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 ‘유조선 나포’… 물 속엔 국제분쟁 그림자

입력 2021.01.05 (13:40) 수정 2021.01.05 (13:5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이란 혁명 수비대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조치”
미 국무부 대변인 “국제사회 제재 압력 완화 의도로 항행 자유 위협”

나포된 유조선 한국케미나포된 유조선 한국케미



한국 선적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시도의 하나로 페르시아만에서 항행의 권리와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 "배를 돌려라! 항구에서 조사하겠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선적 만 7천 톤급 유조선 '한국케미'에 접근한 것은 한국 시각으로 어제(4일) 오후 3시 20분쯤이었습니다. 이 선박은 메탄올 등 화학물질 3종류를 실은 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란 혁명 수비대가 배를 조사하겠다고 합니다." 해당 선박의 한국인 선장은 위성전화로 선박 관리회사에 상황을 알렸습니다. 선사는 해당 해역이 이란의 영해가 아니라 공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속정을 타고 접근해 배에 오른 혁명수비대 군인들은 "항구에 가서 조사해야 한다"며 배를 이란 쪽으로 돌리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배는 이란 남부 반다르 아바스 항으로 향했습니다. 선장 등 한국인 5명을 포함해 모두 20명이 억류됐습니다. 선원들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이란 "해양 환경 규제 위반 탓"

이란에서 표면적으로 밝힌 사유는 '환경 규제 위반'입니다. 혁명수비대는 성명을 내고 "이 조치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선박의 나포는 호르무즈 주(州) 검찰과 해양항만청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사법 당국이 다루게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해당 선박은 해양 오염에 대해 조사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조치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공해 상에서 나포됐다는 점을 의식한 듯 "이란은 물론 다른 해역에서 일어난 이전의 유사한 사례와 같이 예외는 있을 수 없다"며 "추가적인 내용은 이후 언급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란 반관영 매체는 "나포된 선박이 대규모 해양 오염을 일으켰다"면서 "혁명수비대가 나포 전 경고했음에도 항행을 계속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선박 관리회사 측은 오염 사고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 청해부대 최영함 급파…이란 대사 초치

한국 정부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이란에 한국케미호와 선원 억류 해제를 요구하고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을 긴급 출동시켰습니다. 오만 해역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 청해부대 최영함은 오늘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에 도착했으며, 상황에 대비하면서 우리 상선 보호 등의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여러 외교 경로로 '조기에 억류를 해제하라'고 이란에 요구했습니다. 외교부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은 오늘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한국 국적 선박의 나포 경위를 묻고 해당 선박에 대한 억류 해제를 요청합니다.


■ 美 "제재 완화 시도 일환…억류 해제하라"

미국 국무부도 이란에 한국 유조선 억류해제를 요구했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란 정권은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에서 항행의 권리와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해양 환경 규제 위반 탓이라는 이란의 주장을 일축하고 노림수는 '제재 완화'에 있다고 규정한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란에 유조선을 즉각 억류해제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동참한다"고 말했습니다.


■ "동결 자금으로 백신 구매 협의"

이런 가운데 한국에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자금을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사용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호세인 탄하이 이란·한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이 동결 자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우선으로 이란의 동결자금은 백신을 구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라며 "이란 보건부가 관련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한국의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는 이란중앙은행 자금 70억 달러, 7조 6천억 원이 동결돼 있습니다.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고 치른 대금인데, 이란중앙은행이 제재 대상이 되면서 고스란히 계좌에 묶여 있는 겁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 동결 자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르면 다음 주에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란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란혁명수비대의 독자적 돌출행동으로 최 차관 이란 방문과 동결 자산 협상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 솔레이마니 1주기…미국에 보내는 메시지?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3분의 1이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이란은 미국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했고, 여러 차례 유조선 등 선박을 나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나포 사건이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발생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3일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전설적 인물인 솔레이마니가 미국 무인기 공습으로 사망한지 1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수면 위 ‘유조선 나포’… 물 속엔 국제분쟁 그림자
    • 입력 2021-01-05 13:40:44
    • 수정2021-01-05 13:50:32
    취재K
<strong>이란 혁명 수비대 </strong>“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조치”<br /><strong>미 국무부 대변인 </strong>“국제사회 제재 압력 완화 의도로 항행 자유 위협”
나포된 유조선 한국케미


