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화곡마을 ‘집단 암발병’…화학공단 때문?

입력 2020.12.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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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 나선 '화곡마을' 주민들, "산단 탓에 집단 암 발병"
충남 서산 대산공단은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 등 유수의 대기업이 입주해있습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역과 국가에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대표기업 중 하나인 현대오일뱅크 입구에서, 6개월째 매일 장송곡이 울리고 있습니다.
인근 화곡1리 마을 주민들이 이들 기업 탓에 '집단 암 발병'이 됐다며, 시위에 나선 겁니다.

강추위에 온몸을 동여맨 마을 어르신들은 현대오일뱅크가 '집단 암 발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도 주민들의 피해를 등한시하고 있다며, 강달호 사장의 사과와 건강검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는 암 발병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건강검진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마을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최근 폐암으로만 6명 숨져"
화곡1리 주민은 200여 명, 이들중 현재 암 투병을 하는 주민은 스무 명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주민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암 유병률은 10% 정도, 고령층이 비교적 많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암 유병률 3.6%보다 꽤 높습니다.

앞서 이 마을에서는 50여 명의 주민이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최근에는 6명이 폐암으로 숨졌습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주변에 흡연자가 없는 40대 여성이 폐암에 걸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시위에 함께하고 있지는 않지만, 화곡2리 마을에도 암으로 숨지거나 투병 중인 주민들이 많다는 것이 화곡1리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과거 공해를 모르던 청정지역에 암 환자가 수십 명 넘게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북서풍 비율 45%..."바람에 실린 오염물질, 그대로 마을에"
암 환자가 계속 발생했지만, 화학공단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집단 암 발병'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게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그 흔한 환경영향평가 한 번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알아볼 기회조차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만 쉴 새 없이 발생하는 암 환자 외에도 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있습니다. 바로 바람입니다.
주민들은 인근 현대오일뱅크와 마을의 위치, 바람의 방향을 따져보면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현대오일뱅크의 위치는 화곡 1리를 기준으로 북서쪽 약 3km 지점. 공교롭게도 이 지역에는 연중 바람의 45%가량이 북서쪽에서 불어옵니다. 실제 2018년 11월, 유증기 폭발 때는 북서풍을 타고 온 연기에 마을 하늘이 시커멓게 뒤덮였고, 올해 4월에도 마을 전체가 뿌연 연기와 냄새로 가득 차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밖에 수시로 악취가 밀려온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 18년 전 약속.."환경영향평가, 대체 언제쯤?"
가만히 생각해보면 30년 된 산단이 이제 와서 이런 갈등을 겪는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피해를 준 일이 있다면 그 원인을 밝히고, 이미 보상을 하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세월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2002년 산업단지에 있던 당시 정유 3사와 화곡1리, 3리 주민들은 서산시가 입회한 가운데, 석유비축시설 준공 시기인 2005년, 환경영향평가를 하기로 합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마을 사이에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환경영향평가 비용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2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서산시 역시 중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고가 날 때마다 마을 이장 등 일부 주민에게 금전적인 혜택이나 자녀 취업 같은 개인적 보상이 주어지면서, 제대로 된 원인 규명 없이 얼렁뚱땅 넘어온 게 지금의 갈등을 불렀다고 주민들은 생각합니다.
주민들이 돈보다도 건강검진이나 환경영향평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 건강검진 거부 이유는? "치료 두고 새로운 갈등의 불씨 우려"
그럼에도 현대오일뱅크는 주민들의 건강검진 요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건강검진을 해주면 그 결과에 따른 책임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건강검진과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암 발병에 일부라도 원인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면
기업 된 도리로 책임지면 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기업의 '이윤'이 앞서는 모습입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해원 부사장의 말을 그대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폐암이 한 열다섯 분이 걸려있어서 건강검진을 해달라 그렇게 하기 때문에..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서
또 다른 불씨가, 갈등의 불씨가 될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 갈등 회복 위해서는.."환경영향평가 등 조사 선행돼야"
화곡1리와 마찬가지로 '집단 암 발병' 이 발생한 전북 익산 장점마을은 지난해 환경부 조사에서 인근 비료공장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료를 만들기 위해 담배 찌꺼기인 '연초박'을 태우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1급 발암물질 때문에
'집단 암 발병'이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겁니다.
대산공단 역시 '집단 암 발병'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시민단체는 객관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양측 다 이해할 수 있는 공정한 조사만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이윤'보다 '생명'
암으로 쓰러지는 가족과 이웃을 바라보면서도 수십 년 간 영문도 모른 채 살아온 시골 주민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생명'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 역시, '이윤'이라는 목적에 앞서 '생명'보호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화곡1리 주민들의 피해가 빠르게 회복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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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 화곡마을 ‘집단 암발병’…화학공단 때문?
    • 입력 2020-12-22 21:43:29
    취재K

■ 시위 나선 '화곡마을' 주민들, "산단 탓에 집단 암 발병"
충남 서산 대산공단은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 등 유수의 대기업이 입주해있습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역과 국가에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대표기업 중 하나인 현대오일뱅크 입구에서, 6개월째 매일 장송곡이 울리고 있습니다.
인근 화곡1리 마을 주민들이 이들 기업 탓에 '집단 암 발병'이 됐다며, 시위에 나선 겁니다.

