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 느려서 문제인데 “느린 게 답”이라고요?

입력 2020.12.10 (15:06) 수정 2020.12.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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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5년부터 내연기관車 퇴출?

이르면 2035년부터 휘발유차와 디젤차를 더 이상 구입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지난달 '내연기관車 퇴출'을 사실상 공식화했습니다. 2035년 또는 2040년부터 전기차와 수소차 같은 친환경차량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만 국내 신차 판매를 허용하자고 제안한 거죠.

자동차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입니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내연기관차 퇴출은 전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당장 5년 뒤인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퇴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영국은 2030년부터, 중국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캐나다 퀘백주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 전기차, 정말 친환경적일까?

휘발유차와 경유차가 시장에서 퇴출되려면, 전기차가 확실한 대안이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전기차가 정말 친환경 차량인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전기차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 때문입니다.

전기차 자체는 당연히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동력원인 전기를 석탄발전으로 생산한다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논란에 나름의 결론을 내려준 연구가 있습니다. 2015년 환경부는 서울대 송한호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바탕으로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연료별로 차량의 라이프 사이클을 분석해보니, 휘발유차와 경유차가 1km를 주행할 때 200g에 가까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데에 비해 전기차는 전기 생성 과정에서 94g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켰습니다. 연구 당시 국내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석탄화력발전 39%, 천연가스 23%)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 '전기차 충전기 6만 2789기'의 비밀

전기차가 늘어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충전 문제일 겁니다. 올해 10월 말 기준 국내 등록된 전기차는 12만 8천여대입니다. 그럼 전기차 충전기는 몇 대일까요?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국내 전기차 공용충전기는 6만 2789기입니다. 산술적으론 차량 2대에 충전기 1기꼴입니다.

전문가들은 숫자로만 놓고 보면 충전기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전기차 사용자들은 스스로 '충전 난민'이라고 부를 정도로 충전에 자주 어려움을 겪는 걸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환경부가 집계한 충전기 개수를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6만 2789기라는 숫자는 공용충전기의 숫자입니다. 그런데 친환경차 통계누리집에 등록된 '공개' 공용충전기는 이 숫자의 절반이 조금 넘는 3만 3336기입니다. 나머지 3만 기 정도는 '비공개' 공용충전기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특정 회사 직원이거나 아파트 입주민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충전기가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전체 공용충전기 가운데 30~40분 만에 충전이 완료되는 급속충전기(40kwh 이상)는 만 대도 안 됩니다. 충전소에 가더라도 몇 시간을 꽂아놔야 충전이 되는 완속충전기가 대부분인 겁니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났던 전기차 이용자들도 이같은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한 김재석 씨는 "500세대가 넘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 단지에 전기차 충전기는 완속충전기 한 대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단지 안에선 다른 사람이 충전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복합쇼핑몰에 가서 충전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르노 전기차 이용자는 "국도에는 전기차 충전기가 없고, 그나마 서울 경기는 괜찮지만 지방으로 가면 충전기가 훨씬 적다"고 설명했습니다.


■ "2050년까지 가구당 충전기 한 대" 실현 가능할까?

이런 이유로 정부가 내놓은 친환경차 보급 대책도 충전 인프라를 대폭 늘리는 방안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일단 앞으로 5년 안에 전국에 완속충전기를 50만 기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는 급속충전기가 1.5만기로 늘어납니다. 궁극적으로는 2050년까지 전국 2천만 가구에 하나씩 충전기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가구당 전기차 충전기 하나씩이라니,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일까요?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만 현재의 충전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고속충전기와 초저속충전기로 이원화해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잠시 들르는 곳에는 고속충전기를 늘리고, 가정이나 직장에는 초저속 충전기를 대량 보급해야 한다는 겁니다.


■ "느려서 속 터지는데" 느린 게 답이라고요?

최 교수는 전기차의 충전에 대해 "내연기관차가 주유소를 이용하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기차 보급의 핵심은, 집이나 직장처럼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곳에서 느리게 충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반드시 충전소에 가지 않더라도 주차장에 설치된 초저속 충전기와 연결해 마치 휴대전화를 충전하듯이 상시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초저속 충전기란 현재 7kwh 수준인 완속충전기보다 더 느리고 휴대가 간편한 충전기를 뜻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최 교수의 인터뷰 영상을 첨부합니다.


최영석 선문대 스마트자동차공학부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습니다. 최 교수는 "업무용 차량과 개인용 차량을 구분해서 충전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택배용 트럭이나 택시는 운행시간이 길기 때문에 급속충전기 중심으로 충전이 이뤄져야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운행하는 전기차는 이동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집이나 직장에서 저속충전기로 오래 충전하면 된다는 겁니다.

무조건 급속충전기만 늘려서 '빨리 빨리' 충전을 추구하는 건 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 "개인 충전기 대폭 늘어나야"

국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기차가 보급된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요. 전기차 15만 2천대가 보급된 일본의 전기차 충전기는 22만기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90% 정도가 개인 충전기입니다. 상당수 차주가 충전소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집이나 직장에서 충전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죠.

최웅철 교수는 "선진국에서 전기차 차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 '고속충전소를 한 달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응답이 80%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환경부는 국내에 보급된 개인용 충전기가 5~6만기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결국 충전기를 가구당 하나 수준으로 대폭 늘리려면, 개인 충전기도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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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차 충전, 느려서 문제인데 “느린 게 답”이라고요?
    • 입력 2020-12-10 15:06:30
    • 수정2020-12-10 17:37:44
    취재K

■ 2035년부터 내연기관車 퇴출?

