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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수비대는 왜 한국배에 올랐나?
입력 2021.01.05 (18:24) 취재K


한국 선적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는 현재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 항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한국인 5명을 포함해 선원 20명이 승선해 있었는데,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왜 한국 선박을 나포한 걸까요?

■ 이란 "해양 오염 활동 고소에 따른 사법 절차"

이란에서는 일관되게 '환경 규제 위반'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나포 작전에 직접 나선 혁명수비대는 성명을 내고 "이 조치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해당 선박은 해양 오염에 대해 조사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조치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란은 물론 다른 해역에서 일어난 이전의 유사한 사례와 같이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란 측에서는 이 문제가 환경오염 등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요?

■ '백신값 치러달라' 협의하다 돌연 선박 나포

외교 당국자들은 "정확한 배경은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향후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이는 코로나19 백신 얘기를 꺼냈습니다. 한국 내 동결 자금으로 이란이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는 방안을 타진했고, 미국 정부 동의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정부가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려고 했다"면서 "백신 구매 대금을 한국 원화 자금으로 납부하는 방안을 놓고 미국 재무부와 저희가 협의를 해왔다"고 밝혔다.

이란은 한국 내 은행에 동결돼 있는 자금을 백신 대금으로 코백스 측에 입금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고, 한국 정부가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통해 백신 대금에 대해 제재 예외를 인정받았다는 겁니다.

급물살을 타는 듯하던 동결 자금을 활용한 백신 구입 논의는 막판에 주춤거립니다. 국내에 원화로 예치된 돈을 코백스에 보내는 과정에서 자금이 다시 동결될 가능성을 이란 측이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송금 과정에서 미국 달러화로 바꾸면 미국 은행으로 돈이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혹시 이 돈을 어떻게 할지 하는 우려 때문에 이란 측이 결정을 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월드오미터 집계를 보면 이란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25만 명에 육박하고 현재까지 5만5천 명 넘게 숨졌습니다.

■"선박 나포와는 관계 없지만...묶인 10조 원 풀어달라"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이란중앙은행 명의 계좌에 약 7조6천억 원이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한국은행에도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맡긴 3조 원 가량이 묶여 있습니다.

대부분 이란산 원유를 들여온 뒤 지급한 대금인데, 이란과 원화로 물품 교역을 할 수 있는 상계 방식의 결제 계좌 예치금입니다. 미국 승인 하에 썼던 방식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2018년 핵 합의를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이 계좌들까지 묶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란 입장에서는 원유를 공급해주고 받은 돈인데 쓰지를 못하는 상황. 이 동결 자금을 풀어달라고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다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이란은 선박 나포와 동결 자금 사이의 연관성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선박 억류와 원화 대금을 연계해서 협상하자는 의도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이란 측에서는 '그건 절대 아니다'라고 1차적 대답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실무진 이어 차관까지...고위급 외교 조율

외교부는 준비되는 대로 이란 현지에 실무 대표단을 보내 교섭에 나설 예정입니다.

외교부 최영삼 대변인은 오늘(5일) 정례 브리핑에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외교부 담당 지역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 대표단을 급파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란에서 억류 명분으로 '해양 오염 행위'를 들고 있는만큼 관련 업무 담당자도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1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최종건 외교부 차관도 이란 방문을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고위급 교류를 목전에 두고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인데, 그만큼 외교적 교섭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 커져 있는 상황입니다.

■목표는 결국 미국?

언뜻 선박 억류는 한국과 이란 사이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닐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 내 이란 동결 자금을 활용한 백신 구매 문제는 한국을 매개로 원만하게 풀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새삼 한국 쪽에 불만을 터뜨린다기엔 어색한 면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움직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선박 억류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에서 항행의 권리와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선박 억류는 한국과 이란 사이의 해묵은 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동시에 미국과 이란 사이의 깊은 불신과 긴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한국 외교가 실무 협상과 차관급 협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 이란 혁명수비대는 왜 한국배에 올랐나?
    • 입력 2021-01-05 18:24:37
    취재K


한국 선적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는 현재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 항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한국인 5명을 포함해 선원 20명이 승선해 있었는데,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왜 한국 선박을 나포한 걸까요?

