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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싫어”…혐오 발언에도 미적지근한 제주도의회
입력 2021.01.15 (07:00) 취재K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인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서비스가 잠정 중단된 가운데, 한 광역의회 의원이 공개 석상에서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을 해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 동성애자 싫어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자식들에게 동성애가 괜찮다, 정상적이다, 문제가 없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학습하고 이해시키는 것에 대하여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 소수자 혐오 발언에도 장내는 '웃음'뿐

지난달 23일, 제주도의회 본회의 석상에 도의원 한 명이 올라왔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초선 강충룡 의원입니다.

제주도 학생인권 조례안 의결을 앞두고 반대토론을 신청한 강 의원은 위와 같이 발언하며 "동성애를 권장할 자신이 없는 만큼 학생인권 조례안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 의원이 자리에서 내려오자,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은 "인사하고 가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꿨습니다. 공개 석상에서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는데도, 속기록대로면 장내는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강 의원이 반대 의견을 밝힌 제주도 학생인권 조례안은 애당초 '성적 지향 등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삭제된 채 상정돼 본회의를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강 의원의 돌출 발언까지 이어지며, 남은 건 성 소수자들이 입은 상처와 추락한 제주도의회의 인권 감수성뿐이었습니다.

지난달 23일 열린 제390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지난달 23일 열린 제390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

"도의원이 혐오·증오 부추겨"

인터넷 생방송으로 본회의를 시청하던 신현정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신 위원은 "제주에 사는 성 소수자 가운데 한 명으로서 참 황당했다"며 "도민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 도의원이 되려 특정 도민의 삶을 위협하는 정치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또 "세 차례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하며 제주도민들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체감했지만, 정치인들은 그 변화를 대변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한 채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누구든 차별·배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 전달한 것"

전문가들은 이러한 혐오 발언이 성 소수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특정 집단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배제하는 논리는 장애인 등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언제든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정체성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며 "개인적인 생각을 말했을지라도 부정적인 파장을 일으켰다면, 그 의견은 온전히 개인의 의견이라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민주주의의 기본 인권이나 평등의식을 가진 의원이 있다면 누군가는 제지해야 했다"며 "해당 의원의 사과로 넘어갈 게 아니라 제주도의회 차원에서 재발방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대응 일관에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혐오 발언이 나온 지 3주가 지나도록 제주도의회가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시민단체는 강충룡 제주도의원과 제주도의회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제주지역 19개 정당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의 발언을 한 강충룡 의원과 좌남수 의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가 피진정인"이라며 "언론 기사 등을 통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지만 어떠한 사과나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강충룡 의원의 발언이 성 소수자의 기본권 등을 침해한 만큼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성 소수자가 피해자"라며 강 의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책임은 당사자가 져야"…제주도의회 한 달 만에 입장 발표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강충룡 의원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강 의원이 발언대에서 내려간) 시간이 짧아 발언을 제지하지 못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강 의원에게로 돌렸습니다.

그런데도 "제주도의회 차원에서 강 의원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판단해 자체적으로 징계할 수 있겠느냐"며 "찬반이 엇갈리는 만큼 도민들에게 판단을 맡겨야 하고, 그 책임은 강 의원이 져야 한다"며 이번 사태와 선을 그었습니다.

좌 의장은 다음 주 초쯤 각 당 원내대표와 제주도의회 상임위원장들을 모아 강충룡 의원 발언에 대한 의견을 들을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강 의원의 징계 여부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강 의원이 돌출 발언을 한 지 근 한 달만으로, 제주도의회가 뒤늦게 입장을 내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한편, 강충룡 의원은 "현재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며 "조만간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를 갖겠다"며 말했습니다.
  • “동성애 싫어”…혐오 발언에도 미적지근한 제주도의회
    • 입력 2021-01-15 07:00:04
    취재K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인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서비스가 잠정 중단된 가운데, 한 광역의회 의원이 공개 석상에서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을 해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 동성애자 싫어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자식들에게 동성애가 괜찮다, 정상적이다, 문제가 없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학습하고 이해시키는 것에 대하여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 소수자 혐오 발언에도 장내는 '웃음'뿐

지난달 23일, 제주도의회 본회의 석상에 도의원 한 명이 올라왔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초선 강충룡 의원입니다.

제주도 학생인권 조례안 의결을 앞두고 반대토론을 신청한 강 의원은 위와 같이 발언하며 "동성애를 권장할 자신이 없는 만큼 학생인권 조례안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 의원이 자리에서 내려오자,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은 "인사하고 가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꿨습니다. 공개 석상에서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는데도, 속기록대로면 장내는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강 의원이 반대 의견을 밝힌 제주도 학생인권 조례안은 애당초 '성적 지향 등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삭제된 채 상정돼 본회의를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강 의원의 돌출 발언까지 이어지며, 남은 건 성 소수자들이 입은 상처와 추락한 제주도의회의 인권 감수성뿐이었습니다.

지난달 23일 열린 제390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지난달 23일 열린 제390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

"도의원이 혐오·증오 부추겨"

인터넷 생방송으로 본회의를 시청하던 신현정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신 위원은 "제주에 사는 성 소수자 가운데 한 명으로서 참 황당했다"며 "도민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 도의원이 되려 특정 도민의 삶을 위협하는 정치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또 "세 차례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하며 제주도민들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체감했지만, 정치인들은 그 변화를 대변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한 채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누구든 차별·배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 전달한 것"

전문가들은 이러한 혐오 발언이 성 소수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특정 집단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배제하는 논리는 장애인 등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언제든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정체성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며 "개인적인 생각을 말했을지라도 부정적인 파장을 일으켰다면, 그 의견은 온전히 개인의 의견이라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민주주의의 기본 인권이나 평등의식을 가진 의원이 있다면 누군가는 제지해야 했다"며 "해당 의원의 사과로 넘어갈 게 아니라 제주도의회 차원에서 재발방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대응 일관에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혐오 발언이 나온 지 3주가 지나도록 제주도의회가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시민단체는 강충룡 제주도의원과 제주도의회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제주지역 19개 정당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의 발언을 한 강충룡 의원과 좌남수 의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가 피진정인"이라며 "언론 기사 등을 통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지만 어떠한 사과나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강충룡 의원의 발언이 성 소수자의 기본권 등을 침해한 만큼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성 소수자가 피해자"라며 강 의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책임은 당사자가 져야"…제주도의회 한 달 만에 입장 발표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강충룡 의원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강 의원이 발언대에서 내려간) 시간이 짧아 발언을 제지하지 못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강 의원에게로 돌렸습니다.

그런데도 "제주도의회 차원에서 강 의원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판단해 자체적으로 징계할 수 있겠느냐"며 "찬반이 엇갈리는 만큼 도민들에게 판단을 맡겨야 하고, 그 책임은 강 의원이 져야 한다"며 이번 사태와 선을 그었습니다.

좌 의장은 다음 주 초쯤 각 당 원내대표와 제주도의회 상임위원장들을 모아 강충룡 의원 발언에 대한 의견을 들을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강 의원의 징계 여부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강 의원이 돌출 발언을 한 지 근 한 달만으로, 제주도의회가 뒤늦게 입장을 내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한편, 강충룡 의원은 "현재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며 "조만간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를 갖겠다"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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