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하사품 ‘기사계첩’ 국보 승격…‘말모이 원고’ 등 6건은 보물 지정

입력 2020.12.22 (11:08) 수정 2020.12.2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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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하사품이 완전하게 갖춰진 채 300년 넘게 풍산홍씨 후손가에 전래한 ‘기사계첩 및 함’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습니다. 또 ‘경진년 연행도첩’, ‘말모이 원고’ 등 조선 시대 회화, 서책, 근대 한글유산 등 6건이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국보 제334호가 된 ‘기사계첩 및 함(耆社契帖 및 函)’은 1719년(숙종 45년) 59세가 된 숙종이 태조 이성계의 선례를 따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계첩(契帖)으로,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궁중회화입니다.

기로소에 든 신하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에 보관할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됐고, 현재 박물관과 개인 소장 5건 정도가 전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2017년부터 해오고 있는 보물 가치 재평가 작업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기사계첩이 2019년 국보 제325호로 지정됐고, 이번이 두 번째 국보 지정입니다.

이번에 지정된 ‘기사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任埅, 1640∼1724)이 쓴 계첩의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景賢堂) 사연(賜宴) 때 숙종이 지은 어제(御製), 대제학 김유(金楺, 1653∼1719)의 발문, 각 행사의 참여자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초상화, 축시(祝詩),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례에선 볼 수 없는 ‘만퇴당장(晩退堂藏,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란 글씨가 있어 이 계첩이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여한 기로신 중의 한 명이었던 홍만조(洪萬朝, 1645~1725)에게 하사돼 풍산홍씨 후손가에 대대로 전승되어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줍니다.

300년이 넘은 오랜 세월에도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이 잘 보존된 것은 내함(內函), 호갑(護匣, 싸개), 외궤(外櫃)로 이루어진 삼중(三重)의 보호장치 덕분으로 평가됩니다. 화첩을 먼저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뒤 외궤에 넣는 방식으로,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는 왕실 하사품으로서 일괄로 갖추어진 매우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제작수준도 높아 화첩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평가됩니다.

문화재청은 ▲숙종의 기로소 입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후에 고종(高宗)이 기로소에 입소할 때 모범이 되었다는 점,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며, ▲기로신들의 친필(親筆) 글씨와 더불어 그림이 높은 완성도와 화격(畵格)을 갖추고 있어 현존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할 만한 예술성도 갖췄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계첩과 동시기에 만들어진 함(내함, 호갑, 외궤) 역시 당시 왕실공예품 제작 기술에 대해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므로 함께 국보로 함께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한편,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를 내용별로 분류하고 한글로 번역해 편찬한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分類杜工部詩(諺解) 卷十一)’, 1465년(세조 11년) 금속활자인 을유자(乙酉字)로 간행한 불경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諺解) 卷上一之二)’, 1760년 북경에 다녀온 동지사행(冬至使行)의 여정을 담은 화첩 ‘경진년 연행도첩(庚辰年 燕行圖帖)이 각각 보물로 새롭게 지정됐습니다.

아울러 조선에서 근대에 이르는 한글 유산 3건도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원고인 ’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孝懿王后 御筆 및 函-萬石君傳․郭子儀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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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22 11:08:15
    • 수정2020-12-22 1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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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하사품이 완전하게 갖춰진 채 300년 넘게 풍산홍씨 후손가에 전래한 ‘기사계첩 및 함’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습니다. 또 ‘경진년 연행도첩’, ‘말모이 원고’ 등 조선 시대 회화, 서책, 근대 한글유산 등 6건이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국보 제334호가 된 ‘기사계첩 및 함(耆社契帖 및 函)’은 1719년(숙종 45년) 59세가 된 숙종이 태조 이성계의 선례를 따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계첩(契帖)으로,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궁중회화입니다.

기로소에 든 신하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에 보관할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됐고, 현재 박물관과 개인 소장 5건 정도가 전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2017년부터 해오고 있는 보물 가치 재평가 작업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기사계첩이 2019년 국보 제325호로 지정됐고, 이번이 두 번째 국보 지정입니다.

이번에 지정된 ‘기사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任埅, 1640∼1724)이 쓴 계첩의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景賢堂) 사연(賜宴) 때 숙종이 지은 어제(御製), 대제학 김유(金楺, 1653∼1719)의 발문, 각 행사의 참여자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초상화, 축시(祝詩),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례에선 볼 수 없는 ‘만퇴당장(晩退堂藏,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란 글씨가 있어 이 계첩이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여한 기로신 중의 한 명이었던 홍만조(洪萬朝, 1645~1725)에게 하사돼 풍산홍씨 후손가에 대대로 전승되어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줍니다.

300년이 넘은 오랜 세월에도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이 잘 보존된 것은 내함(內函), 호갑(護匣, 싸개), 외궤(外櫃)로 이루어진 삼중(三重)의 보호장치 덕분으로 평가됩니다. 화첩을 먼저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뒤 외궤에 넣는 방식으로,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는 왕실 하사품으로서 일괄로 갖추어진 매우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제작수준도 높아 화첩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평가됩니다.

문화재청은 ▲숙종의 기로소 입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후에 고종(高宗)이 기로소에 입소할 때 모범이 되었다는 점,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며, ▲기로신들의 친필(親筆) 글씨와 더불어 그림이 높은 완성도와 화격(畵格)을 갖추고 있어 현존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할 만한 예술성도 갖췄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계첩과 동시기에 만들어진 함(내함, 호갑, 외궤) 역시 당시 왕실공예품 제작 기술에 대해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므로 함께 국보로 함께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한편,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를 내용별로 분류하고 한글로 번역해 편찬한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分類杜工部詩(諺解) 卷十一)’, 1465년(세조 11년) 금속활자인 을유자(乙酉字)로 간행한 불경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諺解) 卷上一之二)’, 1760년 북경에 다녀온 동지사행(冬至使行)의 여정을 담은 화첩 ‘경진년 연행도첩(庚辰年 燕行圖帖)이 각각 보물로 새롭게 지정됐습니다.

아울러 조선에서 근대에 이르는 한글 유산 3건도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원고인 ’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孝懿王后 御筆 및 函-萬石君傳․郭子儀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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