되는 건 미국의 거대 방산 기업 보잉사의 AH-64E '아파치 가디언'과 미국 벨 사의 AH-1Z '바이퍼', 그리고 KAI가 개발하려 하는 마린온의 무장형이 있습니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성능과 실전 경험을 비롯해 수요군인 해병대가 가장 원하는 헬기가 채택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군이 요구하는 성능(ROC)만 충족한다면 국내 방위산업 육성과 산업 파급효과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섭니다.

상륙공격 헬기 후보 기종 BELL의 AH-1Z ‘바이퍼’상륙공격 헬기 후보 기종 BELL의 AH-1Z ‘바이퍼’

■슈퍼 코브라 조종사, 6·25참전 용사 아들도 나선 美 무기 홍보

후보 기종으로 거론되는 바이퍼의 제조사 벨이 어제(9일)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미국의 벨 본사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했습니다.

바이퍼의 어머니 기종 AH-1W '슈퍼 코브라'를 조종하는 등 2,000시간의 벨 헬리콥터 조종 기록을 가진 전직 미 해병대 조종사가 바이퍼의 성능과 장점을 발표했습니다.

이라크전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퇴역 미 해병대 중장도 나섰습니다. 37년간 헬기를 몰며 미 해병대 항공 부사령관까지 올랐던 그는 6.25에 참전했다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데저트 스톰'(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조종사로 복무했을 때 공격 헬기의 유용성을 절감했다며 바이퍼가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F-35와도 긴밀한 합동 작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벨은 국내 홍보담당자가 없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미국 본사가 직접 나서 과거 한국 공군이 F-16을 도입할 때 홍보를 맡았던 국내 대행사와 계약을 맺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습니다.

상륙공격 헬기는 모두 24대가 도입될 예정입니다. 계약 조건을 향후 지켜봐야겠지만 대당 가격이 300억 선은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향후 전력 증강으로 후속 사업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선정만 되면 유지 비용을 빼고도 납품만도 수천억 원인 사업입니다. 큰 장이 서는 겁니다.

벨의 기자 간담회벨의 기자 간담회

■국내 언론 접촉 나선 유럽 방산업체들…속내는?

앞서 2일에는 영국 방산 기업 롤스로이스가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자동차로 더 친숙한 롤스로이스지만 자동차 부분은 BMW에 인수됐고 현재는 민간, 군용 항공기 엔진과 군함, 선박의 동력계통이 주력인 거대 방산 기업입니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스텔스기 F-35B의 엔진이 롤스로이스 제품입니다.

롤스로이스 기자 간담회롤스로이스 기자 간담회

서방에서 군함 동력원, 특히 엔진 쪽은 미국의 GE와 롤스로이스가 양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해군 엔진은 GE가 독점하다시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건조가 진행되고 있는 차기 호위함(FFX) 2차 사업(대구급 호위함)에 롤스로이스가 동력원으로 채택됐습니다. 이날 롤스로이스는 향후 3차 사업에도 롤스로이스 동력원을 공급하기 위해 현대중공업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발표는 롤스로이스 이종열 한국 지사장이 맡았습니다. 33년 동안 해군에서 복무한 뒤 대령으로 예편한 이 지사장은 롤스로이스의 MT-30 가스터빈이 경쟁사 엔진과 부피는 같으면서도 출력은 두 배 이상 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간이 한정된 군함에서 기존에 가스터빈 엔진 2개가 필요했다면, 자사 엔진은 하나만 놔도 같은 출력을 낼 수 있다는 겁니다.

FFX 2차 사업은 모두 8대의 군함을 건조합니다. 3차 사업은 6대가 예정돼 있습니다. 총 사업비가 2차는 3조 2천억 원, 3차는 2조 6천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업입니다.

