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누구나 ‘먹거리 그냥 드림’…‘양식’과 ‘양심’으로 채워질까?

입력 2021.01.08 (20:02) 수정 2021.01.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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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경기 광명과 성남, 평택 푸드뱅크 한켠에 선반이 하나 생겼습니다.

6단 선반 가장 위 칸에는 참치와 장조림 캔 같은 멸균처리 가공식품류, 김치 등이 있고 아래에는 음료수와 라면류 등이 진열됐습니다.
그 아래에는 즉석밥과 국, 죽 같은 즉석조리 식품, 그리고 스팸과 김 등 찬거리가 놓여졌습니다. 가장 아래에는 여성 위생용품과 휴지, 그리고 요즘 필수품인 마스크가 있었습니다.

흡사 편의점 가판대를 옮겨놓은 것 같은 이것은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입니다. 경기도에 주소지를 갖고 있는 배고픈 누구나 이곳을 찾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경기도가 시범 운영하는 것입니다.


■ '무료 급식'·'푸드뱅크', 그리고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차이점은?

경기도에는 이미 무료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할인받을 수 있는 무료급식소와 경로식당이 124곳 있습니다. 시군별로 푸드뱅크도 운영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을 이용하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가령 무료급식은 노숙인 등에 맞춰져 있고 경로식당은 경로 우대증이 있어야 한다는 식입니다.

푸드뱅크 역시 시군별 행정복지센터와 연계해서 가정환경과 소득 수준 등을 심사해 선정된 가정에 월 2회 음식을 지원해 줍니다.

반면,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용하기 위한 자격 조건을 최소화해 진입 장벽을 없앴습니다.

코로나 장기화 등에 따라 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가 여의치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기초생활수급 같은 복지 지원 자격이 되는 상황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 끼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여건상 복지지원 대상이 되지는 않는 상황, 배고픔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는 대개의 상황이 여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경기도는 이른바 '코로나 장발장'을 막기 위해 이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해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어내기만 하면 누구나 다섯 품목까지 선택해 가져갈 수 있다고 합니다.


■ "코로나로 실직한 지 4개월"…이곳을 찾는 사람들

취재진이 광명에 있는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를 찾았을 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중년의 여성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9월 다니던 식당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손님이 줄면서 음식점 업주는 종업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 유탄은 그것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코로나만 없으면 어디가서든 일할 수 있는데 요즘 누가 사람을 쓰나요...남편과 저 둘 다 넉달 째 일 없어요."
- 광명 '먹거리 그냥 드림' 방문 A씨 -

취재진이 만난 또 다른 방문객은 70대 어르신이었습니다.

아내가 오랜 투병 시기를 보냈고 결국 사별했는데 그 과정에서 모아둔 재산도 아내와 함께 가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병수발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현재는 별다른 일거리 없이 홀로 살고 있는데 요즘 같은 때 일용직 일을 찾기조차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돈을 벌 때는 자신 역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도움을 받는 입장이 돼서 미안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가져가도록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조차 '미안한 일', 그리고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 누구나 가져가는 '먹거리 그냥 드림'코너…계속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먹거리 그냥 드림'을 두고 선심성 정책이라거나 혹은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용 조건을 최소화하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먹거리 그냥 드림'을 이용하려면 주소지가 경기도면 됩니다. 방문객들 스스로 적어내는 인적사항을 토대로 한 명당 한 번만 이용하도록 한 것 외에는 다른 제약이 없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 '먹거리 그냥 드림'현장을 찾아 "악용하는 사례를 가려내기 위해 신원조사하고 재산조사하면 역시 또 못 오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산과 후원이 넉넉지 않은 탓에 '먹거리 그냥 드림'에 구비된 품목은 아직 10여 개 수준입니다. 관리 등의 문제로 인해 이용 시간이 하루 5시간에 불과한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입니다.

경기도는 현재 3곳에서 시범 운영 중인 '먹거리 그냥 드림'을 이르면 이달 중 31개 모든 시군에서 적어도 한곳 이상 운영을 하도록 확대할 예정입니다.

'먹거리 그냥 드림' 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양식(糧食)' 과 '양심(良心)'일 겁니다. 배고픈 누구나 가져가도록 한 먹거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연관기사]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그냥 드려요"(1월6일 뉴스7)
생계형 장발장 막는다…"그냥 드려요"(12월26일 뉴스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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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고픈 누구나 ‘먹거리 그냥 드림’…‘양식’과 ‘양심’으로 채워질까?
    • 입력 2021-01-08 20:02:46
    • 수정2021-01-08 20:07:45
    취재K

열흘 전, 경기 광명과 성남, 평택 푸드뱅크 한켠에 선반이 하나 생겼습니다.

