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건너 태풍 될라…대북전단 나비효과

입력 2020.12.21 (18:09) 수정 2020.12.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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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을 놓고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시작된 비판이 유엔으로 번지더니, 영국 의회에서도 거론됐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군사적 대결 속에 남북 대화도 추진해야 하는 한반도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접경지 주민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기본권 침해, 표현의 자유 위축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한국 국회 법 개정이라는 작은 움직임이 큰 폭풍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 해리스 "문제 없겠나?"… 궁금증과 우려 사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지난주 강창일 주일대사 내정자를 만났습니다.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습니다.

강 내정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대북전단 금지법도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해리스 대사가 대북전단 금지법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 침해를 크게 우려했다기 보다는 논란에 대한 내 견해를 물었다"면서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있고, 접경지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퇴임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도 한국 외교안보 당국자와의 비공개 면담에서 전단 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권 교체기에도 미국 행정부에서 한국의 법 개정에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의 수정헌법은 1조에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불만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하고, 이를 규제하는 법률 제정마저 금하는 겁니다.

이 같은 권리 선언에 한국의 전단 금지법을 비춰보면 미국 의회와 정부의 우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합니다.

■ 영국 상원의원 "재갈 물리는 법"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이 통과된 것 아니냐는 우려는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영국 상원의 데이비드 올튼 의원(자유민주당)은 현지 시각 20일 영국 외무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전단 금지법을 비판했습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목소리에 남북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재갈을 물리는 게 온당하냐는 질문입니다.

올튼 의원의 공개 서한올튼 의원의 공개 서한

올튼 의원은 "기본적 자유를 희생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활동을 범죄화하는 것은 남북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라면서 "영국이 이 수정안을 재고하도록 한국에 촉구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올튼 의원의 서한에는 '모든 구성원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천부인권, 곧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와 권리문제라는 시각으로 대북전단 금지법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영국 외무부가 자국 의원의 입장 표명을 요구받은 만큼, 영국 정부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의견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2014년 고사포 사격 잊었나"

전단금지법이 기본권 침해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지만 한국 정부 공식 입장은 일관됩니다.

"인권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다만, 이번 법률 개정안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조치다"라는 겁니다.

외교부는 각국 공관을 통해 개정 법률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오늘(21일) 서면 브리핑에서 "법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균형 잡히지 않은 일부 의견이 국내‧외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폭넓은 소통으로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지난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당국자들은 대북전단을 겨냥해서 북한군이 고사포를 쓰고 남측이 응사하면서 위기가 고조됐던 2014년 10월 사례, 그리고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서 북한에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버린 사례도 자주 언급 합니다.

■ "한국 내정에 훈수성 간섭, 편협한 주장"

법안을 주도해서 통과시킨 민주당은 더 강경합니다. 민주당은 어제(20일) 서면 브리핑에서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며 “편협한 주장에 깊은 유감”이라고 맞섰습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민주당 이낙연 대표

오늘(21일)은 이낙연 대표까지 나서 “미국 의회 일각에서 개정법의 재검토를 거론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표현의 자유도 타인의 권리나 국가 안보 등을 위협할 경우에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확립된 원칙”이라고 밝혔습니다.

법 개정 명분은 늘 '접경지역 주민 생명권'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2014년 북한에서 쏜 고사포탄이 떨어졌던 연천군 중면 주민은 KBS와의 통화에서 "위험한 행동은 통제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포탄이 하필 유사시 주민들이 피할 대피소 지붕에 떨어졌다면서 "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입어야 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오늘 민주당 - 접경지 주민 간담회오늘 민주당 - 접경지 주민 간담회

최종환 파주시장은 오늘 민주당과 간담회에서 "산림 보호를 위해 인화 물질을 휴대하지 못하게 하는 걸 자유 침해라 하지 않는다"면서 "한반도 화약고로 변질될 수 있는 지역에서 위험천만한 대북전단을 어떻게 좌시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강화시민회의 공동대표인 박흥렬 씨도 "그분들은 행사 하고 가면 그뿐인데 뒷감당은 주민이 한다"면서 "법이 빨리 공포 시행해서 그런 행위 제재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법 하나 바꿨을 뿐인데…동맹에 태풍 불라

당장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접경지 주민들의 호소에는 귀기울여야 합니다. 동시에 한반도의 특수성만 강조하다가 기본권 침해 시비에 더 깊이 휘말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번 논란은 동맹, 그리고 국제사회 현안에 대한 관여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기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 정부는 북한 인권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에 내정된 토니 블링컨북한 인권 문제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해결보다 남한 내부 통제를 통한 관계 개선에만 매달린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자칫 한미 간 '동맹 이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북전단 금지법이 국회에 제출된 게 지난 6월이고,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여섯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 주장 등 미국 의회의 문제 제기가 예상됐던 이 기간, 국제사회를 향한 설명과 설득 작업이 충분했었는지, 외교당국이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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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양 건너 태풍 될라…대북전단 나비효과
    • 입력 2020-12-21 18:09:52
    • 수정2020-12-21 18:11:26
    취재K

일주일 전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을 놓고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시작된 비판이 유엔으로 번지더니, 영국 의회에서도 거론됐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군사적 대결 속에 남북 대화도 추진해야 하는 한반도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접경지 주민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기본권 침해, 표현의 자유 위축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한국 국회 법 개정이라는 작은 움직임이 큰 폭풍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 해리스 "문제 없겠나?"… 궁금증과 우려 사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지난주 강창일 주일대사 내정자를 만났습니다.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습니다.