MT-30 가스터빈이 탑재된 한국 해군 대구함MT-30 가스터빈이 탑재된 한국 해군 대구함

한국 해군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총 사업비 7조 원으로 6척을 건조할 예정입니다. 한 척 건조에만 2조 원이 들 거라는 경항모 보유도 추진 중입니다. 방산업체들로서는 한국 군함들에 줄줄이 핵심 동력원을 납품할 기회가 열린 셈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군함을 이렇게 만들어내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중국과 동남아, 한국, 일본 정도뿐입니다. 게다가 조선 강국 한국은 해외에 군함을 대거 수출하고 있습니다. 필리핀과 태국, 뉴질랜드, 영국, 노르웨이 등이 한국 조선소에 군함 건조를 맡겼습니다.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한국 해군에 동력원을 납품하면 이를 실적 삼아 한국 군함을 사 간 나라에도 수출길을 뚫을 수 있는 겁니다.

해외 기업들의 한국을 향한 러브콜, 이 뿐만이 아닙니다. 독일과 스웨덴이 합작한 미사일 제조사 '타우러스시스템즈'도 최근 한국 언론에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한국과 공동 개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현재 한국 공군은 타우러스 350K를 이미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조금 작은 타우러스 350K-2를 개발해 KAI가 만드는 경공격기 FA-50에 장착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보다 덩치가 큰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X에도 달 수 있습니다.

FA-50은 이미 중소국가들에 수출되고 있고, KFX도 변수는 있지만 우리 공군과 함께 인도네시아 공군이 운영할 예정으로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350K-2가 개발만 되면 향후 이들 전투기가 수출될 때 패키지로 묶어 수출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한국 공군의 운용 중인 타우러스 350K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한국 공군의 운용 중인 타우러스 350K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고객님'이지만 '을'…내 거인 듯 내 거지만 내 거 아닌

매력적인 한국 시장을 놓고 거대 방산업체들이 달려들고 있지만, 사실 큰돈 주고 무기는 사면서도 큰소리 못 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 공군이 F-35A를 도입하는 대가로 록히드마틴은 에이사(AESA)레이더 등 핵심 기술을 이전해주는 한편 군 통신위성도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AESA 레이더 기술은 이전을 거부해 국내에서 개발에 나섰고, 군 통신 위성은 차일피일 몇 번을 미루고 미루며 속을 태우다 유럽제 통신위성을 구매해 우리에게 제공했습니다. 당시 7조 원이 넘는 돈을 록히드마틴에 갖다 주면서 '을'도 못되고 '봉'이 됐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습니다.

2019년 10월 일반에 처음 공개된 한국 공군의 F-35A2019년 10월 일반에 처음 공개된 한국 공군의 F-35A

미국은 우리 공군 F-15K에 장착하는 센서인 '타이거아이'의 봉인을 훼손했다고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핵심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임의로 뜯지 못하게 한 건데 우리 처지에서는 내 돈 주고 수입한 건데 열어보지도 못하는 겁니다.

국산 경공격기 FA-50은 아르헨티나 수출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상탈출 좌석을 공급한 영국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포틀랜드를 놓고 전쟁을 벌인 나라에 자국 장비가 들어가는 걸 허락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 돈 주고 사 와서 내가 만드는 비행기에 달았는데 전체 가격에서 비중이 적은 부품 몇 개 때문에 수출 사업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KAI의 FA-50 경공격기KAI의 FA-50 경공격기

이 사례들을 두고 우리가 협상을 잘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F-35A도, 타이거아이도, 영국제 탈출 좌석도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첨단 무기이면서 검증됐고, 우리 기존 장비와 호환이 돼야 하고, 따질게 한둘이 아닌 데 이것저것 충족하다 보면 그거 아니면 살 게 없는 게 되니 내 돈 갖다 주면서도 제발 팔아달라고 읍소하는 꼴입니다.

■"전력 증강, 방위 산업 육성 기회 삼아야"

하지만 상륙공격 헬기나 해군 함정의 동력원 결정,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개발 사업은 양상이 다릅니다. 우리가 경쟁을 붙일 수 있는 구도가 됐습니다.

