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승소 이유는?…확정 땐 日 정부 국내자산 매각 수순

입력 2021.01.08 (14:44) 수정 2021.01.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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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일본이 강력 반발하면서 외교적 후폭풍이 일고 있는데요. 일본은 국내 재판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재판이 1심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일본 정부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매각 절차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자세히 짚어봅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사람당 1억 원씩의 위자료를 달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오늘(9일)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2015년 12월 소송 절차가 시작된 지 5년여 만입니다.


■ 법원 "반인도적 범죄행위…국가면제 원칙 예외"

이 사건의 쟁점은 오직 하나, 국가면제 이론(주권면제론)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국가면제란 한 국가 정부(내지 그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을 말합니다. 국가 간 평등 원칙상 일방 국가에서의 사법절차가 아닌 외교 등의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취지입니다.

국가면제에 따르면, 일본 정부에 대해 국내 법원은 재판권이 없는 것이어서 재판부는 각하 판결을 해야 했고, 실제로 법조인 상당수는 각하 판결을 예상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일본 정부의 행위가 '주권적 행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내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 운영은 일본제국에 의하여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당시 일본제국에 의해 불법점령 중이었던 한반도 내에서 우리 국민인 원고들에 대하여 자행된 것으로서,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은 방법이 마땅치 않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미국 등의 법원에 여러 차례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되었다"며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 또한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하였다. 협상력,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개인에 불과한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소송 외에 구체적인 손해를 배상 받을 방법이 요원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가면제가 한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국가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하여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하여 형성된 것은 아니"라고 일본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고, 국제질서의 변동에 따라 계속하여 수정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리하자면, 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한 경우,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한다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한 여러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게 되고,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불법 행위로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정 등을 고려하면 위자료는 적어도 피해자들이 청구한 1억 원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은 1심 법원의 판단이지만,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국가면제를 주장하며 소송 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만큼 더 이상의 재판 없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확정까지는 2주 정도 기간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 외교적 후폭풍…일본 정부 국내자산 매각 땐 갈등 최고조 예상

한일 양국 관계는 급격하게 경색되고 있습니다. 당장 일본은 강력 반발하며 주일본 한국 대사를 초치했습니다.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일본이 실제 배상에 나설 가능성이 낮은 만큼,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국내자산을 매각해 배상금으로 바꾸는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소송에서 '위안부' 피해자 측을 대리한 김강원 변호사는 "강제집행이 가능한 재산이 있는지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일본 정부의 국내자산 매각에 들어간다면 한일 양국 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를 전망입니다.

다만, 일본 대사관 등 부지는 강제집행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사관 부지뿐 아니라 대사관 차량 등의 자산도 강제집행을 금하고 있습니다.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 제22조 제3호는 '공관지역과 동 지역내에 있는 비품류 및 기타 재산과 공관의 수송수단은 수색, 징발, 차압 또는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제집행에 들어간다 해도 장시간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집행절차는 판결과 달리 별도의 송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국내 재판에 응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송달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일본제철과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소송에서도 일본 외무성은 우리 법원의 강제집행 관련 서류를 일본 기업에 송달하지 않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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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피해자 승소 이유는?…확정 땐 日 정부 국내자산 매각 수순
    • 입력 2021-01-08 14:44:45
    • 수정2021-01-08 15:13:37
    취재K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일본이 강력 반발하면서 외교적 후폭풍이 일고 있는데요. 일본은 국내 재판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재판이 1심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일본 정부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매각 절차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자세히 짚어봅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사람당 1억 원씩의 위자료를 달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오늘(9일)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2015년 12월 소송 절차가 시작된 지 5년여 만입니다.


■ 법원 "반인도적 범죄행위…국가면제 원칙 예외"

이 사건의 쟁점은 오직 하나, 국가면제 이론(주권면제론)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국가면제란 한 국가 정부(내지 그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을 말합니다. 국가 간 평등 원칙상 일방 국가에서의 사법절차가 아닌 외교 등의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취지입니다.

국가면제에 따르면, 일본 정부에 대해 국내 법원은 재판권이 없는 것이어서 재판부는 각하 판결을 해야 했고, 실제로 법조인 상당수는 각하 판결을 예상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일본 정부의 행위가 '주권적 행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내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 운영은 일본제국에 의하여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당시 일본제국에 의해 불법점령 중이었던 한반도 내에서 우리 국민인 원고들에 대하여 자행된 것으로서,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은 방법이 마땅치 않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미국 등의 법원에 여러 차례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되었다"며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 또한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하였다. 협상력,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개인에 불과한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소송 외에 구체적인 손해를 배상 받을 방법이 요원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가면제가 한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국가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하여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하여 형성된 것은 아니"라고 일본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고, 국제질서의 변동에 따라 계속하여 수정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리하자면, 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한 경우,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한다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한 여러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게 되고,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불법 행위로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정 등을 고려하면 위자료는 적어도 피해자들이 청구한 1억 원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은 1심 법원의 판단이지만,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국가면제를 주장하며 소송 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만큼 더 이상의 재판 없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확정까지는 2주 정도 기간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 외교적 후폭풍…일본 정부 국내자산 매각 땐 갈등 최고조 예상

한일 양국 관계는 급격하게 경색되고 있습니다. 당장 일본은 강력 반발하며 주일본 한국 대사를 초치했습니다.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일본이 실제 배상에 나설 가능성이 낮은 만큼,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국내자산을 매각해 배상금으로 바꾸는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소송에서 '위안부' 피해자 측을 대리한 김강원 변호사는 "강제집행이 가능한 재산이 있는지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일본 정부의 국내자산 매각에 들어간다면 한일 양국 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를 전망입니다.

다만, 일본 대사관 등 부지는 강제집행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사관 부지뿐 아니라 대사관 차량 등의 자산도 강제집행을 금하고 있습니다.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 제22조 제3호는 '공관지역과 동 지역내에 있는 비품류 및 기타 재산과 공관의 수송수단은 수색, 징발, 차압 또는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제집행에 들어간다 해도 장시간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집행절차는 판결과 달리 별도의 송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국내 재판에 응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송달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일본제철과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소송에서도 일본 외무성은 우리 법원의 강제집행 관련 서류를 일본 기업에 송달하지 않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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