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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박희수 “인생 바꾼 상무서 코치로…SK 팬들에 감사”
입력 2020.12.27 (08:41) 연합뉴스
"자신감 없고, 실력도 부족했던 저를 바꿔준 곳이 상무였어요."

박희수(37)가 은퇴를 택했다.

조금 더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한 그는 코치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박희수는 2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어린 아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야구 선수로 뛰는 게 목표였는데….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배운다"며 "감사하게도 박치왕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고, 국군체육부대(야구단) 투수코치 자리를 제의해 주셨다. 내년부터 상무 코치로 일한다"고 말했다.

SK 와이번스는 지난달 6일 박희수를 방출했다.

박희수는 마운드에 더 서고 싶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닐까"라고 자문하다가도 "몸 상태가 이렇게 좋은 데 마운드를 떠나는 건 정말 아쉽다. 야구를 내려놓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 개인 훈련을 하며 타 구단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12월 말까지 박희수를 '선수로 영입하려는 구단'은 없었다.

고민이 점점 커지는 시점에 박치왕 상무 감독이 코치 제의를 했고, 박희수는 인생의 변곡점을 만든 상무에서 새 출발 하기로 했다.

박희수는 "상무는 내게 의미가 큰 곳이다. 상무에 입단하기 전에 나는 실력도 부족했지만,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2008년에 운 좋게 상무에 합격한 뒤에 성격이 바뀌었다. '할 수 있다'고 마음먹고 새로운 목표에 도전했다"고 떠올렸다.

대전고 시절 박희수는 주목받는 왼손 투수였다. 하지만 팔이 지친 상태였고 동국대 1학년 때 팔꿈치 수술을 받아 후유증으로 3학년 막판까지 쉬었다.

2006년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한 그는 1군에서 5경기만 뛴 뒤에 2008년 상무에 입단했다.

상무에서 박희수는 모범생이었다. 2009년에는 선발과 중간, 마무리로 9승 10세이브 9홀드를 올렸다.

박희수는 "2009년에 모든 보직을 경험하면서 배짱이 생겼다. 상무에서 자신감을 얻은 덕에 전역 후 1군에 도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역 후 박희수의 모습'은 많은 팬이 기억한다.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흐르는 투심 패스트볼을 연마한 박희수는 2010년 14경기에 등판했고, 2011년부터는 SK 핵심 불펜으로 활약했다.

2012년에는 34홀드를 올려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2013년과 2014년, 2016년에는 SK 마무리로 뛰었다. 지금은 한화 이글스에서 뛰는 정우람과 함께 철벽 불펜을 구축했다.

2013년과 2017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뽑혀 국제대회도 치렀다.

2017년 1군에서 48경기를 소화한 박희수는 2018∼2020년, 3시즌 동안은 1, 2군을 오갔다. SK가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면서 박희수가 설 자리가 예전보다 좁아졌다.

박희수는 올해 1군에서 28경기에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5.47로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2군에서 18경기에 등판해 18이닝 동안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다.

'모범생' 박희수는 2군에서도 성실하게 훈련하고 투구하며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다.

하지만 세월은 박희수를 마운드에서 밀어냈다.

박희수는 397경기 21승 22패 79세이브 60홀드 평균자책점 3.02의 1군 개인 통산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박희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SK와 상무에서만 뛰었다. 15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다"며 "SK 왕조 시절의 후반부도 경험했다. 왕조를 만든 선배, 후배들과 함께 뛰면서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성적이 좋을 때도, 힘들었던 시절에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 팬들과 SK 구단에 정말 감사하다. 팬들의 응원 덕에 프로 생활 15년을 했다"고 말했다.

박희수는 지도자 생활도 '성실하게' 할 생각이다.

박희수는 "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마운드를 떠나지만, 코치로 만날 선수들에게는 '조금만 더 버티고, 이겨내라'라고 말하는 코치가 되겠다. 내가 상무에서 자신감을 얻어 SK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후배들에게도 상무가 인생의 도약대가 됐으면 한다. 내가 열심히 돕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은퇴하는 박희수 “인생 바꾼 상무서 코치로…SK 팬들에 감사”
    • 입력 2020-12-27 08:41:09
    연합뉴스
"자신감 없고, 실력도 부족했던 저를 바꿔준 곳이 상무였어요."

