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집에 방치된 갓난아기…주민센터 공무원이 학대 막았다

입력 2021.01.14 (21:18) 수정 2021.01.1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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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어나 16개월 만에 학대로 숨진 정인이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 안에서 학대당하는 아동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데요.

그래서 정부는 2018년부터 예방접종 여부나 장기 결석 등의 자료를 분석해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을 찾아내는 'e행복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으로 학대 의심 사례가 발견되면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학대 여부를 확인하는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장조사 비율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경기도가 최근 아동학대를 조기 발견하기 위해 가정에서 양육되는 아동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였는데요.

결과 어땠을까요?

이유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좁은 주방에 가득 찬 쓰레기.

화장실엔 쓰고 버린 휴지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4살과 3살, 태어난 지 한 달 된 막내까지….

'삼 남매'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김미숙/경기 행복마을관리소 직원 : "박스, 우유팩, 먹다 남은 것들, 그런 것들이 싱크대 높이보다도 높이 쌓여 있었으니까…."]

주민센터 직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삼 남매 가족은 대상인지도 몰랐던 주거급여도 받게 됐습니다.

[김미숙/경기 행복마을관리소 직원 : "하나하나씩 (부모에게) 멘토 역할을 해준 거죠. 그 다음에 방문했을 때는 정말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분리수거도 하고…."]

지난해 널어놓은 빨래를 어지럽혔다며 아이들을 옷걸이로 때린 엄마.

아이들은 보호시설로 분리됐었는데, 주민센터는 최근 이 상황을 파악하고 엄마에게 심리 치료를 지원했습니다.

[신재학/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 : "미안해 하면서 굉장히 눈물도 많이 흘리시고…."]

반년간의 교육과 모니터링 끝에 아이들은 지난달 엄마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신재학/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 : "얼마 전에는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오셨더라고요. 아이들도 더 밝아지고 어머님도 저희 기관에 협조적으로 해주시고…."]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가정에서 양육하는 만 3세에서 6세 아동은 경기도에만 4만 9천여 명에 달합니다.

경기도는 이 아동들을 전수조사해 학대가 의심되거나 부모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 14명을 찾았습니다.

만 3세만을 대상으로만 하는 정부의 전수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아동들입니다.

동네 상황을 잘 아는 이웃들과 주민센터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오태석/경기도 자치행정국장 : "코로나19 상황에서 직접 방문조사는 어려움이 있어서 이장, 통장님들의 협조를 통해서 (학대 의심 아동의) 서비스 연계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방치되거나 학대받고 있는 '제2의 정인이'를 막으려면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촬영기자:강승혁 안민식/영상편집:서정혁/그래픽:이요한

신고했다 오히려 ‘곤욕’…“현장 조사 없이 신고자만 노출”

[앵커]

학대받는 아동을 발견하려면 행정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찾아내거나, 아니면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고를 해도 조사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신고했다 오히려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조혜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최근 지인으로부터 음성파일을 받은 여성.

아이는 울고, 보호자로 추정되는 어른은 큰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쿵쿵' 소리가 연달아 들립니다.

이웃에서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런 상황이 매일같이 반복됐다는 말에 지인을 대신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A 씨/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음성변조 : "(지인이) 한 번 신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녹음파일을 들려줬더니 '이게 들리세요?' 그러면서 '안 들리는데요' 이런 반응을 보이면서…."]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아이의 몸 상태를 면밀히 보기 어렵다며, 아이 부모의 민원이 심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도리어 신고자에게 추가 증거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A 씨/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음성변조 : "신고자가 직접 그 집을 들어가서 영상이라도 찍어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증거를 왜 신고자에게 찾는지도 좀 의문이 들고…."]

병원에 온 아동 얼굴의 상처를 보고 학대의심 신고를 했던 의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됐습니다.

이 때문에 2시간 동안이나 아버지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경찰은 미안하다는 말만 남겼습니다.

[B 씨/아동학대 신고 의사 : "(처음에는) 수사하다 보면 누가 신고했는지 어떻게 얘기를 안 할 수 있냐, 우리가 실수한 거니깐 좀 이해해라…."]

아동학대 신고자를 노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노출 경로가 대부분 경찰이기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학대 신고를 한 뒤 오히려 가해 부모로부터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C 씨/아동학대 신고 경험 교사/음성변조 : "매일매일 그분(학대 보호자)이 학교에 오셨고, 경찰에서 와도 경찰분들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보호자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다음 날 또 오고, 다음 날 또 오고, 이게 몇 개월 동안 계속됐고..."]

이러다 보니 전체 아동학대 신고 사례 중 의사나 교사 등 의무신고자들의 신고 비율은 4년 만에 절반 가까이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조혜진입니다.