공격헬기는 국내 개발과 벨, 보잉을 놓고 저울질 할 수 있고, 해군 함정 사업은 롤스로이스와 GE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은 국내업체 LIG 넥스원이 KFX에 장착하는 걸 목적으로 이미 탐색 개발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타우러스시스템즈도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개발 단계부터 내부 부품까지 한국 업체와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광운대학교 방위사업연구소 심상렬 소장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무기 도입 사업들은 F-35A를 도입할 때 미국으로부터 독점적으로 구매하는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우리 방산업체 육성에 무게를 둘 수도 있고, 성능을 비롯해 일감, 핵심 기술 확보 등 산업 파급 효과까지 우리가 원하는 걸 꼼꼼히 따져볼 수 있는, 이른바 '구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겁니다.

무기는 대부분 절충 교역을 합니다. 내가 사주는 액수의 일정 비율만큼 혜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기술 이전을 받거나, 우리 부품을 납품받을 것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을 받아도 소화할 능력이 없거나 납품할 부품 생산 기반도 없는 나라들은 무기 구매 대가로 자국 농축산물을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태국은 스웨덴으로부터 전투기를 도입하며 일부를 닭고기로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좋은 건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겠지만 심 소장은 우리 방산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이미 상당 수준에 올라왔기 때문에 협상에서 해외 방산업체들이 쉽사리 기술 이전을 해줄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일부 부품의 국내 공동 생산이나 국내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육성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도록 경쟁 구도는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국내 업체들의 제조 능력이나 생산 관리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일단 국내 물량부터 시작해 향후 거대 방산 업체들의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가게 되면 노하우 축적은 물론 일감까지 확보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헬기·미사일·군함까지…돈 주고 ‘을’ 안 되려면?
    • 입력 2020-12-10 09:01:14
    취재K
잇달아 국내 언론 접촉 나선 미국·유럽 거대 방산 업체들…속내는?<br />‘내 돈·내 산’인데도 ‘을’의 서러움 겪는 무기 도입<br />세계 방산 시장 ‘큰 손’ 한국…“구매력 발휘할 기회”
■국산? 미국산? 해병대 상륙공격 헬기

항공전력 자체 보유는 우리 해병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적이 눈으로 볼 수 없고 레이더 전파도 닿지 않는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다가 일거에 해상과 공중을 통해 적의 해안으로 몰아쳐 들어가는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펴기 위한 필수 전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국산 헬기 수리온을 해상에서 해병대 병력을 이동시키는 용도의 마린온으로 개조해 '상륙기동 헬기'로 도입했습니다.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KAI의 ‘마린온’
그리고 전장에서 이 마린온을 엄호하고, 해안의 적 전력을 공격할 헬기로 '상륙공격 헬기'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후보 기종으로 거론되는 건 미국의 거대 방산 기업 보잉사의 AH-64E '아파치 가디언'과 미국 벨 사의 AH-1Z '바이퍼', 그리고 KAI가 개발하려 하는 마린온의 무장형이 있습니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성능과 실전 경험을 비롯해 수요군인 해병대가 가장 원하는 헬기가 채택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군이 요구하는 성능(ROC)만 충족한다면 국내 방위산업 육성과 산업 파급효과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섭니다.

상륙공격 헬기 후보 기종 BELL의 AH-1Z ‘바이퍼’
■슈퍼 코브라 조종사, 6·25참전 용사 아들도 나선 美 무기 홍보

후보 기종으로 거론되는 바이퍼의 제조사 벨이 어제(9일)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미국의 벨 본사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했습니다.

바이퍼의 어머니 기종 AH-1W '슈퍼 코브라'를 조종하는 등 2,000시간의 벨 헬리콥터 조종 기록을 가진 전직 미 해병대 조종사가 바이퍼의 성능과 장점을 발표했습니다.

