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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있는데 왜 수어 통역하냐고요?
입력 2020.12.25 (08:02) 취재K

■ 농인(聾人)을 아시나요?

날 때부터 배우는 언어를 흔히 '모국어'라고 표현하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자란 모두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우는 건 아닙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처럼 하나의 언어체계를 가진 '수어'. 그 수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부릅니다.

농인이라는 표현,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시나요? 때문에 청각 장애인으로 칭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요, 농인은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청각 장애가 의료적 관점의 용어라면 농인은 그저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일 뿐입니다. 농인의 입장에서 수어를 쓰지 않는 사람은 청인이 되고요.


■ "글자보다는 '수어'에 익숙해서요."

농인들에게 수어는 제1 언어입니다. 뉴스 화면에 자막이 나오는데도 수어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글자보다 수어에 익숙한 농인들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뉴스 수어 통역은 필수입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건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든 수어를 쓰는 사람이든 같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1년 가까이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모두의 일상이 달라진 가운데 누구보다 손을 바쁘게 움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수어 통역사'입니다.


■ "손은 풀어도 긴장은 풀 수 없죠"…수어 통역사의 '스탠바이'

전북 수어통역센터에 소속된 7년 차 수어 통역사 박유로 씨가 아침 뉴스 통역을 위해 방송국 뉴스룸에 들어왔습니다. 수어는 표정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쓰고 온 마스크는 한쪽에 잠시 벗어둡니다.

뉴스의 특성상 생방송 직전에 기사 내용을 접하게 되는데요, 짧은 시간 동안 주요 표현을 익힙니다. 이렇게 손을 잘 풀어야 하는데 마음가짐은 다릅니다. 통역에 최대한 집중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가까이 쭉 주요 뉴스가 된 코로나19 관련 재난 정보가 혹여나 농인들에게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말이죠.


■ 코로나19 사태로 통역 업무 늘었지만 인력 '태부족'

올해는 특히 코로나19 탓에 방역당국 브리핑이 연일 열리면서 업무가 늘었는데요, 수어 통역사들에게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먼저 상시 대기형 업무를 한다는 점입니다. 전라북도나 전주시, 지역 방송국 등 여러 기관이 코로나19 관련 소식을 급하게 전해야 할 때 통역을 갑자기 요구하게 되는데요, 빠르게 대처해야 하기에 평일뿐 아니라 휴일에도 밤낮 구분 없이 업무 배정을 받게 됐습니다.

지역 내 수어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안타까운데요, 전라북도수어통역센터 소속 수어 통역사는 여섯 명. 여기서 농인인 수어 통역사를 제외하면 실제 브리핑과 방송국 특보의 통역을 맡을 인력은 겨우 두, 세 명뿐입니다. 갑자기 발생하는 통역 업무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죠.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땐 주변 시군의 수어통역센터 소속 수어 통역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실정입니다.


■ 평일 브리핑 통역하고 얻는 수입 '0원'

그렇다면 도 방역당국 브리핑을 통역해 얻는 수입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상 0원입니다.

주말과 같은 휴일 근무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열리는 평일 브리핑에 대해서는 추가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업무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는데 소속된 센터에서 받는 급여 외엔 특별한 보상이 없는 겁니다.


■ 오늘도 검은색 옷을 입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답답할 만도 한데 오늘도 수어 통역사들은 발화자의 옆을 지켰습니다. 늘 그렇듯 검은 옷을 입은 채 말이죠.

왜 항상 검은색 옷을 입느냐는 물음에 박유로 수어 통역사는 손짓이 잘 보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반짝이는 옷을 입는 다거나 무늬가 있는 옷을 입으면 손동작이 헷갈릴 수 있고, 보는 농인들이 정보를 인지하는데 어려움이 생길까 봐 지양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그림자처럼 곁에서 묵묵히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고 있는 수어 통역사들.
손짓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의 바람과 각오,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일 하네, 착한 일 하네, 이런 시각보다는 전문적인 통역사라는 인식으로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박유로 수어 통역사

"다 같이 힘든, 국민이 모두가 힘든 상황이잖아요. 감내하고 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려고요." - 이소연 수어 통역사

취재:조선우/촬영:김동균
  • 자막 있는데 왜 수어 통역하냐고요?
    • 입력 2020-12-25 08:02:37
    취재K

■ 농인(聾人)을 아시나요?