■ 이란 "해양 오염 활동 고소에 따른 사법 절차"

이란에서는 일관되게 '환경 규제 위반'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나포 작전에 직접 나선 혁명수비대는 성명을 내고 "이 조치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해당 선박은 해양 오염에 대해 조사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조치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란은 물론 다른 해역에서 일어난 이전의 유사한 사례와 같이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란 측에서는 이 문제가 환경오염 등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요?

■ '백신값 치러달라' 협의하다 돌연 선박 나포

외교 당국자들은 "정확한 배경은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향후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이는 코로나19 백신 얘기를 꺼냈습니다. 한국 내 동결 자금으로 이란이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는 방안을 타진했고, 미국 정부 동의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정부가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려고 했다"면서 "백신 구매 대금을 한국 원화 자금으로 납부하는 방안을 놓고 미국 재무부와 저희가 협의를 해왔다"고 밝혔다.

이란은 한국 내 은행에 동결돼 있는 자금을 백신 대금으로 코백스 측에 입금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고, 한국 정부가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통해 백신 대금에 대해 제재 예외를 인정받았다는 겁니다.

급물살을 타는 듯하던 동결 자금을 활용한 백신 구입 논의는 막판에 주춤거립니다. 국내에 원화로 예치된 돈을 코백스에 보내는 과정에서 자금이 다시 동결될 가능성을 이란 측이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송금 과정에서 미국 달러화로 바꾸면 미국 은행으로 돈이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혹시 이 돈을 어떻게 할지 하는 우려 때문에 이란 측이 결정을 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월드오미터 집계를 보면 이란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25만 명에 육박하고 현재까지 5만5천 명 넘게 숨졌습니다.

■"선박 나포와는 관계 없지만...묶인 10조 원 풀어달라"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이란중앙은행 명의 계좌에 약 7조6천억 원이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한국은행에도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맡긴 3조 원 가량이 묶여 있습니다.

대부분 이란산 원유를 들여온 뒤 지급한 대금인데, 이란과 원화로 물품 교역을 할 수 있는 상계 방식의 결제 계좌 예치금입니다. 미국 승인 하에 썼던 방식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2018년 핵 합의를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이 계좌들까지 묶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란 입장에서는 원유를 공급해주고 받은 돈인데 쓰지를 못하는 상황. 이 동결 자금을 풀어달라고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다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이란은 선박 나포와 동결 자금 사이의 연관성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선박 억류와 원화 대금을 연계해서 협상하자는 의도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이란 측에서는 '그건 절대 아니다'라고 1차적 대답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실무진 이어 차관까지...고위급 외교 조율

외교부는 준비되는 대로 이란 현지에 실무 대표단을 보내 교섭에 나설 예정입니다.

외교부 최영삼 대변인은 오늘(5일) 정례 브리핑에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외교부 담당 지역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 대표단을 급파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란에서 억류 명분으로 '해양 오염 행위'를 들고 있는만큼 관련 업무 담당자도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1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최종건 외교부 차관도 이란 방문을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고위급 교류를 목전에 두고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인데, 그만큼 외교적 교섭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 커져 있는 상황입니다.

■목표는 결국 미국?

언뜻 선박 억류는 한국과 이란 사이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닐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 내 이란 동결 자금을 활용한 백신 구매 문제는 한국을 매개로 원만하게 풀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새삼 한국 쪽에 불만을 터뜨린다기엔 어색한 면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움직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선박 억류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 완화를 얻어내려는 명백한 시도의 일환으로 페르시아만에서 항행의 권리와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선박 억류는 한국과 이란 사이의 해묵은 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동시에 미국과 이란 사이의 깊은 불신과 긴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한국 외교가 실무 협상과 차관급 협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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