박희수(37)가 은퇴를 택했다.

조금 더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한 그는 코치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박희수는 2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어린 아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야구 선수로 뛰는 게 목표였는데….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배운다"며 "감사하게도 박치왕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고, 국군체육부대(야구단) 투수코치 자리를 제의해 주셨다. 내년부터 상무 코치로 일한다"고 말했다.

SK 와이번스는 지난달 6일 박희수를 방출했다.

박희수는 마운드에 더 서고 싶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닐까"라고 자문하다가도 "몸 상태가 이렇게 좋은 데 마운드를 떠나는 건 정말 아쉽다. 야구를 내려놓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 개인 훈련을 하며 타 구단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12월 말까지 박희수를 '선수로 영입하려는 구단'은 없었다.

고민이 점점 커지는 시점에 박치왕 상무 감독이 코치 제의를 했고, 박희수는 인생의 변곡점을 만든 상무에서 새 출발 하기로 했다.

박희수는 "상무는 내게 의미가 큰 곳이다. 상무에 입단하기 전에 나는 실력도 부족했지만,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2008년에 운 좋게 상무에 합격한 뒤에 성격이 바뀌었다. '할 수 있다'고 마음먹고 새로운 목표에 도전했다"고 떠올렸다.

대전고 시절 박희수는 주목받는 왼손 투수였다. 하지만 팔이 지친 상태였고 동국대 1학년 때 팔꿈치 수술을 받아 후유증으로 3학년 막판까지 쉬었다.

2006년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한 그는 1군에서 5경기만 뛴 뒤에 2008년 상무에 입단했다.

상무에서 박희수는 모범생이었다. 2009년에는 선발과 중간, 마무리로 9승 10세이브 9홀드를 올렸다.

박희수는 "2009년에 모든 보직을 경험하면서 배짱이 생겼다. 상무에서 자신감을 얻은 덕에 전역 후 1군에 도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역 후 박희수의 모습'은 많은 팬이 기억한다.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흐르는 투심 패스트볼을 연마한 박희수는 2010년 14경기에 등판했고, 2011년부터는 SK 핵심 불펜으로 활약했다.

2012년에는 34홀드를 올려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2013년과 2014년, 2016년에는 SK 마무리로 뛰었다. 지금은 한화 이글스에서 뛰는 정우람과 함께 철벽 불펜을 구축했다.

2013년과 2017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뽑혀 국제대회도 치렀다.

2017년 1군에서 48경기를 소화한 박희수는 2018∼2020년, 3시즌 동안은 1, 2군을 오갔다. SK가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면서 박희수가 설 자리가 예전보다 좁아졌다.

박희수는 올해 1군에서 28경기에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5.47로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2군에서 18경기에 등판해 18이닝 동안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다.

'모범생' 박희수는 2군에서도 성실하게 훈련하고 투구하며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다.

하지만 세월은 박희수를 마운드에서 밀어냈다.

박희수는 397경기 21승 22패 79세이브 60홀드 평균자책점 3.02의 1군 개인 통산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박희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SK와 상무에서만 뛰었다. 15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다"며 "SK 왕조 시절의 후반부도 경험했다. 왕조를 만든 선배, 후배들과 함께 뛰면서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성적이 좋을 때도, 힘들었던 시절에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 팬들과 SK 구단에 정말 감사하다. 팬들의 응원 덕에 프로 생활 15년을 했다"고 말했다.

박희수는 지도자 생활도 '성실하게' 할 생각이다.

박희수는 "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마운드를 떠나지만, 코치로 만날 선수들에게는 '조금만 더 버티고, 이겨내라'라고 말하는 코치가 되겠다. 내가 상무에서 자신감을 얻어 SK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후배들에게도 상무가 인생의 도약대가 됐으면 한다. 내가 열심히 돕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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