6단 선반 가장 위 칸에는 참치와 장조림 캔 같은 멸균처리 가공식품류, 김치 등이 있고 아래에는 음료수와 라면류 등이 진열됐습니다.
그 아래에는 즉석밥과 국, 죽 같은 즉석조리 식품, 그리고 스팸과 김 등 찬거리가 놓여졌습니다. 가장 아래에는 여성 위생용품과 휴지, 그리고 요즘 필수품인 마스크가 있었습니다.

흡사 편의점 가판대를 옮겨놓은 것 같은 이것은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입니다. 경기도에 주소지를 갖고 있는 배고픈 누구나 이곳을 찾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경기도가 시범 운영하는 것입니다.


■ '무료 급식'·'푸드뱅크', 그리고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차이점은?

경기도에는 이미 무료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할인받을 수 있는 무료급식소와 경로식당이 124곳 있습니다. 시군별로 푸드뱅크도 운영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을 이용하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가령 무료급식은 노숙인 등에 맞춰져 있고 경로식당은 경로 우대증이 있어야 한다는 식입니다.

푸드뱅크 역시 시군별 행정복지센터와 연계해서 가정환경과 소득 수준 등을 심사해 선정된 가정에 월 2회 음식을 지원해 줍니다.

반면,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용하기 위한 자격 조건을 최소화해 진입 장벽을 없앴습니다.

코로나 장기화 등에 따라 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가 여의치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기초생활수급 같은 복지 지원 자격이 되는 상황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 끼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여건상 복지지원 대상이 되지는 않는 상황, 배고픔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는 대개의 상황이 여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경기도는 이른바 '코로나 장발장'을 막기 위해 이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해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어내기만 하면 누구나 다섯 품목까지 선택해 가져갈 수 있다고 합니다.


■ "코로나로 실직한 지 4개월"…이곳을 찾는 사람들

취재진이 광명에 있는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를 찾았을 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중년의 여성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9월 다니던 식당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손님이 줄면서 음식점 업주는 종업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 유탄은 그것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코로나만 없으면 어디가서든 일할 수 있는데 요즘 누가 사람을 쓰나요...남편과 저 둘 다 넉달 째 일 없어요."
- 광명 '먹거리 그냥 드림' 방문 A씨 -

취재진이 만난 또 다른 방문객은 70대 어르신이었습니다.

아내가 오랜 투병 시기를 보냈고 결국 사별했는데 그 과정에서 모아둔 재산도 아내와 함께 가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병수발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현재는 별다른 일거리 없이 홀로 살고 있는데 요즘 같은 때 일용직 일을 찾기조차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돈을 벌 때는 자신 역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도움을 받는 입장이 돼서 미안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가져가도록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조차 '미안한 일', 그리고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 누구나 가져가는 '먹거리 그냥 드림'코너…계속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먹거리 그냥 드림'을 두고 선심성 정책이라거나 혹은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용 조건을 최소화하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먹거리 그냥 드림'을 이용하려면 주소지가 경기도면 됩니다. 방문객들 스스로 적어내는 인적사항을 토대로 한 명당 한 번만 이용하도록 한 것 외에는 다른 제약이 없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 '먹거리 그냥 드림'현장을 찾아 "악용하는 사례를 가려내기 위해 신원조사하고 재산조사하면 역시 또 못 오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산과 후원이 넉넉지 않은 탓에 '먹거리 그냥 드림'에 구비된 품목은 아직 10여 개 수준입니다. 관리 등의 문제로 인해 이용 시간이 하루 5시간에 불과한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입니다.

경기도는 현재 3곳에서 시범 운영 중인 '먹거리 그냥 드림'을 이르면 이달 중 31개 모든 시군에서 적어도 한곳 이상 운영을 하도록 확대할 예정입니다.

'먹거리 그냥 드림' 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양식(糧食)' 과 '양심(良心)'일 겁니다. 배고픈 누구나 가져가도록 한 먹거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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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그냥 드려요"(1월6일 뉴스7)
생계형 장발장 막는다…"그냥 드려요"(12월26일 뉴스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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