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외부 전문가회의 없이 네차례 자체회의만…왜?

입력 2021.01.11 (15:45) 수정 2021.01.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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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가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한다는 의심 신고는 지난해 5월을 시작으로 6월과 9월, 모두 세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은 자체 사례회의를 열고 정인이에 대한 학대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오늘(11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도 정인이와 관련해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자체사례회의를 네 차례 개최한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어린이집 측으로부터 1차 신고가 접수된 다음날인 지난해 5월 26일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장과 팀장 2명, 상담원 5명이 정인이 사건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 양부모의 방임이 있었다고 판단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 자체사례회의는 2차 신고 당일인 지난해 6월 29일, 관장과 팀장 각 1명, 상담원 4명이 참여해 개최됐습니다. 당시 차 안에 정인이가 혼자 있는 것을 본 사람이 학대 의심 신고를 했는데, 강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이후 8월 경찰의 불기소 의견 송치 결정에 따라 자체사례회의에서도 학대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3차 신고 당시 자체사례회의는 신고 후 5일이 지난 9월 28일 열렸고, 관장과 팀장 그리고 상담원 4명은 학대 혐의가 없다고 결정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달 23일 소아과 의사는 '입안 상처 때문에 몸무게가 1kg 나 빠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기관은 '입안 상처가 나아 아이가 잘 먹으면 추가 진료가 필요 없다'는 25일 소견만으로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자체사례회의 4회 동안 사례전문위는 0회…왜?

그런데 전문가들은 한 아이에 대한 세 번의 신고가 접수되는 동안 자체사례회의만 개최하고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사례판단전문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은 사실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아동복지법상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례전문위원회를 둬 학대 여부가 불분명한 사례에 관한 판단, 장기 보호가 필요한 아동학대 사례의 처리 방향 등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의료와 사회복지, 교육 등 분야의 전문가 8 ~ 1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로부터 기관은 학대 사례 판단에 대한 자문을 얻는 겁니다.

그렇지만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 위원회를 한 차례도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진과 만난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KBS 취재진과 만난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1차와 2차 신고 당시 내부 판단이 어려웠지만, 사례전문위원회에 상정하기보다는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3차 신고의 경우 경찰에 직접 신고가 접수됐고 소아과 의사도 명확하게 학대로 의심한다는 소견을 내놓지 않아 사례전문위원회 회부보다 사례 관리를 하는 게 쉽다고 봤다"라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관의 이 같은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시 아동복지심의위원을 맡고 있는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자체사례회의에서 판정하기 어려운 사안들은 사례전문위원회나 아동복지심의위에 올려 아동 전문가들로부터 추가 검토를 거칠 수 있었지만 진행되지 않았다"라며 "시기적 간격을 두고 반복돼서 신고된 정인이의 위험성을 약하게 인지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례전문위 개최, 인력·예산 소모 부담

사례전문위원회가 소집되지 못한 사실은 아동보호 전문 인력과 업무량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8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업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은 사례전문위원회 개최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증언합니다.

한 현장조사팀장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례는 많지만 여러 전문가를 소집하기는 일정 조율상 쉽지 않다"라고 털어놨습니다.

한 기관장은 "사례전문위원회를 개최하려면 인력 소모도 많고 자문비 등 예산이 소요된다"라며 업무하며 행사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현업을 처리하는 데 인력이 빠듯하다 보니 위원회 준비에 역량을 소모할 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의 업무 중 모습.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의 업무 중 모습.
실태조사 결과, 기관 직원들이 생각하는 담당 가정 적정 규모는 15~30가구인데 실제 직원 한 명당 담당하는 사례 수(2019년)는 평균 64가구로 집계됩니다. 담당자들이 생각하는 적정 업무의 배 이상을 맡고 있으면서 사례전문위까지 챙기는 게 부담스러운 겁니다.

이같이 이유 등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의 이직률은 28.5%(퇴직· 휴직·법인 내 직종 변경)로 높은 상황. 한 사례관리팀장은 "퇴사가 많아 선임 상담원 경력이 3년 차이며 그 밑으로 올해 입사자도 많다"라며 " 업무 강도가 최고이고 민원인의 욕설로 인한 어려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20년 된 아동보호전문기관 "인력 체계 개선해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인이 사건은 제도적 보완과 함께 인력 문제에 초점을 맞춰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현행 시스템으로는 아동보호 인력의 충분한 전문성과 규모를 확보하기 어렵고, 그로 인한 공백도 메울 수 없다는 겁니다.