강 내정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대북전단 금지법도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해리스 대사가 대북전단 금지법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 침해를 크게 우려했다기 보다는 논란에 대한 내 견해를 물었다"면서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있고, 접경지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퇴임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도 한국 외교안보 당국자와의 비공개 면담에서 전단 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권 교체기에도 미국 행정부에서 한국의 법 개정에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의 수정헌법은 1조에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불만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하고, 이를 규제하는 법률 제정마저 금하는 겁니다.

이 같은 권리 선언에 한국의 전단 금지법을 비춰보면 미국 의회와 정부의 우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합니다.

■ 영국 상원의원 "재갈 물리는 법"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이 통과된 것 아니냐는 우려는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영국 상원의 데이비드 올튼 의원(자유민주당)은 현지 시각 20일 영국 외무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전단 금지법을 비판했습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목소리에 남북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재갈을 물리는 게 온당하냐는 질문입니다.

올튼 의원의 공개 서한
올튼 의원은 "기본적 자유를 희생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활동을 범죄화하는 것은 남북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라면서 "영국이 이 수정안을 재고하도록 한국에 촉구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올튼 의원의 서한에는 '모든 구성원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천부인권, 곧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와 권리문제라는 시각으로 대북전단 금지법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영국 외무부가 자국 의원의 입장 표명을 요구받은 만큼, 영국 정부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의견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2014년 고사포 사격 잊었나"

전단금지법이 기본권 침해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지만 한국 정부 공식 입장은 일관됩니다.

"인권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다만, 이번 법률 개정안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조치다"라는 겁니다.

외교부는 각국 공관을 통해 개정 법률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오늘(21일) 서면 브리핑에서 "법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균형 잡히지 않은 일부 의견이 국내‧외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폭넓은 소통으로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당국자들은 대북전단을 겨냥해서 북한군이 고사포를 쓰고 남측이 응사하면서 위기가 고조됐던 2014년 10월 사례, 그리고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서 북한에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버린 사례도 자주 언급 합니다.

■ "한국 내정에 훈수성 간섭, 편협한 주장"

법안을 주도해서 통과시킨 민주당은 더 강경합니다. 민주당은 어제(20일) 서면 브리핑에서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며 “편협한 주장에 깊은 유감”이라고 맞섰습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
오늘(21일)은 이낙연 대표까지 나서 “미국 의회 일각에서 개정법의 재검토를 거론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표현의 자유도 타인의 권리나 국가 안보 등을 위협할 경우에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확립된 원칙”이라고 밝혔습니다.

법 개정 명분은 늘 '접경지역 주민 생명권'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2014년 북한에서 쏜 고사포탄이 떨어졌던 연천군 중면 주민은 KBS와의 통화에서 "위험한 행동은 통제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포탄이 하필 유사시 주민들이 피할 대피소 지붕에 떨어졌다면서 "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입어야 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오늘 민주당 - 접경지 주민 간담회
최종환 파주시장은 오늘 민주당과 간담회에서 "산림 보호를 위해 인화 물질을 휴대하지 못하게 하는 걸 자유 침해라 하지 않는다"면서 "한반도 화약고로 변질될 수 있는 지역에서 위험천만한 대북전단을 어떻게 좌시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강화시민회의 공동대표인 박흥렬 씨도 "그분들은 행사 하고 가면 그뿐인데 뒷감당은 주민이 한다"면서 "법이 빨리 공포 시행해서 그런 행위 제재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법 하나 바꿨을 뿐인데…동맹에 태풍 불라

당장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접경지 주민들의 호소에는 귀기울여야 합니다. 동시에 한반도의 특수성만 강조하다가 기본권 침해 시비에 더 깊이 휘말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번 논란은 동맹, 그리고 국제사회 현안에 대한 관여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기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 정부는 북한 인권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에 내정된 토니 블링컨북한 인권 문제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해결보다 남한 내부 통제를 통한 관계 개선에만 매달린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자칫 한미 간 '동맹 이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북전단 금지법이 국회에 제출된 게 지난 6월이고,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여섯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 주장 등 미국 의회의 문제 제기가 예상됐던 이 기간, 국제사회를 향한 설명과 설득 작업이 충분했었는지, 외교당국이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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