한국 선적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시도의 하나로 페르시아만에서 항행의 권리와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 "배를 돌려라! 항구에서 조사하겠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선적 만 7천 톤급 유조선 '한국케미'에 접근한 것은 한국 시각으로 어제(4일) 오후 3시 20분쯤이었습니다. 이 선박은 메탄올 등 화학물질 3종류를 실은 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란 혁명 수비대가 배를 조사하겠다고 합니다." 해당 선박의 한국인 선장은 위성전화로 선박 관리회사에 상황을 알렸습니다. 선사는 해당 해역이 이란의 영해가 아니라 공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속정을 타고 접근해 배에 오른 혁명수비대 군인들은 "항구에 가서 조사해야 한다"며 배를 이란 쪽으로 돌리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배는 이란 남부 반다르 아바스 항으로 향했습니다. 선장 등 한국인 5명을 포함해 모두 20명이 억류됐습니다. 선원들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이란 "해양 환경 규제 위반 탓"

이란에서 표면적으로 밝힌 사유는 '환경 규제 위반'입니다. 혁명수비대는 성명을 내고 "이 조치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선박의 나포는 호르무즈 주(州) 검찰과 해양항만청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사법 당국이 다루게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해당 선박은 해양 오염에 대해 조사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조치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공해 상에서 나포됐다는 점을 의식한 듯 "이란은 물론 다른 해역에서 일어난 이전의 유사한 사례와 같이 예외는 있을 수 없다"며 "추가적인 내용은 이후 언급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란 반관영 매체는 "나포된 선박이 대규모 해양 오염을 일으켰다"면서 "혁명수비대가 나포 전 경고했음에도 항행을 계속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선박 관리회사 측은 오염 사고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 청해부대 최영함 급파…이란 대사 초치

한국 정부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이란에 한국케미호와 선원 억류 해제를 요구하고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을 긴급 출동시켰습니다. 오만 해역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 청해부대 최영함은 오늘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에 도착했으며, 상황에 대비하면서 우리 상선 보호 등의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여러 외교 경로로 '조기에 억류를 해제하라'고 이란에 요구했습니다. 외교부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은 오늘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한국 국적 선박의 나포 경위를 묻고 해당 선박에 대한 억류 해제를 요청합니다.


■ 美 "제재 완화 시도 일환…억류 해제하라"

미국 국무부도 이란에 한국 유조선 억류해제를 요구했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란 정권은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에서 항행의 권리와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해양 환경 규제 위반 탓이라는 이란의 주장을 일축하고 노림수는 '제재 완화'에 있다고 규정한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란에 유조선을 즉각 억류해제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동참한다"고 말했습니다.


■ "동결 자금으로 백신 구매 협의"

이런 가운데 한국에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자금을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사용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호세인 탄하이 이란·한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이 동결 자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우선으로 이란의 동결자금은 백신을 구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라며 "이란 보건부가 관련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한국의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는 이란중앙은행 자금 70억 달러, 7조 6천억 원이 동결돼 있습니다.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고 치른 대금인데, 이란중앙은행이 제재 대상이 되면서 고스란히 계좌에 묶여 있는 겁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 동결 자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르면 다음 주에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란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란혁명수비대의 독자적 돌출행동으로 최 차관 이란 방문과 동결 자산 협상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 솔레이마니 1주기…미국에 보내는 메시지?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3분의 1이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이란은 미국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했고, 여러 차례 유조선 등 선박을 나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나포 사건이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발생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3일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전설적 인물인 솔레이마니가 미국 무인기 공습으로 사망한지 1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