김영주 변호사(전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는 "전문가를 육성하려는 정책 방향을 잡고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만 역량이 높아질 수 있다"며 "이 같은 체계 없이 선발한 뒤 힘든 일만 시킨다면 금방 일을 관두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인력을 많이 충원하더라도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결과는 똑같을 것"이라며 "아동보호 전문가들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처우 개선 등 예산을 투입해 전문가 육성의 바탕을 깔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위탁 운영하는 비정부기구(NGO) 내에서 인사이동으로 기관을 떠나는 직원들도 상당수"라며 "아동보호 직무를 빈번한 인사이동 대상이 아닌 전문가로서 지속적으로 업무를 맡도록 하는 인력 운영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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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11 15:45:45
    • 수정2021-01-11 15:46:02
    취재후·사건후

정인이가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한다는 의심 신고는 지난해 5월을 시작으로 6월과 9월, 모두 세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은 자체 사례회의를 열고 정인이에 대한 학대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오늘(11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도 정인이와 관련해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자체사례회의를 네 차례 개최한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어린이집 측으로부터 1차 신고가 접수된 다음날인 지난해 5월 26일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장과 팀장 2명, 상담원 5명이 정인이 사건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 양부모의 방임이 있었다고 판단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 자체사례회의는 2차 신고 당일인 지난해 6월 29일, 관장과 팀장 각 1명, 상담원 4명이 참여해 개최됐습니다. 당시 차 안에 정인이가 혼자 있는 것을 본 사람이 학대 의심 신고를 했는데, 강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이후 8월 경찰의 불기소 의견 송치 결정에 따라 자체사례회의에서도 학대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3차 신고 당시 자체사례회의는 신고 후 5일이 지난 9월 28일 열렸고, 관장과 팀장 그리고 상담원 4명은 학대 혐의가 없다고 결정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달 23일 소아과 의사는 '입안 상처 때문에 몸무게가 1kg 나 빠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기관은 '입안 상처가 나아 아이가 잘 먹으면 추가 진료가 필요 없다'는 25일 소견만으로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자체사례회의 4회 동안 사례전문위는 0회…왜?

그런데 전문가들은 한 아이에 대한 세 번의 신고가 접수되는 동안 자체사례회의만 개최하고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사례판단전문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은 사실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아동복지법상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례전문위원회를 둬 학대 여부가 불분명한 사례에 관한 판단, 장기 보호가 필요한 아동학대 사례의 처리 방향 등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의료와 사회복지, 교육 등 분야의 전문가 8 ~ 1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로부터 기관은 학대 사례 판단에 대한 자문을 얻는 겁니다.

그렇지만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 위원회를 한 차례도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진과 만난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1차와 2차 신고 당시 내부 판단이 어려웠지만, 사례전문위원회에 상정하기보다는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3차 신고의 경우 경찰에 직접 신고가 접수됐고 소아과 의사도 명확하게 학대로 의심한다는 소견을 내놓지 않아 사례전문위원회 회부보다 사례 관리를 하는 게 쉽다고 봤다"라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관의 이 같은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시 아동복지심의위원을 맡고 있는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자체사례회의에서 판정하기 어려운 사안들은 사례전문위원회나 아동복지심의위에 올려 아동 전문가들로부터 추가 검토를 거칠 수 있었지만 진행되지 않았다"라며 "시기적 간격을 두고 반복돼서 신고된 정인이의 위험성을 약하게 인지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례전문위 개최, 인력·예산 소모 부담

사례전문위원회가 소집되지 못한 사실은 아동보호 전문 인력과 업무량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8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업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은 사례전문위원회 개최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증언합니다.

한 현장조사팀장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례는 많지만 여러 전문가를 소집하기는 일정 조율상 쉽지 않다"라고 털어놨습니다.

한 기관장은 "사례전문위원회를 개최하려면 인력 소모도 많고 자문비 등 예산이 소요된다"라며 업무하며 행사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현업을 처리하는 데 인력이 빠듯하다 보니 위원회 준비에 역량을 소모할 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의 업무 중 모습.실태조사 결과, 기관 직원들이 생각하는 담당 가정 적정 규모는 15~30가구인데 실제 직원 한 명당 담당하는 사례 수(2019년)는 평균 64가구로 집계됩니다. 담당자들이 생각하는 적정 업무의 배 이상을 맡고 있으면서 사례전문위까지 챙기는 게 부담스러운 겁니다.

이같이 이유 등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의 이직률은 28.5%(퇴직· 휴직·법인 내 직종 변경)로 높은 상황. 한 사례관리팀장은 "퇴사가 많아 선임 상담원 경력이 3년 차이며 그 밑으로 올해 입사자도 많다"라며 " 업무 강도가 최고이고 민원인의 욕설로 인한 어려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20년 된 아동보호전문기관 "인력 체계 개선해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인이 사건은 제도적 보완과 함께 인력 문제에 초점을 맞춰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현행 시스템으로는 아동보호 인력의 충분한 전문성과 규모를 확보하기 어렵고, 그로 인한 공백도 메울 수 없다는 겁니다.

김영주 변호사(전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는 "전문가를 육성하려는 정책 방향을 잡고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만 역량이 높아질 수 있다"며 "이 같은 체계 없이 선발한 뒤 힘든 일만 시킨다면 금방 일을 관두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인력을 많이 충원하더라도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결과는 똑같을 것"이라며 "아동보호 전문가들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처우 개선 등 예산을 투입해 전문가 육성의 바탕을 깔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위탁 운영하는 비정부기구(NGO) 내에서 인사이동으로 기관을 떠나는 직원들도 상당수"라며 "아동보호 직무를 빈번한 인사이동 대상이 아닌 전문가로서 지속적으로 업무를 맡도록 하는 인력 운영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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