날 때부터 배우는 언어를 흔히 '모국어'라고 표현하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자란 모두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우는 건 아닙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처럼 하나의 언어체계를 가진 '수어'. 그 수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부릅니다.

농인이라는 표현,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시나요? 때문에 청각 장애인으로 칭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요, 농인은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청각 장애가 의료적 관점의 용어라면 농인은 그저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일 뿐입니다. 농인의 입장에서 수어를 쓰지 않는 사람은 청인이 되고요.


■ "글자보다는 '수어'에 익숙해서요."

농인들에게 수어는 제1 언어입니다. 뉴스 화면에 자막이 나오는데도 수어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글자보다 수어에 익숙한 농인들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뉴스 수어 통역은 필수입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건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든 수어를 쓰는 사람이든 같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1년 가까이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모두의 일상이 달라진 가운데 누구보다 손을 바쁘게 움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수어 통역사'입니다.


■ "손은 풀어도 긴장은 풀 수 없죠"…수어 통역사의 '스탠바이'

전북 수어통역센터에 소속된 7년 차 수어 통역사 박유로 씨가 아침 뉴스 통역을 위해 방송국 뉴스룸에 들어왔습니다. 수어는 표정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쓰고 온 마스크는 한쪽에 잠시 벗어둡니다.

뉴스의 특성상 생방송 직전에 기사 내용을 접하게 되는데요, 짧은 시간 동안 주요 표현을 익힙니다. 이렇게 손을 잘 풀어야 하는데 마음가짐은 다릅니다. 통역에 최대한 집중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가까이 쭉 주요 뉴스가 된 코로나19 관련 재난 정보가 혹여나 농인들에게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말이죠.


■ 코로나19 사태로 통역 업무 늘었지만 인력 '태부족'

올해는 특히 코로나19 탓에 방역당국 브리핑이 연일 열리면서 업무가 늘었는데요, 수어 통역사들에게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먼저 상시 대기형 업무를 한다는 점입니다. 전라북도나 전주시, 지역 방송국 등 여러 기관이 코로나19 관련 소식을 급하게 전해야 할 때 통역을 갑자기 요구하게 되는데요, 빠르게 대처해야 하기에 평일뿐 아니라 휴일에도 밤낮 구분 없이 업무 배정을 받게 됐습니다.

지역 내 수어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안타까운데요, 전라북도수어통역센터 소속 수어 통역사는 여섯 명. 여기서 농인인 수어 통역사를 제외하면 실제 브리핑과 방송국 특보의 통역을 맡을 인력은 겨우 두, 세 명뿐입니다. 갑자기 발생하는 통역 업무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죠.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땐 주변 시군의 수어통역센터 소속 수어 통역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실정입니다.


■ 평일 브리핑 통역하고 얻는 수입 '0원'

그렇다면 도 방역당국 브리핑을 통역해 얻는 수입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상 0원입니다.

주말과 같은 휴일 근무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열리는 평일 브리핑에 대해서는 추가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업무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는데 소속된 센터에서 받는 급여 외엔 특별한 보상이 없는 겁니다.


■ 오늘도 검은색 옷을 입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답답할 만도 한데 오늘도 수어 통역사들은 발화자의 옆을 지켰습니다. 늘 그렇듯 검은 옷을 입은 채 말이죠.

왜 항상 검은색 옷을 입느냐는 물음에 박유로 수어 통역사는 손짓이 잘 보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반짝이는 옷을 입는 다거나 무늬가 있는 옷을 입으면 손동작이 헷갈릴 수 있고, 보는 농인들이 정보를 인지하는데 어려움이 생길까 봐 지양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그림자처럼 곁에서 묵묵히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고 있는 수어 통역사들.
손짓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의 바람과 각오,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일 하네, 착한 일 하네, 이런 시각보다는 전문적인 통역사라는 인식으로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박유로 수어 통역사

"다 같이 힘든, 국민이 모두가 힘든 상황이잖아요. 감내하고 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려고요." - 이소연 수어 통역사

취재:조선우/촬영: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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