이라크전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퇴역 미 해병대 중장도 나섰습니다. 37년간 헬기를 몰며 미 해병대 항공 부사령관까지 올랐던 그는 6.25에 참전했다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데저트 스톰'(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조종사로 복무했을 때 공격 헬기의 유용성을 절감했다며 바이퍼가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F-35와도 긴밀한 합동 작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벨은 국내 홍보담당자가 없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미국 본사가 직접 나서 과거 한국 공군이 F-16을 도입할 때 홍보를 맡았던 국내 대행사와 계약을 맺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습니다.

상륙공격 헬기는 모두 24대가 도입될 예정입니다. 계약 조건을 향후 지켜봐야겠지만 대당 가격이 300억 선은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향후 전력 증강으로 후속 사업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선정만 되면 유지 비용을 빼고도 납품만도 수천억 원인 사업입니다. 큰 장이 서는 겁니다.

벨의 기자 간담회
■국내 언론 접촉 나선 유럽 방산업체들…속내는?

앞서 2일에는 영국 방산 기업 롤스로이스가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자동차로 더 친숙한 롤스로이스지만 자동차 부분은 BMW에 인수됐고 현재는 민간, 군용 항공기 엔진과 군함, 선박의 동력계통이 주력인 거대 방산 기업입니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스텔스기 F-35B의 엔진이 롤스로이스 제품입니다.

롤스로이스 기자 간담회
서방에서 군함 동력원, 특히 엔진 쪽은 미국의 GE와 롤스로이스가 양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해군 엔진은 GE가 독점하다시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건조가 진행되고 있는 차기 호위함(FFX) 2차 사업(대구급 호위함)에 롤스로이스가 동력원으로 채택됐습니다. 이날 롤스로이스는 향후 3차 사업에도 롤스로이스 동력원을 공급하기 위해 현대중공업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발표는 롤스로이스 이종열 한국 지사장이 맡았습니다. 33년 동안 해군에서 복무한 뒤 대령으로 예편한 이 지사장은 롤스로이스의 MT-30 가스터빈이 경쟁사 엔진과 부피는 같으면서도 출력은 두 배 이상 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간이 한정된 군함에서 기존에 가스터빈 엔진 2개가 필요했다면, 자사 엔진은 하나만 놔도 같은 출력을 낼 수 있다는 겁니다.

FFX 2차 사업은 모두 8대의 군함을 건조합니다. 3차 사업은 6대가 예정돼 있습니다. 총 사업비가 2차는 3조 2천억 원, 3차는 2조 6천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업입니다.

MT-30 가스터빈이 탑재된 한국 해군 대구함
한국 해군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총 사업비 7조 원으로 6척을 건조할 예정입니다. 한 척 건조에만 2조 원이 들 거라는 경항모 보유도 추진 중입니다. 방산업체들로서는 한국 군함들에 줄줄이 핵심 동력원을 납품할 기회가 열린 셈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군함을 이렇게 만들어내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중국과 동남아, 한국, 일본 정도뿐입니다. 게다가 조선 강국 한국은 해외에 군함을 대거 수출하고 있습니다. 필리핀과 태국, 뉴질랜드, 영국, 노르웨이 등이 한국 조선소에 군함 건조를 맡겼습니다.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한국 해군에 동력원을 납품하면 이를 실적 삼아 한국 군함을 사 간 나라에도 수출길을 뚫을 수 있는 겁니다.

해외 기업들의 한국을 향한 러브콜, 이 뿐만이 아닙니다. 독일과 스웨덴이 합작한 미사일 제조사 '타우러스시스템즈'도 최근 한국 언론에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한국과 공동 개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현재 한국 공군은 타우러스 350K를 이미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조금 작은 타우러스 350K-2를 개발해 KAI가 만드는 경공격기 FA-50에 장착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보다 덩치가 큰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X에도 달 수 있습니다.