이르면 2035년부터 휘발유차와 디젤차를 더 이상 구입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지난달 '내연기관車 퇴출'을 사실상 공식화했습니다. 2035년 또는 2040년부터 전기차와 수소차 같은 친환경차량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만 국내 신차 판매를 허용하자고 제안한 거죠.

자동차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입니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내연기관차 퇴출은 전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당장 5년 뒤인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퇴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영국은 2030년부터, 중국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캐나다 퀘백주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 전기차, 정말 친환경적일까?

휘발유차와 경유차가 시장에서 퇴출되려면, 전기차가 확실한 대안이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전기차가 정말 친환경 차량인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전기차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 때문입니다.

전기차 자체는 당연히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동력원인 전기를 석탄발전으로 생산한다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논란에 나름의 결론을 내려준 연구가 있습니다. 2015년 환경부는 서울대 송한호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바탕으로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연료별로 차량의 라이프 사이클을 분석해보니, 휘발유차와 경유차가 1km를 주행할 때 200g에 가까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데에 비해 전기차는 전기 생성 과정에서 94g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켰습니다. 연구 당시 국내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석탄화력발전 39%, 천연가스 23%)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 '전기차 충전기 6만 2789기'의 비밀

전기차가 늘어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충전 문제일 겁니다. 올해 10월 말 기준 국내 등록된 전기차는 12만 8천여대입니다. 그럼 전기차 충전기는 몇 대일까요?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국내 전기차 공용충전기는 6만 2789기입니다. 산술적으론 차량 2대에 충전기 1기꼴입니다.

전문가들은 숫자로만 놓고 보면 충전기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전기차 사용자들은 스스로 '충전 난민'이라고 부를 정도로 충전에 자주 어려움을 겪는 걸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환경부가 집계한 충전기 개수를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6만 2789기라는 숫자는 공용충전기의 숫자입니다. 그런데 친환경차 통계누리집에 등록된 '공개' 공용충전기는 이 숫자의 절반이 조금 넘는 3만 3336기입니다. 나머지 3만 기 정도는 '비공개' 공용충전기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특정 회사 직원이거나 아파트 입주민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충전기가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전체 공용충전기 가운데 30~40분 만에 충전이 완료되는 급속충전기(40kwh 이상)는 만 대도 안 됩니다. 충전소에 가더라도 몇 시간을 꽂아놔야 충전이 되는 완속충전기가 대부분인 겁니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났던 전기차 이용자들도 이같은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한 김재석 씨는 "500세대가 넘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 단지에 전기차 충전기는 완속충전기 한 대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단지 안에선 다른 사람이 충전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복합쇼핑몰에 가서 충전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르노 전기차 이용자는 "국도에는 전기차 충전기가 없고, 그나마 서울 경기는 괜찮지만 지방으로 가면 충전기가 훨씬 적다"고 설명했습니다.


■ "2050년까지 가구당 충전기 한 대" 실현 가능할까?

이런 이유로 정부가 내놓은 친환경차 보급 대책도 충전 인프라를 대폭 늘리는 방안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일단 앞으로 5년 안에 전국에 완속충전기를 50만 기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는 급속충전기가 1.5만기로 늘어납니다. 궁극적으로는 2050년까지 전국 2천만 가구에 하나씩 충전기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가구당 전기차 충전기 하나씩이라니,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일까요?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만 현재의 충전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고속충전기와 초저속충전기로 이원화해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잠시 들르는 곳에는 고속충전기를 늘리고, 가정이나 직장에는 초저속 충전기를 대량 보급해야 한다는 겁니다.


■ "느려서 속 터지는데" 느린 게 답이라고요?

최 교수는 전기차의 충전에 대해 "내연기관차가 주유소를 이용하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기차 보급의 핵심은, 집이나 직장처럼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곳에서 느리게 충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반드시 충전소에 가지 않더라도 주차장에 설치된 초저속 충전기와 연결해 마치 휴대전화를 충전하듯이 상시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초저속 충전기란 현재 7kwh 수준인 완속충전기보다 더 느리고 휴대가 간편한 충전기를 뜻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최 교수의 인터뷰 영상을 첨부합니다.


최영석 선문대 스마트자동차공학부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습니다. 최 교수는 "업무용 차량과 개인용 차량을 구분해서 충전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택배용 트럭이나 택시는 운행시간이 길기 때문에 급속충전기 중심으로 충전이 이뤄져야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운행하는 전기차는 이동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집이나 직장에서 저속충전기로 오래 충전하면 된다는 겁니다.

무조건 급속충전기만 늘려서 '빨리 빨리' 충전을 추구하는 건 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 "개인 충전기 대폭 늘어나야"

국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기차가 보급된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요. 전기차 15만 2천대가 보급된 일본의 전기차 충전기는 22만기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90% 정도가 개인 충전기입니다. 상당수 차주가 충전소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집이나 직장에서 충전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죠.

최웅철 교수는 "선진국에서 전기차 차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 '고속충전소를 한 달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응답이 80%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환경부는 국내에 보급된 개인용 충전기가 5~6만기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결국 충전기를 가구당 하나 수준으로 대폭 늘리려면, 개인 충전기도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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