강추위에 온몸을 동여맨 마을 어르신들은 현대오일뱅크가 '집단 암 발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도 주민들의 피해를 등한시하고 있다며, 강달호 사장의 사과와 건강검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는 암 발병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건강검진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마을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최근 폐암으로만 6명 숨져"
화곡1리 주민은 200여 명, 이들중 현재 암 투병을 하는 주민은 스무 명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주민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암 유병률은 10% 정도, 고령층이 비교적 많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암 유병률 3.6%보다 꽤 높습니다.

앞서 이 마을에서는 50여 명의 주민이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최근에는 6명이 폐암으로 숨졌습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주변에 흡연자가 없는 40대 여성이 폐암에 걸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시위에 함께하고 있지는 않지만, 화곡2리 마을에도 암으로 숨지거나 투병 중인 주민들이 많다는 것이 화곡1리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과거 공해를 모르던 청정지역에 암 환자가 수십 명 넘게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북서풍 비율 45%..."바람에 실린 오염물질, 그대로 마을에"
암 환자가 계속 발생했지만, 화학공단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집단 암 발병'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게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그 흔한 환경영향평가 한 번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알아볼 기회조차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만 쉴 새 없이 발생하는 암 환자 외에도 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있습니다. 바로 바람입니다.
주민들은 인근 현대오일뱅크와 마을의 위치, 바람의 방향을 따져보면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현대오일뱅크의 위치는 화곡 1리를 기준으로 북서쪽 약 3km 지점. 공교롭게도 이 지역에는 연중 바람의 45%가량이 북서쪽에서 불어옵니다. 실제 2018년 11월, 유증기 폭발 때는 북서풍을 타고 온 연기에 마을 하늘이 시커멓게 뒤덮였고, 올해 4월에도 마을 전체가 뿌연 연기와 냄새로 가득 차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밖에 수시로 악취가 밀려온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 18년 전 약속.."환경영향평가, 대체 언제쯤?"
가만히 생각해보면 30년 된 산단이 이제 와서 이런 갈등을 겪는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피해를 준 일이 있다면 그 원인을 밝히고, 이미 보상을 하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세월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2002년 산업단지에 있던 당시 정유 3사와 화곡1리, 3리 주민들은 서산시가 입회한 가운데, 석유비축시설 준공 시기인 2005년, 환경영향평가를 하기로 합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마을 사이에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환경영향평가 비용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2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서산시 역시 중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고가 날 때마다 마을 이장 등 일부 주민에게 금전적인 혜택이나 자녀 취업 같은 개인적 보상이 주어지면서, 제대로 된 원인 규명 없이 얼렁뚱땅 넘어온 게 지금의 갈등을 불렀다고 주민들은 생각합니다.
주민들이 돈보다도 건강검진이나 환경영향평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 건강검진 거부 이유는? "치료 두고 새로운 갈등의 불씨 우려"
그럼에도 현대오일뱅크는 주민들의 건강검진 요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건강검진을 해주면 그 결과에 따른 책임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건강검진과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암 발병에 일부라도 원인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면
기업 된 도리로 책임지면 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기업의 '이윤'이 앞서는 모습입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해원 부사장의 말을 그대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폐암이 한 열다섯 분이 걸려있어서 건강검진을 해달라 그렇게 하기 때문에..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서
또 다른 불씨가, 갈등의 불씨가 될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 갈등 회복 위해서는.."환경영향평가 등 조사 선행돼야"
화곡1리와 마찬가지로 '집단 암 발병' 이 발생한 전북 익산 장점마을은 지난해 환경부 조사에서 인근 비료공장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료를 만들기 위해 담배 찌꺼기인 '연초박'을 태우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1급 발암물질 때문에
'집단 암 발병'이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겁니다.
대산공단 역시 '집단 암 발병'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시민단체는 객관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양측 다 이해할 수 있는 공정한 조사만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이윤'보다 '생명'
암으로 쓰러지는 가족과 이웃을 바라보면서도 수십 년 간 영문도 모른 채 살아온 시골 주민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생명'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 역시, '이윤'이라는 목적에 앞서 '생명'보호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화곡1리 주민들의 피해가 빠르게 회복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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