FA-50은 이미 중소국가들에 수출되고 있고, KFX도 변수는 있지만 우리 공군과 함께 인도네시아 공군이 운영할 예정으로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350K-2가 개발만 되면 향후 이들 전투기가 수출될 때 패키지로 묶어 수출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한국 공군의 운용 중인 타우러스 350K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고객님'이지만 '을'…내 거인 듯 내 거지만 내 거 아닌

매력적인 한국 시장을 놓고 거대 방산업체들이 달려들고 있지만, 사실 큰돈 주고 무기는 사면서도 큰소리 못 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 공군이 F-35A를 도입하는 대가로 록히드마틴은 에이사(AESA)레이더 등 핵심 기술을 이전해주는 한편 군 통신위성도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AESA 레이더 기술은 이전을 거부해 국내에서 개발에 나섰고, 군 통신 위성은 차일피일 몇 번을 미루고 미루며 속을 태우다 유럽제 통신위성을 구매해 우리에게 제공했습니다. 당시 7조 원이 넘는 돈을 록히드마틴에 갖다 주면서 '을'도 못되고 '봉'이 됐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습니다.

2019년 10월 일반에 처음 공개된 한국 공군의 F-35A
미국은 우리 공군 F-15K에 장착하는 센서인 '타이거아이'의 봉인을 훼손했다고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핵심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임의로 뜯지 못하게 한 건데 우리 처지에서는 내 돈 주고 수입한 건데 열어보지도 못하는 겁니다.

국산 경공격기 FA-50은 아르헨티나 수출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상탈출 좌석을 공급한 영국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포틀랜드를 놓고 전쟁을 벌인 나라에 자국 장비가 들어가는 걸 허락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 돈 주고 사 와서 내가 만드는 비행기에 달았는데 전체 가격에서 비중이 적은 부품 몇 개 때문에 수출 사업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KAI의 FA-50 경공격기
이 사례들을 두고 우리가 협상을 잘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F-35A도, 타이거아이도, 영국제 탈출 좌석도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첨단 무기이면서 검증됐고, 우리 기존 장비와 호환이 돼야 하고, 따질게 한둘이 아닌 데 이것저것 충족하다 보면 그거 아니면 살 게 없는 게 되니 내 돈 갖다 주면서도 제발 팔아달라고 읍소하는 꼴입니다.

■"전력 증강, 방위 산업 육성 기회 삼아야"

하지만 상륙공격 헬기나 해군 함정의 동력원 결정,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개발 사업은 양상이 다릅니다. 우리가 경쟁을 붙일 수 있는 구도가 됐습니다.

공격헬기는 국내 개발과 벨, 보잉을 놓고 저울질 할 수 있고, 해군 함정 사업은 롤스로이스와 GE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은 국내업체 LIG 넥스원이 KFX에 장착하는 걸 목적으로 이미 탐색 개발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타우러스시스템즈도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개발 단계부터 내부 부품까지 한국 업체와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광운대학교 방위사업연구소 심상렬 소장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무기 도입 사업들은 F-35A를 도입할 때 미국으로부터 독점적으로 구매하는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우리 방산업체 육성에 무게를 둘 수도 있고, 성능을 비롯해 일감, 핵심 기술 확보 등 산업 파급 효과까지 우리가 원하는 걸 꼼꼼히 따져볼 수 있는, 이른바 '구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겁니다.

무기는 대부분 절충 교역을 합니다. 내가 사주는 액수의 일정 비율만큼 혜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기술 이전을 받거나, 우리 부품을 납품받을 것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을 받아도 소화할 능력이 없거나 납품할 부품 생산 기반도 없는 나라들은 무기 구매 대가로 자국 농축산물을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태국은 스웨덴으로부터 전투기를 도입하며 일부를 닭고기로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좋은 건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겠지만 심 소장은 우리 방산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이미 상당 수준에 올라왔기 때문에 협상에서 해외 방산업체들이 쉽사리 기술 이전을 해줄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일부 부품의 국내 공동 생산이나 국내 공동 연구개발 등 방산 육성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도록 경쟁 구도는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국내 업체들의 제조 능력이나 생산 관리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일단 국내 물량부터 시작해 향후 거대 방산 업체들의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가게 되면 노하우 축적은 물론 일감까지 확보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