촬영기자:황종원 홍성백/영상편집:이기승/그래픽:최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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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 집에 방치된 갓난아기…주민센터 공무원이 학대 막았다
    • 입력 2021-01-14 21:18:33
    • 수정2021-01-14 22:17:01
    뉴스 9
[앵커]

태어나 16개월 만에 학대로 숨진 정인이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 안에서 학대당하는 아동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데요.

그래서 정부는 2018년부터 예방접종 여부나 장기 결석 등의 자료를 분석해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을 찾아내는 'e행복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으로 학대 의심 사례가 발견되면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학대 여부를 확인하는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장조사 비율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경기도가 최근 아동학대를 조기 발견하기 위해 가정에서 양육되는 아동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였는데요.

결과 어땠을까요?

이유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좁은 주방에 가득 찬 쓰레기.

화장실엔 쓰고 버린 휴지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4살과 3살, 태어난 지 한 달 된 막내까지….

'삼 남매'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김미숙/경기 행복마을관리소 직원 : "박스, 우유팩, 먹다 남은 것들, 그런 것들이 싱크대 높이보다도 높이 쌓여 있었으니까…."]

주민센터 직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삼 남매 가족은 대상인지도 몰랐던 주거급여도 받게 됐습니다.

[김미숙/경기 행복마을관리소 직원 : "하나하나씩 (부모에게) 멘토 역할을 해준 거죠. 그 다음에 방문했을 때는 정말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분리수거도 하고…."]

지난해 널어놓은 빨래를 어지럽혔다며 아이들을 옷걸이로 때린 엄마.

아이들은 보호시설로 분리됐었는데, 주민센터는 최근 이 상황을 파악하고 엄마에게 심리 치료를 지원했습니다.

[신재학/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 : "미안해 하면서 굉장히 눈물도 많이 흘리시고…."]

반년간의 교육과 모니터링 끝에 아이들은 지난달 엄마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신재학/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 : "얼마 전에는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오셨더라고요. 아이들도 더 밝아지고 어머님도 저희 기관에 협조적으로 해주시고…."]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가정에서 양육하는 만 3세에서 6세 아동은 경기도에만 4만 9천여 명에 달합니다.

경기도는 이 아동들을 전수조사해 학대가 의심되거나 부모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 14명을 찾았습니다.

만 3세만을 대상으로만 하는 정부의 전수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아동들입니다.

동네 상황을 잘 아는 이웃들과 주민센터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오태석/경기도 자치행정국장 : "코로나19 상황에서 직접 방문조사는 어려움이 있어서 이장, 통장님들의 협조를 통해서 (학대 의심 아동의) 서비스 연계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방치되거나 학대받고 있는 '제2의 정인이'를 막으려면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촬영기자:강승혁 안민식/영상편집:서정혁/그래픽:이요한

신고했다 오히려 ‘곤욕’…“현장 조사 없이 신고자만 노출”

[앵커]

학대받는 아동을 발견하려면 행정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찾아내거나, 아니면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고를 해도 조사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신고했다 오히려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조혜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최근 지인으로부터 음성파일을 받은 여성.

아이는 울고, 보호자로 추정되는 어른은 큰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쿵쿵' 소리가 연달아 들립니다.

이웃에서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런 상황이 매일같이 반복됐다는 말에 지인을 대신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A 씨/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음성변조 : "(지인이) 한 번 신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녹음파일을 들려줬더니 '이게 들리세요?' 그러면서 '안 들리는데요' 이런 반응을 보이면서…."]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아이의 몸 상태를 면밀히 보기 어렵다며, 아이 부모의 민원이 심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도리어 신고자에게 추가 증거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A 씨/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음성변조 : "신고자가 직접 그 집을 들어가서 영상이라도 찍어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증거를 왜 신고자에게 찾는지도 좀 의문이 들고…."]

병원에 온 아동 얼굴의 상처를 보고 학대의심 신고를 했던 의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됐습니다.

이 때문에 2시간 동안이나 아버지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경찰은 미안하다는 말만 남겼습니다.

[B 씨/아동학대 신고 의사 : "(처음에는) 수사하다 보면 누가 신고했는지 어떻게 얘기를 안 할 수 있냐, 우리가 실수한 거니깐 좀 이해해라…."]

아동학대 신고자를 노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노출 경로가 대부분 경찰이기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학대 신고를 한 뒤 오히려 가해 부모로부터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C 씨/아동학대 신고 경험 교사/음성변조 : "매일매일 그분(학대 보호자)이 학교에 오셨고, 경찰에서 와도 경찰분들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보호자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다음 날 또 오고, 다음 날 또 오고, 이게 몇 개월 동안 계속됐고..."]

이러다 보니 전체 아동학대 신고 사례 중 의사나 교사 등 의무신고자들의 신고 비율은 4년 만에 절반 가까이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조혜진입니다.

촬영기자:황종원 홍성백/영상편집:이기승/그래픽:최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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